7화. 본능
자신을 향해 축하한다고 말하는 희진을 보면서 재혁이 경악했다.
“너 설마…… 네가 이렇게 만든 거야?”
희진은 찬찬히 재혁의 어깨를 쓸었다.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만 않을 뿐, 선아는 이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고,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축하한다니….
희진이 그런 거라니…….
선아가 충격에 빠진 사이, 희진이 말을 이어갔다.
“다른 건 생각하지 말자. 그냥 재혁 씨가 다 가지게 된 거, 그거만 생각하자.”
다 가지게 되었단 말에 재혁의 표정이 잠시간 풀어졌지만, 다시 험악하게 굳었다.
“다 가지게 되긴. 류도진 저 새끼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게 분명한데.”
그는 지금 아내의 죽음보다도 자신에게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자리를 뜬 도진의 태도가 더 분한 듯이 보였다.
“어차피 선아 주식이면 재혁 씨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없을 텐데 왜 그렇게 화를 내. 류도진이 가진 주식 다 해봤자 선아 지분의 반 정도인 걸 재혁 씨도 알잖아.”
“저 새끼는 눈빛이 재수 없어. 봐봐, 방금도 한마디도 안 하고 나가잖아. 저 새끼가 고개 숙이는 걸 봐야 하는데……. 저 새낀 분명 사사건건 날 방해할 게 분명해. HS에서 나간다고 하더라도 저 새끼 입김이면 주주들 다 동요할 게 분명하고…….”
“그러지 못하게 만들면 되지.”
“방법이 있어?”
“윤선아 자살에 일조한 도의적 책임을 물어서 류도진이 주식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으면 되잖아. 사직서 낸 거 보니까 책임은 느끼고 있는 거 같은데.”
“류도진이 각서를 쓸까?”
“쓰게 해야지.”
만약 육신이 있었더라면 당장 이 자리에서 연놈들의 머리끄덩이를 휘어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아는 이미 죽은 몸이었다.
지금 그녀가 바라는 건 어서 세빈이 옆으로 가는 것이지 갖고 있어 봐야 다 쓰지도 못했을 재산 따위가 아니었다.
세빈이가 죽는 순간 2조 원에 달하는 재산 따위는 이미 무가치해져 버렸다.
“각서는 네가 머리 좀 써봐. 그리고 당분간은 붙어 있는 모습 사람들 눈에 띄지 말자.”
재혁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회의실을 떠났다.
희진은 유리문 너머 복도를 걷는 재혁의 뒷모습을 보다가 재킷 주머니에서 이는 진동을 느끼고 핸드폰을 꺼내 쥐었다.
핸드폰에 메시지가 수신됐다. 희진의 옆에서 선아도 메시지를 함께 읽었다.
[트럭 운전사는 어떻게 할까요?]
트럭 운전사?
선아가 눈을 깜박이며 무슨 소리인지 생각하려는 그때, 희진이 빠른 손놀림으로 답장을 적기 시작했다.
[원래 목표는 윤선아….]
그러던 그 순간이었다.
-엄마…….
어디선가 세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선아는 소리가 들려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새하얀 빛무리가 번지고 있었다.
선아는 이승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잊기라도 한 듯 감격스러운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세빈이를 만난다. 세빈이의 곁으로 갈 수 있다.
하얀빛은 점점 커지더니 선아의 몸을 감쌌고, 그녀의 몸도 같은 빛깔의 빛으로 바스러져 내렸다.
‘엄마가 지금 세빈이한테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갈 테니까 우리 세빈이 어디 가지 말고…….’
그녀는 빛 가루처럼 변해 하얀빛 속으로 빨려갔다.
-엄마.
‘응. 아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엄마. 엄마는 더 살아줘…….
‘세빈이 없이 엄마가 어떻게 살아. 엄마는 세빈이 옆에 있고 싶어. 엄마는 세빈이가 있어야 행복해.’
-사랑해, 엄마…….
‘세빈아, 왜 그런 이야길 해, 세빈…….’
***
“세빈, 세빈아!”
선아는 세빈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깨어났다.
“세빈아! 세빈아!”
시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고, 주변을 분간하지 못한 그녀는 눈을 깜빡거렸다.
‘병원?’
그녀가 깨어난 곳은 병실이었다. 병실 창가엔 기다란 3인용 소파가 놓여 있었고, 그곳엔…… 2년 전 세상을 떠난 엄마와 도진이 앉아 있었다.
“선아야.”
고개를 든 도진은 선아의 얼굴을 보고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 선아 깨어났습니다!”
선아의 엄마 현숙이 일어나 침대로 달려왔다.
“이 멍청한 계집애야!”
침대 곁으로 다가온 현숙이 선아에게 소리쳤다.
“엄마?”
선아는 눈을 깜박이며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지 엄마의 얼굴이 돌아가시기 전보다도 훨씬 젊어져 있었다.
“진짜 엄마야?”
사고 이후 오랫동안 의식을 잃고 누워 지냈던 엄마는 하얗게 센 머리를 한 채 돌아가셨다.
그러나 지금 그녀 앞에 있는 엄마는 활발히 사회생활을 할 때처럼 화려한 차림에 붉은 갈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뒤통수가 깨졌어도 엄마는 알아보네.”
엄마가 있는 걸 보니 여기는 천국이겠지. 그렇다면 세빈이는……?
“엄마, 우리 세빈이 못 봤어? 세빈이 여기 먼저 왔을 건데 세빈이는 어딨어?”
선아의 말에 현숙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세빈이가 누군데?”
“세빈이가 누구냐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 아들이잖아. 우리 세빈이…….”
“도진아, 선아 이게 머리를 깨 먹더니 아주 정신을 놓은 모양인데?”
도진이 선아의 이마로 손을 뻗었다.
“열은 없는 거 같습니다만.”
이마에 닿은 찬 손의 느낌에 선아는 정신을 차리며 도진을 올려다봤다.
여기가 천국이라면 도진 선배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선배는 왜…….”
“너 업무 보고하다 말고 쓰러졌잖아. 쓰러지면서 책상 모서리에 뒤통수를 찧었고.”
옆에서 듣던 현숙이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는 듯 버럭 소릴 질렀다.
“윤선아 이 못난 년아. 결혼식 앞두고 다이어트 하다가 다이할 뻔했다. 이것아. 너 죽을 뻔했다고!”
“뭐?”
생각해보면 그런 일이 있었다.
재혁과의 결혼을 앞두고,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다가 현기증으로 쓰러졌고, 당시에 업무 보고를 받던 도진이 그녀를 업고 병원에 데려왔었다.
“그럼 혹시 지금이 8년 전……?”
현숙의 손이 선아의 등으로 날아왔다.
“야, 이, 미친 딸년아. 8년 전은 무슨, 8년 전!”
“아야! 아파, 엄마!”
도진은 화들짝 놀라며 현숙의 손을 붙잡으며 만류했다.
“사장님, 선아 아직 회복 중이라 때리시면 안 됩니다!”
“오늘부터 다이어트고 뭐고 때려치워! 사람이 제힘을 써서 일할 정도는 먹어야지! 내가 너 때문에 부끄러워 죽겠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영양실조가 웬 말이야, 영양실조가!”
엄마가 쉼 없이 타박을 했지만, 선아의 귀에는 그 타박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선아는 엄마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침대맡을 살폈다. 일단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파악해야 했다.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피던 선아의 눈에 들어온 건 협탁 위에 놓인 가방이었다.
그 가방은 결혼 전에 쓰던 가방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하면서 곧바로 퇴사했기에 서류 가방과 비슷한 가방은 저게 전부였다.
가방을 집어 든 그녀는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그 안에서 예전에 쓰던 핸드폰이 나왔다.
핸드폰을 켜니 재혁과 함께 찍은 셀카가 배경화면으로 지정돼 있었다.
선아는 곧바로 날짜를 확인했다.
핸드폰에는 세빈이를 잃은 날로부터 정확히 8년 전의 날짜가 쓰여 있었다.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선아가 병원 담요 위로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그 모습을 본 현숙은 속이 문드러진다는 표정으로 도진을 손짓해 불렀다.
“도진아.”
“네. 사장님.”
“뇌 MRI 검사도 한다고 했지?”
“네.”
“빨리 그 MRI부터 해보자고 해봐. 선아 저것 아무래도 머리가 좀…….”
그 순간이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선 선아가 손등의 주삿바늘을 쑥 빼 버렸다.
“어엇!”
손등의 혈관이 파열되면서 핏물이 튀었다. 현숙이 기함했고, 도진이 빠르게 선아에게 다가왔다.
“선아야. 이렇게 함부로 링거 바늘-”
선아는 도진의 말을 다 듣지도 않은 채 협탁의 가방만을 든 채 병실을 뛰쳐나갔다.
달리는 선아의 손등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병동 데스크의 간호사들이 달려가는 그녀를 보며 놀라 일어섰지만, 빠르게 지나치는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선아야!”
“윤선아!”
현숙과 도진이 그녀의 뒤를 따라왔지만, 선아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달렸다.
8년 전으로 돌아와 대학병원에서 깨어났다.
아직도 이 상황이 어리둥절하고 낯설지만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비상계단이 보이자 선아는 문을 열고 계단으로 뛰어들었다.
지금 이게 꿈인지, 아니면 세빈이와 함께했던 삶이 꿈인지, 혹은 죽어서 온 사후 세계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빈이에 대한 일을 없던 일이라 치부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모든 삶을 통틀어 가장 귀한 이가 세빈이었다.
8년 전이라면 세빈이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때였지만, 선아는 세빈이의 엄마였다.
그녀의 머릿속에 세빈이의 기억이 또렷한 이상, 선아는 세빈이를 찾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세계가 자신의 과거가 아니라 기억들이 뒤죽박죽 혼재된 세상이라면 세빈이가 이 세계 어딘가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설사 여기가 지옥이라고 해도 선아는 세빈이를 찾아야만 했다.
그게 엄마니까.
나는 세빈이의 엄마니까.
병원 로비까지 뛰어 내려온 선아는 손에 든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손등을 타고 흐른 피가 가방 손잡이를 물들이고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 상관없었다.
그 순간, 선아의 뒤를 따라온 도진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선아야!”
도진의 시선이 선아의 손등에 가서 닿았다. 주삿바늘을 잡아 뺀 손등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너 왜 이래? 왜 이러는 건데?”
“선배. 손 좀 놔줘. 나 가봐야 해.”
“대체 어딜 간다는 건데.”
“아파트…. 내가 살던 아파트….”
“아파트?”
“반포동에 아파트 있잖아.”
“너 신혼집으로 쓴다고 구해놓은 그 아파트?”
신혼집으로 쓰려고 구해놓은 아파트란 말에 선아는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만약 지금이 8년 전이라면 반포동 신축 아파트의 입주가 시작될 시기였다.
“그 아파트. 나 그 아파트 가야 해.”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이 그곳이었다.
“나 잡지 마, 선배.”
그곳이 세빈이와 살던 곳이었고, 그곳에 세빈이의 유골함을 두고 왔기 때문에 반드시 가야 했다.
지금 자신이 있는 이곳이 어떤 세상인지는 모른다.
세빈이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 수 없지만, 엄마이기에 아이의 마지막 흔적을 찾는 건 선택 사항이 될 수 없었다.
자식을 찾는 건 엄마로서 본능이자 의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