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미안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도진이 다가와 선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선아야.”
이제 가잔 뜻이었다. 선아는 고개를 끄덕이곤 그의 차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재혁의 눈에 맹렬한 분노가 타올랐다.
지금껏 도진이 선아를 챙기는 걸 보아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내는 살이 쪄서 더는 아름답지 않았고, 아들은 장애아였다.
그러나 선아가 이혼을 주장하는 현재, 도진은 그에게 큰 위협이나 다름없었다.
재혁은 두 사람의 뒤를 따라오며 발악하듯 소리쳤다.
“하, 야, 류도진, 너 뭐 하는 짓이야. 뭔데 갑자기 나타나서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어?”
선아는 재혁을 무시한 채 도진의 차에 올라탔고, 조수석 문을 닫아준 도진은 돌아서 운전석에 올라탔다.
재혁은 그 앞에서 발을 구르다가 차 앞을 막아서며 주먹으로 보닛을 두드렸다.
“너, 씹, 너 설마 아직도 선아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니지?”
쾅쾅 소리가 차 안까지 울려 퍼졌지만, 도진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시동을 켰다. 깜짝 놀란 재혁은 자동차 옆으로 비켜섰다.
“엄마야! 아오, 씹! 이 미친 새끼가!”
차가 출발하기 직전, 황급히 조수석 옆으로 달려온 재혁은 손바닥으로 유리창을 두드렸다.
“선아야, 선아야, 문 좀 열어봐.”
문손잡이를 잡고 조수석 문을 열려고 했지만, 잠긴 문이 열리지 않자, 재혁은 구둣발로 차 문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윤선아! 류도진! 너희 씨발 나 놔두고 붙어먹은 거 아니지? 너네 씨발, 바람 나서 이혼이니 뭐니 그런 개소리 하는 거냐고!”
뭐 눈에 뭐만 보인다고……. 그 소리에 선아가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왜? 너는 정희진이랑 10년이나 붙어먹고, 내가 다른 남자랑 붙어먹을 생각 하니 열 받니?”
“뭐?”
선아의 말에 재혁이 넋을 뺀 사이 차가 출발했다.
재혁이 정희진과 10년을 붙어먹었던 말을 듣고 궁금한 것이 많을 텐데도 도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집으로 온 선아는 텅 빈 집 안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품 안엔 세빈이의 유골함이 들려 있었다.
문 앞에서 돌아가지 않겠다는 도진과 한참 실랑이를 한 끝에 그를 돌려보낼 수 있었다.
‘선배. 무슨 걱정하는지 알아.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그러는 거지? 자식을 잃은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지언정, 죽는 선택 못 해. 죽어서 내가 어디로 갈 줄 알고…….’
그는 선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걱정하는 듯했지만, 선아는 추호도 그럴 마음이 없었다.
혹시나 자신을 해하는 방식으로 삶을 마무리했다가 사후에서도 세빈이를 보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영영 끝나지 않는 고통이었다.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는 그 아이를 가슴에 묻은 채 죽지 못해 산다고 했다. 앞으로 선아의 인생이 그럴 터였지만, 세빈이를 다시 만나려면 선아는 그렇게라도 살아내야 했다.
휑한 집 안을 둘러보다가 거실 테이블 가운데에 세빈이의 유골함을 내려놓았다.
거실 테이블 한가운데에 유골함을 놓으면 집이 세빈이로 꽉 찬 느낌일 것 같았지만, 집은 여전히 기묘할 정도로 조용했고 마음속 공허는 채워지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7년을 이곳에서 함께 살았다. 세빈이는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았고, 늘 TV장 앞에서 장난감을 늘어놓고 놀았다.
집 곳곳에는 당연하게 아이의 흔적이 묻어 있었고, 그 자리마다 아지랑이처럼 아이의 환영이 넘실댔다.
“세빈아. 우리 둘이 이 집에서 참 행복했는데, 그치?”
무너지듯 바닥에 앉은 선아는 텅 빈 눈으로 거실 벽을 응시했다.
‘엄마! 엄마!’
재활 치료를 할 적의 세빈이는 벽에 설치된 봉을 잡고 걷는 연습을 했다.
설치할 때만 해도 반들반들 광이 나던 스테인리스 봉은 세빈이의 손때로 윤기를 잃었다. 그렇게나 오랜 시간 세빈이는 걷는 연습을 했고, 그 옆에는 늘 선아가 있었다.
‘엄마, 나 화장실까지 걸었다?’
‘어머, 우리 세빈이! 대단하다!’
그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몸 오른쪽이 마비되었던 세빈이가 그나마도 혼자 걷을 수 있게 되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누가 알까.
세빈이가 홀로 설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세빈이가 마침내 봉을 놓고 홀로 걷던 그 날까지. 그 긴 세월 동안 세빈이는 작은 몸으로 이를 악물고 노력했고. 선아는 아이 앞에서는 웃고 뒤돌아서는 눈물을 훔쳤다.
홀린 듯이 일어선 선아는 벽으로 다가가 봉을 매만졌다.
‘엄마, 진짜 이렇게 걷기 연습하면 남들처럼 잘 걸을 수 있어?’
어느 날인가 홀로 걸음 연습을 하던 세빈이가 물었다.
‘그럼. 우리 세빈이 지금처럼 노력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지!’
선아는 언제나처럼 세빈이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아이를 북돋웠었다.
‘진짜? 나도 나중에는 뭐든 할 수 있게 되는 거야?’
‘당연하지! 세빈이는 혼자 잘 걸을 수 있게 되면 뭐가 하고 싶은데? 축구? 달리기?’
그러자 세빈이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있잖아. 잘 걷게 되면 엄마를 업어주고 싶어.’
‘뭐?’
‘엄마가 나 업어준 만큼 나도 엄마 업어주고 싶어.’
이 자리에서 세빈이와 그런 대화를 했었다.
그날 엄마를 업어주고 싶다는 말을 들은 선아는 고개를 돌리고 신에게 기도했었다.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이 행복이 영원하도록 해주세요.
그때 세빈이는 뒤돌아 눈물을 훔치는 그녀를 모르는 척하면서 봉을 잡고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그렇게 매일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걷는 연습을 한 세빈이가 잠들 때마다 선아의 귀에 속삭이던 이야기가 있었다.
‘낳아줘서 고마워, 엄마.’
‘엄마야말로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예뻐해 주고 사랑해줘서 고마워, 엄마.’
‘엄마가 더 고마워, 아들.’
선아는 눈물을 흘리면서 세빈의 손때가 묻은 봉을 매만졌다.
세빈이가 죽던 날. 아이를 다그쳐서 어서 가자 할 것이 아니라 도진과 더 놀게 할 것을.
그랬더라면 트럭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세빈이도 살았을 텐데.
“세빈아……. 엄마가 미안해…….”
세빈이가 이렇게 일찍 떠날 줄 알았더라면 힘든 재활 치료 같은 거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힘든 재활 같은 거 시키지 않고 등에 업고 세상 곳곳을 보여주며 함께 할걸.
“엄마 욕심에 널 고생만 시키다 보냈어…. 귀한 내 새끼를 엄마가…. 어떻게 하니, 세빈아…. 우리 세빈이 없이 엄마가 어떻게 살아……. 너 없이 엄마가……. 흐으윽…….”
선아는 벽에 고정된 봉을 양손으로 잡은 채 바닥에 무릎 꿇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사고가 났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차라리 그때 자신 또한 아이와 함께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차라리 엄마도 같이 가게 두지 그랬어…….”
선아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틈 없이 채워졌고, 비워도 비워도 또 넘쳐 버렸다.
“엄마가 너 없이 어떻게 살아……. 세빈아…….”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창고로 쓰던 작은 방의 문이 스르륵 열리고 그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괴한이 소리 없이 선아의 뒤에 다가섰다.
괴한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선아에게 씌웠다.
휙, 선아의 귓가에 바람이 닿았다.
무슨 일인가 파악을 하기도 전 선아의 얼굴에 피가 몰리며 흰자위의 실핏줄이 터졌다.
시야가 번졌다. 세빈이가 잡고 걷던 봉이 흐릿해졌다.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선아의 눈이 감겼다.
***
‘차라리 잘됐어.’
의식을 잃는 그 순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멀다는 저승길을 다리 불편한 세빈이가 홀로 어떻게 갈까 걱정하던 차였다.
몇 번이고 세빈이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 다시는 세빈이를 보지 못할지도 몰라 버티고 또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자신을 세빈이 곁으로 보내준다니.
‘이제 세빈이를 볼 수 있어.’
다시 아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선아는 자신에게 드리운 죽음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세빈이를 다시 만난다면 다리 저는 아들을 등에 업고 저승의 먼 길을 걸을 작정이었다.
험한 길을 가다가 세빈이가 잠이 온다고 하면 자장가도 불러주고, 세빈이가 쉬어 가자면 저승길 어딘가에 앉아 길가의 꽃으로 꽃반지를 만들어 낄 것이다.
흐려지는 의식 속, 선아는 어서 세빈이를 만나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세빈이의 자취가 아니라 삶의 주마등이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삶을 반추하는 과정이 눈앞에 스친다던데, 정말로 그러했다.
몇 날 며칠이 되는 긴 시간 동안,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까지도 모두 볼 수 있었다.
어서 빨리 저승에 가고 싶은 마음과 달리, 선아는 원치도 않는 모든 일을 눈앞에서 보아야만 했다.
지금 선아는 HS 엔터테인먼트 회의실에 있었다.
유리창 밖으로는 전략본부의 사무실이 보였지만, 그녀가 방문했을 적처럼 활기 넘치는 모습이 아니었다.
직원들은 모두 어두운 복장으로 출근을 했고, 누구도 이야기를 나누거나 웃지 않았다.
사무실을 비추는 유리 벽 안의 회의실 또한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윤선아 이사님의 사망으로 인해 생전 고인이 소유한 주식 23%가 남편인 이재혁 대표님에게 상속됩니다.”
변호사는 윤선아 이사의 자살로 인해 상속세에 대하여 논의할 수 없었기에 상속세 부분은 세무당국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관찰자가 된 채 흘러가는 일을 지켜보던 선아는 내내 무감각했지만, 변호사의 입에서 나온 자살이라는 말에 처음으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자살을 했다고?’
때마침 회의실 벽에 걸린 TV 화면에서는 선아의 죽음과 관련한 뉴스가 보도되었다.
[자식을 잃은 충격에 HS 엔터테인먼트 대주주 자살, 2조 원 치의 주식은 향후 어디로?]
TV 바로 앞자리에 도진이 앉아 있었다.
이 회사의 전략본부장인 그가 바로 선아의 자산가치를 2조 원으로 불린 장본인이었다.
한국의 흔한 엔터테인먼트사였던 HS를 세계적인 회사로 키운 그는 HS가 자랑하는 인재였고, 그에겐 언제나 선망 어린 시선이 따라다녔다.
그랬던 도진이 비통함에 젖은 채 고갤 숙이고 있었다.
며칠 동안 면도도 하지 못한 것인지 그의 턱 부근이 파르스름했고, 뺨이 패어 얼굴의 골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선아는 가만히 앉은 도진을 바라보다가 그의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분노하는 재혁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류도진! 네가 선아 데려가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안 일어났어!”
“…….”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애를 왜 데려가! 이 개자식! 너는 자살을 방조한 거나 다름없어! 자식을 잃은 애를 혼자 둬? 미친 새끼! 당장 선아 살려내! 선아 살려내라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품 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회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辭職書]
사직서였다.
“이따위 사직서 한 장으로 네 죄가 다 무마될 거 같아? 무책임한 새끼야!”
도진은 말없이 회의실을 떠났다. 변호사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회의실을 나갔다.
“저 잘난 맛에 사는 재수 없는 새끼.”
재혁은 도진이 나간 뒤에도 한참 동안 욕설을 지껄였다.
잠시 후, 재혁만 남은 회의실에 검은 정장 차림의 희진이 들어섰다.
우습게도 희진의 머리카락에는 망자의 직계가족을 뜻하는 하얀 핀이 꽂혀 있었다.
“재혁 씨…….”
재혁에게로 다가간 희진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유리 벽 너머 사무 공간의 직원들이 본다면 그 모습은 선아의 죽음을 위로하는 모습으로 보였겠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