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고드는 밤-5화 (5/85)

5화. 내 아가

탕탕탕탕! 탕탕탕탕!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음과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 유리가 바스러지는 소리 속에 자신을 부르는 도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아야! 선아야!”

선아가 간신히 눈을 떴다.

“으으…….”

눈을 뜨자마자 갈비뼈가 으스러진 듯 상복부를 강타하는 통증이 몰아쳤지만, 고통 따위 느낄 새도 없었다.

조수석이 함몰됐고 차 안까지 트럭의 범퍼가 침범해있었다. 트럭에 의해 운전석 쪽까지 밀려온 조수석에 몸이 반쯤 부서진 세빈이가 앉아 있었다.

“어어억… 세, 세빈아, 세빈아!”

꽉 매인 안전띠가 아이의 몸을 압박하고 있었다. 선아는 유리창이 부서져 내린 차를 더듬어 안전띠 버클을 찾았다.

손끝이 유리 파편에 베여 피투성이가 되어갔다. 손끝이 너덜거릴 정도로 유리 파편을 헤친 선아가 마침내 안전띠 버클을 풀었다.

탁 소리와 동시에 세빈이의 몸이 선아 쪽으로 쓰러졌다.

자신의 옷에 피투성이가 된 손끝을 벅벅 닦은 선아는 유리를 털어낸 손으로 세빈이의 뺨을 매만졌다.

“세빈아. 세빈아 정신 차려, 세빈아. 엄마 목소리 들리지? 정신 잃으면 안 돼, 세빈아. 엄마 말 들어야지. 세빈아.”

열리지 않는 문 때문에 차 바깥에선 도진이 깨진 앞 유리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운전석 문을 열고 있었다.

정장 재킷이 유리에 찢어져 셔츠와 맨살이 드러났다. 유리가 살에 파고드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차의 잠금을 해제했지만 찌그러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바깥에선 사람들이 뭘 하든 선아의 눈엔 세빈이만 보였다. 선아는 세빈이를 안은 채 연신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피투성이가 된 세빈이의 눈이 파르르 떨리더니 까만 눈동자가 드러났다.

“엄마…….”

충격으로 인해 혈관이 터진 아이의 눈을 피를 머금은 것처럼 새빨갰다. 선아는 찢어지지 않은 손등의 살갗으로 세빈이의 눈가를 쓸었다.

“어떡해…. 우리 세빈이, 우리 세빈이 어떡해…….”

그 순간 도진이 차 문을 열었다. 도진이 선아의 몸을 붙잡자 행인들 여럿이 달려와 선아와 세빈이를 차 안에서 꺼내는 것을 도왔다.

선아는 세빈이를 품에 안은 채 바깥으로 딸려 나왔다.

밖에서 본 세빈이의 모습은 더욱 처참했다. 하필이면 좌회전을 할 때 트럭이 들이박은 터라 아이의 온몸이 거의 부서지다시피 해 피투성이가 되었다.

세빈의 눈이 잠투정을 할 때처럼 꿈쩍거렸다. 선아는 잠들기 직전처럼 눈을 가물가물하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자면 안 돼, 아가. 절대로 자면 안 돼. 엄마랑 병원 갈 때까지 눈 크게 뜨고 있어야 돼. 자지 마, 세빈아…….”

눈이 자꾸만 감기고 있었지만, 세빈이는 눈을 뜨려고 애쓰고 있었다.

세빈이는 평소에도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엄마의 말이라면 한두 번 떼쓰다가도 당연하다는 듯 수긍하는 아이였다. 엄마의 말에 어떻게든 눈을 떠보려고 애쓰지만 힘겨워 보였다.

“옳지. 잘하고 있어. 그렇게 눈 뜨고, 눈에 힘주고. 엄마만 믿어. 엄마가 병원 데려가서 우리 세빈이 하나도 아프지 않게…….”

그 순간이었다. 잠들지 않으려고 버티던 세빈이가 눈을 까뒤집더니 몸을 경련하기 시작했다.

“엄…… 엄…….”

파르르 떨리는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선아야, 세빈이, 세빈이가…….”

아이의 마지막을 직감한 도진이 세빈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엄……마……. 고마…….”

세빈이는 그 한마디를 채 뱉지 못한 채 숨을 멈추었다.

아이의 눈이 감기고 볼을 따라 핏물 섞인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힘없이 옆으로 돌아가는 세빈이의 얼굴을 본 행인들은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훔쳤다.

“세빈아, 얘가 왜 이래…… 도진 선배, 세빈이 왜 이래?”

오직 선아만이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염없이 세빈이의 이름을 불렀다.

“세빈아, 눈 떠야지. 우리 세빈이 착한 아이잖아. 얼른 눈 떠야지… 세빈아…. 세빈아… 엄마 말 좀…… 제발 엄마 말 좀 들어줘…….”

반파된 차 위로 겨울의 흰 눈이 떨어졌다.

눈이 쌓이기 시작하는 도로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세빈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선아의 얼굴은 바짝 마른 고목처럼 변했다.

생기가 사라진 눈빛처럼 머리카락과 손톱에서도 윤기가 빠졌다.

세빈이가 죽은 그 순간부터 선아의 얼굴에서도 삶의 기운이 사라졌다.

조수석과 세빈이의 몸이 충격을 흡수한 터라 선아는 그 사고에서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 선아는 그 사실이 더욱 못 견디게 괴로웠다.

몸도 성치 않은 아들을 방패 삼아 살아남은 엄마.

장례식 내내 선아는 쉴 새 없이 입술을 깨물고, 손에 닿는 대로 살갗을 꼬집으며 자신을 자학했다.

“안 돼……. 우리 세빈이, 이렇게는 못 보내. 세빈아, 세빈아…….”

세빈이의 빈소에서 선아는 정신을 잃고 깨어나길 반복했다.

“꿈이라면 깨. 제발 깨! 제발 좀…. 깨라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며 피가 흐르고 통증이 일어도 이 지독한 꿈은 멈추지 않았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죽지 못해 견디는 선아와 달리 상주가 된 재혁은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고, 의원님 오셨습니까.”

정·재계 유명 인사들이 세빈의 빈소를 찾아왔다. 재혁은 슬픈 얼굴로 문상객들을 맞고, 그들의 위로를 들었다.

선아는 이혼을 결심했음에도 아이 아빠이기에 세빈의 마지막 길에 상주 역할을 하게 내버려 두었다. 아니, 그를 제지할 힘도 의지도 남지 않았다.

장례식장을 찾아온 유명 인사들의 인사를 받느라 바쁜 재혁 대신 도진이 선아를 챙겼다.

하룻밤 사이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를 마구 쥐어뜯는 선아를 도진이 붙잡았다.

“선아야. 정신 차려야지.”

“선배 나도 정신 차리고 싶어. 빨리 꿈에서 좀 깨고 싶어.”

꿈에서 깨야 하는데….

빨리 깨어나서 세빈이 아침밥을 준비해야 하는데…….

“나 좀 깨워줘. 나 좀 이 나쁜 꿈에서 벗어나게 해줘. 나 좀……!”

자학하는 행동이 저지되자 선아는 몸을 비틀며 울다가 스스로 이기지 못한 채 정신을 놓았다.

그렇게 여섯 번째로 의식을 놓았다 깨어났을 때, 도진은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선아야. 정신 차려. 너 이러면 세빈이 편하게 못 가…….”

이제 곧 세빈이의 입관이 진행된다고 했다.

“세빈이 마지막인데 네가 지켜봐야지. 네가 버텨야지…….”

도진은 선아를 안다시피 해 입관실로 데려갔다.

양옆으로 열리는 나무 문 안으로 들어가자 엠버밍(사고로 훼손된 시신을 복원하는 기술)에 사용하는 약품의 싸한 냄새가 풍겨왔다.

고개를 든 선아는 유리 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하얀 천이 깔린 침대에 수의를 입은 세빈이가 누워 있었다.

장례 지도사는 깨지고 짓이겨진 세빈이의 몸을 닦이고 깨끗한 수의로 갈아입혀 놓았다.

남자아이였음에도 세빈이는 살결이 하얗고 보드라워서 더없이 예뻤더랬다. 그런 세빈이에게 하얀 수의를 입혀놓으니 아이가 꼭 잠옷을 입고 잠든 것 같았다.

“흐으윽…….”

선아는 비척거리는 발걸음으로 세빈이에게 다가가 아이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잠잘 때면 세빈이에게서 아이의 체향이 짙게 느껴졌었는데 더는 그 향이 느껴지지 않았다.

차갑고 딱딱한 침대에 누운 세빈이에게서는 아이의 향이 사라지고, 진한 약품 냄새만이 배어났다.

“우리 세빈이……. 우리 세빈이…….”

선아는 세빈이의 이마며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만 살아서 미안해……. 우리 아가, 엄마가 같이 가야 하는데, 너만 보내서 엄마가 너무……. 너무 많이 미안해…….”

당장이라도 엄마를 부르며 일어날 것만 같은 세빈이는 미동하지 않았다.

“세빈 엄마.”

선아로 인해 입관 절차가 지연되고 있었다. 재혁이 다가와 세빈이에게서 선아를 억지로 떼어냈다.

“정신 차려야지. 우리 세빈이 편하게 보내 줘야지.”

장례 지도사는 선아의 앞에서 세빈이의 얼굴에 천을 덮고 몸을 꽁꽁 묶기 시작했다. 아이의 몸이 비틀리지 않게 꽁꽁 묶는 대렴 절차를 지켜보던 선아가 다시 또 벌떡 일어났다.

“세빈 엄마!”

재혁이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도진이 일어나 그를 만류했다.

“재혁아, 선아 그냥 둬.”

오늘이 아니면 선아는 다시 세빈이를 만져 보지 못할 터였다.

선아에게 세빈이는 제 몸보다 더 귀한 아이였다. 누구도 지금의 선아를 말려서는 안 되었다.

세빈이에게로 달려간 선아는 아이의 얼굴에서 천을 벗겨내 끌어안았다.

“안 돼, 세빈아. 눈 좀 떠봐. 엄마 여기 있잖아. 세빈아, 제발, 눈 좀 뜨고 엄마 좀 봐줘…….”

그녀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세빈이를 묶은 동아줄을 풀어냈다.

“우리 세빈이 꽁꽁 묶으면 어떡하라고…… 우리 세빈이 7년이나 몸도 불편했는데…… 이렇게 꽁꽁 묶으면 어떡하라고…….”

선아는 세상을 잃었다.

“내 아기, 우리 세빈이. 꽁꽁 묶지 마세요……. 흐으윽……. 내 아기…. 우리 세빈이…….”

아니, 세상을 다 주어도 절대로 바꾸지 않을, 세상보다 더 귀한 자식을 잃었다.

***

세빈이는 불 속에서 한 줌의 재로 변했다. 함 속의 유골이 식지 않아 도자기 표면은 아직도 뜨끈뜨끈했다.

선아는 세빈이의 유골함에 겨울바람이 닿지 않도록 가슴에 품었다.

그 한 줌의 온기가 식으면 아이가 영원히 자신을 떠날 것 같아서…… 선아는 유골함을 품에 안고 손바닥으로 하염없이 유골함 표면을 쓸었다.

“세빈아, 엄마도 데려가. 엄마도 우리 세빈이 따라갈래……. 엄마도 가고 싶어…….”

“세빈 엄마.”

문상객들이 다 떠나고 나서야 재혁은 초췌해진 얼굴로 선아에게 다가왔다.

“집에 가자. 우리도 이제 돌아가자.”

“우리라고?”

선아는 날카로운 눈으로 재혁을 쏘아보았다.

“세빈이 아빠여서 장례식장에 발 들이게 해준 거지, 너랑 더 할 말 없어.”

“선아야, 이제 그만하고…….”

“집은 애초부터 내 거였으니까 그쪽으로 올 생각 하지 말고, 가서 네 삶 살아.”

재혁은 유골함 위에 놓인 그녀의 손등에 제 손을 가져다 댔다.

“선아야, 내 말 좀 들어 봐.”

“당장 손 안 떼?”

“나랑 다시 살아야지, 그래야 우리 세빈이 같은 아이 또 낳지.”

“뭐?”

세빈이 같은 아이를 또 낳으면 된다는 말이 비수처럼 선아의 가슴에 박혔다.

“너 지금 우리 세빈이 같은 아이 다시 낳는다고 한 거니?”

“그래. 세빈이 너랑 내가 낳은 아이잖아. 나랑 다시 부부로 살아야 세빈이랑 똑 닮은 아이 낳고…….”

“미친놈.”

“뭐?”

선아는 재혁의 손을 털어내고 유골함을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아내도 다른 여자로 대체할 수 있고, 세빈이도 아이를 또 낳아서 대체할 수 있는지 몰라도 나는 그런 거 못 해. 아니, 안 해.”

“선아야. 내 말뜻은 그런 게 아니라…….”

“세빈이 같은 아이는 없어. 우리 세빈이 같은 아이는 다시 안 태어나. 누가 감히 하나뿐인 내 새끼를 대신하는데!”

재혁이 선아에게로 손을 뻗어 오자, 그녀는 한 발 뒤로 물러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

“한 번만 더 그딴 소리 해봐. 입을 쫙 찢어 버릴 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