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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위자료를 굴려보자-51화 (51/120)

51화

축제에서 두 마리 토끼를

“스노브 후작은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나요?”

알레스가 콧김을 뿜으며 호기롭게 내질렀다.

“직접 만나시게요?”

스토커 남작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황궁에서 자신을 보자마자 벌레 보듯 경멸하는 눈으로 적대적인 말을 잘도 지껄이던 기분 나쁜 영감.

인간쓰레기 주제에 얻다 대고!

백성들 등골 빼먹고 나라 말아먹는 나쁜 놈인 건 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으로도 비호감이다.

콱 들이받아 버릴까 보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또 외교 순방에 나섰습니다. 축제를 앞두고 혹시 백성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까 봐 몸을 피한 느낌도 있고요.”

“지금 제국에 없단 말인가요?”

“네.”

“흐음….”

“아니면 또 이 나라 저 나라 받아 챙기러 갔을 수도 있고요. 스노브의 수금 여행이라고들 하죠. 그도 아니면 뭔가 또 은밀히 모의하는 게 있나?”

“흐음….”

그런데 말이다. 이 대목에서 다시금 고개를 드는 합리적 의심.

스토커 남작, 이 사람 정말 비양심 기레기 맞아?

지금껏 나눈 대화를 되짚어 보면 드물게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기자인 것만 같은데….

알쏭달쏭한 기분으로 스토커 남작을 뜯어보던 알레스는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닭이랑 옥수수란 말이죠?”

* * *

“오랜만에 회의를 여니 초심으로 돌아간 듯 열정이 치솟는군요. 여러분은 어때요?”

알레스의 목소리가 회의 공간에 낭랑하게 울렸다.

간만에 끌려 나온 마사, 밤비, 헤라클레스는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보스가 왜 갑자기 회의를 소집했을까?

처음 상단을 만들었을 땐 정말이지 토 나오게 자주도 했지.

자립회의, 기획회의, 점검회의, 분석회의, 특별회의, 긴급회의, 임시회의….

공유 마차 일이 바빠지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원시 유물을 왜 다시 끄집어내신 걸까?

회의 때마다 쓰는 저 경어는 언제 들어도 오싹했다.

보스가 회의를 소집할 때는 보통 한 사람이 몇 가지 일을 해치우는 초인적 능력이 필요할 때.

불길하게도 회의명이 ‘특별비상회의’다.

대체 얼마나 특별히 많이 비상식적으로 급하게 일을 시키려는 걸까.

그간 맡은 일이 손에 익으면서 조금 편해졌던 마밤헬 3인방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상단 중역들을 보니 제 마음이 든든합니다.”

알레스가 측근들을 둘러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오늘 이렇게 비상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어제 제가 어떤 분을 만나고서 매우 중요한 일을 놓친 걸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알레스가 가슴에 손을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심각한 실수를 저지를 뻔했지 뭔가요.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지요.”

그 말을 듣는 마밤헬은 동서고금의 모든 직원이 할 법한 탄식을 했다.

‘보스가 누굴 못 만나게 했어야 하는데!’

보스가 누굴 만나는 날은 꼭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를 주워 오니까!

어두컴컴한 측근들의 얼굴을 보며 알레스가 말을 이었다.

“너무 걱정은 마세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한 일에 비하면 그야말로 우리 저택 이름처럼 ‘어 피스 오브 케이크’, 식은 죽 먹기랍니다!”

알레스의 말에도 세 사람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식은 죽의 양이 얼마나 될지, 목이 길고 좁다란 병에 담아 주며 귀이개로 퍼 먹으라고 할지 두고 봐야겠죠.

불신이 만연한 노사 관계였다.

“여러분 같은 인재라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볍게 해치울 일들이에요. 다만 준비할 시간이 조금 촉박하달까.”

직원들의 귀에 ‘여러분 같은 인재’는 ‘너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착즙할 거야’로 ‘시간이 조금 촉박’은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초능력을 발휘해’로 들렸다.

“해와 달의 입맞춤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그 좋은 기회를 가만히 앉아서 날릴 수야 있나요. 우리도 당연히 참여해야죠.”

“아하, 추수감사제 말씀하시는 거였습니까? 그 정돈 저희도 대비를 했지요.”

“서민 축제라 귀족들이 주로 애용하는 저희 공유 마차는 연결할 지점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살짝 축제 기분을 낸 패키지는 당연히 준비할 겁니다.”

유능한 직원들이 앞다퉈 업무 보고를 했다.

“역시 믿음직한 여러분입니다. 네, 그 업무는 그렇게 진행하시면 되고요.”

알레스의 입꼬리가 높이 치솟자 직원들 사이에 싸한 예감이 지나갔다.

“축제 시작이 언제죠?”

“2주 후요.”

“흠, 생각하기에 따라 그리 짧은 시간도 아니네. 충분히 축제를 즐길 만하군요.”

정말 즐길 수 있는 겁니까, 축제?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알레스가 양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우리 페레티 상단이 이번 축제 때 주력할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이어서 그중 오른쪽 주먹을 들어올렸다.

“하나는 축제 음식 개발이고!”

왼쪽 주먹을 들어올렸다.

“다른 하나는 메르세데스 공작 전하의 강연회 기획과 지원입니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매우 황당한 듯하면서도 왠지 끌리는 면이 있는 보스의 발표였다.

여기서 측근들끼리도 생각이 미묘하게 갈렸다.

‘축제 음식 같은 걸 왜 갑자기? 하지만 공작 전하의 강연회는 시의적절하고 현명한 판단으로 보인다.’

머릿속에 곧장 강연회에 필요한 준비 목록이 좌르륵 떠오르는 밤비 경.

‘메르세데스 가문의 강연회를 왜 페레티가에서 신경 써야 하지? 하지만 축제 음식 개발은 흥미가 간다.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건 언제나 가슴 뛰게 해.’

마님이 또 어떤 깜짝 놀랄 만한 주문을 할지 상상하며 벌써부터 두근거리는 파티시에 헤라클레스.

‘아름다운 연애와 더 아름다운 돈, 둘 다 놓칠 수 없지.’

투덜거려도 결국은 주인 아가씨보다 더 억척인 특급 유모 마사.

“자, 그럼 두 가지 일을 추진할 조를 발표하겠어요.”

“조를 나누어 진행하시려고요?”

“먼저 축제 음식 조는 브레이브 경, 마사 경, 밤비 경.”

“……?”

“다음으로 강연회 조는 밤비 경, 마사 경, 브레이브 경.”

“…….”

“잘 들으셨지요?”

“이름 순서가 바뀐 거 말고는 차이가 없는 거 같은데요?”

“마사 경, 우리 페레티 상단의 인재상이 뭡니까? 열린 마음으로 겸사겸사, 두루두루 유연하게 일하는 사람 아닙니까?”

“인재상씩이나요!”

“아! 말 나온 김에 두루두루, 겸사겸사 여덟 글자를 써서 사무실에 걸어 두기로 하죠.”

“진심이세요? 어째 메르세데스 공작 전하와 닮아 가시는 듯도 하고….”

“자자, 이제 조도 정해졌으니 움직입시다! 시간이 금입니다, 금!”

알레스가 직원들을 닦달하며 본인도 분주히 움직이려는데 밤비가 급히 붙잡았다.

“저, 레이디, 강연회 말입니다. 무엇보다 공작 전하부터 설득해야 하지 않습니까? 사실 전하뿐만 아니라 가신들과 영지민들까지 설득해야 할지 모릅니다.”

아 맞다. 메르세데스엔 영지민 시월드라는 게 있었지.

“메르세데스는 오랫동안 대외 활동을 기피해 왔습니다. 특히 제도에서 공개적인 활동을 하는 건 더욱 조심해 왔고요.”

밤비의 말에 알레스도 금세 수긍했다.

“또 공작 전하의 성향도 조금 걱정스럽긴 합니다. 요즘 레이디 덕분에 많이 달라지셨다 해도 워낙 금욕적이고 은둔적인 생활을 해 오신 분이라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밤비 경의 걱정이 다 이해가 가요. 지금 바로 편지부터 쓰려고요. 전하를 설득하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레이디.”

* * *

몇 줄 쓰고 버리고 몇 줄 쓰고 버리던 알레스는 결국 편지지를 옆으로 치우고 눈사람을 그리기 시작했다.

‘편지 쓰기는 왜 늘 어려운 거야? 차라리 얼굴 보고 직접 말하는 게 낫지.’

슥슥슥, 눈은 파란색으로 반짝반짝하게.

미소는 쑥스러운 듯 다정하게.

‘아, 그냥 보고 싶다고 쓸까? 그럼 오늘 밤이나 내일 새벽이면 카이트를 볼 수 있을 텐데. 그때 얼굴 보고 직접 설득하면 되잖아?’

알레스는 배시시 웃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안 되지, 안 돼. 절대 안 됨!’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져서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공작이 꼭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서 이 방에 훌쩍 나타날 것만 같아서.

알레스는 다시 펜을 들어 억지로 한 자 한 자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카이트, 카이트!

식사는 하셨는지요?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춥지만 평화로운 계절, 겨울이 메르세데스에도 찾아오겠지요?

그런데 겨울 전에 일주일, 아니 한 3일이라도 휴가를 낼 순 없나요? 전혀 불가능해요?

저주의 위력도 슬슬 옅어지고 카이트의 <빌보아 차트> 순위도 순조롭게 상승하고 있는 이때, 앞으로의 도약에 매우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행사가 있어서 알려드립니다.

‘해와 달의 입맞춤’ 축제가 곧 시작된다는 걸 아시는지요? 그때 강연회가 열린다는 것은요?

난다 긴다 하는 귀족들은 거의 강연회를 연다는데, 카이트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강연을 하지 않았더라고요?

이번 축제 때 자신이 가진 지식과 재능을 많은 사람과 나누는 건 어때요? 이런 게 노블레스 오블리주 아니겠어요?

특히 카이트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얼마나 기쁘겠어요? 저자의 음성을 듣고 직접 대화도 나눌 수 있다면!

팬 서비스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마음을 받았으면 돌려줄 줄도 알아야죠!

참, 카르티에 공작은 일 년 동안 강연을 준비한대요. 그래서 강연 내용이나 연출이 매우 멋진가 봐요.

인기도 많아서 강연 표를 구하는 게 그렇게 어렵다고 하네요.

만약 카이트가 ‘강연 따위 나는 죽어도 하기 싫다’고 하시면 저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하지만 당신의 매니저로서 강력하게 권해 드립니다.

축제 때 강연회를 여실 것을.

수락하신다면 저희 페레티 매니지먼트사가 정성을 다해 카이트를 도울 거예요.

그래도 정 싫으시다면… 아쉬운 대로 카르티에 공작의 강연이나 들으러 가야죠, 뭐.

간 김에 카르티에 공작과도 계약을 맺으면 좋은 거구요.

카르티에 공과 저는 이미 마음의 교류를 추구하는 사이니까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이 어렵진 않을 거 같네요.

설령 이 제안을 거절하신다 해도 카이트가 언제 어디서든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제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그래도 기왕이면 강연장에서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카이트의 매니저 알레스.]

편지의 호칭은 일부러 카이트, 알레스로 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공작이 성보다는 이름 부르는 걸 좋아하는 데다 은근 집요하게 굴어서 말이다.

설마 이름성애자 같은 건가….

어쨌든 지금은 공작의 비위를 찰떡같이 맞춰야 할 때라고 판단한 알레스는 그가 원하던 이름 부르기를 듬뿍듬뿍 해 주었다.

대부분 편지보다 말로 하는 게 더 편하고 간단하지만, 이름을 부르는 것만큼은 편지 쪽이 훨씬 쉽기도 하고.

카이트 뒤에 ‘오빠’, 알레스 앞에 ‘여동생’이라고 붙일까 진지하게 고민하다 그건 너무 속 보이는 거 같아 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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