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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위자료를 굴려보자-47화 (47/120)

47화

팔뚝만 한 월척이요

“집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예약이 꽉 차서요. 그날은 어렵고 사흘 후에는 가능하십니다.”

“그날 하루 통째로요? 프러포즈 패키지에 프리미엄 옵션을 추가하신다고요.”

“그레이 백작가시라고요? 탑승일이 내일이시네요. 예, 예, 천타빵 오십 상자랑 말편자 빵 오십 상자 구입이요.”

“이런 어쩌지요? 호스슈 머그컵 도트 에디션은 이미 품절인데요. 평민 상점가에요? 아무래도 불법 유사품이 나도나 봅니다. 저희가 조치할게요.”

“네? 마부들 쉬는 날이랑 사는 곳이요? 그건 상단 규정상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예약 관리와 고객 서비스를 맡은 마사는 끝도 없이 밀려오는 문의에 시달려야 했다.

화장실에 갈 때도 마법 통신구를 달고 가야 할 정도였다.

개업한 지 이제 겨우 한 달, 공유 마차는 제도에서 가장 핫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공유 마차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사교계에서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의식 있는 상류층’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코스가 되었달까.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영애들 사이에서 공유 마차는 매우 큰 지지를 얻었다.

그곳은 작은 사교계였다.

영애들은 거기서 최신 경향과 정보를 누구보다 일찍 접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세도가의 티 파티나 연회에 초대받기 위해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됐다.

더군다나 공유 마차를 타면 탈수록 시야가 밝아지고 세상이 아름다워지기까지 했으니.

이래저래 끊기 힘든 마성의 마차였다.

공유 마차 사업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승객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를 먹고 스스로 진화해 갔다.

몇 가지 달라진 부분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마부 옵션을 추가한 것.

마차를 예약할 때 마부를 꽃미남과 흔남 중에 고를 수 있게 했다.

누가 굳이 흔남 마부를 고르겠나 싶겠지만, 고객의 세계엔 다양한 까탈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공유 마차의 고객층이 다양해지자 그만큼 요구도 다채로워졌다.

젊은 영애들 사이에서 공유 마차의 인기가 높아지자, 영애들의 환심을 사려는 영식들도 마차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

공유 마차는 점점 특별한 데이트 코스나 기념일 이벤트 장소로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프러포즈를 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페레티 상단은 발 빠르게 커플 이벤트나 프러포즈에 특화된 ‘핑크 패키지’ 상품을 내놓았다.

로맨틱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잔망스런 옵션을 풍성하게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미처 생각지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공유 마차의 자랑인 꽃미남 마부들이 영식들의 작업에 심각한 방해를 초래한 거였다.

연인 간 몰입을 방해하고, 누구보다 멋져 보여야 할 영식들을 순식간에 오징어로 만들어 버렸다.

영식들은 분노했다. 지금 사람 비싼 물 먹이는 거냐며.

그리하여 알레스는 부랴부랴 흔남 마부 옵션을 신설하고 성난 영식 달래기에 나섰다.

얼굴도 체격도 전혀 기억에 남지 않을 무색무취한 청년들로 마부단을 구성했다.

그들은 이벤트의 배경으로 완벽하게 녹아들었고, 그제야 영식들에게도 큰 만족감을 선사할 수 있었다.

‘휴, 실전에 나가 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어.’

알레스는 다시금 실감했다. 배움은 끝이 없음을.

그러고 보니 황궁을 나온 후로 한참 동안 도서관에 가지 못했다.

창업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도 했고.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인풋을 게을리 하면 안 되지.

밑천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채워 놔야 나중에 허둥대지 않을 테니.

알레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서관 생각을 하다 보니 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어떤 사람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의 방정맞은 친구한테도 볼일이 좀 있고 말이야.’

* * *

공유 마차는 잘 굴러갔다.

갖가지 이슈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면서.

덕분에 스토커 남작은 다양한 관련 기사를 내보낼 수 있었다.

‘마차 프러포즈가 맺어 준 가문의 영광, 고마워요 공유 마차’, ‘공유 마차가 바꿔 놓은 사교계 풍속도 5’, ‘선한 영향력, 내가 공유 마차를 애용하는 이유’, ‘제국의 셀럽이 말하는 공유 마차 100배 즐기기’, ‘아트, 굿즈를 만나다’ 등등.

공유 마차 사업이 성공을 거두자 머쓱해진 건 사교계 너구리 3인방이었다.

귀족의 품위를 손상한다며 공공연하게 이혼녀 페레티를 비난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정작 알레스 본인은 사교계에서 그림자도 볼 수 없었고, 그 명성만 높아지고 있었다.

“알아보니 미남자들을 구해다가 승객들 시중을 들게 한답니다.”

“망측해라. 역시 품위란 걸 배우지 못했군.”

“이혼녀인 게 무슨 자랑이라고 저렇게 활개를 치고 다니는지. 폐하께 누가 될까 걱정입니다.”

이렇게 셋이 모여서 비아냥거리는 것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귀족 사회, 특히 레이디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후작 각하도 우려하고 계십니다.”

스노브 후작부인의 말에 네슬라 공작부인이 얼른 부추겼다.

“정말이지 스노브 각하께서 나서야 하지 않습니까. 오랜 황제파의 수장으로서 폐하께 충성을 보여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때를 보고 계십니다. 곧 황비 간택을 청원하는 귀족 회의가 열린다지 않습니까.”

“그 일도 잘 성사돼야 할 텐데 말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공작부인. 후작 각하께서 다른 귀족들과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고 계십니다.”

네슬라 공작부인과 스노브 후작부인이 은밀하게 미소를 나누었다.

그러는 사이 모넬라 대부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너구리 3인방의 말대로 나이가 지긋한 귀족들은 알레스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봤다.

귀족 출신 여성이 이혼을 했으면 죽은 듯이 조용히 살든지, 아니면 재혼으로 인생 역전을 노려야 했다.

제국법상 귀족 여성은 영리를 목적으로 한 어떠한 사업도 자신의 명의로 할 수 없었다.

이혼녀에게만 예외가 적용됐지만, 어디까지나 법률상 그렇다는 거뿐.

실제로는 귀족 출신 여성이 직접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까지 갈 경우 ‘매우 불운한 여자’로 동정을 샀고, 본인 스스로도 처지를 비관했다.

다시 말해 스스로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귀족 출신 여성은 이미 귀족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보수적인 귀족들도 관대한 척할 수 있었던 것이다.

‘흥, 놀고 있네. 그 좋은 걸 왜 마다해?’

하지만 알레스는 그런 이들에게 콧방귀를 날렸다.

이 문제 많은 이혼녀는 귀족 사회의 높은 성벽에 자꾸만 날계란을 던져 댔다.

그깟 계란 세례로 견고한 성이 타격을 입겠는가마는 고매한 귀족들의 심기를 거스르기엔 충분했다.

성벽에 금이 가진 않아도 보기에 얼룩덜룩 흉해지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있었다.

사실 성벽에는 알게 모르게 금이 가고 있었다.

어린 귀족 영애들 중에선 알레스를 지지하고 흠모하는 이가 점점 늘어났다.

영애들은 그녀의 수완과 배짱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귀족의 예법보다는 레이디 페레티가 벌이는 일들이 훨씬 재미있어 보였다.

보수적인 귀족들은 미처 몰랐지만, 알레스가 던진 건 사실 계란이 아니었다.

계란 모양으로 깎은 돌멩이였다.

알레스는 아무렇지 않게 눈덩이 속에 돌멩이를 숨길 수 있는, 그런 변칙 인간이었다.

공유 마차의 인기와 함께 꽃미남 마부들의 인기는 물론, 각종 굿즈와 드라이브 스루의 인기도 뜨겁게 치솟았다.

모두 예견한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기이한 대박도 있었다.

꽃미남 마부들이 제도를 씹어 먹은 건 그렇다 치고, 뜻밖의 수확이 있었으니….

“어머, 저 팔뚝에 근육을 좀 봐요. 어쩜 저렇게 아름답죠?”

“이 천타빵이 다 저 근육에서 나왔다는 거 아니에요. 저 팔로 천 번을 치댄답니다.”

“어쩐지 아주 찰지고 맛있더라니.”

“그거 알아요? 팔 근육만 멋진 게 아니래요.”

“어머어머, 드디어 전신이 공개됐어요?”

“아주 듬직한 호남형이래요. 생각보다 나이도 얼마 안 됐답디다, 옷호호호.”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하는 레이디들의 눈에 튼실한 팔뚝 하나가 포착되었던 것.

그 팔뚝은 창구를 통해 주문한 음식을 건넸다.

팔뚝의 주인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빵을 만드는 파티시에라고 했다.

처음에 승객들은 꽃미남 마부들과 멋진 굿즈, 진기한 음식에 눈이 멀어 그 팔뚝의 진가를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공유 마차 이용 횟수가 늘면서 점차 침착해지고 예리해진 감각으로 발견해 내고 만 것이다.

꽃미남 마부들의 매끈하고 보송보송한 아름다움과는 결이 다른 아름다움을.

굵직하고 힘이 꿈틀거리는 야성적인 매력을.

제빵 장인의 팔에는 매일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섬세한 근육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말하자면 초콜릿 복근이 아니라 브레드 전완근이라고 해야 할까.

빵과 음료를 건네는 미지의 팔뚝에 레이디들은 열광했다.

팔뚝에 대한 관심은 급기야 창구 너머에 있을 나머지 신체로까지 이어졌다.

레이디들의 관심은 점점 대범해지고 짓궂어졌다.

창구로 쪽지를 건네는 일도 있었다.

일부러 가벼운 소동을 일으켜 팔뚝 미남이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목소리라도 들어보자며 창구에다 대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수줍음 많은 헤라클레스는 그때마다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쥐구멍을 찾아 더 깊이 숨어들었다.

하지만 레이디들의 집요함을 어찌 당하겠는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살그머니 밖으로 나갔다가 결국 정체가 탄로 나고 말았다.

이후 헤라클레스의 인기는 수직으로 상승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헤라클레스의 인기도 드라이브 스루 카페의 매출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제빵왕 헤라클레스의 명성은 이래저래 자자해졌다.

그는 제도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빵 맛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그가 만든 빵도 유명 빵이 됐다.

천타빵은 공유 마차를 이용하는 승객에 한 해 드라이브 스루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늘 예약 주문이 밀렸고, 빵을 구하지 못해 애타는 손님들이 있었다.

“마님, 빵집을 하나 더 낼까요? 제가 잠을 조금만 줄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거 같습니다.”

자신이 조금 더 일하면 마님의 형편이 더 빨리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 헤라클레스가 조심스레 꺼낸 말이었다.

“글쎄…. 하긴 헤라클레스의 이름을 내건 빵집을 차릴 때도 됐지.”

“아, 아닙니다. 제 변변치 않은 이름을 어디다 내놓겠습니까. 페레티 베이커리로 해야지요.”

“당신은 이제 유명 파티시에예요. 명장이라고요. 몸값이 올랐으니 그에 걸맞은 오만함을 갖춰도 돼요.”

“마님….”

헤라클레스가 귀까지 빨개져서 쑥스러워하는데 옆에서 못마땅한 얼굴로 듣고 있던 마사가 찬물을 끼얹었다.

“그런데 아가씨, 브레이브 경의 행동거지도 단속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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