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제국을 접수한 마부들
행운과 정열을 그대에게!
페레티 말편자 빵.
“뭐 나쁘지 않겠네. 마사의 멤버십 서비스도, 밤비 경의 액세서리도, 헤라클레스의 빵도 다 좋아요.”
이를테면 공유 마차는 페레티 상단의 팝업 스토어였다.
앞으로 페레티 일당이 만들어 낼 새로운 문화나 라이프 스타일 같은 걸 가장 먼저 선보이고 홍보할 창구인 셈.
“그런데 카페 안 지키고 여긴 왜 왔어요? 곧 마차가 들어올 텐데.”
마사가 묻자 헤라클레스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안 그래도 그 말씀을 드리려고 온 건데요. 코앞까지 왔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그 말을 왜 이제 해? 이 사람이 정말!”
마사가 헤라클레스를 구박하며 끌고 나갔다.
“밤비 경, 이번엔 우리도 구경할까요?”
알레스는 마차가 가장 잘 보일 만한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마침내 우아한 마차 한 대가 제도에서 가장 럭셔리한 상점가인 비에커가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마차가 ‘피스 오브 케이크’ 하우스 앞에 멈춰 서자 네 명의 마부가 재빠르게 마부석에서 뛰어내렸다.
그 아름답고 싱그러운 착지에 상점가를 오가던 쇼핑객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자체 발광하는 미청년들로 세상이 곱절로 환해졌다.
“엄멈멈머!”
누군가의 입에서 괴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럼, 우리 꽃미남 마부들이 미모만 뛰어날까요?
?그것만으론 부족해.?
일찍이 알레스는 소로 사 형제를 교육하며 엄격하게 말한 바 있다.
세상은 넓고 미남은 많다.
그렇기에 최고가 되려면 그냥 잘생긴 것만으론 부족하다.
처음에야 미모에 반한 사람들이 환호하겠지만, 그러한 관심은 금세 시들게 마련이다.
오랫동안 사랑받으려면 미모에 깊이를 더하는 매력이 필요한 법.
기왕이면 남들과 차별되는 자기만의 고유한 매력이!
?여러분에게 서로 다른 캐릭터를 부여하겠습니다.?
알레스는 네 명이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니면서도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고심해서 캐릭터를 조합했다.
장남인 프리메로는 친절하고 유쾌하며 리더십 있는 시원시원한 쾌남.
차남인 세군도는 치명적인 섹시미가 줄줄 흐르는 심연남.
쌍둥이 삼남 테르세로는 무뚝뚝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실상은 부끄러움 많은 고지식남.
쌍둥이 사남 콰르토는 해맑은 눈웃음과 애교를 겸비한 멍뭉남.
물론 본래 지니고 있는 기질과 어울리는 캐릭터로 세심하게 안배했다.
알레스는 꽃미남 마부들에게 캐릭터에 온전히 녹아든 메소드 연기를 보여 줄 것을 호소했다.
밤비 경에게도 이들의 헤메코를 캐릭터에 맞게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성실한 소로 사 형제는 알레스의 지도에 따라 열심히 가꾸고 익히고 훈련했다.
그 피, 땀, 눈물의 결실이 제도 최고의 핫플인 비에커가의 무대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
꽃미남 마부들의 에스코트를 받는 승객들의 얼굴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좋은 삶이었다.’
쾌남 프리메로가 호쾌한 목소리로 마차 안의 귀부인과 영애들에게 말했다.
“이곳은 공유 마차 고객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카페입니다. 먼 길 가시는 동안 목이 마르시거나 출출하실까 봐 잠시 들렀습니다. 레이디는 소중하니까요.”
꽃미남 마부의 말재간에 승객들이 까르륵 웃었다.
“마차에서 내리시는 불편 없이 좌석에 편안히 앉아서 주문하시면 됩니다.”
공유 마차와 더불어 제국 최초의 드라이브 스루가 문을 연 날이었다.
“어떤 메뉴가 있는데요?”
“카르티에 공이 직접 선별한 프리미엄 원두로 내려 깊고 풍부한 맛과 향을 자랑하는 커피의 명작 ‘키스 오브 카르티에’와….”
“제빵 명장이 혼신을 다해 천 번 치댄 반죽과 백 일간 배양한 천연발효종이 만나 쫄깃한 식감과 담백한 미감을 선사하는 빵의 전설 ‘천타빵’이 있습니다.”
섹시남 세군도와 멍뭉남 콰르토가 대사를 나누어 읊었다.
“천타빵은 지금까지 황궁에서만 맛볼 수 있었지요.”
츤데레 테르세로가 짧고 굵게 덧붙였다.
“주세요, 주세요, 다 주세요.”
승객들이 최면에 걸린 듯 외쳤다.
“실례가 안 된다면 마부님들 빵과 커피도 저희가 계산하고 싶은데요?”
영애들이 두 손을 꼭 모으고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 이런….”
꽃미남 마부들이 그 아름다운 이마에 그늘을 드리우며 말했다.
“레이디, 그 아름답고 고귀한 마음만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예, 규정상 받을 수 없습니다. 저희 마부들에게 허락된 건 레이디들이 최상의 힐링을 누리시도록 헌신하는 것뿐.”
레이디들은 눈썹을 팔자로 내리며 아쉬워했다.
내 새끼 입에 맛있는 거 들어가는 것보다 더 큰 힐링이 어디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정중하되 단호했다.
왜냐하면….
레이디 페레티한테 혼나기 싫으니까!
근무지에서 행여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가는 레이디 페레티의 불호령이 떨어질 터였다.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는 알바 계약서를 쓰던 날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동네 불량배와 베테랑 기사들과 황실 근위대까지 죄다 몰려왔던 그 날 말이다.
사업장에서는 보스로 불리는 그녀는 언제나 미소 띤 얼굴로 상냥하게 대해 주었지만, 사 형제는 그날의 잔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게다가 레이디 페레티는 공유 마차를 운행하기 얼마 전, 화사한 미소를 띤 채 나긋한 목소리로 선포했던 것이다.
당분간 연애 금지.
염문을 뿌리고 다니는 자는 경고 없이 즉시 퇴출.
?귀족 영애와 평민 청년의 연애, 그 끝은 비극입니다. 아무리 잘생겨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꽃미남 사인방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고충이 많겠지요. 한창 혈기 왕성한 나이인 데다 튀는 미모 탓에 꼬이는 파리, 모기, 바퀴벌레도 남달리 많을 테고.?
알레스가 한 송이 한 송이 천천히 눈을 맞추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앞으로 큰일을 할 인물이기에 현명하게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저, 마님. 외람된 질문인데, 저희가 할 큰일이라는 게 무엇인지요??
?설마 이렇게 미모와 근성을 겸비한 청년들을 마부로만 소모하겠습니까. 내가 다 설계해 놓은 게 있습니다. 제국을 넘어 월와핸이 되는 그날까지 정진합시다.?
?동네에서도 바보 취급당하고 이용만 당하던 저희가요? 월드 와이드 핸섬은커녕 월드 와이드 호구가 되는 게 아니고요??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어야지요. 과거처럼 무르게 처신하면 다시 잘생긴 바보가 되는 건 한순간이니까요.?
?싫습니다, 싫어요! 다시 그런 비참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걱정 마요. 내가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을 테니. 다만 치정 사건만은 철저히 피해야 합니다. 그 문제가 불거지는 순간, 무지갯빛 미래는 핏빛 파국을 맞게 될 겁니다.?
알레스가 한 번 더 스산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세상엔 수많은 여자와 염문을 뿌리는 난봉꾼들도 있긴 합니다. 허나 그들은 전부 귀족. 그래서 무사한 겁니다. 여러분은 귀족이 아니지요? 더러워도 어쩔 수 없습니다.?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서로 다른 신분끼리 호감을 갖는 게 그렇게 큰 죄가 됩니까??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법은 귀족들이 만드니까요. 그들은 자기 가문의 체면을 위해서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여러분을 잔인하게 희생시킬 겁니다.?
알레스의 말에 꽃미남 사인방은 머리털이 비죽 서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아아, 잘생긴 게 죄란 말인가.
천형과도 같은 이 조각 미모여!
시무룩해진 꽃미남들의 얼굴을 보며 알레스도 마음이 아팠다.
‘좀 잔인하게 말했지만 어쩔 수 없지. 웬만한 미모여야 말이지.’
정말이지 사건사고를 부르는 위험한 미모였다.
보나마나 이들의 미모에 이성을 상실한 레이디들이 육탄전도 불사할 게 틀림없었다.
카르티에 공작을 따르는 무리인 ‘붉은 물보라의 매혹’ 사생팬들을 보라.
카르티에 같은 지체 높은 능구렁이야 그들 머리 위에서 능수능란하게 팬심을 주무른다지만.
우리 순진한 댕댕이들은?
음흉한 귀족 언니들에게 꿀꺽 잡아먹히는 건 시간문제이리라.
그러니 미리 정신 무장을 시키는 수밖에.
잘생긴 데다 착하기까지 한 미청년들에게 모진 소리를 하려니 알레스는 가슴이 다 뻐근했다.
하지만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을 되새기며 독하게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러지 말고 이리 잠시 들어와서 우리와 함께 커피 한잔 마셔요.”
“그래요. 어려워하지 말아요.”
“아, 아닙니다! 어찌 감히 고귀한 레이디들과 동석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안 될 말입니다.”
꽃미남 마부들은 사색이 되어 고개를 조아렸다.
‘마님이 보고 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레이디들의 호의를 뿌리쳤다.
‘잘하고 있군.’
알레스는 저택 안에서 그 모습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여기 천타빵과 커피 나왔습니다.”
굵직한 외침과 함께 조그맣게 낸 창구로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꽃미남 마부들이 음식을 받아서 마차 안으로 건넸다.
“어머, 커피잔이 매우 특이하네요.”
“다소 투박하고 무겁지만 안정감이 있겠는걸요?”
“큼직해서 커피가 넘치지 않겠어요.”
드라이브 스루를 운영하려고 보니 제국에서 쓰는 커피잔이 너무 섬세하고 연약했다.
달리는 마차 안에서 그 잔으로 커피를 마셨다간 사고가 속출할 거 같았다.
뚜껑 달린 텀블러가 있으면 좋겠지만….
알레스는 아쉬운 대로 도자기 공방에 머그컵 제작을 의뢰했다.
밤비 경과 미리 의논해 컵에 말편자 문양도 넣었다.
이 공유 마차 전용 머그컵은 곧 ‘달리는 마차에서도 결코 쓰러지거나 넘치지 않는 컵’으로 인기를 얻었다.
따로 머그컵을 사고 싶어 하는 이가 점점 늘어나자 아예 굿즈로 만들어 판매하게 되었다.
쇼핑 러버들 사이에서 ‘공유 마차를 타면 꼭 사야 할 필수템’ 중 하나로 꼽히는 일명 ‘호스슈’ 컵.
밤비 경은 머그컵에 들어간 말편자 문양을 다양한 버전으로 변주하며 시즌 한정판을 잇달아 선보였다.
덕분에 ‘호스슈’ 컵을 종류별로 모으는 수집가도 등장했다.
공유 마차는 비에커가 221B의 ‘피스 오브 케이크’ 드라이브 스루를 거쳐 다음 행선지로 우아하게 나아갔다.
마정석을 연료로 달리는 무늬만 마차 안에서 승객들은 느긋하게 찻잔을 기울였다.
천타빵도 ‘키스 오브 카르티에’도 모두 훌륭한 맛이었다.
하지만 가장 훌륭한 건 열어둔 창으로 들어오는 달콤한 바람이었다.
“날씨가 정말 좋지 않습니까, 웨지우드 백작부인, 에트로 백작 영애?”
“예, 페라가모 후작부인. 시야가 아주 깨끗합니다. 세상이 원래 이렇게 반짝반짝 빛이 났나요?”
“흠, 상쾌해. 공기도 유달리 좋군요.”
“이 공유 마차라는 게 환경을 좋게 한다지 않습니까.”
“좋게 하고말고요. 정말 뜻 깊은 일입니다.”
“예,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우리 레이디들이 나서야죠.”
“앞으로 애용해야겠어요, 호호호.”
안구를 한껏 정화한 승객들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행복한 웃음소리가 마차 창문을 넘어 제도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