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그 남자들을 해명하라
마사는 특급 유모답게 ‘다정한 릴리 마를렌의 집’에 대해서도 훤히 꿰고 있었다.
이 보육원을 운영하는 소로 부부는 사람은 매우 좋았지만 대책이 없기로 유명했다.
당장 내일 먹을 식량이 바닥났는데도 오늘 아이들을 데리고 꽃놀이를 가는 식이었다.
후원을 따내는 일에도 서툴러서 보육원 살림살이가 늘 넉넉지 못했던 모양이다.
보나 마나 배식 신청도 깜빡하거나 무신경하게 놓쳤을 게 뻔하다고 마사는 확신했다.
프리메로, 세군도, 테르세로, 콰르토, 킨토.
이 꽃미남들은 소로 부부의 친아들들로, 아름다운 외모와 무른 성격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고 했다.
다섯째인 열한 살 킨토를 제외하면 나이도 스물하나에서 열아홉까지로 보기보다 많았다.
원장 부부도 그렇고, 대대로 동안 집안이라나.
여하튼 장성한 꽃미남들은 다짐했다고 한다.
자주 깜빡깜빡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자신들이 보육원 동생들을 돌보고 경제적으로도 보탬이 되겠다고.
하지만 타고난 행운을 얼굴에 몰빵한 걸까.
웬일인지 걸려도 꼭 악덕 고용주나 사기꾼에게 걸려서 곱고 여린 손으로 일만 실컷 하고 보수를 떼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아무래도 동네 호구로 소문이 났지 싶다.
아름다운 이들의 딱한 사정을 들은 알레스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실은 꽃미남 브라더스를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줄곧 하고 싶던 질문이었다.
“여러분, 알바 하지 않겠나요?”
* * *
알레스는 희희낙락하며 ‘황제의 은혜로운 식탁’을 나섰다.
꽃미남 네 명, 제국의 F4와 순조롭게 채용 계약을 마쳤다.
저녁 배식은 마사와 헤라클레스에게 맡겨 두고 알레스는 다음 일정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공유 마차 사업에서 가장 중요하고 신경 쓰이던 부분을 이렇게 해결하게 될 줄이야.
운이 너무 좋은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
어떻게 미남이 제 발로 찾아오냐고. 그것도 세트로.
발걸음도 가볍게 마차를 세워둔 곳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길가에 있던 엉뚱한 마차의 문이 열리며 남자 하나가 다가왔다.
마차에 타고 있는 누군가의 호위 기사인 듯했다.
밤비 경이 긴장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오늘따라 생각지 않은 돌발 상황이 왜 이리 많은 건지.
레이디 페레티의 호위 기사. 알고 보니 극한 직업이었다.
“레이디, 실례지만 잠시 마차에 오르시겠습니까.”
마차에서 내린 남자가 말했다.
“왜요? 좀 바쁜데.”
“존귀한 분의 명입니다.”
“누군데요?”
그러자 마차 안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날아왔다.
“타라, 페레티.”
알레스는 투덜거리며 마차에 올랐다.
걱정하는 밤비 경에게는 귓속말로 언질을 주었다.
“황은식 아저씨.”
마차 안엔 예상대로 황제가 타고 있었다.
아까 근위대가 출동했을 때부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니.
황제의 자수정 빛깔 눈이 알레스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날이면 날마다 보는 사이인 양 인사도 빼먹고 빈정거렸다.
“대체 뭘 하고 다니기에 이상한 놈들이 줄줄이 꼬이는 건가.”
알레스는 잠시 생각했다.
이상한 놈은 하나밖에 없었던 거 같은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상한 놈에 집어넣은 건지.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폐하께서야말로 여긴 무슨 일이신지요?”
가장 이상한 놈 후보자시여.
“황궁 음식 나눔장이지 않은가. 일처리가 제대로인지 보러 왔다.”
“폐하께서 친히 오시다니, 매우 꼼꼼하십니다.”
“짐의 호칭을 붙였더군?”
황제가 알레스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윽, ‘황은식’ 씨가 상표권이라도 주장하려나.
“거슬리시면….”
“아니, 짐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
“네에….”
“저걸 볼 때마다 짐을 생각하지 않겠나.”
“뭐, 그렇죠.”
알레스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아 참, 아까 도와주신 거 감사합니다. 근위대까지 보내실 줄은….”
“짐의 뜻을 기리는 곳 아닌가. 게다가 개장일인데. 언짢은 소동이 일어나 짐 얼굴에 먹칠하게 두고 볼 순 없지.”
“예예, 그러시지요.”
“그건 그렇고, 무슨 생각인 거지? 도무지 그대 취향을 이해 못 하겠군.”
“마음에 안 드시는 점이라도? 저 방면에선 꽤 솜씨 좋은 제 사람들이 공들여 준비한 건데요.”
“나눔장 얘기가 아니다.”
알레스의 녹안이 의아함 반, 성가심 반으로 흐려졌다.
실컷 나눔장 얘기하다 갑자기 나눔장 얘기가 아니라니.
변덕이 심하고 뒤끝이 있다더니….
“너무 어리지 않으냐? 나이도 좀 있고 책임감도 있고 듬직하게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낫다는 걸 모르나?”
어려? 소로 씨네 꽃미남 형제를 말하는 건가?
“원래 그렇게 웃음이 헤픈 여자였나? 보기에 매우 흉하더군.”
미남 보고 광대 승천하는 건 인지상정 아닙니까?
아니, 그보다 내가 젊은 알바를 채용하든, 미남을 보고 웃든 무슨 상관이람?
기분 나빠지네.
굳이 해명하고 싶지 않은 알레스가 입을 조개처럼 꾹 다물고 있자 황제가 재차 물었다.
“대체 왜 자꾸 분란을 일으키는 거지?”
‘황은식’은 황제를 내세운 데다 황궁 살림과 연관이 있으니 이러쿵저러쿵 간섭할 수도 있다 치자.
공유 마차 사업은 자기랑 상관도 없는데 웬 참견이람.
“오해가 있으십니다.”
“오해?”
“소로 집안 형제들이 워낙 동안이라 어려 보이는 거지, 실은 저보다 연상이거나 동갑입니다. 스물하나, 스물에 쌍둥이 셋째, 넷째도 저와 같은 열아홉.”
나도 내 나이가 적응 안 되긴 하지만.
저쪽 세상에서 서른이던 알레스는 아직도 자신의 꽃다운 나이가 어색하기만 했다.
“남녀 사이엔 한두 살은 말할 거도 없고 서너 살 위도 어린 축이다. 특히 그대와 같이 대책 없는 유형은 한 아홉 살은 많아야 한다.”
무, 무슨 소리야.
대체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채용할 수 있다는 거야.
“법적으로도 아무 문제 없는 나이입니다. 다 확인해 봤습니다.”
“그런 일은 법이 다가 아니다!”
아니, 무슨 트집을 이렇게 잡아?
역시 같은 남자들 사이에서 꽃미남이란 건 눈꼴신 존재인가.
“저, 폐하. 그들이 경험이 적고 조금 연약해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책임감이 없는 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착하고 성실한 청년들인데다 보육원 아이들을 책임지려는 의지도 강하고요.”
알레스의 말에 황제가 잠시 멍한 표정이 됐다.
“무엇보다 제가 그들을 채용하려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목적에 맞게 고른 사람들이란 거죠.”
“채용… 이라고?”
“사업 기밀이라 아무리 폐하라도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여하튼 저는 딱 저들이 필요하니 더 이상 만류하지 마십시오.”
알레스가 다소 강하게 못 박았다.
실은 기밀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특히나 황제한테 설명하기 거시기한 내용이라.
꽃미남의 사르르 녹는 눈웃음과 살인 미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어떻게 이해시키겠는가.
지금도 저리 아니꼽게 보는데.
잘못하면 영업 허가를 안 내줄지도 모른다.
“사업? 사업상 필요한 이들이란 말인가.”
아니 이 양반이?
지금껏 그럼 무슨 얘길 한 거야?
알레스가 황제를 멀뚱히 쳐다봤다.
황제는 여전히 심통이 난 얼굴이었다.
“그럼 다른 자들은 뭐지?”
“누구 말씀인지요?”
또 딴소리다.
이 정도면 주의력 결핍 아닌가.
“왜 만나는 자들마다 하나같이 입방아에 오르내릴 사람들인 거지?”
“언제부터 제 일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셨습니까?”
“그대가 짐의 관심을 끌고 싶어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하, 황제병 아니냐고 쏘아붙이고 싶은데 하필이면 진짜 황제네.
“그렇지 않은가. 짐을 암살하려 했을지 모르는 자, 짐보다 <빌보아 차트> 순위가 높은 자, 북부의 국경을 지키고 있어 짐이 함부로 하기 힘든 자, 짐의 아우…. 전부 짐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
아무리 제국의 태양이라지만 너무 세상 자기 위주다.
그러니까 내가 관심종자라서 일부러 그 사람들을 노렸다고요?
그거 따지려고 여기서 꽁하고 기다렸니?
“예, 폐하 맘대로 생각하십시오.”
“아니! 하나하나 해명해 보아라.”
알레스는 기가 턱 막혔다.
중2병이니?
“암살 미수범.”
“암살 미수범이 아니라 파티시에입니다. 제가 고용한.”
“카르티에.”
“일종의 동업자? 투자자? 주차장과 커피를 주고받는 사업적 교류 관계요.”
“메르세데스.”
“연 계약을 맺은 고객이요. 공작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습니다.”
“브린.”
“빚을 좀 진 게 있어서….”
말하다 보니 황제까지 포함해서 전부 거래, 계약, 증서로 얽힌 비즈니스 관계.
아주 삭막한 게 어엿한 사업가가 된 거 같아 뿌듯했다.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하나 있긴 하지만.
“…사업 욕심이 대단하군.”
알레스의 거침없는 설명에 마침내 황제도 인정했다.
“그대는 정말 미련이 없구나.”
“…….”
“전혀 아무렇지 않군.”
“…….”
“조금도 생각하지 않아.”
“…….”
이건 또 무슨 설정인지.
황제께서 감정 기복이 참으로 심하시군.
이혼 서류에 도장도 꽝꽝 찍었고, 계산도 다 끝났는데….
왜 지금껏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지!
선 이혼, 후 갈굼도 아니고.
“짐이 이상한가? 이상하겠지.”
의외로 자기도 아는군.
“사람이 왜 이상한 말을 하며 갈팡질팡하게 되는지 아는가?”
“…피로나 중압감이 쌓이면 그렇지 않을까요? 폐하께서 계신 자리가 그런 자리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그런 건 익숙하다. 그걸 견디는 훈련을 받아왔지.”
하긴 피 튀기는 과정을 통해 황제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그걸 두고 엉뚱한 소리를 하려다 보면 이상한 소리를 하게 되지.”
“폐하 같은 분도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하십니까?”
“그렇군. 짐이 왜 이렇게 됐을까. 그대는 하고 싶은 말을 대체로 다 하고 사는 편이지?”
“전혀요.”
“그래?”
내 마음의 소리를 다 듣는다면 아마 깜짝 놀랄걸요?
“폐하께서도 마음에 담은 소리를 다 못 하신다면 세상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걸로 추측됩니다.”
아가판투스는 자수정 같은 눈으로 알레스를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을 읽어 보았다.
우리는 시작부터 잘못됐지.
그래서 너를 제대로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완전히 끝난 지금.
새롭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제대로. 평범한 연인처럼?
“그 계약 말이다.”
“계약이요?”
“그대 그 사업이란 거… 짐도 계약할 수 있는 건가?”
“어떤 걸 계약하시려는지…. 기본적으로 저는 사람 가리지 않습니다. 정당한 대가만 지불한다면.”
“가끔 짐이 하는 이상한 소리를 들어 주겠나?”
음… 일종의 심리상담 같은 거군.
듣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거 같으니 가격을 높게 때리자.
“좋습니다. 제가 매니지먼트라고 자문 사업도 하는데 그걸로 계약하시죠? 가격대는 좀 높은데 괜찮으신가요?”
황제가 어이없는 얼굴로 헛웃음을 치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늘은 계약 운이 폭발하는 날인가?’
알레스는 생각지 않은 대박 계약 두 건을 성사시키며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