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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위자료를 굴려보자-33화 (33/120)

33화

레이디의 남다른 클라쓰

‘이거 실화냐? 아이돌이 왜 여깄어?’

잘생겼다.

돌아본 다섯이 하나같이 미모다.

방금 험상궂은 침팬지들이 하는 소릴 들으니, 그들은 보육원에서 온 모양이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옷차림이 남루했다.

머리도 덥수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미모는 가려지지 않았다.

저런 걸 두고 자체 발광이라고 하는 걸까.

비슷비슷하게 생긴 넷은 열여덟, 열아홉쯤 돼 보였고, 한 아이만 좀 어렸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제국의 아이돌’이었다.

저런 외모를 가지고도 여기 와야 할 정도로 가난하다는 게 좀 의아했지만.

저쪽 세상이었으면 연예인이 됐든 얼짱 알바가 됐든 돈을 긁어모았을 거 같은데….

알레스는 반사적으로 치솟으려는 입꼬리를 겨우 끌어내리며 친히 밖으로 튀어 나갔다.

‘마밤헬’이 말릴 틈도 없었다.

자신이 귀족 레이디란 사실을 종종 잊고 빙의 전에 하던 습관대로 몸을 너무 잽싸게 움직였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그만.

알레스는 꽃미남 그룹을 향해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착오가 있나 보네. 보육원엔 음식을 따로 챙겨서 보내고 있는데. 신청은 했나요?”

그러자 꽃미남 중 한 명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더듬거렸다.

“아, 레이디, 죄송합니다. 신청 얘기는 처음 듣습니다.”

어머어머, 수줍어하는 미남이라니.

애가 되바라지지 않고 공손하니 참 마음에 든다.

“보육원 동생들 몫까지 브릭스도 가져왔어요. 스물다섯 명이지만 저희는 열다섯 명분만 있으면 충분해서 15브릭스요.”

가장 어린 미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지도 않은 걸 또박또박 설명했다.

알레스는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넌 이름이 뭐니?”

“킨토요.”

“킨토, 브릭스는 필요 없어. 원래 보육원엔 하루 한 번 무상으로 보내주기로 했거든.”

“아, 또! 아빠, 엄마가 깜빡했나 봐요. 하여간 조금만 방심하면 사고를 친다니까요.”

“킨토!”

방금 수줍어하던 미청년이 지나치게 해맑은 동생을 저지하고 나섰다.

알레스는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붙들어 매며 말했다.

“이러지 말고 다 같이 사무실에 들어가서 차분히 얘기 나눠요. 아무래도 신청이 제대로 안 됐나 보네. 점심은 먹었어요? 따뜻한 스콘 먹고 갈래요?”

마사가 창밖으로 몸을 빼고는 거들었다.

“그래요, 아가씨. 들어와서 얘기하세요.”

마사도 입가를 붙들어 매고 있는 게 보였다.

갑작스런 환대에 우물쭈물하던 꽃미남 그룹이 알레스의 재촉에 쭈뼛거리며 움직이려 할 때였다.

“뭐야, 기분 나쁘게. 지금 사람 차별하는 거야?”

탁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그 침팬지들이 험상궂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차별한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며 알량한 힘을 과시하던 너희들.

불량배 주제에 똑같이 예쁨 받으려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소동을 일으키면 배식에서 제외됩니다.”

알레스는 꽃미남 그룹을 대할 때와는 엄청난 온도 차를 보이며 냉랭하게 말했다.

“허, 무섭네. 어이, 아가씨. 따지고 보면 우리도 다 고아야. 우리한테도 관심 좀 가져 주지?”

대장 격인 듯한 녀석이 건들거리자 패거리들이 킬킬거렸다.

“행크, 차림새를 보니 귀족인 거 같은데….”

패거리 중 그나마 눈치 있는 하나가 걱정스레 말리고 나섰다.

그사이 밤비 경도 패거리를 막고 나섰다.

“무엄하다. 레이디 페레티께 예를 갖추고 방금 전 언행에 대해 용서를 구하라.”

하지만 행크라는 놈은 머리가 좋지 못한 듯했다.

아니면 졸개들 앞에서 체면이 상했는지도.

그도 아니면 오늘이 그에겐 죽기 딱 좋은 날이었는지도.

“귀족이면 다 귀족인가. 이혼녀 페레티라면 귀족 사이에서도 왕따라던데. 앞으론 우리 평민이랑 더 가깝게 지내야 할지 모르….”

행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밤비 경의 검이 그의 목을 파고들었다.

“꺄악!”

누구 입에서 나온 건지 모를 비명이 상점가를 흔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다들 멍한 상태였다.

알레스는 밤비 경이 기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 아름답게 반짝이는 검집 안에 든 게 진짜 검이라는 사실도.

상점가 바닥에 흩뿌려진 건 행크라는 불한당의 피가 아니라, 다행히도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이었다.

밤비 경은 그의 목을 긋는 대신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졸지에 언발컷이 된 행크는 잠시 숨이 멎은 듯했다.

패거리도 사색이 되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꿇어. 마지막으로 사죄할 기회를 주겠다.”

밤비 경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작스런 망신살에 이성을 상실한 걸까.

아니면 밤비 경이 가냘퍼 보이는 여자라서 습관적으로 우습게 여긴 걸까.

아니면 황제의 이름을 내건 사업장 앞에서 행패를 부릴 만큼 믿는 뒷배가 있는 건가.

행크는 냉큼 꿇지 않고 눈이 뒤집힌 채 발악을 했다.

“귀족이면 죄 없는 평민한테 칼부림해도 되는 거야, 앙? 평민이라고 막 짓밟아도 되는 거냐고!”

그는 다들 들으란 듯이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같은 평민 피 빨아먹는 양아치가 어디서 여론 형성을 하려고 들어?

알레스는 기가 차면서도 한편으로 이 침팬지가 제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지만 의외로 재활용 쓰레기인지도.

알레스가 재밌다는 듯이 행크가 하는 양을 보고 있을 때였다.

밤비 경이 눈으로 알레스의 처분을 물었다.

알레스가 고개만 한 번 끄덕하면 곧장 행크를 베어 버릴 기세였다.

알레스는 밤비 경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리는 걸로 만류의 뜻을 전했다.

두 사람이 주춤하는 듯하자, 녀석은 이때다 싶었는지 협박조로 지껄였다.

“가뜩이나 평판도 좋지 않은 레이디가 이런 소란까지 일으키면 곤란하실 텐데? 나 같은 놈이야 잃을 것도 없지요.”

검을 쥔 밤비 경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행크에게 한발 다가선 건 밤비 경이 아닌 알레스였다.

알레스는 입꼬리를 높이 올리며 다가갔다.

“이혼녀 페레티라고 부르나 보지? 내가 귀족들 사이에서 왕따래?”

이번엔 그가 주춤하며 뒷걸음질 쳤다.

“왜? 소란을 일으켜서 내 평판을 깎으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무리 머리가 나쁘고 오늘밖에 생각 안 하는 하루살이라도 너무 무모했다.

개인 사업장도 아니고, 굳이 불량배들이 와서 시비를 털며 분위기를 망칠 곳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아무리 자신이 몰락 직전 가문에다 이혼녀라지만 이곳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다.

미치지 않고서야 아무리 불량배라도 평민이 귀족에게 저리 막 나올 순 없다.

“행크라고 했지? 너, 아니 네 주인이 잘못 아는 게 있어서 말이야.”

알레스가 그와 거리를 더 좁히고 목소리는 더 낮췄다.

“나는 평민이랑 가깝게 지내는 거 싫지 않은데?”

행크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알레스를 쳐다봤다.

“귀족이고 평민이고 안 가려. 대신 차별은 하지. 가치 있는 사람들만 상대하거든.”

알레스가 더 바짝 다가갔다.

“그런데 넌 가치가 똥이야. 네 주인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상대해 줄 수가 없네.”

“뭐, 뭐… 이런….”

도무지 곱게 자란 귀족 영애 같지 않은 기세에 행크가 당황했다.

보통 귀족 영애 같으면 수치심과 모욕감에 진작 휘청거렸을 텐데.

말투만 좀 점잖을 뿐, 사람을 을러대는 투는 자기들 불량배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행크는 점점 다가오며 자신을 옥죄는 듯한 알레스를 향해 팔을 내저었다.

무의식중에 나온 행동이지만, 위험하고 징그러워서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실린 몸짓이었다.

하지만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 눈엔 행크가 그녀를 해치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쾅!

문짝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헤라클레스가 밀대를 들고 튀어나왔다.

근육이 울끈불끈한 거구의 사내가 둔기를 치켜든 모습에 행크는 흠칫했다.

시뻘겋게 성난 얼굴이 매우 위협적으로 보였다.

실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터지는 중이었지만.

‘아니, 쟨 왜 뛰어나와?’

심약한 성격에 얼마나 큰 각오를 하고 나섰을지 뻔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허우적대는 헤라클레스의 모습에 알레스는 성가신 표정을 지었다.

스콘을 좀 더 구우라고.

하지만 행크의 불운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헤라클레스의 난입에 이어 어디선가 느닷없이 기사 세 명이 튀어나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흐트러짐 하나 없이 깔끔하고 세련된 복장을 갖춘 기사들은 행크를 둘러싸고 검을 겨눴다.

“레이디에게서 떨어져라. 우리 주군께서 소중히 여기는 에메랄드 캄파넬라이시니.”

어디서 들어 본 듯한 느끼한 멘트.

‘이 사람들은 누구야?’

알레스와 행크가 동시에 멈칫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착착착 소리가 나더니 사방에서 스무 명 남짓한 병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그중 대장인 듯한 이가 행크에게 벼락같은 선고를 내렸다.

“황실 근위대다. 감히 황실을 능멸하고 귀족을 희롱한 죄목으로 너를 체포한다.”

행크는 입을 떡 벌린 채 서 있었다. 분탕질하던 배포는 온데간데없었다.

알레스도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순간 가장 애매한 이들은 따로 있었다.

원래 레이디 페레티의 호위 기사인 밤비 경, 괜히 난입한 근육질 헤라클레스, 정체불명의 멋쟁이 삼총사, 그리고 거창한 병사를 끌고 온 황실 근위대장.

“…….”

그들은 서로서로 어색한 시선을 교환하다 각자 혀를 차거나 한숨을 쉬며 검을 도로 검집에 꽂았다.

뽑아 든 칼은 많은데 베어야 할 무가 너무 작았다.

이렇게 행크는 어마어마한 관심 속에 근위대에 붙잡혀 갔다.

‘멍청한 귀족 영애 하나 겁주면 되는 일이라더니….’

그는 터덜터덜 끌려가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 찰거머리 행크가 이대로 끝일 거 같아? 두고 보라지. 너희들 사람 잘못 건드렸어.’

한바탕 사태가 진정되고 나니 겁에 질려 있는 꽃미남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배식 받으러 왔다가 졸지에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보아야 했다.

알고 보니 여기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다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상냥하게 대해 주던 레이디는 그중에서도 제일 무서운 사람 같았다.

“미안해요. 많이 놀랐죠? 자자, 안에 들어가서 스콘 먹으며 얘기 나눠요.”

안 들어가면 근위대 출동 같은 큰일이 벌어질 거 같았다.

그들은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얌전하게 줄지어 안으로 들어갔다.

알레스는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황은식’ 개장 구경을 나온 귀족들의 마차를 특히 눈여겨보았다.

감사 인사를 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다 어느 마차가 누구 건지 몰라서 일단 사무실로 들어갔다.

‘다정한 릴리 마를렌의 집’.

보육원 이름을 들은 마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로 씨 부부라면 그러고도 남죠.”

마사가 꽃미남들에게 따끈한 스콘과 차를 내어 주며 말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깜빡하고 말았네요, 호호호. 물어보면 아마 이럴걸요?”

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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