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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위자료를 굴려보자-25화 (25/120)

25화

어서 와, 스캔들은 처음이지?

“회의합시다, 빵도 먹었으니.”

세 사람의 자립 회의가 재개되었다.

“아가씨, 그래서 제가 좋아할 일이 뭡니까?”

마사가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

“그게 세 번째 안건이에요.”

“새로운 안건이요….”

그렇다는 건 일거리가 추가됐단 얘긴데.

아가씨, 아가씨, 아랫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일이 없는 겁니다.

마사가 떨떠름한 얼굴로 알레스의 설명을 기다렸다.

“새로운 사업을 하나 팠습니다!”

역시.

마사와 헤라클레스의 얼굴이 어둑해졌다.

“여러분, 기뻐하세요! 연 계약까지 찰떡같이 맺고 왔습니다.”

“아, 예….”

“그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 매달 꼬박꼬박 고정 수입이 들어온다는 얘깁니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반가운 소식이 맞네요.”

마사가 금세 표정을 바꾸며 반색했다.

“이제야 드리는 말씀이지만, 당장 저택 유지비니 마차 관리비, 생활비를 어쩌면 좋나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마사가 관자놀이를 누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 때문에 제 목이랑 어깨 딱딱해진 거 보이세요? 어쨌든 이제 한숨 돌리겠어요.”

“제가 또 이렇게 어려운 걸 해냅니다.”

알레스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래 월수입이 얼마나 됩니까?”

“매월 5,000브릭스를 받기로 했어요.”

“예에?”

마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설마 너무 적나? 덥석 서명부터 할 게 아니라 좀 더 알아보고 계약할 걸 그랬나요?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아아니, 우리 아가씨 손 크신 거 좀 봐. 적긴요. 그 정도면 고위직 관료가 받는 봉급이라고요.”

“그래요? 휴, 헐값에 계약한 게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겨우 대관람차 한 번 탈 수 있는 돈이던데?

“참, 그뿐 아니라 호위 기사도 그쪽에서 보내주기로 했어요. 믿을 만한 실력자로 보내준다고 해요. 호위와 관련한 일체의 비용도 대겠다고요.”

이 말에 지금껏 두꺼비 바위처럼 앉아 있던 헤라클레스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비싯비싯 비집고 나왔다.

살았다, 살았어.

“헤라클레스 님, 잘된 일이죠?”

“마님, 송구합니다. 대신 빵피를 더 쫄깃하게 만들고, 다른 일을 더 맡아서 하겠습니다.”

헤라클레스가 덩치를 우그러뜨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원래 근육질 거구라는 이유로 적성에 맞지도 않은 ‘보여주기용 기사’를 떠맡을 뻔했다.

새 사업 덕분에 그런 아찔한 운명에서 구제되었다.

호위 기사가 오면 그에게 각별히 더 잘 대해 주고, 맛있는 빵도 대접해야겠다고 헤라클레스는 결심했다.

“또 있어요. 기본 사례비 외에 행사나 뒷공작 등에 비용이 발생하면 추가로 청구하겠다고 제가 딱 요구했답니다.”

알레스가 거들먹거리자 마사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물었다.

“그래서 대체 누구와 어떤 계약을 하신 거예요?”

“메르세데스 공작이요. 어떤 계약이냐면….”

저주에 관한 거까지 공유해야 할까?

알레스는 잠시 주저했다.

둘 다 믿을 만한 사람들이지만, 공작의 프라이버시도 보호해야 하니 당분간 저주 얘기는 비밀에 부치자.

“공작님의 이미지를 관리하고 드높이는 일이라고 할까요.”

“그게 뭡니까?”

“음, 그러니까… 사교계에서 평판과 인기를 올리는 일이요. 알다시피 공작님이 가진 거에 비해 평가가 시들하잖아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게 우리가 도와주는 거죠.”

마사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자 알레스가 마침 옆에 있던 <빌보아 차트>를 흔들며 말했다.

“이거, 바로 이거예요. 이 차트에 공작님의 이름을 올리자는 거죠!”

“아하!”

“어때요? 마사 님이 좋아할 만한 일이죠? 이제 <빌보아 차트>를 얼마든지 파고들어도 좋아요.”

“드디어 아가씨도 이 차트의 중요성을 인정하시는군요.”

“아, 이참에 아예 구독 신청을 하죠. 마사 님 앞으로 일 년 치 차트를 선물할게요. 이제 맘 놓고 펜으로 표시도 하고 침대에서 끼고 잘 수도 있어요.”

“아가씨 정말, 이렇게 사람 감동 시키기예요?”

마사가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제 생에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요. 꿈에 그리던 정기구독을 하게 되다니. 구독 선물로 차트 상위 12인의 초상화와 서명을 담은 달력, 최애 귀족의 미니 흉상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어요. 뭐로 한다죠?”

메르세데스 공작과의 계약은 이렇게 헤라클레스와 마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 계약은 매우 중요해요. 왜냐하면 이 사업의 첫 번째 사례니까. 우리가 메르세데스 공작을 성공적으로 띄우면 아마 사교계에 대대적으로 소문이 퍼질 테고, 귀족들이 앞다퉈 의뢰를 해 올 거라고요.”

“우리도 카르티에 공작이 하는 거처럼 하면 되지요?”

방금까지도 고개를 갸웃거리던 마사가 <빌보아 차트> 정기구독이라는 당근을 쓰자 이해력이 확 올라갔다.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우린 공작님의 차트 진입과 순위 상승을 위해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할 거예요. 경쟁자인 카르티에 공작의 전략을 파악하는 일도 거기 포함되죠.”

“고정 수입이란 은혜도 베풀어 주셨는데 인간이면 열심히 해야지요.”

“네, 나도 가문의 이름을 걸고 최선을 다할 거예요.”

“저도 이 한몸 부서져라 일하겠습니다.”

세 사람은 새로운 도전 혹은 아름다운 콩고물 앞에서 뜻을 모으고 결의를 다졌다.

“메르세데스 공작님의 차트 입성을 위해!”

“입성을 위해!”

그때였다.

마사의 고질병이 도진 건.

“그런데요, 메르세데스 공작님이 왜 하필 아가씨한테 이 일을 맡긴 겁니까. 그것도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요.”

“내 실력을 높이 산다는데요? 황궁 음식 나눔을 제안하는 걸 보고 그렇게 평가했대요.”

“그으래요?”

마사가 또 이상한 눈초리로 기분 나쁘게 후후 웃었다.

“실력을 평가하는 데 편견이 없는 분인 거 같아요.”

“네, 그러시겠지요.”

“괜히 이상한 생각 말고요.”

“이상한 생각이요? 어떤 생각이요?”

마사가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지금 같은 생각!”

알레스가 인상을 썼다.

“혹시 엊그제 변장을 하고 나가서 만나신 분이 메르세데스 공작님이셨습니까?”

마사가 눈을 빛내며 조여 왔다.

“뭐, 맞아요. 보다시피 사업 얘길 했죠.”

“흠….”

마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취조에 들어가려 하자 알레스가 얼른 딴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말이죠, 사업용 호칭을 정하는 게 어떨까요?”

“사업용 호칭이요?”

“회의 땐 임의로 이름에 ‘님’ 자를 붙이고 있지만, 거래처라든가 고객이라든가 외부 사람들 앞에서 쓰기엔 좀 그렇잖아요?”

“호칭이라면 예를 들어 어떤 거요?”

“제 생각엔 마사 경, 브레이브 경, 또 호위 기사 모모 경 등 호칭을 ‘경’으로 통일하면 어떨까 싶어요.”

“네? 여자이면서 유모인 저한테도 경을 붙일 수 있나요?”

“안 돼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일단 경으로 해요. 누가 시비 걸면 그때 가서 바꾸기로 하고.”

마사와 헤라클레스가 눈을 껌뻑였다.

“아가씨는 뭐라 불러 드릴까요? 마님이나 아가씨보다는 좀 무게감 있는 호칭이 좋지 않을까요?”

“흠.”

고심하던 알레스가 말했다.

“일터에선 보스라고 불러주세요.”

“보스요? 외국어인가요? 알겠습니다, 보스.”

“아 참, 활기찬 회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엄지의 규칙을 제안할까 해요.”

“엄지의 규칙?”

“쉬워요. 누군가의 발언이 훌륭하거나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면, 이렇게 엄지를 세워서 내미는 거예요. 따라해 보세요.”

마사와 헤라클레스도 알레스를 따라 ‘엄지척’을 했다.

“만약 의견이 너무너무 멋져서 엄지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땐 양손을 사용해 엄지 두 개를 내미는 거예요. 극찬의 표시예요.”

세 사람은 서로를 향해 엄지를 세우며 매우 화기애애하게 이날의 회의를 마쳤다.

* * *

“아가씨, 큰일 났어요!”

잘해 보자 결의를 다진 바로 다음 날, 사건은 터졌다.

마사의 손엔 웬 얄팍한 타블로이드판 신문이 들려 있었다.

<소문과 진실>이란 가십지였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래요! 메르세데스 공작님에 대해 이상한 기사가 났어요!”

그럴 리가.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게 문제인 사람인데.

[사교계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메르세데스 공작.

그가 귀족 영애들에게 관심이 없는 건 혹시 그의 취향이 남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최근 개장해 정치나 비즈니스를 위한 장소로 신사들 사이에 각광받고 있는 대관람차 ‘임페리얼 아이’.

그곳에 메르세데스 공작이 모습을 드러낸 건 ×월 ×일 오후였다.

그는 수신사 제복인 듯한 복장을 한 남자와 대관람차에 동승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여느 탑승객처럼 사업적인 논의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을 거라 여겼고, 그때까지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대관람차가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작이 관람차 안에서 수신사 복장의 남자를 매우 격정적으로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좌석에 앉을 경황도 없이 바닥에서 허둥거리고 있었는데,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며 함구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허리에 팔을 두른 모습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우정의 포옹으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대체 메르세데스 공작과 함께 있었던 제복의 남자는 누구이며, 두 사람은 어떤 위험한 관계인 것일까.]

기사를 읽은 알레스는 테이블을 땅 내리쳤다.

대화의 비밀을 보장할 수 있어 밀담을 나누는 곳으로 제격이라는 대관람차.

도청은 안 되지만 안이 훤히 보이긴 했던 것.

“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사가!”

고객님의 이미지를 높이기는커녕 이런 추문부터 터지다니.

솔직히 스캔들로 어그로를 끌어 볼 생각을 전혀 안 한 건 아니지만, 이건 좀 아니다.

아니 어떻게 된 게, 좋은 면은 통 알려지지 않으면서 나쁜 소문은 사방팔방 퍼지는 거야?

이런 게 저주인가 싶었다.

“어떻게 수습하는 게 좋을까, 마사?”

알레스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해결책을 궁리했다.

“기사는 기사로 덮는 게 상책이지. 더 자극적인 기사를 뿌리도록 하자. 안 그래도 부패한 기자 하나 물색해 보려던 참이었어.”

그래, 공작을 띄우려면 어차피 언론이라는 바람잡이가 필요해.

알레스가 침착한 태도로 조금 놀란 듯한 마사를 달랬다.

마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가씨, 메르세데스 공작님과 대관람차 안에서 그러셨던 거예요?”

뭐? 지금 그게 중요해?

알레스가 짜증스럽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오보야, 오보! 내가 고소공포증 때문에 괴로워하니까 공작이 조금 도와준 거뿐이라고!”

“고소공포증 때문에 허리에 손을 두르고 계셨던 거군요.”

“손은 나만 두른 거고! 공작은 나를 달래려고 그냥 가슴팍에… 잠시 머리를 기대게 해 줬을 뿐이라고….”

“오오!”

마사가 괴상한 소리를 냈다.

“아가씨, 정말 잘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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