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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위자료를 굴려보자-24화 (24/120)

24화

부자 되긴 어 피스 오브 케이크!

“회의합시다.”

며칠 뜸하다 싶었던 자립 회의가 다시 가열차게 이어졌다.

“황궁 음식 나눔장에 가져올 음식 종류는….”

파티시에 헤라클레스가 황궁 음식 중 백성들에게 나눠 줄 기본 품목을 무엇으로 할지 보고했다.

상할 위험이 없고 시간이 지나도 맛이 변하지 않는 것들로 추렸다.

또 음식들을 어떻게 보관, 관리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말했다.

식품과 요리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연륜이 돋보였다.

두툼한 손을 한데 모아 쥐고 어눌한 말솜씨로, 하지만 차근차근 설명하는 거구의 사내.

그가 하는 말들이 설득력 있는 건 해박한 전문 지식이나 대단한 권위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마음에 와닿았다.

‘빵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니까.’

알레스는 이렇게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며 헤라클레스에게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헤라클레스는 깜짝 놀라서 굳어졌다.

순식간에 얼굴은 물론 온몸 근육까지 시뻘게졌다.

‘천사 같은 마님이 웃어 주시다니. 마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라면 이 한몸 바치리라.’

마사는 황궁 음식 나눔장 인테리어, 음식 포장, 황궁 쪽 담당자 명단, 음식 픽업 및 배식 시간, 이용 규칙 등 운영에 관한 사항을 꼼꼼하게 보고했다.

특급 유모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마사 님, 당신은 최고입니다.”

알레스가 회의용 존칭과 존댓말로 짧고 굵게 치하했다.

자, 유능하고 충직한 직원들이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했으니, 이제 알레스가 어루만져 줄 차례.

농간의 향기를 더해 마무리해 주자.

“음식 나눔장 이용료는 1회 1브릭스로 합시다.”

“예? 공짜로 나눠 주는 게 아니고요?”

“1브릭스면 작은 돈이긴 하지만, 그래도 백성들에게 돈을 받는 건 좀….”

4인분의 큰 빵 하나가 10브릭스, 1브릭스면 잔돈이다.

“아무리 황궁 음식이지만 새 음식도 아니고 남은 음식인 데다, 형편이 어려운 백성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입니다.”

당장 두 사람이 걱정 어린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 익히 짐작했던 알레스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받는 사람 입장에선 1브릭스는 별 도움이 안 되는 푼돈이지요.”

“네, 그렇다니까요.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돈 때문에 평판만 나빠지지 않을까요?”

“하지만 내는 사람 입장에선 어떨까요?”

“네?”

“1브릭스라도 내면 엄연히 대가를 지불하고 사서 먹는 거지요. 공짜로 얻어먹는 것과는 다릅니다.”

마사와 헤라클레스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음식은 한정돼 있고 먹으려는 사람은 많을 테니, 나눔장 앞에 줄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아마도 문을 열기도 전에 길고 긴 줄이 생기리라.

“1브릭스를 낸다면 그건 음식을 사기 위한 줄입니다. 하지만 공짜라면?”

아무리 황궁에서 황족과 귀족들이 먹던 음식이라 해도, 아니 그보다 더 귀한 음식을 준다 해도, 그건 그냥 동냥 줄일 뿐이다.

“여러분이 각각의 줄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1브릭스 줄에 서 있다면 짜증이나 불만이 얼굴에 가득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고개를 숙이거나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진 않겠죠.”

반대로 공짜 줄에 서 있다면?

아마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위축된 모습으로 서 있을 거 같았다.

“돈이 없다고 자존심이 없는 건 아니에요. 백성들이 음식을 얻고 자존심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마님!”

헤라클레스는 감동해서 울부짖었다.

마사는 주인을 좀 더 아는 만큼, 덮어놓고 감동하기보단 속으로 감탄하며 아가씨의 진의를 파악해 보았다.

1브릭스라고 해도 모이면 어떨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가씨가 뭘 하시려는 걸까.

의심이 많은 특급 유모였다.

“음식을 대하는 마음도 그래요. 1브릭스라도 낸 음식은 공짜 음식보다 맛있게 느껴질 거예요.”

사람들이 무조건 싸다고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백성이 아니라 귀족을 상대로 하는 사업이었다면 아마 일부러 높은 가격을 매겼을 거다.

똑같은 공장에서 만든 똑같은 내용물이라도 비싼 브랜드를 붙이고 가격을 높게 책정하면 가치까지 높아지는 이치다.

물론 비싸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어차피 고객이 아니니 무시하면 된다.

“기본적인 운영비는 황궁에서 댈 테니, 1브릭스를 받아서 모인 돈은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투자하면 될 거 같아요.”

서비스란 매우 광범위한 개념이다.

그리고 음식 나눔장을 무료 급식소가 아닌 식료품점이나 베이커리 이미지로 자리 잡게 하면?

언젠가 2브릭스나 3브릭스의 음식을 슬쩍 끼워 팔아도 이상하지 않을 테지.

언제까지 황제 좋은 일만 할 순 없으니까.

“헤라클레스 님은 빵 만들기를 게을리하지 마세요. 음식 나눔장 일도 중요하지만 당신은 파티시에니까요.”

돈도 안 되는 음식 나눔장 일은 눈치껏 적당히 하고 그보다는 빵 판매에 승부를 걸자는 말이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마님이 자신을 장인으로 인정해 주는 거라 여기고 다시 한번 감동했다.

“다음 안건. 옮겨 갈 집은 매입이 끝났나요?”

알레스가 마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예. 아가씨가 고집하셔서 계약을 끝내긴 했지만, 정말 괜찮으세요?”

마사는 지난번 본 비에커가 221B 번지의 조각 케이크 모양 집을 알레스를 대신해 계약하고 왔다.

집 모양이 너무 괴상하다며 마사는 끝까지 주저했다.

“괜찮다마다요. 카르티에 공작과 이야기가 잘 돼서 주차장 문제까지 싹 해결했다니까 그러네요.”

“카르티에 공작과 줄이 닿으신 건 반가운 일이지만요.”

“그 집 이름도 생각해 놓았는걸요. ‘피스 오브 케이크’ 하우스라고요.”

어 피스 오브 케이크!

여기서 내가 부자 되는 건 식은 죽 먹기! 누워서 떡 먹기!

이 알레스와 함께하면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것도 쉽고 간단하고 즐거운 일이 될 거예요!

이런 바람을 담았다.

“케이크 하우스라면 거기서 빵이랑 케이크, 음료 같은 거도 파실 생각이십니까?”

봉창 두들기는 헤라클레스의 말에 분위기가 파삭 깨졌지만.

속으로 혀를 차던 알레스는 문득 소름이 돋았다.

가만.

안 될 거 없잖아?

“좋은 생각이에요, 헤라클레스 님.”

알레스의 말에 눈을 홉뜬 건 마사였다.

파티시에 헤라클레스는 그렇다 치고, 아가씨까지 그런 엉뚱한 소리를?

“귀족들이 헤라클레스 님의 천타빵과 예술적인 디저트들에 아주 사족을 못 쓰고 덤벼들 거예요.”

음흉하게 웃는 알레스의 얼굴을 보며 마사는 바짝 긴장했다.

“아가씨, 파티시에님의 솜씨야 어느 혀든 살살 녹이고도 남겠지만 저택에 상점을 여는 건 좀 그렇습니다. 진열장이니 테이블이니 놓을 자리도 없고요.”

“마사 님, 그런 건 필요 없어요. 주방과 작은 창만 있으면 됩니다. 마당이 없다는 게 이럴 땐 편하군요.”

아가씨가 무슨 소릴 하시는지 통 모르겠다.

“그보다 마차 말인데요, 중고 시장에 내놓는 거보다 다른 사업에 이용해 보려 합니다.”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마침 마음 놓고 마차를 세워 둘 곳도 구했겠다, 팔아치우는 게 좀 아깝단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다고 세 대나 되는 마차를 굴리기는 무립니다. 어디 타고 다니실 일도 많지 않잖아요.”

마사가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탈 게 아니에요.”

“그럼요? 아하, 카르티에 공작님이 타고 다니실 건가요? 주차비 대신으로?”

“뭐 카르티에 공작도 포함될 수 있긴 하겠네요.”

“무슨 말씀이신지….”

“그 마차들로 마차 대여업을 할 거예요.”

“예에? 대여 마차들은 지금도 적자인걸요. 장사가 안된다고 업자들이 울상이던데요. 게다가 황실 마차 같은 고급 마차라면 체면상 대여비도 싸게 부를 순 없을 텐데, 그럼 손님이 더 없지 않겠습니까?”

마사가 숨도 쉬지 않고 안 되는 이유를 좔좔 읊었다.

“좋은 지적이에요, 마사 님. 우리 마차는 무려 고급 황실 마차예요.”

“제 말이요.”

“우리가 할 대여 마차 사업이 기존 대여업과 다른 점은….”

알레스의 눈이 반짝 빛났다.

“마차가 없는 사람은 물론 마차가 있는 사람도 우리 고객으로 만들 거라는 점이에요.”

어? 영리한 마사는 벌써부터 뭔가 감이 짜르르 오는 거 같았다.

“우리 마차를 타는 걸 일종의 유행, 사교계의 트렌드로 만들 거예요. 우리 목표는 마차 열 대 있는 귀족도 페레티의 대여 마차를 타게 하는 겁니다!”

알레스는 이 세상의 마차들을 더 이상 말이 끌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동물을 학대하는 건 귀족으로서 고상하지 못한 일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래서 마차의 말은 거의 마스코트고, 실제로는 마정석을 연료로 움직인다.

그런데 이 마정석이 문제가 많았다.

매장량이 한정되어 있어 마구 쓰면 고갈될 문제가 있고, 마정석이 쓰일 때 공기 중에 흘러나오는 마력 부스러기가 사람들의 육체와 정신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알레스는 전생의 공유 자동차를 떠올렸다.

동물 학대 금지가 귀족의 덕목이 될 수 있는 곳이라면, 환경과 자원 문제도 충분히 공론화할 가능성 있어 보였다.

물론 공유 자동차와는 다른 전략도 필요했다.

경제적이라는 장점 대신 귀족의 구미에 맞는 옵션을 풍성하게 넣을 생각이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신기하면서도 멋진 생각이시긴 한데, 어떻게 귀족들의 관심을 끌지요?”

“몇 가지 생각해 둔 게 있긴 한데….”

황실의 고급 마차라는 미끼론 물론 턱도 없다.

그보다 더 좋은 마차를 타는 귀족들도 있었다.

“우선 사교계의 별들을 끌어들일 거예요.”

“누구요?”

“카르티에 공작과 브린 5황자요.”

“예? 그분들과 동업한다면 좋긴 하겠지만, 과연 해주실까요?”

마사가 못미더운 목소리로 물었다.

“저자세로 나갈 필요 없어요, 마사 님. 우린 정당한 거래를 제안할 거니까요. 아니, 우리가 그들을 목 좋은 사업에 끼워 주는 셈이죠.”

역시 아가씨의 배짱은!

알레스의 말에 마사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외에도 소소한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건 좀 더 정리되면 공유할게요. 헤라클레스 님의 빵도 거기 포함된답니다.”

알레스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그나저나 사업마다 지어야 할 이름도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황궁 음식 나눔장의 이름 같은 건 헤르메스에 설문을 맡겨도 좋을 거 같아요.”

헤르메스는 전령 길드로, 최근엔 여론 조사나 정보 수집 사업을 활발히 하고 있었다.

특히 새로 개발한 통신 마도구인 ‘탈라리아 메신저’는 여론 조사와 정보 공유에 일대 혁명을 불러왔다.

그 유명한 <빌보아 차트>도 헤르메스에서 조사한 여론을 토대로 순위를 매겼다.

만약 이 세계에 주식이란 게 있다면 헤르메스 주식을 샀을 거라고 알레스는 생각했다.

황궁 음식 나눔장의 이름 설문을 헤르메스에 의뢰하면 홍보 효과까지 톡톡히 볼 수 있을 터였다.

“헤르메스에 말입니까?”

<빌보아 차트>의 열성 애독자인 마사가 역시나 눈을 반짝이며 반색을 했다.

“역시 마사 님이 좋아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진짜 좋아할 일이 하나 더 남았어요.”

“좋아할 일이 또 있습니까? 뭔데요?”

“흠, 이거 말하자니 괜히 내 자랑이 될 거 같아서….”

알레스가 거드름을 피우며 뜸 들이다 말했다.

“우선, 빵 먹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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