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병아리 총장님 (1)
서지훈이 정론을 꺼내자 야당 의원들은 불쾌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에게 반감이 있던 여당 측 인사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김강현 대통령이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청문회를 지켜보고 있던 대중들의 마음은 정반대였다.
2년 전 명인대 총장 후보자 토론회에서 보였던 화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아니, 무대 자체가 다르니 그대로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지금은 정계 인사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니, 난도 자체가 훨씬 높다.
그럼에도 서지훈은 그 어떠한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철학을 개진했다.
당연히 청문회는 파행되었다.
청문회을 주도한 야당 의원은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렇게 건방진 사람이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여당 쪽에서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
그 상황에서 민우는 서지훈을 만났다.
“역시 잘 어울리는군.”
총장실로 찾아온 서지훈은 민우를 그렇게 평가했다. 그리곤 주변을 살펴보았다. 익숙하지만 조금은 낯선 풍경에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나름 소박하게 잘 꾸몄는데?”
“아무래도 그냥 집무실보다는 연구실 스타일로 만드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커피는 직접 만드나?”
“세드릭 교수에게 요즘 원두 받고 있거든요. 겸사겸사 제가 만들어 먹습니다.”
“김 비서가 좋아하겠어.”
민우는 웬만한 일은 본인이 직접 처리했다. 그래서 총장실 직원들은 민우의 스케줄 관리나 행사 진행 같은 굵직한 업무만 맡아서 처리했다.
민우는 직접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 두 사제가 오랜만에 총장실에서 마주했다.
이제는 주인이 바뀐 상황이지만, 서지훈이 풍기는 포스는 여전히 대단했다. 누가 본다면 서지훈이 총장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청문회는 잘 봤습니다. 진짜 선생님은 짱인 것 같아요.”
“하하하. 이제 알았어?”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쟁쟁한 의원들한테 그렇게 받아칠 줄은 몰랐죠.”
“그래서 평생 외롭게 사는 거야. 나를 따르는 사람도 많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겠지.”
“언젠 송 선배만 있어도 충분하다면서요?”
생각보다 서지훈은 청문회 건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어쨌든 야당에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는다고 해도,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
“어떻게 될 거 같아요? 대통령님 성격을 본다면 강행하실 것 같은데.”
“너도 봐서 알잖아. 결국 그 치들이 트집을 잡은 건 경험뿐이야. 그 외에는 깨끗하다 이거지.”
“해프닝도 하나 있었잖아요.”
“뭐, 평생 손에 물 묻히지 않고 산 사람들이라면 그런 오해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청문회에서 있었던 해프닝은 지금도 한창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고 있었다. 관련 동영상은 조회수가 100만을 넘었다.
내막은 이랬다.
20년도 지난 자동차를 끌고 다니는 게 믿을 수 없다는 모 의원의 지적 때문이었다. 서지훈은 총장 시절에도 관용차가 아니라 자차를 이용했다.
의원들은 그 사실에 의혹을 보냈다.
차명으로 다른 차량을 이용하거나 뭔가 부정한 것을 가리기 위한 수작이 아니냐고.
검소하게 살아도 비난을 받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웃음을 참지 못한 서지훈은 위원장에게 경고를 받으면서도 의원들에게 되물었다.
“그렇게 묻는 여러분들은 지금 서울 시내버스와 지하철 요금이 얼만 줄이나 아십니까?”
당연히 그 질문에 답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장면을 담은 동영상 클립은 무수히 많이 공유되며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민생의 최전선인 교통비조차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국정을 이끌고 있다며 조롱하기 일쑤였다. 대중들의 실망은 극에 달했다.
이제 민우는 그러려니 했다.
청문회를 보다 보면 정말 상식 이하의 질문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제 청문회는 후보자의 자질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깎아내리기 위한 자리로 변모한 지 오래다. 혹은 대통령과 기 싸움을 하거나.
서지훈은 혜성같이 나타나 그런 청문회 문화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대중들이 실망을 많이 한 만큼, 반사적으로 서지훈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는 중이었다.
“내가 교육부에 출근하는 건 시간문제야. 그러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 쓸 거 없다. 오히려 다른 부분을 신경 써야지.”
“다른 부분이요?”
“왜 처음 듣는 것처럼 그래? 내가 장관 자리에 앉으면 바로 하려는 일이 너도 뭔진 알잖아?”
민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서지훈은 예전부터 칼춤을 춘다고 했었다. 즉 대학과 교육재단의 부정부패를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 있었던 한일대 종합감사는 전임 대통령 임기 만료로 인해 흐지부지하게 끝나고 말았다. 이제는 새로운 지도자가 세워졌으니 멈췄던 것을 다시 시작할 때였다.
“어떻게 하실 계획인가요?”
“모든 대학을 일거에 조사할 수는 없어. 나는 대학들에 유예기간을 줄 거야. 알아서 자수하라는 의미로 말이지. 그사이 시범 케이스로 한 곳을 털 생각이다.”
“설마 우리 대학이요?”
“그래.”
서지훈의 의도는 뻔했다. 명인대는 국내 최대 규모의 사립대다. 서지훈이 열심히 노력했지만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곳을 과감하게 때린다면 주변에 경고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할 수 있다. 너희들도 털리기 전에 알아서 자수해라. 그래서 유예기간을 두겠다고 한 것이다.
점점 더 깊어지는 민우의 표정을 읽은 서지훈이 물었다.
“왜. 임기 시작하자마자 감사를 받으려니 부담스럽냐?”
“그런 건 아니고요. 어차피 감사는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상관은 없습니다. 그런데 명인대를 털게 되면 괜히 선생님이 피해를 보시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내가 전임 총장이라서?”
“아무래도 그렇죠. 굵직한 비리 건이야 백성웅 씨가 검찰 조사를 받고 있으니 상관없다손 치더라도, 역시 주변에서 흠집을 낼 것 같아서요. 청문회 분위기를 본다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서지훈은 딱히 반론하지 않았다.
“넌 아직 날 잘 모르는구나.”
“예?”
“네 말이 맞아. 명인대의 허물이 드러날수록 나에겐 마이너스가 되겠지. 장기적으로는 장관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내가 장관을 임기까지 한다는 전제하에서 걱정해야 할 문제겠지?”
“……다른 계획이 있으신 거예요?”
“아직 정해진 건 없어. 하지만 적어도 내 목표가 장관에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 정도는 해줄 수 있겠군.”
멍한 표정을 짓던 민우는 웃음을 터트렸다. 참 부질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래 봬도 주변에서는 킹 메이커라고 불리고 있어요.”
“하하하. 뭐, 그날이 언제 올진 모르겠지만.”
“참, 진섭이가 얼마 전에 왔었는데요.”
“안 봐도 뻔하다. 마치 제집 드나들듯 하지?”
“그 정도는 아니고요. 선생님 이야기 하더라고요. 요즘 연락도 잘 안 되고, 새교육협의회 일도 걱정하는 것 같아서요.”
서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렇게 하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하진 않았다. 민우는 그 의미를 안다. 이제는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서지훈에게 기대지 않고서 말이다.
무엇보다도 서지훈은 믿는 것이다. 제자들의 저력을 말이다.
민우는 그 믿음에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교육부 건 정리되면 한 선생하고 같이 저녁이나 먹자. 날짜는 내가 알려주마.”
“알겠습니다.”
“수고해. 햇병아리 총장 나으리.”
서지훈은 커피잔을 깨끗이 비운 뒤 자리를 떠났다.
* * *
“총장님?”
생글생글 웃는 미소가 매력적인 설예라 교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대학원 시절의 버릇이 남아 있어서, 민우는 총알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끔 스승으로 모셨던 사람들이 찾아오면 이런 반응을 보이곤 한다.
어떻게 보면 설예라 교수는 서지훈보다 더욱 무서운 사람이었다.
국문과의 비선실세 정도라고 할까?
“바쁘신데 제가 방해한 거 아니죠?”
“선생님…… 말씀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무서워 죽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어떻게 하늘 같은 총장님께 말을 편히 하나요?”
이건 분명 놀리는 거다. 민우는 울상을 지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거다. 주예린은 거의 디아블로 수준이다.
“알았어. 그만 놀릴게.”
“일주일에 딱 한 번만 놀리시면 안 될까요? 오래 살고 싶어서요.”
“하하하. 알았어. 잠깐 이야기 괜찮지?”
“그럼요.”
설예라 교수는 딱히 자리를 옮기지 않고 선 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길지 않은 이야기인 모양이다.
“이제 슬슬 2학기 임용 절차 준비해야 해서 상의 좀 하려고. 국문과에서 전임교수 충원 계획 올렸더라고. 한 명.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민영환 선생님 후임이었죠?”
“박 선생 후임이기도 하고.”
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후임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총장 임기가 끝나면 다시 국문과로 돌아갈 거니까.
그리고 민우는 취임하자마자 한 차례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총장임에도 3학점 강의를 하나 맡은 것이다.
누구나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교양 과목을 신설했다. 과목명은 ‘세계 사상사의 이해’였다.
강의명은 올드하지만 내용은 신선했다.
민우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학자들과 어떻게 어울렸고, 그들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를 마치 옆집 동생에게 썰을 풀듯 편하게 전할 계획이었다.
“가능하면 두 명 뽑고 싶은데, 예산이 조금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그건 뭐 상관없지 않을까? 어차피 비전임 교수들 대우도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니까. 우리 총장님 덕분에 적은 돈으로 갑질하는 이미지에선 이제 벗어났잖아?”
“그래도 가능하면 고용을 보장해주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좋죠.”
“하여간 욕심은 많아서. 일단 국문과에서는 강예진 선생을 추천하는 분위기야. 민영환 선생님도 뒤를 잇길 바라는 것 같고.”
민우는 그제야 설예라 교수가 왜 의논을 청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설예라 교수도 민우가 그랬던 것처럼 특별 임용권이 있다. 좋은 인재가 있다면 바로 추천하여 임용 절차를 밟는 권한이다.
하지만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고 찾아왔다는 것은 신중하게 판단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절차대로 하시죠.”
“절차대로면, 서류 접수부터 쭉?”
“그래야죠. 아무래도 총장을 연속으로 두 번이나 배출한 학과라 주변의 이목이 많이 쏠릴 겁니다. 그럴수록 절차대로 해야죠. 물론 예진 선배라면 충분한 자격이 있긴 하지만.”
“알았어. 그럼 그 건은 공개 채용으로 진행하는 걸로. 혹시 강 선생이 서운해하지 않을까?”
민우는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오히려 반대일 거예요. 자기 실력을 무시하는 거냐며 기분 나빠할 겁니다. 선배라면 분명히 해낼 거예요. 서강일 선생이 지원하지 않는 한.”
“하하하. 그것도 나름 재미있겠는데? 그런데 서강일 선생은 어떻게 한대?”
서강일의 시간강사 계약도 이번 학기로 만료된다. 민우는 그에게 넌지시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했다.
“당분간은 휴머니티에 집중하고 싶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놔줘야 할 것 같습니다.”
“아쉽다. 유능한 사람이었는데.”
“제가 좀 더 노력할게요. 유능한 사람이 더 많이 우리 대학으로 찾아오게요.”
“이제야 좀 총장다운데?”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앞으로 더욱 바빠질 테니까. 민우는 한 말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