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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서-462화 (462/500)

회심의 일격 (3)

“이런 안배를 하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하하, 정말 신의 한 수라는 생각밖에는 안 들더군요!”

김강현 의원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여당의 중진으로서, 그리고 대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느낀 통쾌한 한 방이었다.

바로 타치카와 교수가 박민우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일 때문이다.

“안배까지는 아닙니다. 그냥 이렇게 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에 해본 일이에요.”

“그런 걸 두고 ‘통찰’이라고 하는 거지요. 이번 일로 박 교수님의 주가가 상당히 뛰었습니다. 피부로 느끼시겠지만 말이죠.”

민우는 겸손히 웃었다.

과거에 맨부커 인터내셔널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국위 선양을 한 민우였다. 이번에는 국제상을 제정해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한 학자를 포상했다.

당연히 학계와 관련이 없는 대중들은 이 사실에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말로 ‘국뽕이 차오른다’는 표현이 줄을 이었다.

때문에 ‘박민우상’ 본상 시상식을 앞둔 지금도 일본 언론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상의 권위와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는 기사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지만, 이제는 타치카와 유지가 마지막 양심을 보여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그 마지막 양심이라는 것은 바로 ‘수상 거부’였다.

일본 매스컴은 연일 타치카와 교수를 향해 수상 거부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정말 끝까지 구질구질하게 나온단 말이지.’

민우는 정말 답이 없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독도에 대한 영토 분쟁을 지속하고, 한국과 일본의 교류사를 전면 부인하려는 얄팍한 수작이 아닐 수 없었다.

일본 언론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일본 학계의 반응이 기다려졌다.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음에도, 시미즈 교수에게선 그 어떤 연락도 없었다.

하지만 민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미즈 교수는 존경받는 명사로서 한 건 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도 괜히 긁어 부스럼은 아닐까 조심스럽습니다. 아무래도 의원님도 그렇지만 외교 당국자분들은 힘들어질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뭐, 예전 수출규제 때는 좀 힘들었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유명한 완성차 업체가 철수한 것을 시작으로 많은 기업들이 한국에서 철수하고 있어요. 즉, 일본 경제의 피해가 날로 누적되고 있는 셈이지요. 일본 내부에서도 실패한 정책이라는 이야기가 많지요. 이런 상황이라면 일본도 싫은 말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언젠간 손을 잡아야 하는데, 지금은 우리가 한참 우위에 있는 상황이지요.”

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사적인 감정으로 이웃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하루빨리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물론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일이 불가능에 가깝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저도 수상자가 누구인지 확인해 드리고 싶었는데 원칙이라는 게 있어서 말입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박 교수 말씀이 맞습니다. 원칙을 잘 지켜야 상의 위엄이 바로 서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제가 옆에서 부추긴 꼴이었지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놓이네요. 감사합니다.”

민우가 정중히 인사하자 김강현 의원은 손사래를 치며 난처해했다.

“이것 참! 그렇게 어려워하실 필요 없다니까요? 하하하. 이제 곧 우리는 함께 달려야 하지 않습니까? 좀 더 큰일을 위해서 말이죠.”

그 말은 곧 대선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김강현 의원은 민우에게 만남을 청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최근 대한민국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기 대선 주자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있었다. 이미 야당에서는 출마 의사를 밝힌 사람이 나타났다. 여당에서도 액션을 보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대통령 선거까지는 앞으로 1년.

그래서 김강현 의원은 좀 더 빨리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당초 내년 초에 캠프를 꾸리겠다고 했지만, 그 일정을 좀 더 당겨야겠다고 판단했다.

수세에 몰린 야당에서는 무리 없이 단일화가 가능할 것 같지만 한민당을 비롯한 범여권에서는 후보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즉, 대통령 후보 경선과 단일화 협상이 사실상의 결승전일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강현 의원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민우를 합류시키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좀 준비는 되셨습니까?”

김강현 의원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민우는 당황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한민당 사무실에서 만났을 텐데, 오늘은 김강현이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대접했으니까.

나오기 전에 민우는 마음을 정했다. 미적지근하게 굴지 않기로 말이다.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대학에도 이야기를 다 해 두었습니다. 캠프 합류에는 문제없을 겁니다.”

“혹시 명인대를 아예 그만두신 겁니까?”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민우는 교수 그 자체였다. 그가 대학을 떠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김강현 의원이 걱정스레 물었다. 민우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일단 휴직 신청을 해두었습니다. 내년부터는 강의를 하지 않을 겁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겠지만…… 의원님의 명성을 보자면 일이 잘못될 가능성은 거의 없겠죠.”

“하하하하하!”

김강현 의원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무릎을 탁 치기까지 했다.

“올해에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기쁜 이야기군요. 물론, 박 교수께서 학교를 쉬는 바람에 강의를 듣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아예 떠나는 건 아니니까요. 언젠가 돌아가게 된다면 더 열심히 해야겠죠.”

“예. 그러셔야죠! 그럼 제가 생각하는 보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초에 말씀드렸던 대로 정책자문역을 그대로 맡아주시고, 여기에 교육특보직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어떠신지?”

“교육특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겁니까?”

“일종의 특별 보좌관입니다. 공약이든 정책이든, 교육 분야에 한해서는 마음껏 의견을 주십시오.”

고마운 말이었다. 그만큼 자신을 신뢰해준다는 거니까. 하지만 민우는 한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사립대학 협회에서 저를 썩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의원님께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혹시 직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런 건 절대 아니고요. 그 반대도 생각해 보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상에 적이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어차피 그쪽 세력은 야당 편입니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해 먹은 게 있으니 말이죠. 굳이 그들에게 아부를 떨면서 표를 받고 싶지는 않군요.”

그의 진솔한 한마디에 민우는 감탄했다. 보통의 정치인이라면 어떻게든 한 표라도 얻기 위해서 자존심을 팔 텐데 말이다.

적어도 김강현 의원은 세운 원칙이 확고한 것 같았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 마음 변치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의원님의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박 교수! 하하하하하.”

한껏 흥이 난 김강현 의원이 잔을 들고 건배를 제안했다. 민우는 기꺼이 그에 응했다.

“이제 저도 모든 준비가 끝난 것 같군요. 마지막 퍼즐을 맞췄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언론에 공표하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혹여라도 곤란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따라붙는다면 저에게 말씀해 주시고.”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 이거 선 넘은 참견이었군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날 한정식집의 VIP실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 * *

‘이제 끝이다.’

민우는 성적 입력을 마무리했다. 이제 2학기도 완전히 마무리된 것이다.

‘언제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휴직계를 냈기 때문에 연구실은 그대로 유지된다. 하지만 민우는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언제까지 감상에 젖어있을 순 없었다.

민우는 외투를 걸치고 연구실을 나섰다.

그의 목적지는 지음사 본사였다. 평소와는 달리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제1회 박민우상 시상식이 열린다.

각계각층의 명사들이 초대받았다. 외국인들도 상당히 많았다. 얼굴을 아는 사람도 꽤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박민우 교수님.”

“안녕하세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직원이 나와 민우를 맞았다. 그는 민우를 대강당으로 안내했다.

강당 안으로 들어가니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얼굴만 봐도 알 정도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민우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국무총리도, 장관도 아닌 서지훈 총장이 앉아 있는 자리였다. 아마 대통령이 왔다고 해도 순서에는 변함이 없었을 거다.

“선생님.”

“어, 왔냐?”

“지음사엔 오랜만이시죠? 그렇게나 오고 싶어하셨는데.”

민우가 은근히 놀리며 묻자 서지훈 총장이 피식 웃었다.

“그러게 말이다. 타치카와 교수가 상을 못 받았다면 올 일도 없었겠지.”

“이사님하고 같이 계실 줄 알았는데 일찍 내려오셨네요.”

“워낙 바쁜 사람이라서. 아까 같이 밥 먹었다.”

그때 강당으로 익숙한 사람들이 보였다. 이수빈을 선두로 휴머니티 멤버들이 하나둘 입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 프랑스에서 온 미셸과 셀린느의 모습도 보였다.

거기에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세드릭까지. 민우의 동료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그들도 연말이라 상당히 바쁜 스케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초대를 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의미 있는 행사에 초대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대미를 장식한 것은 랑느 박사였다.

그는 이 기념비적인 일에 빠질 수 없다며 한국행을 자처했다.

「박사님! 오랜만이에요.」

「미셸. 프랑스를 떠나더니 아주 얼굴이 폈군그래?」

「그래도 가끔은 박사님 잔소리가 그립더라고요.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습니다.」

「뭐야?」

한국어에 능숙한 셀린느가 랑느 박사에게 휴머니티 멤버들을 소개해 주었다. 어색함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들은 민우를 중심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특히 국적이 같은 미셸과 셀린느, 그리고 세드릭은 금방 가까워졌다.

민우와 서지훈 총장도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이 정도면 이사회에 삭감된 재단전입금을 요구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올해 농사 정말 잘 지어졌네요.”

“연말 지나고 신년 인사도 드릴 겸 찾아뵈어야겠어. 하지만 네가 휴직해 버려서 잘 풀리려나 모르겠네.”

“휴직계 결재해 주신 건 선생님이잖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실 거면 반려하지 그러셨어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두 사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그때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민우와 서지훈 총장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사람 시미즈 교수 아닌가?”

“맞아! 시미즈 교수다!”

“어서 가자고! 특종이야!”

민우는 깜짝 놀랐다.

진짜 시미즈 유이토 교수가 나타난 것이다.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이 재빨리 카메라를 들고 시미즈 교수를 향해 달려갔다.

덕분에 시미즈 교수와 동료로 보이는 일본인 학자 두 명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됐다.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기자들은 마치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온 유명인을 취재하는 것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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