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페서-453화 (453/500)

라이브 방송 (2)

폭풍 같은 채팅창이 잠잠해지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제야 세 사람은 오늘 준비한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었다.

김보영은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말했다.

“그때 소르본에서 촬영 마치고 박 교수님 강연 들으러 갔는데 정말 엄청났어요! 보신 분들 계시려나? 외국인들이 하나같이 일어나서 박수를 치는데 말 그대로 국뽕이! 팍! 하고 차오르더라구요. 하마터면 주모오오! 하고 소리지를 뻔했다니까요?”

과장하는 몸짓도 귀엽다. 이러니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팬들은 귀여운 척하지 말라고 정색하며 채팅창을 도배한다. 팬심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드라마를 찍고 있는 건 우리인데 민우 형은 현실에서 드라마를 찍더라고. 그때 그 장면은 현장에서 직접 봐야 합니다 여러분. 영상으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요.”

“그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어…… 뭐 늘상 있는 일이니까 딱히 어떻다거나 하진 않았죠.”

“와 이 자신감! 너무 멋있어요!”

“적당히 하십쇼. 그러다 형수님이 또 슈퍼챗 쏘실라.”

“앗. 죄송합니다. 이수빈 교수님! 이건 그냥 방송이에요! 하지만 슈퍼챗은 사양하지 않을게요!”

김보영은 슈퍼챗 등 무투브로 발생하는 수익을 전액 기부하고 있어 사양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도 그녀를 비난하지 않았다.

아까 슈퍼챗을 날린 ‘윤아엄마’의 정체는 이수빈으로 확인되었다.

민우는 팬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방송 중 직접 전화를 걸었고 그녀임을 확인했다.

오히려 팬들은 더 좋아했다. 실황이니까.

다음엔 이수빈도 같이 나와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윤아엄마’는 다시 한번 슈퍼챗을 쏴서 다음에 꼭 같이 출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있었잖아요? 카페에서 있었던 일.”

“아, 그건 좀.”

민우는 아까 ‘윤아엄마’의 슈퍼챗 때문에 잠시 끊긴 이야기를 다시 언급했다. 김보영은 난처해했지만, 이미 이야기보따리는 풀렸다.

“촬영 잠시 멈추고 쉬는 시간에 대학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갔거든요. 거기서 제가 통역을 했었는데요. 저는 보영 씨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처음 알았어요. 정확히 세보지는 않았는데 굉장히 많은 남자들이 말을 걸어오더라고요. 꽃도 받으셨었죠?”

민우가 은근히 웃으며 말하자 채팅창이 또다시 폭발했다.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만우절: 아니다 이 악마야!

신촌남: 프랑스의 미적 기준은 신뢰할 수 없음ㅋ

프로폴리스: 문화 대국이라는 것도 옛말이네

daisy: 그러니까 식민지 만들고 문화재나 약탈하고 다니지 ㅉㅉㅉㅉ

다소 수위가 높아지는 것 같아, 민우는 채팅창에서 신경을 끄고 말을 이었다.

“그때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윤이는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거든요.”

“아니 형 왜 갑자기 저한테 불똥이 튀는데요?”

“사실을 이야기한 건데?”

그때 댓글을 유심히 보고 있던 허윤이 그중 하나를 읽었다.

“다른 나라에서 와서 예뻐 보이는 거다, 이런 의견이 있는데요. 이분 정말 배우신 분입니다. 인정해요. 원래 외국인들이 좀 더 예뻐 보이는 게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워낙 서구적인 외모라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뻔해 보일 수도 있죠. 이해합니다.”

“그건 칭찬이 아니라 자학 아냐?”

“아하하하하!”

김보영은 웃음을 주체하지 못해 방송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때 실시간 스트리밍 시청자가 1만을 돌파했다는 알람이 떴다. 정신없이 웃던 김보영이 깜짝 놀랐다.

“우와! 시청자 1만 돌파했어요 여러분! 와, 처음이네요. 정말 고마워요! 애정합니다앙!”

“리액션 없습니까?”

“리액션…… 요?”

“방송하는 분들 목표치 달성하면 뭐 하잖아요. 보영 씨 방송에는 그런 거 없나요?”

민우의 질문에 당황한 김보영이 뭔가를 결심한 듯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리고 팔을 들었다. 뭔가 이상한 춤이라도 추려는 듯이.

“그럼 가볍게 춤이나 춰볼까요?”

“아니. 그만. 안 돼! 그러지 마! 시청자분들 눈 건강도 생각해야지!”

“시청자분들도 좋아하실걸?”

그러자 또다시 채팅창이 폭발했다. 시신경은 한번 손상되면 돌이킬 수 없다며 제발 하지 말아 달라고 도배되다시피 했다.

심지어는 구독 취소를 하겠다는 귀여운 협박까지 올라왔다.

시무룩해진 김보영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민우는 그제야 이 채널의 특징을 파악했다. 팬들의 대다수는 츤데레인 것이 분명했다.

“근데 보영 씨는 천만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시청자 1만 찍었다고 되게 좋아하시네요. 숫자가 완전히 다른데 의외네.”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죠. 영화는 모든 사람들이 같이 만드는 거지만 이 방송은 저 혼자 만드는 거잖아요. 성취감의 차원이 달라요.”

“혼자요? 아, 그러니까 저와 윤이는 들러리다?”

“아뇨! 그런 게 아니구…….”

어느새 민우도 김보영을 놀리고 있었다. 민우는 시간 날 때 김보영의 채널에 있는 동영상을 정주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김보영이 박수를 한 번 치며 화제를 돌렸다.

“자! 여러분. 잠시 소란이 있었어요. 이젠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보통 5천 명 정도 봐주시는데, 두 배 넘는 시청자분들이 계신 건 아마 박 교수님 팬분들도 많이 들어오셨다는 건데요.”

“저보단 윤이 팬이겠죠.”

“아…… 그냥 그렇다고 해주시면 돼요! 진행이 안 되잖아요.”

“게스트가 진행을 신경 쓸 필욘 없잖아요.”

“앗. 그러네요.”

채팅창이 ‘ㅋ’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민우는 방송에 완전히 재미를 들였다. 민우의 예능감을 칭찬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이번에 외국에서 재미있는 일은 없으셨나요? 교수님은 따로 스케줄도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음, 당연히 있었죠.”

민우는 이제야 이 채널에 출연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레아의 전화를 받았을 때 결심한 일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프랑스 외곽에 있는 시골 마을에서 어떤 수학자를 만났습니다. ‘미스터 X’라는 펜네임을 쓰는 사람인데요.”

“미스터 X요? 뭔가 DC 히어로 느낌인데요.”

“아, 본명은 세드릭입니다. 수학자죠. 아마 수학하시는 분들은 한 번 정도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민우는 채팅창을 주목했다.

고추참치: 누구?

킹프라운: 문송합니다

어렵지않아요: 사실 이번에 새로 추가된 DC 히어로임 ㅎㅎ 영화 이야기하시는 거

neo: ㄹㅇ?????

모래요정: 아니 왜 스포를 하냐구!!

소문이 와전되기 전에 민우는 사실을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이야기 아닙니다. 실존 인물 이야기에요. 공식 보도자료로 내보낼 만한 일이지만 이곳에서 이야기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와…… 감사해요. 그런데 그분하곤 어떻게 만나셨어요?”

“사실 이번 유럽행엔 또 다른 목적이 있었어요.”

민우는 이번 해외 순방에서 인재를 스카웃하기 위해 했던 일을 나열했다. 그리고 세드릭을 만난 것과, 그를 명인대 수학과 특강에 초청했다고도 말했다.

“우와아! 엄청난 일을 해내셨네요! 내색하지 않으셔서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아, 그때는 확정된 일이 아니라서 말 안 했어요. 그리고 말할 이유도 별로 없고요. 우리 대학 일이니까.”

“형의 유일한 문제는, 형이 하는 일이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걸 세상에서 형만 모른다는 겁니다.”

민우는 그저 웃기만 했다.

매스컴을 거치지 않고 김보영의 개인 방송에서 그 사실을 밝힌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세드릭을 배려하고 싶어서였다.

물론 그는 명인대 측에서 매스컴과 접촉하는 것에 딱히 반대하진 않았다. 자신은 언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알린다면 세드릭이 자신을 이용하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아직 그를 포기하지 않은 민우로서는 피해야 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방송에 한 번 나오겠다는 김보영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도 있었다.

기왕 나온 김에 이슈를 터트려주면 서로 좋지 않을까.

이 방송을 본 기자들은 민우가 푼 썰로 기사를 쓰기 위해 사실 확인 요청을 해올 것이고, 그때 간단히 응해주면 그만이었다.

먼저 언론에 사실을 알리는 것과 뒤늦게 확인해 주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

“세드릭 씨는 주류 학계에서 은거한 사람입니다. 어떤 이유로 지금은 개인 연구만 하고 계신데요. 한때 프랑스 수학계의 미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만큼, 어렵게 준비한 이번 강연에서 우리 명인대 학생들이 큰 영감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우는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대한민국은 학력이 중시되는 사회다. 명문대에 대한 동경과 민우의 출중한 능력이 시너지를 일으켜 시청자들이 감상을 쏟아냈다.

지나가던석사: 킹민우 당신은 도덕책……

반반무많이: 다음 생엔 꼭 명인대 간다

wax: 다음 생에도 힘듬 ㅋㅋㅋ

지중해블루: 그럼 다다음 생애라도……

열반: 윤회의 사슬을 끊어야 갈 수 있음

10cm: 명인대 가기 졸라 쉬움 그냥 버스타면 댐 ㅋㅋㅋ

마치 홀린 사람처럼 민우를 빤히 바라보던 김보영이 한마디 했다.

“저는 그 세드릭이라는 분이 왜 박 교수님의 요청에 응했는지 알 것 같아요.”

“왜요?”

“인간다운 매력이 넘치는 분이니까요. 사람답다는 게 절로 떠오르는 분이라고 할까…… 박 교수님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런 이야기 자주 듣지 않으시나요?”

그때 슈퍼챗이 터졌다.

금액이 커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윤아엄마 ₩100,000

사골국 끓여놓을게

유부남들이 제일 무서워한다는 사골국이 등장했다. 민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동영상 썸네일 각이 날카롭게 섰다.

* * *

그로부터 일주일 후, 지음사 프레스룸에서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미 명인대에서 은거 천재인 세드릭을 초청했다는 사실이 기사화되었다. 명인대가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에서 기자회견이 열린 것이다.

물론 오늘은 그와는 전혀 관계없는, 리뉴얼된 ‘박민우상’에 대한 설명회였다.

“쓸데없는 질문은 사전에 차단할 거지만 그래도 도를 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알아서 대응해줘요.”

“알겠습니다.”

이사실에서 송승현과 이야기를 나누던 민우는 함께 프레스룸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등장하자 일순 조용해졌다.

기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외신 기자들도 참석했기 때문에 프레스룸은 혼잡스러웠고,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거기엔 일본에서 온 특파원도 있었다.

애초에 일본 매스컴에서는 ‘박민우상’을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했다. 노벨상 수상자 수의 차이를 만회하기 위한 편법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니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빠질 수 없었을 것이다.

사전에 송승현 이사는 민우에게 일본 국적의 기자들을 막을 건지 물어봤으나, 민우는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더 많이 초대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그만큼 민우는 이번 ‘박민우상’ 리뉴얼에 대단한 자신감이 있었다.

이름이 걸린 일이었으니까.

“좀 늦는다더니 일찍 오셨네.”

“그러게요.”

단상엔 센트럴 북스의 사장, 제임스가 미리 자리하고 있었다.

‘박민우상’은 센트럴 북스와 함께 기획한 글로벌 프로젝트다. 제임스 사장은 바쁜 와중에도 이 중요한 행사를 놓칠 수 없다며 먼 길을 자처했다.

「오랜만입니다! 프로페서.」

「잘 지내셨죠?」

「심심해서 혼났지요. 요즘은 딱히 재미있는 일거리가 없어서 말이죠.」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는 제임스 사장. 그렇게 세 사람은 단상에 앉았고 곧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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