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페서-452화 (452/500)

라이브 방송 (1)

교수 초빙에 관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민우는 한숨을 돌릴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일복이 많았다.

회의나 학회 출석, 강의는 이제 소소한 일상에 속하게 되었다.

때로는 여당 회합에 참석했고, 때로는 기자들 앞에 나서야 했으며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설명할 기회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 가을이 찾아왔고, 2학기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이번 학기도 이제 절반쯤 왔구나…… 유난히 힘드네. 일이 많아서 그런가?’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마지막 남은 학생이 시험지를 내고 나가며 인사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교수님.”

“그래요. 수고했어요.”

그나마 이번엔 학부 전공 강의를 하나만 맡아서 다행이었다.

강의실을 정리한 민우는 시험지를 잘 챙긴 뒤 연구실로 올라왔다. 제자 차민재는 구석에 앉아 열심히 석사 논문에 몰두하고 있었다.

잘하고 있나 한번 봐주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차민재는 학부생이 아니다. 이제는 스스로 진리를 탐구하는 연구자였다. 도움이 필요하다며 찾아왔을 때 손을 내밀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다녀오셨어요?”

“오냐.”

“이번에도 이상한 문제 내셨습니까?”

차민재가 은근히 놀리듯 말했다. 지난 학기 교양과목에서 학생들의 원성을 살 정도로 엉뚱한 문제를 낸 것을 말하는 듯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덕분에 생각나 버렸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 문제를 내고 학생들의 생각을 엿봄으로써 도움을 받은 일이 분명 있었으니까.

“모험은 한 번으로 끝내야지. 그냥 책에서 냈다.”

“저번 주인가 후배들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다들 무서워하더라고요. 이번엔 또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모르겠다면서.”

“엄살들은. 다들 잘 쓰더만.”

피식 웃은 민우는 자리로 돌아갔다. 차민재가 일어나며 말했다.

“저 도서관 갔다 올 건데 필요한 거 있으세요?”

“아니. 괜찮아.”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혹시라도 필요한 거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꾸벅 인사한 차민재가 연구실을 나섰다.

홀로 남은 민우는 봉투에서 답안지를 꺼내 펜을 들고 채점에 들어갔다.

일부 인문대 교수들은 조교나 연구원들에게 채점을 맡기지만, 민우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객관식이나 단답형 문제였다면 가능할지 몰라도 국문과의 답안은 대부분 소논문 형식이다. 그래서 교수가 직접 채점을 해야 한다.

게다가 채점을 맡기게 되면 안팎으로 시끄러워질 가능성이 있다. 요즘은 SNS가 발달한 시대라서, 무엇을 하든 조심해야 하는 게 있다.

우우웅!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민우는 웬만해선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발신인 이름을 확인하곤 전화기를 들었다. 비서 레아의 전화였다.

“네, 레아 씨.”

―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잠깐 통화 괜찮으실까요?

“말씀하세요.”

일반적인 업무는 메신저나 메일로 보고를 하곤 하는데 전화를 건 것을 보니 뭔가 큰일이 있는 듯했다. 민우는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 아무래도 세드릭 씨의 초빙 소식이 매스컴에 알려진 것 같습니다. 매니저님께 인터뷰를 요청하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어요.

“그래요?”

레아는 민우 대신 매스컴 대응을 맡고 있다. 친분이 있는 박윤지 기자도 웬만해서는 레아를 통해서 미팅 일정을 잡곤 한다.

그런데 벌써 세드릭의 소식이 언론에 퍼진 모양이다.

이상할 건 없는 일이었다.

비밀도 아니었고, 이미 수학과 교수들이나 처장급 교수들도 모두 알고 있는 일이니 언론에 소문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래도 인터뷰는 좀 곤란한데. 윤지 씨한테도 연락 왔죠?”

― 네. 제일 먼저 왔습니다. 이번에도 꼭 먼저 뵙고 싶다고 하네요.

“음.”

민우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세드릭과는 이미 입출국 일정이나 한국에서의 스케줄이 모두 잡혔다. 거기에 언론 대응 방침까지 논의가 끝났다.

세드릭은 매스컴과 절대 인터뷰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했으나, 민우나 기타 다른 관계자들이 언론과 접촉하는 것은 막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좀 나서도 상관없겠지? 하지만 이번엔 좀 방식을 다르게 해야겠어. 인터뷰만 하는 건 왠지 재미없으니까.’

재미있는 상상을 떠올리자 절로 미소가 걸렸다. 민우가 말했다.

“인터뷰는 안 한다고 딱 잘라 주세요. 박윤지 기자님께도 이번에는 좀 어려울 것 같다고 하시고요. 전 언론사 공통입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아무와도 인터뷰하지 않을 거예요.”

― 알겠습니다. 그럼 예외 없이 처리하겠습니다.

“잘 부탁해요.”

전화를 끊은 민우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다시 핸드폰을 쥐었다. 그리고 전화번호부에서 이름을 검색했다.

‘김보영’이라는 이름에서 민우의 손가락이 멈췄다.

민우는 번호를 터치해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핸드폰 너머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뜻밖의 전화에 놀랐다면서.

* * *

며칠 후, 민우는 전달받은 주소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바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배우 김보영이 개인 사무실로 쓰는 오피스텔이었다.

“왜 그렇게 긴장하세요?”

운전대를 잡은 레아가 영악하게 물었다. 놀리는 건지 질문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글쎄요. 와이프한테 허락을 받긴 했는데 뭔가 찝찝하네요.”

“아침은 제대로 드시고 나오신 거예요?”

“뭐 그런 걸로 화풀이할 사람은 아니라서요.”

“근데 오늘은 허윤 씨도 같이 출연하는 거 아니었나요? 둘이 촬영하는 것도 아니고, 배우라면 현장에 매니저도 있을 텐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살다 보면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긴다. 지금처럼. 민우는 허윤과 같이 출연하는 거라 문제가 없다고 말했지만, 이수빈은 질투했다.

그녀가 인기 여배우고, 또 아름다워서만은 아니었다.

아마도 김보영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포지션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보영은 드라마 <프로페서>에서 이수빈의 포지션을 맡은 사람이다. 혹시라도 그 부분에서 민우가 감정이입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민우는 그럴 일 없다며 안심시켰고, 이수빈은 라이브 방송을 끝까지 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래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매니저님을 보면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말을 아끼겠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 수빈 씨를 배려해주시는 거잖아요. 이런 남자가 세상에 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나는 분도 좋은 분이잖아요?”

슬쩍 던진 민우의 말에 레아가 깜짝 놀랐다. 무수히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제가 매니저님께 남자친구를 소개한 적이 있던가요?”

“하하하. 아뇨. 그냥 왠지 레아 씨라면 좋은 사람을 만날 거 같아서요. 뭐든 똑 부러지게 잘하시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뭔가 사연이 있는 느낌이었지만, 민우는 더는 파고들지 않았다.

곧 차가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레아가 차를 세우는 사이, 민우는 차에서 내려 김보영의 집으로 올라갔다.

“앗! 교수님! 어서 오세요!”

김보영이 호들갑을 떨며 맞았다. 프랑스에 체류할 때 민우를 초대하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실물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허윤은 미리 도착해 있었다. 의자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었다.

“형수님도 오실 줄 알았는데 혼자 오셨네.”

“안 그래도 방송 지켜본다고 하더라.”

“와우! 이따가 슈퍼챗 좀 쏘라고 하세요. 얼마나 통 크신지 좀 봐야겠다.”

설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민우는 다소 긴장하며 자리에 앉았다.

앞에는 카메라가 즐비해 있었다. 조명도 따로 갖춰져 있어서 작은 스튜디오 느낌이 들었다.

“혹시 카메라 돌아가고 있나요?”

“네! 켠 지 좀 됐어요.”

이미 한쪽 모니터링 화면에는 자신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채팅창을 따로 표시한 디스플레이도 있었지만 경황이 없어 미처 살펴보지 못했다.

“자! 여러분.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분이 오셨습니다. 박민우 교수님. 인사하시죠! 짝짝짝짝!”

“안녕하세요.”

사전에 준비하며 서로 말을 맞출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완전 라이브였다. 민우는 촬영 장비가 늘어선 곳 앞에 앉아 어색하게 웃었다.

김보영이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교수님! 이쪽은 우리 모니터링 영상이고, 이쪽은 댓글이에요.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으니 번갈아 봐주시면 돼요.”

“아, 예.”

김보영도 그렇고 허윤도 평소보다 텐션이 높아서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이게 무투브의 세계구나.

그래도 민우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을 읽으며 흐름을 따라가려 노력했다.

“자! 여러분. 오늘 박 교수님을 모신 건 저번에도 말씀드렸죠? 우리가 이번에 드라마 촬영 때문에 프랑스하고 영국 다녀왔는데, 거기에서 있었던 일을 좀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김보영이 그 말을 하자 댓글창이 폭발했다.

바람의요정: 그때부터 윤이랑 1일이었다고?

햄스터펀치: 2222222222222

몽이: 2222222222222222222

주닐장: 유럽에서 뭔 일이 있었길래 교수까지 불러 ㅋㅋㅋㅋㅋ

Wineade: 박민우 교수는 주례로 나오신 건가요?

연금술사: 주롘ㅋ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이 김보영과 허윤을 이어주려고 하는 듯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톱급 배우다. 이런 일은 으레 있는 일이다.

“여러분! 자자, 다들 진정하시고. 아쉽지만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저랑 윤이는 친남매나 다름없으니까!”

그때 민우가 슬쩍 눈치를 주었다. 김보영이 잠시 머뭇거리며 물었다.

“왜요?”

“아니,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괜히 박제되니까 그런 말씀은 안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잖아요.”

“아…….”

“형!”

믿었던 민우가 배신해서인지 두 톱스타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청자들이 기다리고 있던 한마디이기도 했다.

gade: 아모른직다

파밀: 박교수 말이 맞다 남녀 사이엔 무한대에 가까운 가능성이 있다

이도령: 빅민우 킹픽쳐 ㅋㅋㅋ

유저 반응이 바로바로 오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강의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

민우는 어느새 긴장이 풀렸음을 느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여기에 왜 나온 거죠?”

“어…… 아! 유럽에서 있었던 일을 가볍게 이야기해 볼 거예요. 얼마 전에 드라마 촬영 나갔었잖아요?”

“그렇다면 소르본에서 갔던 카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죠.”

민우의 한마디에 김보영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가렸다. 소르본에서 갔던 카페라면, 쉴 새 없이 데이트 신청을 받았던 바로 그때였으니까.

그런데 그때 슈퍼챗이 떴다.

윤아엄마 ₩10,000

카메라 좀 왼쪽으로 더 돌려주세요 박 교수님 잘 안 나오네요

“아…… 윤아엄마 님! 후원 감사합니다. 카메라가 잘 안 나오나요? 잠시만요.”

김보영이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조정이 끝나고 김보영이 자리에 앉자 슈퍼챗이 한 번 더 터졌다.

윤아엄마 ₩10,000

박 교수님하고 보영 님 두 분 너무 가까이 앉아 계신 거 같아서 답답하네요

“아~ 윤아엄마 님. 또 후원을…… 응? 너무 가깝나요?”

그때 옆에 있던 허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미심쩍다는 표정이다.

“저분 혹시 형수님 아닙니까? 형수님도 윤아 엄마잖아요.”

“에이. 우연이겠지.”

“우연이라고 하기엔 좀…….”

순간 라이브를 지켜보고 있겠다는 이수빈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방 안이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반대로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스크롤 올라가는 속도를 눈으로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시청자들은 부부동반 방송은 어떠냐며 이수빈의 출연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혹은 ‘윤아엄마’가 진짜 이수빈인지 확인해 달라는 슈퍼챗도 연이어 터졌다.

‘라이브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민우는 대학 강의실이 얼마나 평화로운 곳인지 새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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