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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서-416화 (416/500)

다시 일본으로 (2)

며칠 후, 민우는 총장실 호출을 받고 바로 움직였다.

8월도 이제 중순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2학기 개강을 앞두고 학교 전체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민우는 비서에게 눈인사하고 바로 총장실의 문을 열었다.

서지훈 교수는 책상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피곤하신가 봐요.”

“왔어? 잠깐 졸았네. 요즘 잠을 잘 못 자서 말이다.”

“아직도 신혼이실 리는 없고.”

“쓰는 원고가 좀 있거든.”

“갑자기 웬 원고요?”

“내 와이프가 뭐 하는 사람인지 잘 알잖냐. 쓰라면 써야지 별수 있나?”

민우는 피식 웃었다.

서지훈 총장의 와이프는 지음사의 송승현 이사다. 두 사람은 정식으로 교제하기 전에도 같이 단행본 작업을 자주 했었다.

“오랜만에 책 내시나 봐요. 이론서인가요?”

“이론서라고 하기엔 부끄럽고. 거의 논문집에 가깝지.”

“총장 임기 좀 차고 하시면 에세이 내자고 하실 거 같은데.”

점점 어두워지는 서지훈 총장의 표정을 보니 벌써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겨 앉았다.

서지훈 총장이 물었다.

“듣자 하니 휴가 냈다던데. 여행 가냐?”

“아뇨. 바쁜데 여행은 못 가죠. 수빈이도 개강 준비하느라 정신없고. 그, 센트럴 북스의 제임스 사장 아시죠?”

“알지.”

“제임스 사장이 일본으로 좀 넘어오라고 해서요. 2박 3일 일정으로 빨리 다녀오려고 합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나가봐야 알 것 같아요.”

“흐음…….”

서지훈 총장이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시기가 공교로웠다. 시간강사 처우 개선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자마자 일본으로 가는 것은 주변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현재 파격적인 정책으로 대한민국 모든 사립대의 주목을 받는 상황이었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압력을 우려하고 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서지훈 총장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우리 대학과 관련이 있는 일이려나?”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그랬다면 아마 제임스 사장이 직접 한국으로 오지 않았을까 해요. 우리 대학과 관련이 있는 일이라면 선생님하고도 미팅을 해야 하니까요.”

“그건 그렇군.”

“나쁜 일은 아닐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김강현 의원은 만나봤어?”

“아직요. 일본 다녀와서 바로 만날 것 같습니다.”

다행히 김강현 의원은 민우의 연락을 반갑게 받았다. 만나자는 말에도 흔쾌히 응했다. 그는 여당 중진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지만, 민우를 위해 시간을 내겠다 장담했다.

“지금은 예민한 상황이니 너무 눈에 띄는 일은 하지 마라. 뭐, 네가 알아서 잘하겠다만.”

“걱정하지 마세요. 가능한 우리 학교 이야기는 안 하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고.”

“넵.”

“아 참, 나가는 김에 시미즈 선생하고도 만나나?”

시미즈 유이토 교수는 동경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노교수다. 옛날에 민우가 일본에 잠깐 머물 때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민우는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는 좀 어려울 거 같습니다. 일정이 좀 촉박할 거 같고, 무엇보다도 제가 그쪽 학회 일정을 모두 취소해 버려서 시미즈 선생님도 난처한 입장일 거예요.”

“너무 감정적으로 나선 거 아냐? 그깟 기사가 뭐 대수라고 취소까지 해.”

“말도 안 되는 걸로 헛소리하고 있는데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잖아요. 참고 또 참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서지훈 교수가 피식 웃었다. 민우가 자신을 닮았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만큼은 많이 달랐다.

그렇다고 그걸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패기 넘치는 게 때로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으니까.

“알았다. 출국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어서 가봐.”

“예. 다녀와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민우는 총장실을 나섰다.

그리고 다음 날, 민우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레아와 함께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 *

해가 저물 무렵 비행기가 활주로에 안착했다.

특별한 문제 없이 출국 수속을 마친 민우가 다시 레아와 합류했다.

“제임스 사장님이 직접 마중 나오십니까?”

“예. 같이 이동해서 바로 식사하자고 했습니다. 가실까요?”

두 사람은 게이트를 나섰다.

찰칵! 찰칵!

그런데 갑자기 플래시가 터졌다. 민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일본 기자들을 마주한 것이다.

「박민우 씨다!」

「어서 가자구!」

소란스러운 일본어가 귀에 때려 박혔다.

그들은 마치 민우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게이트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민우는 혀를 찼고, 레아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비밀로 하긴 했는데 어디서 정보가 샌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아예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잖아요. 제가 뭐 국정원 직원도 아니고. 하여간 어느 나라든 기자들은 귀신같다니까.”

“일단 막아볼게요.”

“아닙니다. 그냥 두세요.”

레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민우는 캐리어를 끌고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기자들이 민우를 둘러쌌다.

그들의 저널리즘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처럼, 그들은 양해도 없이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박민우 씨! 일본에서의 학회 일정은 모두 취소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일로 입국하신 겁니까?」

한 일본인 기자가 항의하듯 물었다. 민우는 씨익 웃으며 답했다.

“저는 일본에 오면 안 되는 겁니까? 마치 국제 수배령이 내려진 범죄자 취급을 하시는군요. 어디에서 나온 기자입니까?”

민우는 한국어로 답했다.

그러자 기자들이 당황했다. 지금까지 민우는 일본 언론을 대할 때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통역을 대동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어를 배운 사람이 있는지, 구석에 있던 기자가 방금 민우가 한 말을 일본어로 통역해 주었다.

기자들이 경악하는 한편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민우는 뒷짐을 진 채로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몇몇 일본 기자들의 눈에 오기가 서렸다.

「일각에서는 ‘박민우 문학상’의 전문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요. 혹자는 열등감의 표시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처구니없는 질문이 나왔지만 민우는 쿨하게 대꾸했다.

“지금 열등감을 표현하는 건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 정확히는 여기 모인 기자분들인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이번에도 통역을 전해 들은 일본인 기자들이 탄성을 흘렸다. 공식 인터뷰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발언하는 한국인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원래 일본이라는 나라가 그렇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법이었으니까.

“인터뷰를 하려거든 한국어로 해주십시오.”

민우가 당당히 요구했다.

그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기자가 나섰다.

“하지만 박 교수께선 지금까지 일본어로 인터뷰를 해오시지 않았습니까? 모국어 수준으로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말씀 잘하셨네요. 맞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랬죠. 하지만 지금 당신들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인터뷰에선 배려가 필요한 법입니다. 여기에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기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배려요?”

그렇게 대꾸한 민우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당신들은 개인적인 일정으로 입국한 사람에게 사전에 양해도 없이 플래시를 터트리고 마이크를 들이밀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일본인들이 말하는 배려라는 것입니까? 재미있네요.”

“…….”

질문을 던진 기자가 감히 답을 하지 못했다. 통역을 전해 들은 다른 기자들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소속사도 밝히지 못하는 기자들이 무슨 질문을 합니까? 뭐 살다 보면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부끄러움이 많아질 수도 있겠죠. 이해합니다. 그런 분들은 이메일로 질문을 보내십시오.”

곁에 있던 레아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이런 보스를 모시게 된 것이 영광이라는 듯이.

그녀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매니저님. 사장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이만 가시는 게 어떨까요?”

“아, 참. 그렇지. 자, 이제 다들 물러나세요.”

마치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기자들의 무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민우와 레아는 그 사이를 여유롭게 걸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따라붙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의 마이크에 남은 것은 생산적인 인터뷰가 아닌, 짙은 패배감이었으니까.

그래서 레아는 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너무 과격하게 인터뷰하신 건 아닐까요?”

“정상적인 한국인이라면 다 그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건 져도 한일전은 지면 안 된다, 이게 한국인의 사명이거든요.”

“과거 역사를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레아 씨 남자친구도 그렇지 않나요?”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연애 이야기에 레아의 볼이 빨개졌다. 늘 잔잔하기만 하던 그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였다.

잠시 멈춰선 그녀는 민우에게 남자친구에 관해 이야기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이번에도 낚이면 안 된다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공항 라운지를 가로질러 가는 중, 민우는 드디어 제임스와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 젊은 직원을 대동하고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그쪽으로 다가간 민우는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이제 제임스 씨를 만나려면 비행기를 타야 하는 신세가 됐군요.」

「하하하! 프로페서. 너무 서운해하지 마시길.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전화로 좀 말씀해 주시면 좋았을 텐데요.」

「그러면 재미가 없죠. 또 민우 씨가 거절할까 봐 좀 걱정이 되기도 했고.」

거절이라니?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냐고 물을 타이밍에 제임스가 손짓했다.

바로 옆에 있던 직원이 민우의 짐을 받아 앞장섰다. 문답을 잠시 뒤로 미루고 두 사람은 공항 밖에 세워진 리무진에 몸을 실었다.

민우와 제임스는 뒷자리에 편히 앉았다.

「그나저나 게이트에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기자들이 쫙 깔려 있던데 말이죠.」

제임스가 물었고, 민우가 답했다.

「아, 별일 아닙니다. 전에 일본 학회 일정을 모두 취소한 것 때문인지 왜 왔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날파리들이 꼬인 거군요.」

「그나저나 요즘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전에 주예린 작가하고는 계약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근사한 일들을 하고 있죠. 하지만 예전 같진 못해요. 회사 내부의 일도 신경 써야 할 게 많고 하니까.」

「일본에도 비즈니스 때문에 오신 겁니까?」

질문을 받은 제임스는 잠시 운전석에 앉은 직원을 살펴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아직 본론을 꺼낼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을 아낄수록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개인적인 일이라고 할까요? 알다시피 저는 예전부터 학회에도 많이 기웃거리고 했었지요. ‘소르본의 밤’ 때 만난 것, 기억하시죠?」

「물론이죠. 그땐 얼마나 놀랐었는지. 스토킹당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하하하! 민우 씨의 활약 덕분에 <인문과학총서>도 기념비적인 성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만족하면 곤란합니다.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뛰어다녀야 하지요.」

「압박이 심한가 보네요.」

「압박이라뇨? 제가 즐거워서 하는 일입니다. 감히 나에게 압박을? 그럼 바로 그날로 사표 던지죠.」

여전히 제임스는 출판 관련 일을 하는 듯했다. 그는 소설 등의 문학작품에도 흥미를 보였지만, 특히 학술 분야의 서적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근황을 나누는 사이 차가 도심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빌딩의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가자 제임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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