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페서-413화 (413/500)

새로운 정책 (2)

질문을 던진 기자와 눈이 마주쳤다.

제법 관록이 있어 보이는 중년 기자였다. 하긴, 이런 예리한 질문을 초년생 기자가 던질 수 있을 리가 없지.

민우는 잠시 말을 골랐다.

평소라면 바로 대답했겠지만, 이번 질문은 쉽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즉흥적으로 나온 것 같지만 살펴보면 상당히 정교한 질문이었다.

기자들은 이슈를 원한다. 속된 말로 ‘어그로’를 끌어야 하는 직업이 바로 현대의 기자라는 직업이다.

그 와중에 가장 쉽게 어그로를 끌 수 있는 것은 바로 정치와 접목시키는 것이다.

지금 질문을 던진 기자는 명인대의 정책을 정부의 무능력으로 곡해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거기에 말려들 민우가 아니었다.

“하하하. 방금 하신 질문은 좀 위험한 거 같은데요. 답변을 신중하게 해야겠네요.”

민우가 여유를 부리자 우호적인 기자들은 웃으며 호응해 주었지만, 질문을 던진 기자는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단단히 준비하고 온 듯했다.

“질문하신 것처럼 그런 의도가 있는 건 아니고요. 물론 전혀 불만이 없다고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정부 정책도 사람이 정하는 것인데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차차 다듬어나가면 되겠죠.”

질문을 던진 기자는 민우의 대답을 적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는 거다.

“무엇보다도 이번 정책은 명인대의 경쟁력을 높이고 학계를 건강한 방향으로 성장시키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 정부 정책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겠죠.”

“그 말씀은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어조로도 들리는데요.”

“섣부른 판단입니다. 우리 정책이 호응을 얻을지 비판을 받을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일이니까요. 저는 대학에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한 정부 정책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책을 악용한 학계에 있지 않을까요? 요컨대 이건 특정 단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겁니다.”

그제야 질문을 던진 기자가 입을 씰룩이더니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민우의 역설에 더 이상 민감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민우는 그 기자의 앞에 놓인 명판을 확인한 뒤 머릿속에 기억했다.

‘청산일보의 황기주 기자…… 어떤 기사를 내보낼지 모니터링 해야겠어.’

필요하다면 이 자리에 참석한 박윤지 기자에게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먼저 대응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이번 정책이 시간강사들을 탄압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인데, 방법에 비판이 있을지언정 그 근본을 공격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때 박윤지 기자가 손을 들었다.

“경한신문의 박윤지입니다. 교수님의 브리핑 잘 들었구요. 예전부터 시간강사 처우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교육과 연구를 병행하며 힘들게 생활했던 강사들에게 한 줄기 빛처럼 느껴지는 정책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든든한 아군답게 박윤지 기자는 민우와 새로운 정책을 고평가했다.

민우는 그 질문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과거에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떤 강사의 이야기를 기사로 실은 적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입장에서 이번 명인대의 정책은 반가웠을 것이다.

두 눈을 반짝이며 박윤지 기자가 이어 말했다.

“지금 명인대엔 임용계약을 체결한 강사가 수백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의를 늘리고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이 맞습니다. 당분간은 마이너스가 좀 크죠.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학 재단의 인식이 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재단은 지금까지 교육 사업을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제는 좀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재단 이사진과의 교감이 있었을까요?”

다른 의미로 좀 아픈 질문이었다.

이번 정책은 대학 당국에서 결정한 것이라 이사진의 의사가 반영되지는 않았다.

“이번 정책 시행으로 우리 명인대는 교육, 연구는 물론 대학 체질 개선에 앞장서는 명문 사학으로 우뚝 설 거라 자신합니다. 당연히 이사진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합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그것을 끝으로 굵직한 질문은 모두 끝났다. 이어지는 질문은 자잘한 것들이라 민우는 간단히 대답하고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다들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네. 하긴, 좀 파격적인 정책이긴 해. 우리 이사진 반응도 알 수 없는데 기자들은 더 혼란스럽겠지.’

이태하 이사장을 포함해 명인재단 이사진에서는 이번 정책에 대해 특별히 코멘트를 내놓고 있지 않았다. 관망하는 분위기였다.

민우는 자리를 정리했다.

기자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떠들거나, 작성한 기사를 노트북으로 송고하고 있었다.

프레스룸에서 나온 민우는 바로 연구실로 올라왔다.

그런데 누군가 뒤따라 연구실로 들어왔다. 다름 아닌 경한신문의 박윤지 기자였다.

“교수님.”

“이러시면 곤란한데. 질문은 기자회견 때 하셔야지요.”

민우가 씨익 웃었다. 꺼낸 말과는 달리 잘 따라왔다는 표정이었다.

서로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당연히 박윤지 기자는 그 표정을 읽어냈다.

“역시 제 예감이 맞았네요. 뭔가 2퍼센트 부족한 인터뷰였잖아요? 교수님도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 거 같았는데 기자들이 캐치하지 못한 거 같았어요.”

“프레스룸에서 떠들기는 좀 곤란한 이야기라서요. 일단 앉으시죠.”

민우는 냉장고에서 즐겨 마시던 캔커피를 꺼냈다. 그것을 받아든 박윤지 기자가 잘 마시겠다고 말했다.

“참, 서강일 교수님도 명인대에서 강의하신다면서요?”

“그 소식은 또 언제 들으셨습니까?”

“다른 언론사에 있는 선배가 말해주더라고요. 얼마 전에 휴머니티 인터뷰 땄는데 그때 이야기 나온 거 같아요.”

서강일은 최종 면접에서 채용이 결정돼 임용계약을 체결했다. 시간강사이긴 하지만 벌써부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만큼 휴머니티의 몸집이 커진 것이다.

내부에서는 슬슬 해외 사업도 전개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정연주는 열심히 항공 마일리지를 쌓으며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중이다. 마음만 먹으면 일을 진행시킬 수 있는 상황이다.

“이야. 이러다가 서 선생이 저보다 더 잘나가겠네요.”

“그러게요. 가만 보면 박 교수님 옆에는 늘 서강일 교수님이 계셨던 거 같아요. 처음 뵈었을 때도 그랬고.”

“그만큼 중요한 사람입니다. 이번 새 정책에도 도움을 주려고 명인대로 온 거고.”

“어머, 그건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정본데요?”

민우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그러지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박 기자님도 바쁘실 텐데.”

“넵.”

박윤지 기자는 간단히 메모할 수 있는 필기도구를 꺼냈다. 펜과 노트는 언제나 받아적을 수 있도록 안주머니에 넣어두고 있었다.

“아마 내일부터 기사가 나가면 여러 채널에서 반응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대학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 측에서도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확실히 그렇겠죠. 오늘 황기주 씨도 민감한 질문 했었잖아요?”

“그 양반 어떤 사람입니까?”

“여의도 마당발이었어요. 지금은 약간 한직으로 밀려나 있는데, 그쪽 인맥은 여전하죠.”

“음, 역시나.”

의심했던 상황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괜히 시비를 걸려고 질문을 던진 게 아니었다. 관계를 맺고 있는 국회의원 같은 고위공직자들에게 소스를 줬겠지.

“지금쯤 정보가 다 들어갔겠네요.”

“아직 아닐 거예요. 근사한 곳에서 반주 한잔하면서 이야기할 테니.”

“어떨 거 같습니까? 사실 제가 걱정하고 있는 건 사립대학 관련 협회가 아니라 정부 쪽이라서요.”

총장협의회든 뭐든 그들의 불만이야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국회 같은 거대한 정부 단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 박 교수님은 사립재단과 정부를 따로 보고 계시는데 사실은 한통속이죠. 국회에서는 지금까지 사립재단에 유리한 법안들만 만들어왔어요. 그 습성이 어디 가지는 않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따로 본 이유는 제가 공격을 무시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고요.”

“무시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내일 모 의원실에서 전화가 걸려올지도 모르는데요.”

“역시 그렇죠?”

박윤지 기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민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정도로 겁을 먹었다면 개선안을 내지도 않았을 거다. 오히려 오기가 생기면 생겼지 겁이 나지는 않았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거라면 일을 좀 크게 만들고 싶습니다.”

“크게라면…… 어떤 의미로요? 더 크게 공론화시킨다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얼마 전 처장급 회의가 끝나고 박두진 학장이 해준 충고가 떠올랐다.

모든 급진적인 정책의 약점은 바로 민심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전에 총장 후보자 토론회 기억나시죠?”

“당연히 기억하죠. 엄청났었죠.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데요.”

“그때 명인대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많은 호응을 보내줬습니다. 왜일까요?”

“지도층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이겠죠.”

민우가 손가락을 튕기곤 박윤지 기자를 가리켰다. 정답이라는 의미였다.

“정치인과 일반인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어요. 일반인은 부당한 것들이 바로잡히는 것을 무조건 지지합니다. 별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말이죠. 약자가 강자를 쓰러트리는 언더독 효과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하지만 정치인들은 다르죠.”

“여론을 만들겠다는 말씀이군요. 으음, 투박하지만 정석적인 방법이긴 해요.”

“그래서 박 기자님의 힘을 좀 빌리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제 힘을요?”

민우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기자회견이 열리고 난 다음 날, 언론에서는 명인대의 새로운 정책을 알리는 기사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 명인대학교의 과감한 투자…… 강사들 숨통 열리나?

― 강사법의 약점을 보완한 새로운 정책 시행 예고

― 박민우 교수, “학문후속세대에 과감한 투자 필요” 역설

아침 일찍 교무처로 출근한 민우는 컴퓨터 앞에 앉아 새로운 정책과 관련된 모든 기사를 살펴보았다.

그중 경한신문은 민우의 부탁대로 특집 기사를 실었다.

민우는 박윤지 기자를 위해 고급 정보를 추가로 흘려 경한신문 측이 더 많은 후속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제 반응을 기다리면 되겠어. 제일 먼저 서지훈 선생님께 압박이 가려나?’

문득 어제 박윤지 기자가 반쯤 농담으로 했던 말이 떠오른다. 모 의원실에서 전화가 오지 않을까 하는.

‘뭐, 선생님이라면 나보다 잘 해내시겠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더 크게 공론화를 시키는 건 자신의 아이디어였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 서지훈 총장에게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전에 서지훈 총장은 분명히 조언했다.

물어보는 사람이 아니라 결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민우는 그 말을 여전히 마음속에서 되새기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띠리리링!

내선 전화가 울렸다. 깜짝 놀란 민우가 액정에 찍힌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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