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직 임명 (1)
서지훈 교수의 총장 선거 1순위 당선은 학내외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실로 다양한 소감이 오갔다.
그중 다수의 의견을 요약하자면, 구태의연한 구세력이 물러나고 개혁의 바람을 일으킬 새로운 인물이 탄생했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 중심엔 서지훈 교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번 선거 캠프에서 책사로 활약한 민우 또한 주인공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서지훈 교수도 그렇지만, 중책에 임명될 것이 분명한 민우의 행보에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총장 임명 절차는 끝난 게 아니다.
1순위로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최종 결정은 이태하 이사장의 손에 달려 있다.
조만간 이사회가 열리고 신임 총장에 대한 의결이 진행될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웃지 못할 소식도 함께 들어왔다.
“백 총장님 명인대 부속병원에 입원하셨대요. 들으셨어요?”
“으잉? 갑자기 왜?”
서지훈 교수가 물었고, 문을 열고 소식을 전하던 민우는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민감한 시기에 굳이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서 좋을 게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과로라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선거 결과에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던데요. 선거 결과가 발표된 직후 쓰러지셔서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네요.”
민우는 그렇게 추측했다.
마음만 먹으면 이소윤을 통해서 상황을 자세히 전해 들을 수 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아무리 백성웅 총장이 악의 축이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환자의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으니까.
백성웅 총장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의사로서 이소윤이 곤란한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서지훈 교수가 피식 웃었다.
“그 자리에 김명현 그 친구도 같이 있지 않았나?”
“어떻게 아셨어요?”
“총장이 선거에 졌다는 것만으로 충격을 받을 위인은 아니거든.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겪었을 텐데 그 정도로 쓰러지면 총장 노릇 못 하지. 아마 곁에서 김 실장이 화를 돋운 게 분명해. 안 봐도 비디오지.”
“하지만 김 실장은 백 총장 사람이잖아요? 설마 그랬을까요?”
서지훈 교수는 간단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회주의자들은 충성심이란 게 없어. 그저 돌아가는 상황에 따라서 유리한 쪽으로 몸을 의탁할 뿐이지. 너도 알잖아? 그 친구 아주 모범적인 기회주의자라는 거.”
“그럼…… 이제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하겠군요.”
“글쎄. 그건 두고 봐야지. 나와는 딱히 틀어진 게 없지만 너하고는 사이가 안 좋잖아?”
민우는 내심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입으로 말하기에는 애매한 기분도 들었다. 그가 자신을 싫어하는 건지는 확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추구하는 교육관과 자신의 교육관이 맞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경쟁’이라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도 온전히 옳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고.”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일단 앉아라.”
서지훈 교수가 자리를 옮겼다. 민우와 함께 소파에 마주 앉았다.
“뭐, 간단한 변증법이라고 할까. 이론적으로 우리가 궁극적인 목표로 달려가기 위해서는 안티테제가 필요한 법이거든. 그런 관점에서 총장과 김 실장은 제 역할을 제대로 했어.”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뭐가?”
“제가 이해하는 안티테제의 개념은 결국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제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김 실장이 제가 모순을 자각하는 것을 도왔다는 생각은 안 들어서요.”
서지훈 교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분적으로는 동의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너를 둘러싼 사회의 모순을 자각하게 된 계기 정도는 되지 않았나? 휴머니티를 비영리 교육기관으로 만든 것도, 결국 교육의 자본화라는 김명현의 철학이 없었더라면 성립할 수 없었던 일이겠지.”
“그럼 선생님은 김 실장을 중용하실 생각입니까?”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걸 제가 정할 수는 없잖아요. 총장 후보는 제가 아니라 선생님이신데.”
“넌 이미 결론을 내리지 않았나?”
민우는 잠시 멍해졌다.
서지훈 교수는 처음부터 마치 설계한 것처럼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그의 발언은 막힘이 없었다.
많은 생각이 오갔고, 민우가 실마리를 잡았다.
“설마 문학상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 실제로 너는 사람의 능력과 성과만을 놓고 평가했어. 그게 박민우라는 사람의 가치관이겠지. 그렇다면 이번 경우도 그렇게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 기분에 따라 기준이 변한다면 그건 가치관이라 할 수 없다. 감정이지.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
‘박민우 문학상’의 번역 부문 공로상을 김명현의 형인 김태현에게 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민우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질감의 원인을 깨달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김 실장의 됨됨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달성한 성과를 보자는 말씀이군요.”
“굳이 풀어서 말하자면 그렇지.”
서지훈 교수는 톤을 낮추고 신중히 말했다. 민우가 오해하지 않게끔.
“교육의 자본화를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 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게 된 건 사실이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문화센터나 인터넷에서 공짜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테마로 돈을 번다는 걸 말이야.”
“그건 그렇죠. 그 부분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라는 건 고유한 거잖아? 적어도 기회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김 실장에게 공이 없지는 않지. 대학이 돈을 벌기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해도, 수강하는 사람들이 지불한 돈을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한다면 긍정적인 거 아닐까.”
“그렇게 말씀하시니 뭔가 기분이 묘하네요.”
서지훈 교수는 자기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책임지는 자리가 어려운 거다. 거창한 이상론만으로 조직을 이끌어갈 수는 없거든. 총장? 말만 근사하지. 그 자리에 앉는 순간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안 돼. 결정하는 자리가 한가로워 보여도 실제론 그렇지 않아. 뭐, 내가 김 실장 편을 드는 건 아니니 오해하진 말고.”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그래도…….”
그렇게 대답한 민우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서지훈 교수에 이어 총장에 출마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시작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생각해야 할 게 많다니.
하지만 서지훈 교수의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김 실장 품평을 하려고 부른 건 아닌데 이야기가 길어졌군.”
“그러게요.”
“너. 부총장 할 생각은 없지?”
민우는 굳이 놀라지 않았다. 서지훈 교수라면 그런 제안을 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선생님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도와드리고 싶긴 한데요. 아직은 강단을 떠나고 싶진 않아요. 부총장직에 앉으면 강의를 마음대로 할 수 없을 테고. 요즘 딸린 식구도 늘었거든요.”
“하여간 제자들 생각하는 건 여전하구나.”
“아무래도 전과가 있는 몸이라 조심스럽습니다. 특히 민재한테는요.”
“전과? 아, 그런 의미인가. 하하하하! 비유 좋구만.”
이공계 교수에 비해 인문대 교수는 대학을 옮기는 일이 거의 없다. 정년 보장을 받으면 그 대학에서 정년까지 가르친다.
하지만 민우는 모교인 상아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해 청문대를 거쳐 명인대까지 왔다.
그러다 보니 학부는 물론 대학원에서 지도를 받는 제자들이 불편해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래서 새로운 보직 때문에 지도가 소홀해지는 상황은 아직 부담스러웠다.
“부총장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겠네. 그럼 교무처장직은 어때?”
교무처장은 교수와 행정직원 등 대학 구성원들의 인사정책을 수립하고, 신입생 선발은 물론 교수들의 연구업적을 평가하는 등 광범위한 일을 추진하는 자리다. 때문에 경험이 많은 교수들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다.
“교무처장은 너무 중임이긴 하지만…… 끌리네요.”
“결국 네가 가장 우려하는 건 강사법 아닌가? 그걸 해결하려면 그 정도 보직은 받아야지.”
맞는 말이라 민우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걱정되는 바가 많았다.
이번 서지훈 교수가 성공적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인사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논공행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그전에 청록회 선생님들을 먼저 챙겨야 하는 게 옳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아, 청록회.”
청록회는 서지훈 교수 주도로 만들어진 명인대 교수 모임이다. 미대의 기영탁 교수와 국문과 설예라 교수가 핵심 멤버다.
민우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먼저 챙겨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걱정할 거 없다. 모두 네가 적격이라고 지목했으니까.”
“정말요?”
“그래. 정말로.”
민우는 멋쩍게 웃었다.
세계적인 학자가 되었음에도, 오히려 이런 소소한 일에 인정을 받는다는 건 역시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선생님들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하겠습니다. 맡겨 주세요.”
“좋아! 그럼 교무처장직은 네 것으로 생각해 두지.”
“그런데 선생님. 그 전에 이사회에서 총장 임명을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뭔가 거하게 김칫국 들이켜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신가 봐요?”
서지훈 교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 상황에서 선거 결과를 뒤집는 건 말이 안 되거든. 그 정도로 큰 리스크를 감당하기에는 이사회의 담이 작아.”
“하긴, 팬클럽도 생긴 마당에.”
“한 선생한테 얘기 잘해놔라. 회원 관리 잘하라고.”
“옙.”
두 사람은 앞으로 명인대를 어떻게 이끌어나갈지에 대해 계속 논의했다.
* * *
총장 후보자 선거가 끝난 뒤, 명인대 리셉션홀에서 임시 이사회가 열렸다.
오늘의 안건은 최종 후보에 오른 후보자 3인에 대한 심의였다.
대학의 미래를 결정하는 막중한 자리였기 때문에 입장하는 이사들의 표정이 상당히 무거워 보였다.
하나둘 착석한 이사들은 이번 선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역시 학생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게 아니었어요. 감정적이며 우려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군요.”
“하지만 이미 시대의 흐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 않습니까. 학생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건 전근대적인 발상이지요.”
“애초에 교수들의 표심이 무너진 게 문제 아닙니까? 백 총장이 너무 나이브하게 선거에 나섰어요.”
“하아…… 그놈의 토론회 때문에 여럿 골치가 아프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사회가 시작하지도 않았음에도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백성웅 총장을 지지하는 사람도, 서지훈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다. 혹은 토론회의 부정적인 면을 들어 둘 다 부적격이라는 의견을 내세우는 이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결정권이 없었다.
명인대 총장 선임은 이사회의 절대자인 이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들의 의견은 그저 참고만 될 뿐이다.
“이사장님 들어오십니다.”
직원이 보고했고,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엄히 걸어온 이태하 이사장이 상석에 앉았다.
“다들 모이신 것 같은데, 서론은 건너뛰고 바로 시작합시다.”
이사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직원들이 서류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번 선거 결과와 최종 후보자들의 프로필이 담긴 문서였다.
모두가 서류를 검토했다.
하지만 이태하 이사장은 서류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엄숙히 말할 뿐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다들 보셔서 알고 있겠지요. 하지만 내 생각엔…… 선거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 말에 이사들의 눈이 빛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민주적인 성과를 거론하며 반론하지 못했다. 그만큼 이사장의 권력은 절대적이었다.
깍지를 낀 이사장이 쐐기를 박았다.
“우리 명인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재를 한번 찾아봅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