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페서-386화 (386/500)

총장 후보자 토론회 (4)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그만큼 이태하 이사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백성웅 총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실 그는 오는 길에 스트리밍 방송을 한시도 놓치지 않고 모두 보았다.

그리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백성웅 총장의 치부는, 곧 명인대와 재단의 치부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조롱하고 비판했다.

그 책임을 물을 사람은 대학의 현재 책임자인 백성웅 총장밖에 없다.

“아주 잘들 놀고 있군. 이렇게 근사하게 무대까지 차려놓고 말이야.”

“이, 이사장님…… 그게 아니라…….”

“뭐가 아니라는 거지? 오면서 방송은 모두 봤네. 자네는 시청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감도 안 오지? 생산적인 토론을 하라고 했지 누가 학교 망신을 시키라고 했나?”

이어지는 추궁에 백성웅 총장이 김명현 쪽으로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도와달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김명현은 묵묵부답.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섰다가는 이사장의 눈 밖에 날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백성웅 총장을 도와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느끼기에도 게임은 이미 끝난 것으로 보였다.

“홍주희 교수.”

“예. 이사장님.”

“진행이 매끄럽더군? 아주 방송계로 진출해도 되겠어.”

힐난하는 어조였다. 그는 토론회가 과열된 것도 그녀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잠시 침묵하던 홍주희 교수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이사장님. 이번 토론회는 교내 선거관리위원회의 인가를 받아 진행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렇게 노여워만 하지 마시고 긍정적인 부분을 살펴주시는 게 어떨까요.”

“오늘 토론회에서 긍정적으로 볼 부분이 있었나?”

“그럼요. 있었죠.”

홍주희 교수가 미소를 띠었다. 이태하 이사장은 아직도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명인대에 새롭게 등장할 지도자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어요. 누구라고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특정 후보의 추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죠.”

“흐음.”

“이번 토론회를 비판적으로 본다면 한없이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긍정적이지 않을까요? 영웅이 필요한 시대잖아요.”

“영웅이라.”

잠시 생각에 잠기던 이태하 이사장이 피식 웃었다.

한편 백성웅 총장은 이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의 공통된 주제는 바로 ‘서지훈 교수’였다.

그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며 대화가 흘러가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래서, 서지훈 교수는 어디로 갔지?”

이태하 총장이 물었고 홍주희 교수가 답했다.

“연구실로 돌아간 것 같은데요.”

“당장 호출에서 나 좀 보자고 해! 백 총장 자네도 같이 말이야.”

그래도 그냥은 넘어가지 않겠다는 분위기였다. 이태하 이사장이 돌아갔고, 스튜디오는 여전히 싸늘한 분위기만 남았다.

“젠장할…….”

그 와중에 백성웅 총장이 작게 중얼거렸다.

* * *

민우가 연구실로 들어오자 안에 있던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이수빈과 한진섭, 그리고 주예린이 소파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거기에 차민재까지.

민우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안 봐도 이들이 앉아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핸드폰 거치대까지 있는 걸 보니 모여서 토론회를 시청한 게 분명했다.

“이제야 오셨구만. 생각보다 일찍 왔네?”

한진섭이 물었고, 민우는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쳤다.

“서지훈 선생님하고 이야기 좀 하려고 했는데 호출 떨어져서.”

“무슨 호출?”

“이사장님 호출. 아무래도 토론회를 전부 보신 것 같아.”

“레알? 일이 점점 커지네.”

한진섭과 주예린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의 전개를 가늠해 보았지만, 유일하게 이수빈만큼은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서지훈 선생님, 괜찮으시겠죠? 토론회 엄청 과격하던데요.”

이수빈이 물었다.

이제 토론회는 명인대의 문제만이 아니게 되었다. 토론회 영상이 온라인에서 무수히 재생산되며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었다.

서지훈 교수가 짚은 것은 명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대학들이 겪고 있는 여러 병폐들. 그리고 대학본부와 이사회가 어떻게 야합하고 있는지를 조리 있게 설명했다.

그러니 대학생은 물론 학부모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근본적으로 ‘대학’이라는 존재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백성웅 총장은 물론 서지훈 교수도 ‘내부고발자’라는 오명을 피하긴 어려웠다.

“그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역시 총장에 당선되는 수밖에 없겠지.”

“그렇겠죠?”

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우리가 걱정한다고 해서 결과가 변하지는 않아. 무엇보다도 서지훈 선생님 본인의 선택이니까.”

“오빠가 아무런 조언도 안 해준 거예요?”

“응. 아무것도. 나도 현장에 있다가 깜짝 놀랐어.”

서지훈 교수라면 그럴 만도 하다. 그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도 그 문제에 대해 반문하지 않았다.

“어떤 말이 오갈까? 궁금하지 않아요?”

주예린이 물었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주제였다. 이태하 이사장은 서지훈 교수만이 아니라 백성웅 총장도 불렀다.

민우가 추측했다.

“아마 선거 결과에 대해 이야기할지도 모르지.”

“선거 결과?”

“결과에 승복해라…… 그런 이야기.”

의미심장한 한마디에 앉아 있던 모두가 눈을 빛냈다. 민우가 추측을 이어갔다.

“어쨌든 오늘 토론회 때문에 두 분 모두 이사장님 눈 밖에 났어. 이 상황에서 특정한 누구를 감싼다는 건 말이 안 돼.”

“제3의 후보를 민다는 선택지는 없으려나?”

한진섭이 물었고, 민우는 간단히 고개를 저었다.

“제3의 후보를 미느니 백성웅 총장을 연임시키는 게 낫다고 판단할걸? 말을 안 들을지도 모르는 사람 앉히는 것보다 재임할 동안 말 잘 들은 사람을 앉히는 게 더 안전하니까. 하지만 이제 그럴 수도 없게 됐지. 백성웅 총장을 신임한다는 건 부정부패를 묵인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단 거니까.”

“그럼 서지훈 선생님이 유리하겠네요?”

“글쎄. 그것도 단정하기 어렵지. 선생님이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건 사실이지만, 그 끝이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한진섭이 탄성을 내뱉었다.

“캬…… 정말 총장 선거도 장난이 아니구만. 무슨 총선보다 치열한 느낌이야.”

“많은 이권이 걸린 자리잖아. 물론 서지훈 선생님께는 가시밭길이겠지만.”

“하긴.”

잠시 침묵이 돌았다. 그 가라앉은 분위기가 싫었는지, 한진섭이 박수를 한 번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참! 민우 너 스트리밍 방송 댓글 체크했냐?”

“당연히 했지.”

옳다구나 싶은 한진섭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네이비 카페 대문이 보였다. 카페명을 본 민우는 질색했다.

“서지훈 교수 팬클럽?”

“아까 닉네임 ‘대지훈’이 나였거든. 좀 선동했더니 우르르 낚이던데. 벌써 가입자 수 100명 넘었다.”

한진섭은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마치 자랑스럽다는 듯 말이다.

닉네임 ‘대지훈’은 민우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서지훈 교수 팬클럽 모집이라며 링크를 걸어 도배하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혹시나 싶어 URL을 클릭하지 않았는데, 그게 바로 한진섭이 만든 카페였다.

“하아…….”

민우는 미간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진섭이 쓸데없이 선동해서가 아니다. 카페소개란에는 ‘서지훈 교수를 국회로!’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걸려 있었다.

그러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물론 한진섭의 댓글을 제외하더라도, 서지훈 교수를 국회로 보내면 속이 시원할 거라는 의견이 많긴 했다.

대학교수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특별히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총장 선거에 집중해야 할 때다.

“선생님께 혼나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내려.”

“100명이나 모인 카페를 폐쇄하라고? 그건 좀 아까운데.”

“아니, 팬클럽 생긴 것 자체를 싫어하시진 않겠지. 국회 어쩌구 한 글 치우라고. 여의도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몰라서 그래?”

“좀만 더 걸고 내리지 뭐. 어차피 재미로 만든 거니까.”

“그래? 그럼 좀 더 재미있게 해보든가.”

민우가 씨익 웃었다.

한진섭은 민우와 오래도록 함께한 사이였다. 그 미소가 어떤 의미인지는 본능이 기억하고 있었다.

“……무섭게 왜 이래?”

“기왕 ‘대지훈’이란 닉네임을 쓸 거면 제대로 하란 말이지.”

“설마.”

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한진섭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아, 안 돼!”

“돼.”

귀찮은 일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그였다. 그런데 뜻밖의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민우가 한마디 더 얹었다.

“온라인 선거운동 좀 해라. 카페 운영하면서 서지훈 선생님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 좀 만들어. 어차피 팬카페니까 크게 어렵진 않겠지. 그리고 너 매번 신방과 복수전공했다고 으스댔잖아? 이번에 복수전공빨 좀 발휘해 보라고.”

“으아아아…….”

“잘 풀리면 나중에 서지훈 선생님이 자리 하나 주실지도 모르잖아? 힘내라고 친구.”

민우는 언젠가 한진섭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한진섭은 나라 잃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 모습을 본 모두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우우우웅!

그때 민우의 폰이 진동했다.

팝업창에 서지훈 교수의 이름이 떴다. 서둘러 내용을 확인한 민우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선생님 호출. 연구실로 오라시네.”

“기다릴 테니까 좋은 소식 가져오셔. 이렇게 모인 김에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용돈 인상 기념으로 내가 쏜다!”

“와! 진짜요? 소고기 가나요?”

“소고기는 좀…… 살려줘…….”

“그럼 돼지고기?”

이수빈이 선택했으니 민우가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오늘은 늦어질 걸 예상해 어머니에게 윤아를 부탁해 놓았다.

“그럼 다녀올게. 고깃집 정해놔.”

“넵. 잘 다녀와요.”

민우는 서지훈 교수 연구실로 향했다.

* * *

서지훈 교수는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여유가 넘치는 표정으로.

순간 나쁜 소식을 듣진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서지훈 교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이니까.

“말씀은 잘 나누고 오셨어요?”

“뭐, 그냥. 앉아라.”

민우는 서지훈 교수와 마주 앉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서지훈 교수가 씨익 웃었다.

“그냥 말해주면 재미없으니 퀴즈나 하나 낼까. 이사장님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왔을 것 같아?”

“안 그래도 옆방에서 친구들하고 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어떤 결론이 나왔지?”

“제 개인적인 생각이긴 한데…… 토론회가 정말 큰 이슈가 되었잖아요. 아마 이사장님께서 선거 결과에 승복하라는 말씀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두 분 모두 특혜는 없다고.”

“하하하하!”

서지훈 교수가 큰 소리로 웃었다.

정답일까?

“넌 참 대단하다니까.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왔어?”

정답인 모양이다. 민우가 미소를 지었다.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봤을 때 어느 쪽 편도 못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두 사람을 배제할 순 없고요. 그렇다면 표결로 승부를 봐라…… 그런 결론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해. 이사장님께서 그러시더군. 차기 총장 자리는 가장 많이 득표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오피셜입니까?”

“오피셜은 아니지. 우리 둘에게만 한 이야기니까. 물론 막판에 말을 뒤집을지도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우리 쪽이 나쁜 이야기는 아니란 말이지.”

“잘됐네요.”

하지만 민우는 마음을 쉽게 놓지 않았다.

투표까지는 아직 보름이나 남았고, 보름은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긴 시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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