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페서-385화 (385/500)

총장 후보자 토론회 (3)

잠자코 있던 홍주희 교수가 미소를 지었다.

“서지훈 후보자님. 지금은 공개 토론 중입니다. 부적절한 발언은 삼가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아아, 이거 실례.”

서지훈 교수는 사과했지만, 조금도 미안하거나 하는 기색이 없었다.

민우는 대번에 알았다. 방금 발언은 다분히 의도된 연출이라는 것을.

그래서일까.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는, 그런 노골적인 비판을 들은 백성웅 총장은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뿐이 아니라 한쪽에서 토론을 지켜보고 있던 김명현의 표정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서지훈 교수의 도발 한 방에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백성웅 총장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서지훈 교수를 바라보았다.

“서지훈 후보님.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군요. 지나가던 개가 웃는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설명이요?”

기다렸다는 듯 서지훈 교수가 말을 받았다.

“총장께서는 등록금 문제, 그리고 시간강사의 처우, 기숙사 문제와 교수들의 연구 윤리. 이렇게 크게 네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지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여쭤보고 싶네요. 이 네 개의 문제들이 종합적인 케어가 가능한 것들입니까? 제가 보기에 너무나도 중차대한 것들이라 개별적인 대책을 세워도 힘들어 보이는데요.”

“그건…… 다 생각이 있습니다.”

서지훈 교수가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럼 그 생각을 좀 듣고 싶습니다. 우선 등록금 문제부터 이야기해 보시죠.”

“…….”

제대로 말려들었다.

하지만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처럼, 백성웅 총장은 멈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

“현재 등록금이 높은 이유에는 여러 원인이 있습니다.”

“등록금이 높다는 표현은 모호한 구석이 있군요. 정확하지 않습니다. 숫자로 이야기해야지요. 얼마나 높은지 짐작은 하고 계십니까?”

서지훈 교수가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대답할 만큼 백성웅 총장은 실무와는 거리가 많았다.

“사립대학은 필연적으로 등록금이 높을 수밖에 없…….”

“우리 대학 등록금은 연간 1,260만 원입니다. 이것도 평균이지요. 공대나 의대 등록금은 훨씬 높습니다. 혹시 후보자께서는 우리 대학의 입학금은 얼마나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게…….”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학생들은 ‘입학금’이라는 것을 내게 된다. 등록금보다는 액수가 적지만 이 또한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백성웅 총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순간 등록금과 입학금을 헷갈린 것이다.

완전히 기세를 가져온 서지훈 교수가 몰아붙였다.

“우리 대학의 입학금은 약 100만 원 정도입니다. 이 또한 국내 최고 수준이죠. 어차피 백성웅 후보자께서 잘 파악을 하지 못하고 계시니 제가 드리는 말씀이지만, 입학금과 등록금 모두 국내 1위입니다.”

“흠흠…….”

백성웅 총장은 그제야 말을 잘못 꺼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등록금의 전체적인 규모와 사용처만 파악했지 전국적으로 어느 수준인지는 파악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지훈 교수가 이어 말했다.

“명인대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대학입니다. 하지만 말이죠. 입학금과 등록금까지 국내 최고일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시원시원한 발언이 쏟아졌고, 스트리밍 사이트 댓글은 거의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이러다 서지훈 선생님 팬클럽까지 만들어질 기세인데.’

민우는 좋아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토론이 계속되었다.

“우리 대학의 등록금이 높은 건 말씀하신 대로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만, 역시 재단전입금을 늘려 학생들의 부담폭을 완화하는 것이…….”

“재단전입금이요? 현재 명인대 재단전입금이 어떤 수준인지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서지훈 교수가 또다시 백성웅 총장의 말을 가로챘다. 그래서인지 보다 못한 홍주희 교수가 나섰다.

“서지훈 후보자님. 공정한 토론을 위해 상대 후보자님의 말씀을 끝까지 경청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아아, 그러지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나섰나 봅니다. 하하하하.”

그렇게 말하곤 서지훈 교수는 시원하게 웃었다. 백성웅 총장 입장에서는 속에서 열불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백성웅 총장은 계속 말을 이으려다가, 분위기가 다운되었음을 느꼈다.

이 테마 자체가 싱거워진 것이다.

이미 서지훈 교수는, 현재 명인대의 재단전입금 수준을 논하며 반박해 왔다. 말이 끊겨 흐지부지한 사이 이제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이 치솟았다.

뭐 하나 마음대로 풀리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백성웅 총장은 그때까지도 자신이 서지훈 교수의 전략에 완전히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으음. 재단전입금은 차차 늘려갈 계획입니다. 이사회와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학생들의 부담을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이 남는군요.”

“또 뭡니까?”

서지훈 교수가 웃었다. 백성웅 총장은 그 미소에서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후보자께서는 지금 학생들의 부담을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맞지요?”

“예.”

“그렇다면 지금까지, 후보자께서 총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조금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이 성립되네요. 후보자의 재임 기간 동안 재단전입금이 1원도 늘지 않았으니 말이죠.”

“…….”

이번 것은 좀 타격이 컸다. 민우와 김명현의 얼굴에 희비가 교차했다.

서지훈 교수가 자신만만히 토론회에 나온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서지훈 교수는 불리한 위치가 아니라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백성웅 총장은 현 총장으로서 재임 동안의 실책을 떠안아야 하는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서지훈 교수는 그동안 명인대에서 교수로 일했다.

그의 실정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해명을 부탁드립니다. 왜 명인대 학생들은 재단의 지원도 없이 오롯이 등록금을 감당해야만 했습니까?”

“그건 오햅니다. 재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말씀을 재미있게 하시네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면 뭘 합니까? 보이는 곳에서 해야 학생들이 복지가 좋아지고 있다고 체감할 거 아닙니까?”

“…….”

“다른 정책도 마찬가집니다. 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야 하지요? 뭔가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 되는 게 있는 건 아닙니까?”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을 만끽하며, 민우는 마음을 편히 먹었다.

완벽한 승리를 예감하면서.

└ 갑론옹박: 무슨 국회 보는 줄 알았네 ㅋㅋㅋㅋㅋㅋ 얻어맞는 게 딱 머머의원 수준

└ king: 상대 후보는 아직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거 같은데???

└ 대지훈: 서지훈 교수 팬클럽 모집

└ 명인대우등생: 진짜 속이 후련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맞아 좋은 일은 보이게 해야지 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 구린내가 풀풀 나는구만!!

└ 동네북: 개꿀재무ㅋㅋㅋㅋㅋ 더 시원하게 가버렷!!

댓글 창도 난리가 났다. 서지훈 교수를 욕하는 댓글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정도라면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이겠다는 서지훈 교수의 목표는 달성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음으로 시간강사 처우에 대해 말해보죠. 이건 저도 할 말이 정말 많습니다. 왜냐하면 명인대는 시간강사 처우가 좋지 않기로 유명하거든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대학의 처우는 4년제 대학 평균으로…….”

“그게 바로 평균의 함정이라는 겁니다. 평균이라고 한다면 딱 가운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뜯어보면 전혀 달라요.”

서지훈 교수는 준비한 자료는 넘겨보지도 않은 채 쉴 새 없이 백성웅 총장을 몰아쳤다.

“백 후보께서 말씀하신 평균이라는 건 강사료 평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으음…… 맞습니다.”

백성웅 총장이 준비한 자료를 간신히 찾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서지훈 교수가 노리는 건 따로 있었다.

“그 자료로만 본다면 평균이 맞습니다. 하지만 일거리가 없는 방학을 합산해서, 실제로 강사 1인이 1년에 얼마를 가져가는지를 따지면 최하위권이죠.”

“에…… 그건…….”

백성웅이 가진 자료에는 없는 것이었다. 서지훈 교수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묻겠습니다. 현재 명인대에서는 수업이 없는 방학 동안, 시간강사들에게 50퍼센트 감면된 강사료를 2주간만 지급하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맞다고 하셨다면, 지금 우리 명인대 강사 대우는 대한민국 최하 수준이라는 걸 본인 입으로 인정하신 겁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상대의 수를 간파한 멋진 작전이었다.

대학이 시간강사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방학 보수는 법으로 정확히 정해진 게 없어 각자 다르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백성웅 총장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서지훈 교수만이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명인대가 국내 최고의 대학이며, 또 세계로 발돋움하는 글로벌한 대학이라고 생각한다면 투자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강사들은 현재 40퍼센트 이상의 강의를 소화하고 있어요. 그 정도로 중요한 인적 자원을 대학에서 홀대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분들은 아르바이트생이 아닙니다. 명인대 학생들은 최고의 조건에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지요. 매년 부동산에 투자한다 어쩐다 하지 말고, 강사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쥐여주세요. 그래야 교육 여건이 좀 더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지켜보던 학생 하나가 멋도 모르고 박수를 쳤다. 메인PD도 뒤늦게 제지할 만큼, 스튜디오 안에 있던 방송국 학생들은 서지훈 교수의 말에 깊이 감화되었다.

아무래도 게임은 끝난 것 같다.

현장에 있는 관계자들도 이 정도인데, 스트리밍을 보는 학생들은 어떤 기분일까.

민우는 팔짱을 끼며 미소를 지었다.

* * *

토론회는 한 시간 뒤에 끝났다.

서지훈 교수가 여유가 넘치는 것에 비해, 백성웅 총장은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녹다운 직전이었다.

홍주희 교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자, 그럼 명인대 총장 선거를 위한 후보자 토론회는 이쯤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오늘 출연해 주신 두 후보자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백성웅 총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카메라의 불이 꺼지고, 서지훈 교수와 백성웅 총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백성웅 총장이 몸을 휘청거렸다.

간신히 책상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것을 면했다.

곁에 있던 김명현이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자네 눈엔 괜찮은 걸로 보이나?”

“구급차를 부를까요?”

“됐네. 지금 그럴 상황인가?”

한숨을 내쉰 백성웅 총장이 바로 섰다.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얻어맞아 정신이 없었다.

맞은편에 있는 서지훈 교수를 노려보았다.

자신을 향해 씨익 웃은 서지훈 교수는 그길로 민우와 함께 스튜디오를 나섰다.

백성웅 총장의 두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아무래도 수를 써야겠어.”

“수라 하시면…….”

“이태하 이사장님께 연락해. 시간 괜찮으시면 당장 찾아뵙겠다고.”

“예. 총장님.”

김명현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앞을 가로막았다.

“그럴 필요 없네.”

“아…… 이사장님!”

모두가 깜짝 놀랐다.

바로 이태하 이사장이 스튜디오에 나타난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