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페서-384화 (384/500)

총장 후보자 토론회 (2)

“…….”

백성웅 총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반쯤은 농담조로 건넨 말이었는데 이렇게 카운터가 들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서지훈 교수도 의외라는 표정이다.

덕분에 대기실의 분위기는 싸늘히 식었다. 그저 김명현만이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민우에겐 다분히 계산된 한마디였다.

그가 자존심을 건드린 것도 있지만, 토론회를 앞두고 멘탈에 타격을 입힌다면 서지훈 교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작전은 제대로 들어맞은 것 같다.

백성웅 총장의 표정을 보니 말이다.

“허허…… 박민우 교수.”

“네.”

“잠깐 착각했어. 오늘 토론 상대가 서 교수가 아니라 자네인 줄 알았지 뭐야.”

“생산적인 토론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대학과 학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저나 총장님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나?”

“이번 토론회를 보면 답이 나올 것 같네요.”

백성웅 총장이 비릿하게 웃었다.

민우는 그가 단순히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과연 어떤 말을 꺼낼까. 민우는 긴장했다.

“자네 입장에서는 그렇게 날을 세울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조금 대국적으로 보는 건 어떤가?”

“대국적으로요?”

“내가 보기에 서지훈 교수는 가망이 없단 말이지. 그렇다면 나를 위해 일하는 건 어때?”

막장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황. 반면 서지훈 교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더니, 이어질 백성웅 총장의 말을 기다렸다.

민우가 혹시나 싶어 물었다.

“그러니까, 이번 선거에서 서지훈 선생님을 배신하고 총장님 편으로 붙으라는 말씀입니까?”

“무슨 배신이라는 표현을 쓰나? 전략적 협력 정도로 해두지.”

“생각보다 고인 물이 많이 썩어있었네요. 악취가 진동합니다.”

민우의 신랄한 비유에 백성웅 총장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민우는 굳이 말을 가려서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백성웅 총장이 혀를 찼다.

“그 스승의 그 제자라는 말이 딱이군. 교양 없는 사람들 같으니.”

“요즘 노벨상은 교양 없는 사람들한테도 주는 모양입니다?”

서지훈 교수가 일침을 날리자, 백성웅 총장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는 옛날부터 이기는 싸움만 해 왔네. 질 가능성이 있는 싸움엔 아예 베팅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야.”

그 말은 민우가 받았다.

“이번이 처음이 되시겠네요. 지는 싸움에 베팅하신 게.”

“과연 그럴까?”

백성웅 총장이 씨익 웃었다. 한마디로 소름이 돋는 미소였다.

“혹여라도 서지훈 선생이 힘든 선거 과정을 거쳐 후보 1순위로 올라갔다고 가정해 보지. 과연…… 그다음 단계를 통과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선거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최종 선임을 이사회에서 해줄까 하는 말이었다.

백성웅 총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잇는다.

“나는 아니라고 보거든. 서지훈 선생이 이사장님과 인연이 있다고 해도 이사회는 이사장님만의 것이 아니지. 수십 명의 이사진이 과연 찬성표를 던질까 궁금한데?”

“뭘 잘못 알고 계시네요.”

이번에는 서지훈 교수가 나섰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이사회는 이사장의 것입니다. 대학 내부 규정에도 최종 결정권자는 이사회의 장, 즉 이사장으로 규정되어 있지요. 이사장님의 의향에 달린 거다 이 말입니다. 아무리 이사진들이 반대한다고 해도 말이죠.”

“후후후. 상당히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군.”

“여기서 입 아프게 떠들어서 뭐 합니까. 어차피 나가서 박 터지게 싸울 텐데 말이죠. 싸움도 하기 전에 서로 힘 빼지 맙시다.”

잠시 말을 멈춘 서지훈 교수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아니, 싸움이라고 하기보단 일방적인 폭력이라고 해야 옳을까요? 토론회 이후 생길 사적인 감정은 부디 넣어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백성웅 총장님.”

서지훈 교수가 쐐기를 박았다.

백성웅 총장은 콧방귀를 뀌었지만, 그가 시도했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음을 깨달았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민우와 서지훈 교수의 관계는 끈끈했다.

백성웅 총장의 생각이 깊어졌다.

‘결국 토론회에서 성공적으로 방어하지 못한다면…….’

그의 탐욕스러운 두 눈에 서지훈 교수의 모습이 잡혔다.

‘대권을 빼앗길지도 모르겠어.’

백성웅 총장은 정신을 번뜩 차렸다.

이번 토론회는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으로도 송출되기 때문에 실수를 한 번이라도 한다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판을 뒤집을 마지막 기회야!’

그리고 시간이 흘러 때가 되었다.

신방과 교수 홍주희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자, 토론회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다들 준비되셨겠지요?”

* * *

서지훈 교수와 백성웅 총장이 스튜디오에 올랐다.

원래는 후보자 넷이 토론하기로 되어 있었다. 총장 후보 토론회이기 때문에, 총장 선거에 입후보한 사람들에겐 모두 의향을 물었다.

당초 서지훈 교수와 백성웅 총장을 제외한 두 사람이 참석하겠다고 밝혔는데, 그들은 녹화 당일 참여가 어렵다고 알려왔다.

어설픈 후보 입장에서 공개 토론회에 참석하는 것은 선거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이나 지식 면에서 두 사람에게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은 자명한 사실.

그래서 공교롭게도 1:1 싸움이 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 토론은 총장님과 서 교수님 두 분이 진행해 주시면 되겠어요. 원래 사회는 학생 아나운서를 시키지만, 공정성 문제도 있고 하니 제가 직접 진행하죠.”

홍주희 교수가 말했고, 두 토론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알아서 하라는 말이었다.

“그럼 착석하실까요?”

홍주희 교수가 가운데 앉고, 서지훈 교수가 좌측, 그리고 백성웅 총장이 우측에 앉았다. 메인 카메라와 보조 카메라에 불이 켜졌다.

메인 PD가 올라와 주의해야 할 사항을 설명한 후 내려갔다. 일반적인 토론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후보자별 공약 설명 시간은 각 5분으로 정해졌다.

나머지 자유 토론에서는 딱히 시간제한이 없었다. 참석자가 두 명뿐이니까.

홍주희는 대본을 다시 훑은 다음 카메라를 응시했다. 곧 큐 사인이 떨어졌다.

“안녕하세요. 홍주희입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명인대를 이끌어 나갈 신임 총장 후보 두 분을 모시고 토론회를 준비했는데요. 자, 후보자님들. 인사하시죠.”

사전에 약속한 대로 백성웅 총장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백성웅입니다. 저는 현 명인대 총장으로서 명인대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이끌어왔다고 자신합니다. 다음 총장 선거에서도…….”

“백 후보자님. 자기소개 시간은 잠시 후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인사해 주시죠.”

스튜디오 뒤편에서 지켜보고 있던 민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홍주희 교수는 아무래도 서지훈 교수 편인 것 같았다.

저렇게 대놓고 멘트를 자를 줄이야.

덕분에 백성웅 총장은 초반부터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

“명인대 국문과 서지훈입니다.”

서지훈 교수는 담백하게 인사했다.

“네, 후보자님들. 반갑습니다. 평소에 캠퍼스에서 인사 나누다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되니 새롭네요. 잘 부탁드리고요. 본격적으로 토론회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백성웅 후보자님. 입후보 소감을 간단히 부탁드려도 될까요?”

“예에. 으음. 저는 현 명인대 총장으로서, 우리 명인대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임기 내에서는 제가 계획한 중장기 플랜을 완성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이 자리에 나섰습니다.”

정중하면서도 잘 짜인 그런 멘트였다.

보수적인 느낌이 강했다. 한편으로 민우는 궁금했다. 과연 서지훈 교수가 어떤 발언을 할지.

“말씀 잘 들었구요. 다음은 서지훈 교수님. 소감 말씀해 주시죠.”

“예.”

서지훈 교수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명인대는 썩었습니다.”

스튜디오가 웅성거렸다.

제작진이 손을 흔들며 소음을 내지 말라 제지했다. 그 정도로 서지훈 교수의 한마디는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명인대뿐일까요? 모든 대학은 시름시름 앓고 있지요. 그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대학이니 뭐니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충격적인 한마디에 민우조차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설마 서지훈 교수가 저렇게 과격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저는 두 가지 플랜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 명인대를 좀먹는 세력을 징벌하는 것. 둘째, 우리 대학을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것. 멋진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허황된 약속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학생이나 교수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지훈 교수의 소감이 끝났다.

백성웅 총장은 표정 관리를 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서지훈 교수는 소감을 말하면서도 기득권 세력을 적나라하게 비판한 거니까.

민우는 서둘러 무투브 스트리밍 채팅창을 확인했다. 댓글이 난리가 났다.

└ 외길인생: 딜력 무엇ㅋㅋㅋㅋㅋㅋㅋ

└ 규민강: 현 총장 구데기행zzzzzzzzzzzz

└ 고니: 적폐 OUT!

└ 엣헴엣헴: 여윽시 킹문과 말빨 흥미진진

└ starhill: 저 말이 맞다 한국 대학 다 썩었음 국립대는 그나마 나으려나?

└ 송사리: 아이고 총장님 내려오십쇼 ㅠㅠㅠ 부끄럽습니다 ㅠㅠㅠㅠ

└ 감자님: 저 교수 쌉호감이네 얼굴도 잘생기고 목소리도 듣기 좋음 아 나도 명인대 가고 싶다

└ 예비명인대생: 버스 타고 가라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서지훈 교수의 발언 하나하나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민우는 걱정을 내려놓았다.

서지훈 교수는 한참이나 젊은 자신보다 여론을 사로잡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참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홍주희 교수가 한껏 흥분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시작부터 정말 뜨거운데요! 기대가 됩니다. 자, 그럼 후보자분들의 소감을 들었으니 이제 공약을 들어볼 차례인데요. 조금 방식을 바꿔서 진행해보겠습니다.”

메인PD 쪽에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표정으로 백성웅 총장이 홍주희 교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카메라만 응시하고 있었다.

“원래는 후보자분들의 공약을 듣고 자유 토론으로 넘어가려고 했지만, 벌써 소감 단계에서 토론이 벌어지고 있네요. 그래서 템포를 좀 올려 바로 토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한 분이 공약을 말씀하시면, 다른 분께서 의견을 더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서지훈 교수에겐 호재였다.

그가 단순히 소감만을 말한 게 아니라 현 체제에 대해 비판을 했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그럼 백성웅 후보자님.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떤 공약을 들고 나오셨을까요?”

어느새 백성웅 총장의 이마엔 땀이 송골 맺혀 있었다. 물론 방송용 조명이 좀 덥긴 하다. 하지만 서지훈 교수의 공격이 너무 강력했다.

“에…… 저는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대학으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등록금 문제, 강사법에 따른 시간강사의 처우…… 학생들의 주거 문제를 포함해서 교수들의 연구 윤리까지 종합적으로 케어하는 그런 대학을 만들고 싶군요.”

“그런 대학이요? 하하하하하! 농담이 지나치신 거 아닙니까? 지나가던 개가 웃겠습니다!”

서지훈 교수의 입에서 또다시 폭탄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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