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후보자 토론회 (1)
운명의 아침이 밝았다.
민우는 침대에서 일어나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6시 반. 이제 슬슬 씻고 준비한 뒤 딸애를 유치원으로 데려다줘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그때 보드라운 손이 민우의 가슴을 살짝 눌렀다.
이수빈이었다.
“오늘은 좀 더 자요. 윤아는 내가 준비시킬 테니까.”
“오늘은 내가 당번인데?”
“당신 중요한 날이잖아요. 좀 더 쉬고 준비 잘하고 나가란 말씀.”
중요한 날이라는 말에 민우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민우만의 날은 아니었다.
바로 서지훈 교수와 백성웅 총장의 토론회가 열리는 날이다. 말이 토론회지 맞짱토론이 될 거라는 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토론회는 무투브를 비롯해 여러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실시간으로 생중계된다.
따라서 명인대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시청 가능하다는 점이 관건이다.
대학 개혁을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하려는 서지훈 교수의 마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까.
‘그렇게 된다면 소원이 없겠는데.’
때문에 오늘은 민우만의 날이 아니라, 휴머니티 멤버들을 비롯해 대학 개혁을 염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이 잘 풀린다면, 먼 훗날 변혁의 시초가 오늘이었다고 지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잘 부탁해.”
“걱정하지 말고 쉬어요.”
덕분에 민우는 한 시간 정도 더 잘 수 있었다.
마침 밖에서는 문이 열리고, 이수빈과 윤아가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민우도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출근 준비를 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민우는 연구실의 문을 열었다. 마침 차민재가 커피를 내렸는지 구수한 향기가 연구실을 가득 메웠다.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래. 아침은 먹었어?”
“먹었습니다. 선생님은요?”
“나도 대충 때웠지.”
“커피 드릴까요?”
“내가 따라 마실게.”
민우는 커피를 따라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것이 있어 차민재를 자리로 불렀다.
“오늘 총장 후보 토론회 하는 거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 반응은 어때? 너 이번 학기에 수업 세 개 듣잖아. 학생들 반응도 궁금한데.”
차민재가 웃으며 대답했다.
“설예라 선생님이야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실 거 같고, 나머지 두 과목은 오늘 수업이 있는 날인데 휴강이에요. 경건한 마음으로 토론회를 보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하하하. 재미있군. 어떤 선생님들이야?”
“민영환 선생님하고 한진욱 선생님 수업입니다.”
민영환 교수는 그렇다 쳐도, 서지훈 교수와 그렇게 가깝지는 않은 한진욱 교수까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국문과 전체가 서지훈 교수를 응원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아니, 그보다 더욱 본질적인 이유일지도 모르지.’
그들도 고등교육자라면 현재 대학이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냉정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서지훈’이라는 기회가 왔고, 거기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민우는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지기를 바랐다.
“서지훈 선생님 지금 많이 긴장하고 계시겠죠?”
“아니? 지금쯤 한가롭게 다리 꼬고 앉아서 커피나 마시고 계시지 않을까?”
“하하하. 정말 선생님도 그렇고 서지훈 선생님도 대단하신 것 같아요.”
“내 말이 맞는지 한번 가봐야겠어.”
자리에서 일어난 민우는 서지훈 교수 연구실로 향했다.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서지훈 교수가 다리를 꼬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민우가 빙긋 웃었다.
서지훈 교수는 뭔가 의미가 있는 웃음이라고 느껴 고개를 갸웃했다.
“뭘 그렇게 아침부터 징그럽게 웃어?”
“재미있어서요.”
“뭐가?”
“방금 민재가 선생님 걱정하고 있길래, 지금쯤 다리 꼬고 편안히 앉아 커피 드시고 있을 거라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진짜였네요.”
“야. 스토킹 좀 그만해라. 이제 조금만 있으면 햇수로 20년 채우겠구만!”
민우가 맞은편에 앉았다. 서지훈 교수는 예상대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한 시간 남았는데 긴장 안 되세요?”
“긴장이라고 할 게 뭐 있겠어? 남은 건 적개심뿐이지. 빨리 무대에 나가서 한번 시원하게 밟아주고 오고 싶구나.”
“그쪽도 단단히 준비하고 나올 거예요. 우리 쪽 정보가 많이 흘러갔으니까.”
서지훈 교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지. 우리가 강사법이나 재단전입금을 노린다는 것쯤이야 이미 간파했을 거고…… 그래도 뭐 크게 달라질 건 없다.”
“믿는 구석이 있으신가 보네요.”
“있기야 있지. 백 총장이 지금까지 해 온 실정을 열거만 해줘도 녹다운될걸? 담당자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어마어마한 것들이 많으니까.”
“토론회가 아니라 청문회가 될 것 같은 느낌이네요.”
“일단 내 전략은 그래.”
서지훈은 학계의 풍운아로 불리는 사람이다. 토론자로 나서면 발표자는 며칠 잠을 못 잘 정도로 논박을 당하곤 했다.
그런 그가 나서는 토론이니 결과가 내심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학생들 표도 그렇고…… 교직원들도 토론회를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으면 하네요.”
“그건 쉽지 않을 거야. 교직원들은 보수적이어서 큰 변화를 원하지 않거든.”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봐야죠.”
민우를 빤히 바라보던 서지훈 교수는, 이내 씨익 웃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시 침묵이 돌았다.
두 사람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말할 거리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대화하는 도중 어떤 문제를 떠올리곤 그것을 생각하느라 그런 것이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서지훈 교수였다.
“박민우.”
“예?”
“내 생각에 이번 선거는 내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이야. 자신만만하시네요?”
서지훈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민우도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며칠 후에 선거가 시작되고 그때 확인하면 되는 일이다.
짐작 가는 일은 몇 있다.
가장 큰 건 바로 총동문회 정기총회에서 이태하 이사장과 마주한 일이다. 두 사람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민우는 알지 못하는 은원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내가 총장이 되면 너도 한자리해야지.”
“제가요?”
“설마 스승을 사지로 몰아넣고 혼자 후방에서 꿀 빨고 있으려는 생각은 아니었겠지?”
언젠가 민우도 했던 고민이었다.
바로 그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인맥을 동원해 서지훈 교수를 여기까지 모셔올 수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처음보다는 부담감이나 이물감이 많이 없어진 상태이긴 하다.
하지만 민우가 놀란 것은 다른 이유였다.
연차가 높은 교수들이 많은데, 본인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냐는 거였다.
“설마요. 그런 건 아닌데…… 민영환 선생님이나 원순철 학장님처럼 경험이 많은 분들도 있는데 제가 끼어드는 건 좀 보기 그렇지 않을까요?”
“네가 언제 보기 그렇다는 이유로 뒤로 빠진 적 있냐?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았으면서 말이지.”
서지훈 교수의 한마디에 민우는 대꾸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래도 저는 아직 좀 부족합니다. 일단 다른 분과 운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니. 내가 필요한 견 경험이나 경륜이 아니다. 바로 현재 어떤 문제가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고, 또 그것을 해결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지.”
“그런 거라면…….”
민우가 적격이었다.
강사법을 비롯해 현 대학과 학계에 만연하고 있는 병폐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민우가 결심했다.
“좋습니다. 어떤 자리를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 당선되신다면 힘껏 돕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물론 이래놓고 낙선해버리면 쪽팔린 일이겠지만 말이다.”
두 사제가 실컷 웃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엄청나게 김칫국 마시고 있는 것 같은데요.”
“칼칼하니 좋지 뭐. 남으면 밥이나 말아먹자꾸나!”
“하하하하.”
그렇게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은,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교내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겼다.
* * *
명인대 신방과는 국내 유수의 방송인들을 배출하는 산실이다. 스튜디오에는 각종 최첨단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민우도 처음 와보는 곳이라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다니고 있는 선샤인 스튜디오보다 더 많은 기자재가 있는 것 같았다.
“교수님들. 일찍 오셨군요?”
신방과 교수 홍주희가 다가왔다.
커리어 우먼의 전형을 보는 것 같은 말끔한 정장 차림의 중년 여성이었다. 얼굴이 굉장히 작아서 아나운서 같은 모습을 풍겼다.
민우와 서지훈 교수는 반갑게 인사했다.
안경을 고쳐 쓴 홍주희 교수가 서지훈 교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서 교수님은 전혀 긴장하지 않으셨네요? 총장님은 땀을 좀 많이 흘리시던데.”
“더워서 그러신가 보지요.”
“그런가요?”
주변엔 총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자리를 세팅하는 학생들밖에 없었다. 아마 다른 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양이다.
“저야 현직에 있지 않습니까. 강의는 어떤 질문이 나올지 알 수 없어 좀 긴장하는 편이지만, 여기는 다르니까요.”
은근한 자신감을 드러내자, 홍주희 교수가 피식 웃었다.
“마치 총장님이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 뭐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군요.”
“저는 학석박을 명인대에서 마쳤고, 여기에서 오래도록 일했습니다. 한때는 학생이었고 지금은 직원이니 누구보다도 현황을 잘 알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그게 서 교수님이 지닌 강점이기도 하지요.”
그때 민우가 불쑥 물었다.
“홍주희 교수님께서는 선거의 판세가 어떻게 될 거라 보십니까?”
“글쎄요?”
묘하게 웃은 홍주희 교수가 시선을 돌렸다. 학생들이 열심히 기자재를 옮기는 곳을 향해서.
“저야 뭐 누가 되든 관심은 없어요. 그저 지원금 잘 주고 시설 잘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면 좋은 거지.”
“그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서지훈 교수가 자신 있게 말했다.
덕분에 홍주희 교수가 관심을 보였다.
“마치 서 교수님이 총장이 되실 거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서지훈 교수는 그저 웃을 뿐, 어떻다고 답하진 않았다. 묘한 여운만 남겼다.
“보시다시피 아직 스튜디오 준비가 덜 끝나서요. 스트리밍 테스트도 해야 하고, 대기실에 잠시 계시면 이따 모시러 가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인사치레가 끝나고 민우와 서지훈 교수는 한쪽에 마련된 출연자 대기실로 향했다.
교내 시설이지만, 실습 시설로도 활용되기 때문에 일반 방송국의 스튜디오와 모든 면에서 흡사했다.
대기실로 들어가니 역시나 백성웅 총장의 모습이 보였다.
백성웅 총장이 못마땅한 눈으로 이쪽을 훑는다.
서지훈 교수는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이군요.”
“그래. 좋은 아침일세. 아주 신이 난 모양이군? 웃음이 입가에 걸려 있는 걸 보니 말이야.”
그러면서 피식 웃는 백성웅 교수. 그도 긴장하긴 했지만, 아예 졸아있는 건 아닌 듯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김명현이 서 있었다. 마치 비서라도 된 것처럼 총장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2:2 구도가 만들어졌다.
“박 교수.”
“예. 총장님.”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정치질을 하면 쓰겠나? 연구업적을 쌓기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말이지.”
“정치질이 아닙니다. 고여서 썩기 시작한 물을 빼내는 숭고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손에 좀 더러운 것도 묻혀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민우는 웃으며 조곤조곤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