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티에 대한 호평은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무투브로 이어졌다. 리뷰어들이 하나둘 후기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한 것은 강의가 다양하고, 유익하며 모든 과정이 무상이라는 점이었다.
덕분에 휴머니티의 학장 서강일은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아야 했다.
평소보다 더 깔끔하게 갖춰 입은 서강일이 교수 연구실로 들어오자 민우가 놀리듯 물었다.
“오늘도 인터뷰냐?”
“어.”
“어디?”
“무투버 한 명, 신문기자 한 명.”
“왠지 그 신문기자 나도 아는 사람일 것 같은데.”
“맞아. 박윤지 기자.”
지금까지는 마이너 매체들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는데, 드디어 메이저 매체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려는 모양이다. 경한신문이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매체니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다.
“스타가 된 소감이 어때?”
민우가 영악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서강일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았다.
“얼떨떨하지. 솔직히 이렇게 빨리 반응이 올 줄은 몰랐거든.”
“좋은 거 혼자 먹으면 탈 나는 시대니까.”
“너도 인터뷰에 들어올래?”
민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왜?”
“설립자잖아.”
“엄밀히 따지면 설립자는 정 선생이지. 첫 제안자니까. 나는 그냥 중간에서 돌쇠 노릇 한 거밖에 없으니 저는 빼주십쇼.”
“어휴. 저걸 그냥.”
민우의 놀림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곧 기업에서 강연 요청도 들어올 거야. 휴머니티의 사업 모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은 거 같더라고. 설립 취지도 근사하잖아? 정부에서 상을 줄지도 모르지!”
“하……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네. 논문도 써야 하는데.”
“엄살은. 누가 들으면 대학원생인 줄 알겠다.”
두 사람은 키득거렸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논문의 압박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자리를 잡고 나서도 여전히 압박이 있었다.
“그런데 내부 취재 요청은 어떻게 할까? 1층이야 공용 공간이지만 그 이후는 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잖아.”
서강일이 물었고, 민우가 바로 답했다.
이미 고민을 끝낸 일이다.
“공개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그래야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배 아파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거 같은데 말이지.”
그렇게 대답하며 은근히 민우를 바라보는 서강일. 그 의미는 단순하다. 바로 명인대 교수들과 총장이 싫어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민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거 무서워했으면 시작하지도 않았어. 그냥 진행합시다.”
“안건으로 올릴 필요는 없나?”
“그 정도는 학장님 직권으로 하십쇼.”
“갈수록 짐을 떠미는 것 같은 느낌이군.”
민우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사실 민우 말고도 한진섭은 물론, 다른 멤버들도 결정을 미루는 타입이라 대부분 서강일이 결정해야 했다.
그때 노크가 들리더니 교수 연구실의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박윤지 기자가 해맑게 웃으며 인사했다. 민우와 서강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일찍 오셨네요?”
“제가 게으름피우는 사이에 다른 곳에서 인터뷰 따 가면 어쩌나 싶어서 좀 서둘렀어요.”
“이야, 여전하시네요. 좋은 의미로.”
민우가 한마디 던졌다.
“어머! 안녕하세요. 박민우 교수님.”
박윤지 기자가 민우 쪽으로 돌아서 인사했다. 교수님껜 볼일이 없어요. 이런 식으로 선을 딱 긋는 게, 왠지 놀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좀 어색하시죠? 제가 이렇게 찾아왔는데 박 교수님께 인터뷰를 따 가지 않으니까요.”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인터뷰 외에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서운하세요?”
“아니, 너무 노골적으로 뽑아 드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하하하. 다음에 그럼 차라도 한잔해요. 제가 대접할게요.”
민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켜보겠다는 의미였다.
서강일이 한쪽으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여기에서 인터뷰하면 박 선생이 방해할지도 모르니.”
“그럴까요?”
잘들 논다.
민우는 피식 웃으며 모니터에 집중했다. 차민재가 보내온 논문 파일을 열어 읽으면서도,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꼈다.
‘이렇게 일이 계속 잘 풀리면 강일이도 여기에 정착할 수 있겠지. 잘됐으면 좋겠다.’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친구 걱정을 하는 민우였다.
* * *
“어찌하는 게 좋겠나?”
총장실에는 무거운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간단한 내용이 인쇄된 종이 한 장을 든 백성웅 총장이 추궁하듯 질문을 던졌다.
김명현은 부정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지금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망할!”
백성웅 총장이 종이를 던지듯 떨어트렸다.
그것은 명인대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온 공문이었다. 서지훈 교수가 토론회 일정을 잡았으니, 해당 일정에 참석해서 토론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토론회까지는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시간이 부족함을 느꼈다.
“그때 서지훈 교수의 페이스에 넘어가신 게 패착입니다. 논리적인 부분이나 감성적인 부분에서도 총장님께서 상대하시기 어려운 자입니다.”
“지금 나를 탓하는 게야?”
“그럴 리가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그게 실력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주의하시라는 말씀입니다.”
김명현이 고개를 숙이자 백성웅 총장이 혀를 찼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마음 같아선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총동문회 정기총회로 돌아간다면, 서지훈 교수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큰 실수라 여기고 있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겠지. 하, 놈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전혀 감이 안 잡힌단 말이지.”
“이번 토론회는 무투브는 물론 교내 방송국에서도 생중계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백성웅 총장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자세히 이야기해 봐.”
“교내 문제만이 아니라 국내 대학이 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할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우리 대학과는 관계없는 사람들이 보고 동조할 수 있게끔 말이죠. 그런 프레임으로 토론을 이끌어갈 공산이 큽니다.”
“음.”
그럴듯한 접근이었다.
서지훈 교수는 물론 그의 제자인 민우도 대학 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게 무엇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자연스레 나왔다.
“강사법을 걸고넘어지겠군.”
“정확히 보셨습니다. 그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셔야 할 겁니다.”
“우리 대학의 처우가 어떻지? 시간강사들 말이야.”
백성웅 총장은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을 하고 말았다. 학교의 주인이라는 자가 강사를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김명현은 잔잔히 웃었다.
“강사료는 4년제 기준으로 평균에 해당하며, 강사 개인 연구실은 제공되지 않습니다. 기타 사항은 법령에 의거하여 진행되고 있지요. 대부분의 내용이 대학에 유리하게 세팅되어 있습니다.”
“좋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정리해서 올리도록.”
“알겠습니다.”
평균이라고 말하곤 있지만, 강사 입장에서 명인대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명성에 비해 대우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허술한 법을 교묘히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적어도 토론회를 진행할 때만큼은 말이다. 지금은 수세에 몰려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백성웅 총장이 말했다.
“내용을 보고 정책을 짜야겠어. 실현 가능한 범위를 추산해 봐. 가능하면 제언도 넣고 말이야.”
“말씀하신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남의 손으로 코를 풀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김명현은 선선히 받아들였다.
이번 토론회가 백성웅 총장은 물론 자신의 미래를 결정 짓는 분수령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