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페서-380화 (380/500)

문학상 심사위원회 (2)

레아 덕분에 목적지에 편하게 도착한 민우는 주차장에서 내렸다. 레아도 함께 내려 그에게 물었다.

“오늘 미팅 길어지시죠?”

“아마 그럴 거 같네요. 수상자 결정하는 자리니 두어 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기다리기 좀 뭐하시면 돌아가셔도 돼요. 들어갈 때는 버스 타면 되니까.”

민우가 배려했지만, 레아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거절했다.

“그럴 순 없죠. 비서로서 해야 할 일인데요. 근처 카페에서 책 읽고 있겠습니다. 볼일 다 끝나시면 연락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럴게요.”

민우와 레아는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레아는 1층에서 내렸고, 민우는 더 위층으로 올라갔다.

‘기왕 왔으니 인문사회팀 식구들하고 인사나 한번 하고 올라갈까?’

그간 들르지 못해 소원해지던 차였다.

인문사회팀의 주축으로 성장한 장철호와는 자주 만나긴 하지만, 다른 팀원들과는 거의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문사회팀은 민우의 제2의 고향이라고 해도 좋을 곳이다.

한창 어려울 때 연구원으로 일하며 정신적,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심한 민우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인문사회팀으로 들어갔다.

“어? 박 쌤!”

민우를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정은아 차장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대리였던 그녀는, 어느새 차근히 승진하여 차장 직급을 달고 있었다.

“박 쌤?”

“박 교수님이 오셨다고?”

넓고 쾌적하던 내부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앉아서 일하거나 책을 보고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 일어나 민우를 바라보았다.

“진짜 박 교수님이다!”

“오오오! 민우 씨! 어서 와요! 이게 무슨 일이야?”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민우에게 달려들었다. 민우는 깜짝 놀랐다.

‘누가 보면 연예인이라도 온 줄 알겠네.’

너무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의 환영 인사다.

하긴, 지금쯤 점심 먹고 졸릴 타이밍이니. 일하기 싫은 건 모든 직장인의 공통사항이겠지.

한편 한발 뒤에 물러서 있던 장철호 대리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휴머니티 활동으로 자주 보는 사이라 민우는 그에게 간단히 눈인사만 했다.

“다들 잘 지내셨어요?”

“그럼요! 박 교수님은 어쩐 일이에요?”

“오늘 문학상 관련 회의가 있거든요.”

“아! 맞다. 박민우 문학상 말이죠?”

직원 중 하나가 호들갑을 떨었다.

박민우 문학상은 지음사에서 전사적으로 제정한 문학상이라 다른 팀 직원들의 관심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특히 인문사회팀은 문학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국내 인문사회계 학술사업을 전담하는 팀이기 때문이다.

정은아 차장이 감탄을 내뱉었다.

“이야…… 정말! 햇병아리로 연구소에 들어올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교수가 되고 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네요. 세월 참 빠르다. 그쵸?”

“차장님도 그땐 대리였으니 진짜 세월 빠른 거죠.”

“민우 씨가 이렇게 큰 거 내 덕인 거 알라나 몰라?”

“그럼요! 잘 알죠.”

겸손하기만 했던 민우도 오랜만이라 그런지 절로 너스레가 나왔다.

모르는 직원들이 꽤 많이 늘었다.

막내였던 장철호가 대리급으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 밑으로 신입 직원들이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향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정은아 차장이 은근히 물었다.

“말로만 그러지 말고 한우라도 쏘라니까 그러네. 기왕 오늘 온 거 저녁에 회식이라도 할까요?”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역시 스케줄이 많아서…… 죄송해요. 다음에 모시겠습니다.”

“민우 씨한테 한 얘기 아니고, 민우 씨 카드한테 한 이야기인데?”

직원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민우도 낄낄거리며 신나게 웃었다.

“조만간 자리 한번 만들겠습니다. 어차피 철호 씨하고는 자주 만나니까 시간 괜찮을 때 연락드릴게요.”

“좋아요! 그날만을 기다리죠.”

인사를 나눈 민우는 즉시 출판기획실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의 회의실에서 미팅이 열릴 예정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고두열 차장이 민우를 발견하곤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박 교수님!”

“잘 지내셨죠?”

“그럼요. 잘 지냈습니다. 교수님은 여전히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신 겁니까?”

“약간 과장하면 죽지 못해서 살아있는 느낌이에요.”

“하하하하. 그 정도입니까? 오늘은 좀 일찍 보내드려야겠네요. 일단 안으로 가시죠. 자, 이쪽으로.”

민우는 고두열 차장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로 들어왔다. 미리 와 있던 사람들이 있어,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연배가 하나는 더 높아 보였다.

“안녕하세요. 박민우입니다.”

민우가 먼저 명함을 건넸다. 나머지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며 신분을 밝혔다.

“지음사 국제사업팀의 이병기입니다.”

민우는 명함을 받고 인사했다.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인 것 같네요. 잘 지내셨죠?”

“교수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교수님 책이 워낙 잘 팔려서 말이죠.”

“하하하. 다행이네요.”

이병기는 예전에 몇 번 본 적이 있어 낯이 익었다. 40대 중반이라고 들었는데, 국제사업팀에서 번역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고 들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중년의 여성이었다.

“최지연이예요. 작은 회사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 대표님. 잘 부탁드립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는데 뵙는 건 처음이네요.”

“제가 더 잘 부탁드려야죠.”

최지연은 담백하게 웃었다.

명함을 받아보니 ‘STARLEAF’라는 로고가 박혀 있었다. 아래 작은 글씨로 번역 에이전시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작은 회사라니……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에이전시 대표가 너무 겸손한 거 아닌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만 민우는 최지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스타리프’는 수많은 번역가들이 소속된 대형 에이전시다. 영어는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 등 어려 언어에 대한 경험을 갖추고 있다.

번역 에이전시는 단순히 소속 작가만으로 그 가치가 결정되지 않는다.

유니크한 언어를 신속하게 번역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번역에 대한 노하우를 쌓았는지가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국내 탑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최지연 대표는 산업계 전문가라서 심사위원으로 초빙된 모양이었다.

“박 교수님은 예전부터 꼭 모시고 싶은 인재였는데…… 실무진이 많이 아쉬워하더라고요.”

민우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프로페셔널한 번역가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번역 에이전시에서 눈독을 들이는 게 당연하다.

지금은 워낙 거물이 되어 에이전시가 접촉하지는 않지만, 신인 시절에는 실무자 선에서 오퍼를 굉장히 많이 받았었다.

지금은 출판사에서 직접 의뢰를 받아 작업하고 있다. 굳이 중간 다리를 거칠 필요가 없으니까.

“아아,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에이전시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네요.”

“그러지 말고 같이 해보시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고요?”

그러자 옆에 있던 이병기가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 저희 교수님 뺏어가시면 곤란합니다. 송승현 이사님이 가만 계시지 않을 거예요. 당장 회의실로 내려오실걸요?”

“어머, 뺏어가다니. 병기 씨 너무하시네. 그냥 농담으로 한 소리죠.”

최지연 대표가 능청스럽게 상황을 넘겼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농담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누가 들으면 지음사 전속인 줄 알겠다.’

민우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같이 일하자는 제안이야 워낙 많이 받는 거라, 이제는 거절에도 익숙해진 상황이다.

인사를 마칠 무렵 다른 심사위원들도 속속 회의실에 도착했다.

초빙된 인원은 민우를 포함해 모두 7명이었다. 대학교수도 있고 번역협회의 임원도 있었다. 거의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였다고 보면 좋았다.

하지만 그 별들 중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은 단연 민우였다.

상석에 앉은 그가 회의 시작을 선언했다.

“다들 모이신 것 같으니, 지금부터 번역 부문 수상자를 결정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전문가이시고 경험도 많으시니 기탄없는 의견 부탁드리겠습니다.”

멘트가 끝나자 서 있던 고두열 차장이 회의 자료를 나눠주었다.

부문별 수상 후보들이 적혀 있는 종이였다.

‘내가 매긴 점수는 반영이 안 됐네?’

하지만 자료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민우는, 처음에 메일로 받았던 리스트와는 살짝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점수가 반영된 거 같아. 묘하게 이름 순서가 바뀌어 있어.’

처음에는 가나다순으로 수상 후보군이 적혀 있었지만, 지금은 모종의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보낸 점수를 산출해 줄세우기를 한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고두열 차장이 설명해 주었다.

“지금 보시고 계신 리스트는 각 심사위원께서 보내신 점수를 합산하여 총점 순으로 나열한 것입니다. 공로상은 폭넓은 논의가 필요한 것 같아 집계에서 제외했습니다. 수상자 선정에 참고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자료 정리하느라 고생 많으셨네요.”

그렇게 대꾸한 민우는, 고두열 차장이 공로상 집계를 배제한 이유를 짐작했다.

‘아마 내가 김태현 씨를 선택해서 그랬겠지.’

다른 심사위원들과 의견이 너무 갈려서 자유 논의로 넣은 모양이었다. 내심 그의 배려가 고마웠다.

‘그건 일단 미뤄두고 신인상부터 정해보자.’

민우가 다시 서류에 시선을 고정했다.

신인상 수상 후보가 나와 있는 페이지의 첫 부분이었다. 순간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익숙한 이름이 1순위에 올라 있었다.

‘역시 다혜가 1순위야!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1순위로 뽑혔다는 것은 다른 심사위원들도 점수를 높게 줬다는 의미다.

총점이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2등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신인상 수상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3명이나 뽑는데 1순위를 넣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민우가 기세를 몰아 말했다.

“그럼 먼저 신인상부터 정해볼까요? 수상자가 가장 많으니, 신인상 정하고 그다음 공로상으로 넘어가시죠.”

“좋습니다.”

“우선 1순위로 이다혜 씨가 뽑혔습니다. 다들 좋은 점수를 주신 것 같네요. 실제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성과도 좋습니다. 흠결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흠결이라는 표현에 모든 심사위원의 시선이 민우를 향했다. 의외라는 표정으로.

“저와 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들 수 있겠네요. 개인적인 친분이 좀 있습니다.”

“하하하! 또 무슨 말씀이라고. 그건 괜찮습니다. 저도 이다혜 씨와 안면이 있는데요 뭘.”

“저도 가장 좋은 점수를 줬습니다. 이다혜 씨야말로 번역계에서 오래도록 이름이 남을 만한 가능성을 지닌 인재가 아닐까요?”

최지연 대표가 호평했고, 뒤이어 심사위원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대세가 기울었다. 민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종합했다.

“그럼 신인상엔 이다혜 씨를 확정하고, 나머지 두 분을 뽑아봅시다.”

나머지 두 수상자도 금방 정해졌다. 이견이 없이 1순위부터 3순위까지의 후보자가 수상자로 정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이다혜에게 연락해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싶지만, 꾹 참았다.

기다리는 재미라는 게 또 있으니까.

“그럼 다음으로 공로상 수상자를 결정하겠습니다. 후보자들이 많지 않은 만큼 다양하게 의견을 나눴으면 좋겠네요. 우선 저는…….”

심사위원들이 하나둘 민우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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