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페서-376화 (376/500)

명인대학교 총동문회 (3)

“살벌한 질문이다.”

그렇게 운을 뗀 건 민우도, 이태하 이사장도 아니었다. 두어 발 물러서 있던 이재환이 한 말이었다.

그는 평소 가까이 지내던 최민식, 강예진과 함께 있었다.

당연히 서지훈 교수와도 가까운 사이라 이 세 사람은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살벌한 것 이상이네요. 뭔가 브레이크가 망가진 거 같은 느낌도 들고.”

“그렇다고 이사장님 오셨다고 꼬리 흔들면서 접대하는 것도 웃기잖아요? 분위기상 다 들이받아야 맞는 거 아닌가.”

최민식의 말을 강예진이 받았다.

“뭘 들이받아?”

그때 뒤에서 책망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소름이 오싹 돋는 느낌에 돌아선 강예진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말은 가려서 해라. 크흠! 괜히 엉뚱한 거 배우지 말고.”

“서, 선생님. 언제 오셨어요?”

“방금 왔다.”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바로 민영환 교수였다.

그는 와인을 홀짝이며 서지훈 교수가 있는 곳을 바라보는 중이다. 엉겁결에 나머지 두 사람도 민영환 교수에게 인사했다.

인사를 받는 대신 민영환 교수가 대뜸 중얼거렸다.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된 게야.”

“돌이킬 수 없다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최민식이 물었고, 민영환 교수는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총장으로 선출되지 못하면 그 뒤는 없다 이거지. 서지훈 선생도 배수의 진을 친 거라고 할까.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는 셈이지. 지금이 아니면 더는 기회가 없다고 판단한 게 분명해.”

“기회라고 하시면…….”

“왜 순진한 척을 하나? 다들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세 사람의 눈이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움직였다. 그곳엔 민우가 있었다.

“서지훈 선생은 온몸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게야. 대학을 바꾸려는 것 이면에…… 어떠한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박 선생을 위해서요?”

“글쎄? 그건 너무 도식적이지 않을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설마, 하는 말이 강예진의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가장 먼저 그 진실을 깨달은 것은 바로 그녀였다.

“설마…… 우리 모두를 위해서요?”

“당연한 걸 뭘 그렇게 물어?”

꾸짖듯 말한 민영환 교수가 코를 씰룩였다. 손으로 인중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도 그렇고 박 선생도 제자를 기르는 입장이 아니더냐. 결국, 부끄러운 선생이 되지 말라는 그런 의미겠지. 솔직히 말해서 밥그릇 정도는 걸어야 좀 흥미진진한 싸움이 되지 않겠나? 지금은 너도나도 투쟁했던 80년대가 아니니 밥그릇의 무게 자체가 다르지.”

피식 웃은 민영환 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못 말리겠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민영환 선생님이 저렇게 말씀하시긴 하지만…….”

“당신께서도 하기 힘든 일을 해내고 있다는 어떤 경외감 같은 게 투박하게 표현된 느낌이네요.”

이재환이 말했고, 최민식이 그 말의 마지막을 이었다.

완벽한 해설이다.

적어도 강예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그 해설이 필요한 사람은 바로 민우였다.

그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서지훈 교수가 이태하 이사장에게 던진 그 질문. 엄청난 질문이라고만 하기엔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감정적인데. 혹시 뭔가 사연이 있는 질문이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서지훈 교수가 대뜸 그런 말을 꺼낼 리가 없다.

또한 이태하 이사장이 예상했다는 듯 저런 표정을 지을 일도 없다.

민우는 잠시 상황을 관조하기로 했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지금은 세상에 없는 그 친구가 가끔 나에게 묻던 말이기도 하지…… 후후.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버렸나.”

이태하 이사장이 토로하듯 말했다.

민우는 잘 모르고 있지만, 실제로 사연이 있는 질문이었다.

그 시작은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태하 이사장과 송현우 교수는 명인대에서 동문수학하던 사이다.

학과는 달랐지만 두 사람은 마음이 잘 맞았다.

그리고 사이가 깊어져 서로에 대해 많이 알 수 있게 되었을 때, 송현우 교수가 대뜸 물었던 그때의 질문이기도 했다.

“교육이냐, 돈이냐.”

시간이 흐르고 송현우 교수는 선생이 되었다. 그리고 이태하 이사장은 교육행정가가 되었다.

전자와 후자로 분명히 나눠진 것이다.

누가 옳았을까.

이태하 이사장의 표정은 딱 그랬다. 이제는 그 누구도 결론을 내려줄 수 없다는, 약간의 회한이 담긴 그런 표정.

“만약 옛 친구가 살아있다면 결론을 낼 수 있을 텐데 말이지. 애석한 일이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통 모르겠는데요.”

서지훈 교수는, 그냥 모른 척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해하지 않아도 돼. 그냥 생각난 김에 옛날이야기를 좀 해본 거니.”

“흘러간 옛 추억의 이야기를 꺼내 무엇하겠습니까. 우리가 걸어온 자취를 살펴야겠지요. 분명 올바른 길은 아니었습니다. 굳이 제가 꼬집지 않아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하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만.”

독대하는 자리도 아니었는데 서지훈 교수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백성웅 총장이 한 방 얻어맞고 돌아간 이후로 사람들이 많이 흩어졌지만, 그래도 몇몇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외진 곳이라 이목이 그리 끌리지 않는다는 것.

“정말 독하게 마음먹고 나온 모양이군.”

“그건 제가 드린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이 아닌 줄 압니다.”

“나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문제일세. 그러니 자네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군. 자네가 말한, 우리가 걸어온 자취야말로 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게 아니겠나?”

“피하시는 겁니까?”

“편한 대로 생각하시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하 이사장은 그저 웃기만 했다. 궁지에 몰려서가 아니었다. 진정으로 여유 넘치는 미소였다.

“자네가 총장 선거에 입후보했다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었지. 내가 아는 서지훈 교수라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런 일을 하지 않을 테니까.”

“지금이 아니라면 또 언제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으니까요.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지요.”

“마지막이라…… 그래. 그렇지. 자네는 여전히 거침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아.”

이태하 이사장이 뒷짐을 졌다. 그리고 한 걸음, 두 걸음 내디디며 서지훈 교수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넌지시 말했다.

“선전을 기원하겠네.”

그 한마디를 남기고 이태하 이사장은 서지훈 교수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뒤를 졸졸 따랐다.

민우가 서지훈 교수의 곁으로 다가갔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후우.”

한숨을 내쉰 서지훈 교수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피로감이 가득했다.

“너무 무리했나? 백 총장을 상대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었는데 말이지. 이사장이 나타나니 나도 모르게 흥분해버린 모양이야. 젠장.”

“그래도 속은 좀 시원하시죠?”

“그래 보이냐?”

“엄청요. 재단에 쌓인 거 많으셨잖아요.”

서지훈 교수가 씁쓸히 웃었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 시원히 했으니 속은 후련하지 않냐는 말이었다. 반박하지 않는 건 민우가 제대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 무대 위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바쁘신 와중에 찾아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지금부터, 명인대 총동문회 정기총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민우의 눈이 반짝였다.

서지훈 교수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자신이 무대에 오를 차례였다.

그것을 눈치챈 서지훈 교수가 넌지시 충고했다.

“괜히 딴생각하지 마라. 아직은 때가 아니야.”

“언제는 때 보고 일했습니까? 하고 싶을 때 질러야죠. 그래야 후회가 안 남아요.”

“너도 참 피곤한 스타일이다.”

“그 말 그대로 돌려드려야겠는데요?”

두 사제가 웃음을 터트렸다.

* * *

이태하 이사장과 명인대 총동문회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본식이 시작되었다.

명인대 동문회는 동문 중 특별한 공로나 업적을 세운 사람들에게 연설권을 준다. 음료와 간식, 혹은 가벼운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다음엔 자유롭게 사교를 펼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단순히 동창회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내 최고의 대학인만큼, 재벌 총수나 그의 자제들, 또한 사회에서 굵직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리고 지금 무대 아래서 올라갈 준비를 하는 민우도 바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다음으로는 특별한 손님을 모셨는데요. 정말이지 아주 어렵게 모셨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박민우 동문입니다! 박수로 환영해 주시죠!”

적지 않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민우는 환하게 웃으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사회자에게 인사하며 마이크를 받았다. 늘 그렇듯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박민우입니다. 아, 정말 죄송해요. 인사가 너무 늦은 것 같네요. 진작 나와서 얼굴을 비추고 인사도 드리고 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능청스럽게 미소를 짓는다. 이미 화제는 전환되고 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얼마 전에 학회를 하나 개최했어요. 작지만 아주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지금까지 학회는 소위 말하는 학자들의 전유물이었죠. 하지만 저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었고, 나름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지만요.”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사람들은 민우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점차 빠져들고 있었다.

“그건 우리 대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대학은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요. 실제로 총장 선거를 앞두고 여러모로 말들이 많지요.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 큰 변화를 앞두면 시끄러운 법이잖아요.”

민우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 자리엔 휴머니티 멤버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었다.

조금 더 힘이 나는 느낌이다.

“제가 평소 존경하는 스승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교직원이 아니라 학생들이 주역이 되는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고요. 저는 그 말을 꼭 이 자리에서 인용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그렇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네요.”

민우가 평소 존경하는 스승은 단 한 사람밖에 없다.

그 사람은 연단을 올려다보며 웃고 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방금 충고해줬건만, 그 충고를 가볍게 물리치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다.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서지훈 교수는 긍정했다.

그것이 제자가 지금까지, 그리고 여기까지 걸어온 방식이었으니까.

“여러분들께서도 힘을 보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제 스승님의 뜻을 따라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역시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네요. 우리 후배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주세요.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마침 그때 얼굴을 붉힌 채 이쪽을 무섭게 노려보는 백성웅 총장의 모습이 보였다. 한계치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민우는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여러분의 시간은 소중하니까 이만 줄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더 말씀 나누고 싶은 분들은 저를 찾아주세요. 오늘은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이상 박민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민우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금의 연설이 어떤 반향을 불러올지는 미지수였지만, 하나의 즐거움이 된 것은 분명하다.

마치 로또를 품에 넣고 토요일 밤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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