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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서-341화 (341/500)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있다 (2)

그 시각, 명인대 총장실에서도 인문학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백성웅 총장과 김명현이었다.

김명현은 이번 지원자와 관련된 통계자료와 성과 등을 정리하여 브리핑했다.

“이번 수강생 모집은 그간 명인대에서 추진했던 그 어떤 수익형 교육사업보다 만족스러운 성과를 냈다고 자부합니다.”

“음, 좋아. 아주 좋아! 정확히 1시간 41분 만에 200명 정원이 찼군.”

“이후에 수강 포기자들이 나오긴 했지만 예비등록 시스템을 만들어 둔 덕에 바로 빈 자리를 메울 수 있었습니다.”

백성웅 총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교양학부 인문학 프로그램은 한 학기에 등록금이 100만 원이다. 여기에 200명이 등록했으니, 총 등록금만 해도 2억 원이 되는 것이다.

“총 등록금은 2억 원, 운영비나 교수 수당을 제한다고 해도 대학은 한 학기에 1억 이상을 버는 셈입니다.”

“큰 금액은 아니야.”

“물론입니다. 하지만 순익이 총 매출의 50퍼센트가 넘는 사업은 어디든 찾기 힘들죠.”

두 눈을 빛낸 김명현이 자신의 야심을 드러냈다.

“이 사업을 고도화해서 동일한 모델로 각종 수익형 프로그램을 만들면 재정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총장님의 앞길도 더욱 밝아지겠죠.”

“내 총장직 연임은 자네의 두 손에 달린 거나 다름이 없어. 그러니 최선을 다해주게.”

“맡겨 주십시오.”

두 사람이 씨익 웃으며 차를 홀짝였다. 잠시간의 침묵 후, 문득 궁금한 것이 떠오른 총장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런데 박 교수의 휴머니티 쪽은 어떤가? 요즘 조용한 것 같던데. 그쪽도 접수 마감되지 않았나?”

“마감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한 데이터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제 예상에는…… 아마 정원 이상의 지원자가 몰렸을 겁니다.”

“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인문학에 갈증이 있었던가?”

약간 비웃는 것 같은 어조였다. 한편으로는 현실을 잘 짚은 한마디이기도 했다. 총장의 말에 김명현도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요. 우리 대학의 프로그램은 이미 취업 커뮤니티나 인터넷 카페에 많이 소개가 됐습니다. 지원자들이 하나의 스펙으로 인식하기 시작해서, 이렇게 단기간에 접수가 마감된 거지요.”

“그럼 박 교수 쪽은?”

“공짜니까요.”

그렇게 한마디 꺼낸 김명현은 두 팔을 벌리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현대사회에서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건 굉장히 큰 메리트가 됩니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이 있던가요?”

총장이 낮은 신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무료냐 유료냐. 이것이 두 집단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었다.

“그쪽도 평일 저녁과 토요일에 강의가 있지?”

“예. 우리 프로그램과 거의 동일합니다. 따라서 중복 지원자는 없을 겁니다.”

“으음.”

교양학부 인문학 프로그램이나 휴머니티나 단발성 강의가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도 매 학기 지원자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그런 상황이니 백성웅 총장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전망은 어떨 거라고 생각하나? 휴머니티 말이야.”

“확실히 경계해야 할 부분은 많습니다.”

그 말에 백성웅 총장이 미간을 좁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었다. 김명현도 그 표정을 읽었으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휴머니티는 대어를 물었습니다. 정연주 이사장과 대한그룹이라는 막강한 배후가 있는 이상 쉽게 무너지지 않겠죠. 거기에 강사진들도 쟁쟁하지요. 소문으로는 이번에 프랑스 쪽에서 석학을 초빙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우리가 그냥 손 놓고 있어야 한다는 게야?”

“아닙니다. 조금 관점을 달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관점?”

김명현은, 얼마 전 민우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그 말이 뇌리에서 다시 살아나자 김명현은 피식 웃었다.

여전히 그는 민우의 말이 위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박 교수팀은 큰 의미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 파이를 갉아먹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죠. 하지만 그런 페이스에 말려든다면 우리의 수익성은 바닥을 칠 게 분명합니다. 우리는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대로 마이웨이를 해야 한다?”

“맞습니다. 명인대라는 이름의 프리미엄과 커리큘럼의 전문성, 그리고 명인대의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여 제2의 대학, 혹은 대학을 대체할 만한 기관을 만드는 걸 목표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김명현이 그간 품고 있었던 계획이 일부 공개되었다.

“고졸자에겐 대학 생활을 간접 경험하게 해주고, 대졸자에겐 또 다른 과정의 느낌을 주는 겁니다. 특별한 자격증처럼 말이죠.”

“특별한 자격증이라…… 하지만 대졸자들은 대학원이라는 코스가 있지 않나?”

“맞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학위를 따는 것은 여러모로 낭비가 심합니다. 시간은 물론이고 학비도 무시할 수 없지요.”

“그렇긴 하지.”

“그 상황에서 우리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에게 일종의 프리미엄이 주어진다면 어떨까요? 가뜩이나 스펙 경쟁이 과열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우리 프로그램을 주목하겠군.”

문득 백성웅 총장의 머릿속에 근사한 미래가 그려졌다. 국내의 고졸 및 대졸 학생들을 하나의 커리큘럼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대학이라는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취업 사관학교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이지만,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도태되는 것이다.

백성웅 총장은, 적어도 고등교육계에서만큼은 최고가 되고 싶었다.

그것은 김명현도 마찬가지.

“엄청난 수익 사업이 될 수도 있겠어.”

“제대로 보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에 낸 성과에 만족하면 안 됩니다. 다음엔 두 배로, 그다음엔 네 배로 점차 늘려가야지요.”

김명현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공적을 깎아내렸고, 그 전략은 주효했다. 백성웅 총장이 속으로 그를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것.

그가 부드러워진 어조로 물었다.

“다음 프로그램은 어떤 걸로 기획하고 있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보다 인문학 프로그램의 볼륨을 키우는 방향으로 기획 중입니다. 다른 분야와 융합한다면 굳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볼륨이 커집니다.”

“그렇군.”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박민우 교수팀 문제는 크게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왜지?”

“크고 작은 문제들이 쏟아질 겁니다.”

그렇게 운을 뗀 김명현은 마치 미래에서 온 사람처럼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현대사회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으로 형성됩니다. 좋게 말하면 호혜적 관계지요. 하지만 적어도 휴머니티는 그러한 법칙에서 어긋납니다.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퍼주는 관계는 건강할 수 없습니다. 오래가지 못하죠.”

“그렇다는 건…… 자네는 휴머니티가 스스로 무너질 거라고 판단한다는 건가?”

“어떨까요? 같이 한번 지켜보시죠.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 겁니다.”

“하긴, 불구경만큼 재미있는 게 또 있던가?”

“하하하.”

김명현과 백성웅 총장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밀실 회의는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

주말이 찾아왔다.

토요일 오후 느지막이 집에서 나온 민우와 이수빈은 팀 307호 회합이 열리는 정연주의 오피스텔로 이동했다.

“근데 진짜 팀장직 넘길 생각이에요?”

이수빈이 물었다. 민우는 운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런 건 돌아가면서 해야 제격이야. 그런데 갑자기 왜?”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 팀이 모이게 된 이유가 바로 오빠잖아요. 오빠가 구심점이 되어 팀이 돌아가는 건데, 오빠가 빠지고 다른 사람이 구심점에 들어오면 좀 어색할 거 같아서.”

민우는 힐끗 이수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창밖의 하늘처럼 그렇게 밝지 않았다.

“걱정되는 거야?”

“아무래도 좀.”

“내가 중심을 잡지 않아도 서로 잘 지내는데 뭐. 내가 아래로 내려온다고 삐걱거릴 팀이었다면 애초에 불협화음이 나왔을 거야.”

“그때랑 지금이랑 좀 다르잖아요. 그때는 다들 열심히 공부만 하는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이수빈은 민우가 누구에게 팀장 자리를 넘길지 예감하고 있었다.

민우는 씨익 웃었다.

곧 신호가 바뀌고 차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좀 다르게 보고 있어.”

이수빈이 조심스레 고개를 옆쪽으로 돌렸다. 전방을 주시하는 민우의 눈은 흔들림 없이 굳건했다.

“나를 믿고 우리 팀에 들어온 사람들이야. 내가 그 사람들을 믿지 못하면 누굴 믿을까? 그리고 그 녀석이라면 잘 해낼 거야. 지금은 조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저력이 있는 사람이니까.”

곧 차가 오피스텔 주차장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민우와 이수빈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초인종을 눌렀다.

곧 문이 열리고, 편한 복장을 한 정연주가 웃으며 두 사람을 맞았다.

“어서 오세요.”

“벌써 신났냐?”

“어머, 그렇게 보여요?”

정연주가 뺨을 어루만지며 너스레를 떨었고, 민우와 이수빈이 웃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일을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 보였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하지은이었다.

“하 작가. 오랜만이다?”

“그러게. 수빈 언니도 오랜만이에요.”

민우와 이수빈은 한쪽 자리에 앉았다. 곧 정연주가 차와 간단히 마실 것을 내왔다.

민우가 은근히 놀리듯 말했다.

“근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강의한다고 한 거야? 여기저기 놀러 다니느라 바쁜 사람이.”

“서운하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셔. 나도 다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고.”

“솔직하지 못하네. 집에서 한 소리 들었지?”

민우의 일침에 하지은이 입을 씰룩였다. 정곡을 찔린 것 같다.

하지은도 명일그룹이라는 글로벌 기업의 일원이다. 대한그룹과 라이벌 구도를 구축하고 있지만, 두 집안의 사이는 가까운 편이다.

당연히 동갑내기인 손녀들의 행보가 세간에 오르내리지 않을 수 없는 일.

“그래! 뭐! 옆집 연주는 좋은 일 많이 하는데 넌 집구석에서 뭐 하고 있냐고 한 소리 들었다! 됐어? 이제 후련해?”

“응. 아~ 주 후련해.”

“어휴, 하여간 밉상이라니까. 언니는 이런 사람이 뭐가 좋다고 같이 살아요?”

“하하하하.”

이수빈이 배를 잡고 웃었다.

세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김에 근황을 공유하며 잡담을 나눴다.

그러는 사이 한진섭과 주예린 커플을 비롯해 팀 307호 멤버들이 속속 도착했다.

“다들 모인 것 같은데. 슬슬 회의 시작합시다.”

민우가 운을 띄웠고, 다들 각자 적을 것을 준비해 귀를 기울였다.

“우선 소식을 들은 사람도 있겠지만…… 팀 이름을 바꾸려고 해. 휴머니티로. 이의 있는 사람? 혹은 다른 좋은 이름이 있다면 추천도 받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다들 ‘휴머니티’를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좋아. 그럼 앞으로 우리 팀 이름은 휴머니티를 쓰는 걸로. 이름이 바뀌었으니 팀장도 바꿔야지?”

“예?”

“무슨 소리야?”

정연주와 장철호가 거의 동시에 물었다. 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한진섭과 주예린이 소문을 내지 않은 것 같다.

“말 그대로야. 팀장에서 물러나겠다고. 대신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민우의 말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곧, 민우가 그 사람을 지목했다.

“강일이 네가 앞으로 우리 팀을 이끌어 가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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