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페서-324화 (324/500)

언론 플레이 (2)

다음 날, 연구실에 들어온 민우는 컴퓨터를 켜자마자 경한신문 인터넷판을 확인했다.

박윤지 기자의 말대로 어제 인터뷰한 내용이 교육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생각보다 준비를 많이 한 기사였구나.’

어제 인터뷰하지 않은 내용도 들어가 있는 걸로 봐선 사전 취재가 철저히 이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 명인대, 인문학 프로그램 ‘독단’ 물의

― ‘노벨상 수상자’ 박민우 교수 등 특급 교수층 배제

― 누구를 위한 인문학 강의인가?

노골적인 카피가 실렸지만, 민우는 딱히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인터넷 기사의 제목이 자극적인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기사 내용 중 사실이 아닌 부분은 없었다.

교양학부에서 독자적으로 인문학 프로그램을 신설했고, 그 와중에 국문과 교수들과의 교감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핵심.

그리고 교양학부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국문과의 협조를 구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라는 대학 당국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었다.

‘남 탓으로 돌리는 거야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대학은 다른 기관과는 조금 다르게 학과나 학부 단위의 독자적인 운용이 가능하다. 전문성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처럼 교양학부의 자체 프로그램이라는 말을 해버린다면 딱히 반론할 여지가 없어진다.

이것이 총장실과 교육개발실의 합작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알지만 대놓고 항의할 수 없는 이유다.

‘괜찮아. 이 정도로 충분해.’

취재가 심층까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기사는 전에도 몇 번 나왔던 의혹 제기 기사와 큰 틀에서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은, 언론 플레이로 번지는 걸 원하지 않아서였다.

민우는 스크롤을 내려 댓글을 살폈다.

└ 박민우 교수 의문의 1패

└ 언제까지 박민우 타령만 할 건데? 명인대에 무능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명인대면 세계적인 대학인데 다른 교수들은 손 빨고 있어야 하냐?

└ 윗댓 얼척없네 ㅋㅋㅋ 노벨문학상이 옆집 개이름이냐? 시벌거 노벨상 수상자 특강도 제대로 안 해주는 꼴통 대학이 무슨 명문대야

└ 네 다음 지잡대~

댓글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그래도 모두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우 말고 다른 교수들도 능력이 좋다는 의견도 그랬고, 민우의 강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랬다.

표현은 격하게 하고 있지만 크게 볼 때 저런 두 의견이 댓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나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네.’

평소라면 알바거나 음해세력일 거야, 라며 흘려보냈겠지만 왠지 마음이 쑤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감내해야 할 일이야.’

민우는 입안이 씁쓸해지는 것을 느끼며 뒤로가기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익숙한 사람의 사진이 페이지 구석에 떴다.

바로 김명현의 인터뷰 기사였다.

관심이 생긴 민우는 그 기사를 클릭했다. 타이틀을 보니 이번 교양학부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 기사인 것 같았다.

‘역시 교육공학을 전공한 명문대 출신이라 이건가.’

소파에 앉아 자신 있게 의견을 피력하는 김명현의 모습이 보인다.

민우는 기사를 정독했다.

내용이 김명현의 손을 거쳐 다듬어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광고 같은 느낌이 진했다.

민우는 내부 문건이 아니라 외부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인문학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학기제로 운영되며, 프로그램에서 일정 자격을 갖춘 사람은 수료증이 나간다고 한다. 취업이나 다른 영역에서 좋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김명현의 코멘트가 달려 있었다.

‘제대로 해 먹으려나 보네. 수료증이 걸린 일이라면 너도나도 등록해서 수료증을 따려고 할 텐데…….’

바로 김명현이 한 말에 힌트가 있다.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

최근 취업 시장에서 인문학의 가치가 상당히 올라갔다. 그래서 이과생들도 교양으로 인문학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에서 취업에 도움이 된다 하면 일단은 따고 보는 풍조가 있으니, 졸업예정자나 취업전선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너도나도 등록할 게 분명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명인대는 국내 최고의 대학이니까.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슈가 될 게 분명했다.

문득 민우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

물론 일전에 이수빈이 말한 대로 희망을 얻은 사람도, 웃음을 되찾은 사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큰 틀의 세상은 여전히 삶에 찌들어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뇌리를 때렸다.

그렇다고 민우는 좌절하지 않았다.

인문학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래도 먹고 사는 문제는 왜 생기는지, 그리고 그런 문제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힌트를 줄 수는 있다.

민우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아직 인생의 절반 정도만 왔을 뿐이다. 걸어온 길보다 가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았다.

‘쉽지 않은 경쟁이 되겠어. 그래도 내 길을 찾아야지.’

민우는 굳게 다짐하며 인터넷 창을 껐다.

그때 밖에서 노크가 들렸다. 민우가 들어오라고 말하니, 정장을 입은 사람이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어서 오세요.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죠?”

기자 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명인대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그래서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졌다. 대학본부 직원인 것 같다.

“홍보과에서 나왔습니다. 홍보과장 이기욱입니다.”

“아, 과장님. 안녕하세요.”

뜻밖의 손님이었지만 두 사람은 정중히 악수했다. 이기욱 과장은 명함을 꺼내 민우에게 건넸다.

민우는 그를 자리로 안내했다.

“과장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하하하, 인사도 드릴 겸 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네요.”

“전화를 먼저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아, 죄송합니다. 마침 지나가던 길이여서, 안에 계신 것 같아서 노크해 봤습니다.”

이기욱 과장은 손바닥을 비비며 민우의 눈치를 살폈다. 좀 불편해하는 기색이라, 민우가 말했다.

“괜찮으니 편하게 말씀하셨으면 좋겠네요.”

“아, 그럴까요. 그…… 다른 게 아니고, 오늘 경한신문 기사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안 그래도 어제 기자가 인터뷰를 따갔거든요.”

“그러셨군요.”

대학 홍보과는 대학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광고 홍보는 물론 언론과 미디어까지 관리하는 부서다. 신문기사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면 뒷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그래도 기사에 제 이름이 들어가진 않았을 텐데, 이렇게 잘 알고 찾아오셨네요.”

“하하하. 딱히 그 기사가 문제 된다고 해서 찾아온 건 아닙니다. 그게 뭐랄까…… 앞으로 좀 미디어 대응 방향에 대해서 조언을 좀 드리고 싶어서.”

“조언이요?”

“아무래도 우리 대학이 규모가 좀 크지 않습니까. 세계적인 명문대로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라 매스컴 대응도 체계적으로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님은 세계적인 석학이시기도 하니까, 이번 기회에 좀 설명을 드리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민우는 잠자코 있었다. 이게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애써 설명을 해주러 여기까지 온 사람인데 한번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일단 홍보과에서 작성한 매스컴 대응 매뉴얼이 있습니다. 앞으로 매스컴과 접촉하실 때 매뉴얼대로 대응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건 좀 곤란한데요. 매뉴얼대로 대응한다면 굳이 기자들이 찾아오게 할 필요 없잖습니까? 그냥 홍보과로 가서 매뉴얼을 읽게 하면 될 것 같은데.”

“하하하……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속 편하게 어느 부분에서 조심하면 되는지만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군요. 그럼 제가 좀 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난처한 표정을 지은 이기욱 과장이 조심스레 운을 뗐다.

“일단, 교양학부 프로그램 건은 당분간 조심해 주시는 게 어떨지요.”

“이유는요?”

“국문과와 교양학부 사이가 틀어지는 걸 원치 않으십니다.”

“총장님이 말이죠?”

“맞습니다.”

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유를 댔다면 모를까, 구성원 사이의 불화를 걱정한다면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일반적으로 사립대학은 언론에 노출되는 걸 꺼린다.

그만큼 비리로 얼룩진 곳이기 때문이다.

명인대가 국내 최고대학이긴 해도, 과거에 몇 번 재단의 부정행위가 문제 된 적이 있었다. 그러니 조심할 수밖에 없을 거다.

민우가 말했다.

“저도 어제 인터뷰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거라서요. 보셨으니까 아시겠지만 사실 별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채널에서 들은 이야기를 많이 써놨더라고요.”

“그렇군요.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매스컴 대응 매뉴얼은 문서화된 게 있다면 제 메일로 좀 부탁합니다. 읽어보고 참고할 내용은 참고하지요.”

“아,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돌아가는 대로 즉시 보내겠습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홍보과장 이기욱은 꾸벅 인사하고는 연구실을 나섰다.

자리로 돌아온 민우는 의자를 뒤로 젖혀 편히 기댔다.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

교양학부 프로그램 건이 경한신문에 언급된 그 날로부터 이틀 후, 제임스 사장이 한국에 도착했다.

민우는 짬을 내 인천공항까지 마중을 나갔다. 그 옆은 레아가 지켰다.

잠시 후 게이트를 나서는 제임스 사장의 모습이 보였다.

「제임스 씨!」

민우가 외치며 손을 흔들자 제임스 사장이 환한 미소와 함께 이쪽으로 카트를 몰았다.

「오랜만이군요. 프로페서! 잘 지냈습니까? 살이 좀 더 찐 거 같기도 한데요.」

「운동 부족이죠 뭐. 제임스 씨는 어떠십니까? 사업 수완이 대단하다는 소문이 명인대까지 들려 오더군요.」

「하하하. 말도 마세요! 이렇게나 매출에 신경을 쓰는 자리였다면 진즉에 거절했을 겁니다. 그냥 비행기 타고 세계 이곳저곳을 쏘다닐 그때가 좋았어요.」

그때 옆에 있던 레아가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제임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손을 흔든다.

「레아도 잘 지냈나? 표정이 왜 그래? 허리케인이라도 불어닥치겠군.」

「제게 할 말 없으신가요?」

「더 예뻐졌다는 말?」

레아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칭찬이 싫진 않은 모양이다. 민우는 옆에서 큭큭거리며 웃었다.

「말 돌리지 말고요. 누구 덕분에 고생길이 열릴 뻔했는데 은근슬쩍 넘어가시려고 하네.」

「무슨 이야기야.」

「제 부임 소식 매니저님께 전달 안 하셨더라고요?」

그제야 씨익 웃는 제임스 마렛.

「서프라이즈한 만남이 오래가는 법이지. 두 사람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내가 신경 써 준 건데 그게 불만이라고?」

「말이나 못 하면 몰라.」

「어허, 사장한테 그건 너무한 거 아닌가?」

제임스 사장의 짐을 받아든 레아는 묵묵히 카트를 끌기 시작했다. 민우가 손을 내밀며 안내했다.

「차를 가져왔습니다. 호텔까지 모셔다 드리죠.」

「프로페서의 환대를 받으니 피로가 날아가는 것 같군요. 차에서 나눌 이야기가 많습니다. 어서 갑시다!」

레아가 앞장섰고, 민우는 제임스 사장과 함께 공항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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