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페서-302화 (302/500)

이름의 가치 (1)

“그럼 무슨 일 때문에…….”

“지음사에서 아주 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큰 프로젝트요?”

민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음사의 소식은 팀 307호 멤버이자 지음사 인문사회팀에서 일하는 장철호를 통해 자주 듣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들은 특별한 소식은 없었다.

“어떤 일인지 궁금하네요. 이사님이 직접 여기까지 오셔서 말씀하실 정도면.”

“아마 짐작도 못 할걸요?”

“나도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귀가 어떻게 된 줄 알았다니까. 승현이가 일적으론 저돌적인 면모가 있지만 그렇게 크게 벌일 줄은 몰랐지.”

“…….”

서지훈 교수까지 그렇게 나서자 민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은사는 다소 걱정되긴 하지만 기대된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경험을 쌓았지만, 뭔가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려 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곧 송승현 이사가 말했다.

“안 그래도 비밀리에 남편하고 이야기를 좀 해봤거든요. 다소 우려스럽기는 해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고…… 돌려 말하진 않을게요. 지음사에서는 전사적인 차원에서 ‘문학상’을 준비하고 있어요. ”

“문학상이요? 혹시 심사위원이나 그런 걸 맡기시려고…….”

“고작 그 정도로 대단한 일이라고 하겠어요? 연차가 있는 교수라면 누구나 심사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럼요?”

한번 서지훈 교수와 눈을 마주친 송승현 이사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문학상을 제정할 겁니다. 가칭 ‘박민우 문학상’을 준비하고 있어요.”

“네에?”

민우는 화들짝 놀랐다.

분명 자신의 이름이 나온 것 같은데, 뒤에 나오는 ‘문학상’이라는 명사가 붙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누군가의 이름이 붙는 상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다. 노벨상이나 필즈상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민우는 자신의 이름이 문학상 앞에 들어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게다가 중소규모 출판사도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지음사’가 아닌가.

결국 민우의 생각은 이렇게 정리되었다.

‘혹시 나랑 이름이 같은 어떤 문인을 기리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업적을 기리는 문학상이 탄생할 수가 없으니까.

“부끄러운 말씀이긴 한데…… 혹시 박민우라는 문인이 있었을까요? 교수나 되어 가지고 처음 듣는 이름이라서요.”

“당연히 있죠. 그러니 그런 이름이 붙었지.”

“그렇군요. 어떤 작품을 썼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잘 몰라서.”

그렇게 말하자 서지훈 교수가 피식 웃었고, 송승현 이사도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손을 들어 민우를 가리켰다.

“여기에 있잖아요. <존재와 영혼의 형식>을 발굴하고, <프로페서>로 세계적인 문예인이 된 바로 그 사람. 명인대학교 국문과 박민우 교수.”

“…….”

정신을 차린 민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급기야는 연구실의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책이 잔뜩 쌓여 있는 책상과 냉장고 뒤편, 그리고 테이블 밑을 꼼꼼히 살폈다.

서지훈 교수가 물었다.

“뭐 해?”

“이거 몰래카메라 아닙니까? 어딘가 카메라가 숨겨져 있을 거 같은데.”

“하하하하!”

두 부부는 실컷 웃었다.

하지만 민우로서는 그럴 만도 했다. TV 출연도 자주 하는 편이었고, 그만큼 미디어에 노출이 되다 보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한국을 대표하는 톱스타 허윤의 최측근이다. 카메라 몇 대 설치한다고 이상할 건 전혀 없었다.

“이상하다. 카메라가 없는데요? 혹시 두 분 주머니나 이런 데 있는 건 아니겠죠?”

“여전히 순진하네요. 민우 씨는.”

“……설마 진짜입니까?”

“워커홀릭으로 소문난 송 이사님이 한가롭게 연구실에서 몰래카메라나 찍고 있겠냐?”

서지훈이 타박하자 민우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박민우 문학상이라니.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말도 안 돼요. 아니, 제가 뭐가 대단하다고 문학상을 제정합니까? 그것도 지음사 같은 대형 출판사에서요.”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겸손이 너무 지나친데. 대한민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거기에 번역가로서도 대한민국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는데 대단하지 않다면 누가 대단하다는 거죠? 민우 씨는 말이죠. 살아 있는 문학사예요.”

송승현 이사의 대담한 한마디에 연구실 안이 고요해졌다.

뒤늦게 민우가 반론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문학상은 보통 타계한 문인들 이름을 붙이잖아요. 살아 있는 사람 이름을 붙이는 건 좀…….”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의논을 했어요. 고명하신 서지훈 교수님께서는 약간의 우려를 표하셨지만, 결국엔 재미있는 일이 될 거라고 허락을 해 주셨고. 다른 교수님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정말입니까?”

민우가 묻자 서지훈 교수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안 될 거 있냐. 살아생전 자기 이름 걸린 문학상 한번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너 은근 좋아하잖아. 대한민국 최초라는 타이틀. 메이저 문학상 중 생존자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하.”

일이 너무 커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민우는 담담한 송승현 이사의 태도에서,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이렇게 말을 하는 거겠지.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는 법.

민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그럼 그렇다 치고, 어떤 상인지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어려울 건 없죠. 원래는 박민우 문예상으로 이름을 붙이려고 했어요. 민우 씨는 창작활동을 하지 않았으니 약간 예술적인 경향을 넣으려고 했는데…… 문예상은 역시 좀 애매하더라구요.”

“확실히 문예상이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문학’을 창작의 의미만이 아니라, 창작과 학문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부여했어요. 그러면 의미가 통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네요.”

“그렇군요.”

“크게는 창작, 번역, 학술. 이렇게 정리가 될 거예요.”

창작을 제외하고는 민우가 모두 굵직한 성과를 거둔 부문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민우가 다시 송승현 이사를 주목했다.

“이거 제가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여러 대안이 있죠. 그중 하나는 이 기념비적인 상의 주인공이 되는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방법. 서강일 문학상은 어떨까?”

“오, 그거 좋지. 아니면 서지훈 문학상은 어때?”

“……하겠습니다. 할게요! 하면 되죠!”

민우의 라이벌 이름을 언급한 건 고도의 전략이었다. 송승현 이사가 웃었다.

“고마워요.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설득할 자신은 있었죠.”

“왜요?”

송승현 이사가 갑자기 서지훈 교수의 팔짱을 꼈다. 그리고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댔다.

“정 안 되면 우리 남편 팔아먹으려고 했지요. 우리 남편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이 따르지 않을까요?”

“……저를 제대로 파악하고 계시네요.”

“그럼요. 제 밑으로 몇백 명이나 되는 부하직원들이 있는데요. 대학교 조교수 정도야 제 손바닥 위에 있지요.”

“그건 설득이 아니라 협박입니다.”

왠지 진이 빠졌다.

하지만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문학의 역사가 계속된다면 이 상은 자신의 이름으로 영원히 남게 되는 거니까.

소식을 들으면 기뻐할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문학상 관련해서는 대외비겠죠?”

“아뇨. 조만간 기사가 나갈 거니까 주변에 이야기해도 상관은 없어요. 좋은 소식은 가능한 많이 나누는 게 좋지 않을까요?”

“준비가 철저하시네요.”

“말했잖아요. 설득할 자신 있었다고.”

그 말과 함께 송승현 이사는 각대봉투를 내밀었다. 지음사 로고가 박힌 봉투였다.

송승현 이사가 설명을 이어갔다.

“박민우 문학상 관련 서류예요. 한번 정독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우리가 해야죠. 대학자의 이름을 빌릴 수 있었으니까. 아직 젊기는 해도 말이죠.”

민우는 자신의 나이를 헤아려 보았다. 올해로 36세. 교수로서는 초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젊은 나이였다.

그래도 민우는 자신감 있게 웃었다.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상을 탄 사람이 부끄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래 주면 좋고요. 뭐, 애초에 민우 씨가 딴 길로 새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추진한 일이기도 하고.”

“왠지 그런 말을 들으니 좀 삐뚤어지고 싶은데요?”

“그러면 뭐 어쩔 수 있나. 이수빈 선생에게 다 일러바쳐야지.”

“하하하하.”

그제야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민우. 시계를 한번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일을 좀 해야 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아참. 하나 더 말해주고 싶은 게 있는데요. 1회 수상자는 민우 씨도 심사를 봐줬으면 해요. 그래야 의미가 있으니까. 안에 든 서류 잘 읽어봐요.”

“알겠습니다.”

“축하한다! 박민우.”

서지훈 교수가 그렇게 말했고, 민우는 멋쩍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서지훈 문학상을 먼저 만들어야 했는데…… 좀 더 분발하도록 할게요.”

“뭐 인마? 이게 아주 그냥 염장을 지르네. 그 전에 노벨문학상이나 좀 물어와 봐! 어딜 가도 청출어람 이야기만 들어서 나도 화딱지 나니까!”

서지훈 교수의 장난스러운 투정에 연구실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온 민우는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팀 307호 단톡방을 열어 메시지를 입력했다.

박민우: 다들 살아계심? 이번 주 주말에 한번 뭉칩시다. 중대발표할 예정!

중대발표라는 말에 톡이 불나듯 쏟아졌다.

섭섭한애: ??? 윤아 동생 생김?

주님: 헐대박

내무부장관: ㅋㅋㅋ나도 모르는 내 아이가 생긴 거야?

한진섭과 주예린에 이어 이수빈까지 거들었다.

읽었다는 표시가 하나씩 사라질수록 톡이 불나게 쏟아졌다. 민우의 성격상 ‘중대발표’라고 하는 일은 정말 드물었으니까.

정연주: 저 지금 미국에 나와 있어서 들어가기 좀 어려운데…… 무슨 일이신데요?

박민우: 안알랴줌

정연주: ㅠ

민우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연주는 이제 청문대 이사장이라 나름 사회 고위층인데 놀리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나이를 먹어도 톡을 하는 버릇들은 학창 시절 그대로였다.

민우는 계속 핸드폰을 두드렸다.

박민우: 톡으로 이야기하긴 좀 그렇고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이번 주 토요일 오후 6시 명인대입구역 거기에서. 늘 모이던 데 알지? 바쁜 사람은 어쩔 수 없고. 일단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은 모이자. 강일이랑 메로나는 필참하고.

메로나: 넹~

서강일: ㅇㅇ

사실 서강일과 강민희를 위로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해서 두 사람을 콕 찝어서 말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시간이 되는 모양이다.

주님: 그럼 우리도 빠질 수 없지. 돌쇠야. 토요일에 행차를 준비하거라.

섭섭한애: 예 마님!

그때 문이 슬쩍 열리더니 이수빈이 안으로 들어왔다. 책을 읽던 차민재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 민재구나. 노크한다는 걸 깜빡했네. 신경 쓰지 말고 보던 거 봐.”

“예.”

이수빈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민우에게 다가왔다. 민우는 올 게 왔다는 표정이다.

“대체 무슨 일인데 중대발표가 있다고 그래요? 진짜 둘째 가지려고?”

“민재 듣겠다.”

“뭐 어때요. 민재도 어른인데.”

한숨을 쉰 민우는 아까 송승현 이사에게 받은 봉투를 그녀에게 건넸다.

봉투를 받아 본 이수빈은 안에 든 서류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타이틀을 본 그녀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박민우 문학상?”

“어.”

“지음사에서 문학상 제정하는구나! 신기하다. 오빠랑 이름이 똑같네? 근데 누구지? 박민우라는 문인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야.”

“네?”

“나라고. 그거. 내 이름 맞다고.”

이수빈은 방금 서지훈 교수 연구실에서 민우가 지었던 멍한 표정을 그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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