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 < 최종장. 진리는 나의 빛 (5) [완결] >
‘학문의 장벽을 허물고 대중의 교양을 위해 활동한 공로, 그리고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인본주의의 정신을 계승한 공로를 인정해 노벨문학상을 수여한다.’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는 민우의 수상 이유를 위와 같이 밝혔다.
국내에서는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으니까. 그것도 작가 출신이 아니라 학자 출신이라는 게 주목을 받았다.
언론이 일제히 수상 소식을 전하자 민우의 핸드폰은 불이 날 지경에 처했다.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수상이 결정되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민우는 하나하나 연락을 받았고, 축하 인사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했다.
― 축하한다. 정말 큰일을 했구나.
그중 가장 반가운 전화는 역시 서지훈 교수의 전화였다. 만약 학부 때 그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오늘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감사드려요. 정말. 제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건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많이 배워야겠지만요.”
― 그래? 다 내 덕이면 메달은 나한테 넘겨야지.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에 전화해서 이름 내 걸로 바꿔.
유쾌한 농담에 민우가 소리 내어 웃었다.
― 시상식은 언제냐?
“12월 10일입니다.”
― 날짜 한번 기가 막히네. 기말고사 기간이지? 휴강 안 해도 되겠군.
“그렇죠. 조교한테 시험 감독 맡기고 다녀오려고요.”
― 박민우.
새삼스럽게 그가 민우의 이름을 불렀다. 흔한 일은 아니었다. 민우는 예, 라고 대답하곤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렸다.
― 이렇게 큰 사람이 될 줄은 몰랐지만······ 언젠가 넌 꼭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노력만 한다고 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닐 거다.
“그럼요?”
― 노력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기 싫은 일을 계속 반복하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즐기는 것.
민우는 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자신은 어떤 유형이었을까. 답은 금방 나왔다. 책을 쥐고 있을 때는 그 어떤 때보다 즐거웠으니까.
― 노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세상이야. 애초에 노력을 권유하기도 쉽지가 않지. 그래서 네 역할이 중요해. 학문이든 뭐든 괜찮아. 좋아하는 일을 즐긴다는 게 뭔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 와서 술 한잔 사는 거 잊지 말고.
한편, 민우의 수상으로 인해 이익을 본 곳도 꽤 있었다. 상아대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학교라는 명성을 얻었다. 명인대와 청문대도 은근히 숟가락을 올렸다. 하지만 민우는 내색하지 않았다. 세 학교 모두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곳이었으니까.
그해 12월, 민우는 노벨상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수빈과 윤아, 그리고 진섭과 예린이 다 같이 배웅을 나왔다.
“같이 못 가서 아쉽네요. 북유럽 한번 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다음에 같이 가면 되지 뭐. 윤아가 좀 더 커야 하겠지만.”
민우는 딸의 통통한 볼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꺄하, 하는 탄성과 함께 윤아가 손을 뻗으며 발버둥 쳤다. 어쩔 수 없이 민우가 윤아를 안았다.
그때 아까 걸려온 전화를 떠올린 민우가 수빈에게 당부했다.
“나 귀국하고 나서 청와대 만찬에 참석해야 할 거 같아. 그러니까 준비하고 있어.”
“저도요?”
“윤아도.”
“우와, 대통령이 우리 가족을 다 초대해 준 거예요?”
“안 그러면 안 간다고 했거든.”
그 한마디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진섭은 아직도 대통령하고 밀당을 하냐며 잔소리했지만, 이제는 그럴 만하다고 인정했다. 세계적인 석학이 되었으니까.
그때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제 비행기에 탑승할 시간이었다. 민우는 조심스레 윤아를 수빈에게 안기고 가방을 들었다.
“조심히 다녀와요.”
“선배. 올 때 선물 잊지 말고요. 양심은 지키고 삽시다.”
“나도 다음에 청와대 구경 좀 시켜줘.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아빠빠!”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민우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 *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노벨상을 수상하고 돌아온 민우는 공항에서 임시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인파가 공항을 가득 메웠다.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셨는데요. 기분은 어떠십니까?”
“큰 상을 받았구나 하는 정도입니다. 메달을 받긴 했는데 아직 실감은 잘 안 나네요.”
“루카치의 유고를 이어 쓴 것이 결정적인 수상 이유였다는 분석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글쎄요. 여러 일들이 하나씩 모여 오늘의 결과를 만들어 낸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소한 일에도 늘 의미가 있는 법이니까요.”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시차와 오랜 비행에 피곤한 몸이었지만 민우는 성실히 인터뷰에 임했다.
“이번 노벨문학상의 의의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학계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제 인생에 세워질 무수히 많은 이정표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이후의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장형욱 대통령께서 청와대에 초청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아, 그 전에 기말고사 채점을 해야 합니다.”
엉뚱한 대답에 기자들이 한바탕 웃었다. 하지만 민우는 진심이었다.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아직 그는 대학과 학생들에게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렇게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고 또 흘렀다.
노벨문학상 메달이 민우의 자택에 전시된 이후로 새로운 봄이 다섯 번이나 찾아왔다. 영원한 젊음은 없는지, 이제는 민우의 옆머리에도 새치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 비행기 태워줘!”
“그럴까?”
“와아아아!”
민우가 윤아와 거실에서 장난을 치고 있던 그때, 근사한 정장을 걸친 수빈이 거실로 나왔다. 강단과 TV를 오가며 맹활약 중인 그녀는 작년에 명인대 국문과 정교수로 임용됐다.
수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오늘 첫 출근인데 괜찮겠어요? 윤아 내가 데려다주고 출근해도 되는데.”
“괜찮아. 오후 강의니까 천천히 가도 돼.”
“언제 올 건데요?”
“윤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바로 가려고.”
“알았어요. 그럼 먼저 갈게요. 윤아야. 엄마 다녀올 테니까 아빠랑 유치원 가. 알았지?”
“엄마 빠빠이!”
잠시 후 시간이 되자 민우는 윤아의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아파트 단지와 가까운 곳에 있어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도 재미있게 놀다 와. 이따 저녁에 아빠랑 엄마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알았지?”
“웅!”
“뽀뽀.”
신이 난 윤아가 민우의 뺨에 입술도장을 찍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민우는 행복을 느꼈다. 윤아가 유치원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다음 바로 지하철역으로 이동했다.
명인대입구역에서 내린 민우는 대학으로 들어가는 버스에 올랐다. 많은 학생들이 알아봤고, 짧지만 그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인문관에 도착한 민우는 연구동과 강의동을 잇는 복도를 지나갔다. 그때 저쪽에서 한 무리의 교수들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라?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인데······.’
기시감이 들었다. 언젠가 꿈에서 나왔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선두에는 서지훈 교수가 서 있었다.
“박 선생. 마침 잘 만났네. 저녁에 시간 있지? 오늘 같은 날엔 한잔 해야지.”
“죄송합니다. 오늘은 가족들이랑 저녁 식사하기로 해서요.”
“하긴, 그럴 만도 하겠네. 첫 출근이니까. 임용되고 나서 첫 강의일 텐데 떨지 말고 잘하라고.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위엄을 보여줘.”
멋쩍게 웃은 민우는 자신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안에는 수빈과 진섭, 예린이 앉아 있었다.
“여기서 다들 뭐 하고 있어?”
“뭐 하긴. 너 오길 기다렸지. 친구가 첫 출근하는데 와서 축하 인사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진섭이 너스레를 떨었다. 하긴, 이제는 모두 같은 대학에서 일을 하게 됐으니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튼 이제야 다들 한 자리에 모이게 됐네.”
진섭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확실히 그랬다. 대학원 시절 307호에서 과제와 논문에 치여 살던 때와는 다르니까.
지금은 모두가 교수가 되었다. 주예린은 이미 문창과 교수로 활약 중이고, 진섭도 얼마 전 명인대 국제어학원 전임교수로 임용되었다. 민우도 오늘부로 명인대 국문과 교수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민우도 소회를 밝혔다.
“그러게 말이다. 어딘가의 누군가가 대학원 다니기 힘들다고 술에 취해 자퇴서 내겠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아 놔, 진짜 분위기 좋은데 그렇게 흥을 깨야겠어?”
“그런 일이 있었어요?”
수빈이 물었고, 민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때의 상황을 생생히 전했다. 진섭의 얼굴이 새빨개지는 만큼 수빈과 예린의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모른 척하긴 했지만, 진섭은 그때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진짜 그렇게 됐네.”
“뭐가?”
“너 그때 나 설득하면서 그랬잖아. 두고 보라고. 조만간 국문과의 에이스가 될 거라고. 그리고 학계의 거물이 돼서 보란 듯이 비웃어줄 거라고.”
민우는 그저 웃어 넘겼다. 실의에 빠진 진섭을 위로하기 위해 했던 치기 어린 한마디였다. 비웃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수빈이 말했다.
“두 사람, 은근히 나도 모르는 추억이 많네요.”
“모름지기 사내들 사이에는 끈끈한 의리가 있는 법이니까. 안 그래?”
“뭐, 일단 그렇다고 해 둘까.”
그때 예린이 기다린 막대기를 꺼냈다. 그리고 핸드폰에 연결했다. 셀카봉인 모양이다.
“추억하면 사진을 빼 놓을 수 없죠.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도 기념인데 사진 한 방 찍어야죠?”
“뭔 사진이야? 애들도 아니고.”
“예전에 제가 팀 307호에 들어갔을 때도 찍었잖아요. 같은 포즈로 찍어요. 아 쫌! 하늘같은 부교수님이 시키면 좀 하라고!”
“노벨상도 없는 부교수 따위.”
“지금 뭐라고?”
“아닙니다. 부교수 나으리. 예, 사진 찍어야죠.”
1년 차이로 민우는 조교수였고, 예린은 부교수였다. 직급의 차이는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지만 놀림을 당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주예린이 옛날에 찍은 사진을 핸드폰에 띄웠다.
“자자! 이 사진 보면서 포즈 외우세요.”
“아주 작정을 하고 준비했구만.”
“빨랑!”
예린이 채근하자 나머지 세 사람이 포즈를 잡았다.
찰칵!
네 사람의 모습이 핸드폰 액정에 한가득 담겼다. 예린은 찍은 사진을 바로 단체 톡방에 공유했다. 민우는 저장 버튼을 꾹 눌렀다. 이렇게 소중한 순간이 하나 더 늘었다.
“그런데 주예린 너 오전 강의 있지 않냐?”
“헉!”
“뛰어 인마. 예체대 강의실까지 한참인데 무슨 깡으로 인문대까지 온 거야?”
주예린이 서둘러 연구실에서 사라졌다. 진섭도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었다.
드르륵―
민우가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가방을 메고 길을 걷는 학생들. 벤치에 앉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 그렇게 수많은 군상들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요?”
“그냥.”
어느새 수빈이 나란히 섰다. 두 사람은 창틀에 기댄 채 창밖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했다.
산들거리는 봄바람이 민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절로 미소가 걸렸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은 눈앞에 펼쳐진 이 소소한 풍경들이 앞으로 계속되기를 바랐다.
언제까지나, 영원히.
-1부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