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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서-292화 (292/500)

292화 : < 102장. 같은 꿈을 꾼다는 것 (5) >

국민훈장(國民勳章)은 정치, 경제, 교육, 학술 등 국민의 복지 향상과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훈장이다.

특히 민우가 받게 된 모란장은 2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등급은 총 5급까지 있다. 나이에 비해 상당히 높은 훈장을 받게 되었다.

수여식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렸다. 대통령이 직접 참여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청사 직원들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민우의 가족들이 청사 안으로 들어왔다.

“오빠.”

“응?”

“잠깐만.”

민우가 돌아서자 수빈이 옷깃과 넥타이를 바르게 정돈해 주었다. 손길과 눈빛 하나하나에 사랑스러움이 묻어나 있었다. 그녀는 민우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넥타이를 좀 다른 걸로 맬걸 그랬네.”

“왜. 잘 안 어울려?”

“그냥 볼 때는 괜찮은데 여기에 금빛 훈장이 딱 하고 놓이면 눈에 잘 안 띌 거 같아서요. 조금 어두운 톤으로 할 걸.”

“별걸 다 신경 쓴다.”

“당연히 신경 써야죠. 평생 한 번 받을까 말까한 훈장인데.”

가벼이 웃음으로 대꾸한 민우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민우의 가족들은 준비가 한창인 강당으로 입장했다.

식장이 넓어 편한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민우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 최민식, 그리고 이수빈, 마지막으로 조카인 연서. 일행은 이렇게 총 여섯 사람이었다.

박민아는 연서를 앞쪽으로 끌어안으며 자리에 앉았다. 마침 옆자리는 민우가 차지했다.

“동생아. 대통령한테 훈장 받는 소감이 어떠니?”

“소감이랄 게 뭐 있나. 별로 아무렇지도 않은데.”

“하긴. 청와대 콜도 시크하게 거절한 차가운 도시남자인데.”

“뭐 다를 게 있겠어? 상을 워낙 많이 받아서 그런가 좀 무덤덤하기도 하고.”

“어휴, 저 잘난 척은 언제쯤 끝날는지. 무튼 우리 집안에서 대통령한테 훈장을 받는 사람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치?”

“그러게. 나도 처음엔 낚시인줄 알았을 정도니까.”

두 남매가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늘 가난과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시달리곤 했었으니까.

그래서 두 사람의 머릿속에 일찍 세상을 뜬 아버지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고생만 하다 간 사람. 민우는 훈장을 받는 대로 아버지의 묘소를 찾을 생각이었다.

“동생아.”

“또 왜?”

“아 쫌 누나가 부르면 상냥하게 대답할 수 없겠니? 너 집에서도 수빈이한테 이래?”

“오늘따라 잔소리가 왜 이리 심하실까. 왜 부르세요 누님?”

하지만 민아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오히려 볼을 살짝 붉히며 딴청을 피웠다. 한참 뒤에야 민우에게 한마디 했다.

“이런 말하기 좀 쑥스러운데, 정말 멋있다. 우리 동생. 잘했어.”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큰일 난다던데······.”

“역시 그렇지?”

멋쩍게 웃은 민아는 고사리 같은 딸의 손을 붙잡고 민우 쪽으로 인사하듯 흔들었다.

“연서야. 너희 외삼촌 큰 상 받는다? 응? 어마어마하게 큰 상이야. 그것도 대통령 할아버지가 주는 상이지. 그러니까 축하해 드려야지?”

“꺄하!”

연서가 귀엽게 탄성을 질렀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는 모른다. 그러면 뭐 어때. 마음이 살살 녹을 정도로 귀여운데.

조카를 보고 있으면 머지않아 태어날 자신의 아이도 수빈을 꼭 닮은 예쁜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가족들과 소소한 시간을 보낼 그때 중년 사내가 민우에게 다가와 공손히 인사했다.

“박민우 교수님.”

“예?”

“안녕하십니까. 오늘 행사를 도와드릴 이경환입니다. 잠시 시간 괜찮으시면 이쪽으로 오시죠. 설명을 해 드릴 게 있어서요.”

“가시죠.”

민우는 이경환과 함께 연단에 올라 식이 어떻게 진행되고 훈장이 수여되는 과정과 절차에 대해 상세히 들었다.

민우뿐만 아니라 같이 훈장을 받게 될 몇몇 저명인사들도 옆에서 함께 설명을 들었다. 이경환은 보통 장관급 인사가 대표해 훈장을 수여하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장형욱 대통령이 직접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물론 사람들은 그 특별한 이유가 민우 때문인지는 끝내 알지 못했다.

“수훈자들께서는 맨 앞쪽에 착석하시고 호명될 때 올라오시면 되겠습니다.”

“예.”

모든 준비를 마친 이경환이 무대 쪽으로 사라졌고, 바로 사회자의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지금부터 2019년 국민훈장 수여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내빈 여러분들께서는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기자들이 카메라를 세팅하고 자리를 잡았고, 돌아다니던 사람들도 제자리에 앉았다.

장형욱 대통령을 비롯해 정재계 거물들이 VIP석에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대통령은 축사에 나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늘 민심과 민생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그였기에 간간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축사는 길지 않았다. 이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훈장 수여식이 시작되었다.

가장 높은 단계인 무궁화훈장 수여가 끝나고 민우 차례가 왔다. 찬란하게 세공된 금빛 메달이 조명을 받아 태양처럼 반짝였다.

“축하하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높은 훈장을 주고 싶었네만.”

“아닙니다. 이 정도로도 과분합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자네는 큰 공을 세웠어. 덕분에 아랍 국가들과 교류를 확대할 수 있었지. 유럽에서도 덕을 톡톡히 보고 있고. 박민우라는 세 글자가 마스터키 역할을 하더군. 세계의 이목이 자네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느꼈네.”

“과찬이십니다. 더욱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듣겠습니다.”

흡족히 웃은 대통령이 훈장을 직접 목에 걸어 주었다. 물건엔 고유의 주인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민우의 목에 걸린 모란장은 딱 민우의 것처럼 보였다.

진행 보조가 다음 수상자의 훈장을 들고 오려 하자 장형욱 대통령이 손을 뻗어 제지했다. 그렇게 잠시 수여식이 중단되었다. 그는 민우에게 할 말이 있었다.

“실은 자네가 정치에 뜻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경쟁자가 줄어서입니까?”

민우는 거침없이 농을 건넸다. 장형욱 대통령이 유쾌하게 웃었다. 생각 이상으로 마음에 드는 청년이었다.

“뭐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유는 다른 곳에 있네. 나는 정치판에 오래 있었네. 그래서 깨달았지. 정치는 사람을 닳고 닳게 만든다고. 자네의 영민한 재능이 세상의 풍파에 마모되게 하고 싶지 않았어. 수많은 유명인과 학자들이 정치판에 투신했네. 하지만 그 결과는 썩 좋지 않았지.”

“잘 알고 있습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 자네의 두 어깨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렸어. 자네 같은 훌륭한 학자들을 많이 양성해주게. 우리 대한민국의 이름이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알겠나? 내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지.”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든든하네요.”

“대학에 싹수가 보이는 친구들은 좀 있나?”

민우는 자신의 제자들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확실히 길이 보이는 친구들은 아직까지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니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왕 만들 거면 저 같은 학자보다는 저보다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고 싶네요.”

“하하하! 자네다운 말을 하는군. 그래. 사나이라면 그 정도 포부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장형욱 대통령은 어깨를 다독였고, 민우는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괜한 자부심에 꺼낸 말은 아니었다. 그 한마디엔 민우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얼마 전 국제비교문학회에서 서지훈 교수와 토론을 벌인 그때가 하나의 동인이 되었다. 분명 자신은 잠깐이나마 지도교수를 넘어섰다.

그때, 뜻하지 않은 그 순간을 맞이한 서지훈 교수의 심정은 어땠을까.

민우는 쉽게 답을 얻었다. 아마 그는 조금의 화남도, 슬픔도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훌쩍 성장한 제자를 보고 마음이 뿌듯하지 않았을까.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나도 하루빨리 그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

그날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민우는 앞으로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훈장 수여가 끝나고 소감을 말하는 순서가 되었다.

미리 준비한 내용은 딱히 없었다. 무엇을 이야기할까 잠시 고민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오늘 받은 훈장은 삶의 이정표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 왔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몇몇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플롯이 잡히고 이야기에 살이 붙었다. 이윽고 가족들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민우가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댔다.

“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 이렇게 세 가족이 단칸방에서 생활했던 그때가 문득 떠오르네요.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죠.”

뜬금없는 서론에 주변이 고요해졌다. 모두가 민우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사이를 둔 그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아직까지 기억에 선명히 남은 그 순간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연탄을 때지 않아도 따뜻한 방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된 그때요. 반지하 좁은 방이었지만, 그 소소한 행복을 얻기 위해 어머니께서 얼마나 희생하셨는지 이제는 잘 압니다.”

어머니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자식이 알아줬다는 기쁨 이면에, 자식에 대한 미안함이 깔려 있었다. 좋은 것을 입히고 먹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래서일까. 민아와 수빈은 어머니의 양손을 꼭 잡아 주었다.

민우의 소감은 계속되었다.

“새벽 같이 일어나 손수 만든 김밥을 들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장사를 하셨던 그때. 추운 겨울에 난로 하나 없이 좌판에서 산나물을 파셨던 그때. 어렸을 때라 잘 몰랐습니다. 얼마나 힘든지도 잘 몰랐죠. 철없게도 어머니께서 어렵게 벌어온 돈으로 맛있는 걸 먹을 생각만 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이제 한 아이의 부모가 됩니다. 그래서인지 그때 생각이 많이 나네요.”

결국 어머니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왈칵 눈물을 쏟았지만, 왜인지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늘 자식들에게 보였던 자애로운 그 미소가.

“어머니, 괜찮으세요?”

“괜찮다. 괜찮아.”

수빈은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레 눈물을 닦아 주었다. 이번엔 민우는 박민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어머니와 꼭 닮은 사람이 또 있습니다. 저희 누나인데요. 매번 반에서 1, 2등을 다투는 수재였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바로 취직을 했어요. 그때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동생의 모습을 바라보는 박민아의 눈에도 어느새 습기가 가득하다. 그녀는 최민식이 직접 챙겼다. 민우의 조카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 세상 누구도 우리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조차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두 분은, 어머니와 누나는······ 제가 삐뚤어지지 않게 보듬어 주셨고, 포기하지 않고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애정과 정성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희생이라고 할까요. 아뇨, 희생이라는 단 두 글자로 그분들의 지나온 삶을 정의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겠지요. 실제로 제 모든 커리어와 학문적인 업적은 저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두 분의 희생에 비하면 아주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소감을 경청하던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활기찬 수여식의 분위기를 망쳤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민우를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진솔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민우는 고개를 숙여 훈장을 어루만졌다.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모란장. 결심을 굳힌 민우가 훈장을 목에서 벗었다.

민우가 훈장을 오른손에 쥐고 높게 들었다.

“저는 이 훈장을 받지 않겠습니다. 이 훈장은 하늘에서 편히 쉬고 계실 제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누나. 우리 가족에게 바치겠습니다.”

민우가 연단에서 내려왔다. 돌발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를 막거나 하지 않았다.

민우가 향한 곳은 가족들이 앉아 있는 자리였다. 어머니 앞에 선 민우는 들고 있던 모란장을 어머니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리고 포옹했다.

“고마워요. 어머니. 그리고 누나도.”

“얘도 참······.”

짝짝짝짝짝―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감동적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기자들도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셔터를 눌렀다.

어머니와 누나는 기쁨의 눈물을 원없이 흘렸다. 세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회포를 풀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훈장이 수십 년간 이어온 희생의 종지부를 찍었다. 아니, 오히려 더 큰 것으로 되돌아왔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

하지만 민우는 생각했다. 행복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여생은 가족들을 위해 살아야겠다 다짐했다. 그것은 부모자식 간의 도리이기 전에 인생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도리이기도 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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