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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서-248화 (248/500)

248화 : < 91장. 팀 307호 (5) >

안전벨트에 손을 올린 채 레아는 눈을 깜박거리기만 했다.

“파티······요?”

민우가 지인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 위해 이곳 골든팰리스 호텔에 왔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낄 만한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머뭇거렸다. 민우가 미소를 지으며 사정을 설명했다.

“이번엔 좀 파티를 크게 하기로 했어요. 레아 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몇 명 더 올 거예요. 파티니까 사람이 많을수록 좋잖아요? 친구도 만들고요.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고 같이 놀아요.”

“그게······.”

“어서요.”

“아, 예.”

레아는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기쁜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자기도 파티에 끼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민우가 기억해준 모양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호텔 로비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레아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저, 매니저님.”

“네?”

“급하게 나오느라 선물을 준비 못했는데. 죄송해요.”

“아아, 난 또 뭐라고. 괜찮아요. 선물 같은 건 괜찮습니다. 평소에 레아 씨가 저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 말에 레아는 가슴에 손을 올렸다.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앞쪽을 바라보고 있는 민우는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레아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다.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레아가 물었다.

“오늘 파티엔 몇 분이나 오시지요?”

“그게······ 우리까지 포함해서 열세 명 정도? 한 명은 확실하지 않아서요.”

“그렇군요.”

잠시 후 목적지에 내린 두 사람이 파티룸으로 들어갔다.

안은 벌써 파티가 한창이었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BGM으로, 민우와 평소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골든팰리스의 임도빈 회장이 직접 마련해 준 파티룸은 명성에 걸맞는 시설을 자랑했다. 그뿐 아니라 미적 기준 중 어느 하나라도 놓치지 않은 멋진 인테리어로 되어 있었다.

‘이거 VIP룸인가? 엄청나네.’

민우는 주변 소품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손을 대도 괜찮은 건가 싶은 물건들이 즐비해 있었다.

시선을 옆쪽으로 돌리니 오늘 초대손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들 끼리끼리 어울리고 있었다. 주예린은 케이크를 떠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한진섭은 최근 같이 일을 하게 된 지음사의 장철호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민우를 제일 먼저 발견한 이수빈이 달려왔다.

“어서 와요! 어머, 레아 씨도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수빈 씨. 여전히 예쁘시네요. 옷 정말 잘 어울려요.”

“빈 말이라도 감사해요.”

“빈 말 아닌데요.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제 잘 아시지 않나요?”

두 사람은 최근 자주 만나며 친분을 쌓았다. 물론 그 전에도 기회는 많았다. 특히 레아는 수빈에게 미국 생활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았고, 외동으로 자라서인지 수빈은 그녀를 언니처럼 잘 따랐다.

“안녕하십니까. 한진섭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미인이시네요.”

진섭은 주예린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인사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와 인사를 나눴다.

갑작스러운 환대에 조금 당황했지만 레아는 프로다운 면모를 보였다. 의례적인 칭찬과 위트를 섞으며 민우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나저나 다 왔나? 왠지 한 명이 비는 것 같은 느낌인데.’

민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인원수를 체크했다. 그러다 예쁜 드레스를 걸친 수빈에게 잠시 시선을 빼앗겼지만, 다시 정신을 차렸다.

팀 307호 멤버인 진섭과 예린의 모습이 보였고, 지음사 인문사회팀의 장철호 주임도 자리했다. 라온북스의 이유리 주임, 그리고 한일대의 서강일과 강민희도 자리를 빛냈다. 메로나를 물고 있는 강민희의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폴라리스를 이끄는 이다혜, 남희석도 있었고 연주와 그녀의 친구 하지은도 와인을 마시며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그제야 없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역시 윤이가 빠졌구나. 이 녀석 오늘 올 수 있는 건가?’

민우는 파티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특별히 허윤을 초대했다. 예전 출판기념회 때 그를 본 친구들이 닦달한 탓도 있었다.

늦을 거라고 예상은 하긴 했었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다보니 스케줄이 많을 테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참가하겠다는 그의 말을 떠올리며 민우는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때 이유리가 다가왔다. 민우가 싱긋 웃었다.

“어때? 파티에 참가한 소감이.”

“재미있어. 다들 좋은 분들인 것 같구. 고마워. 신경 써줘서.”

“이 기회에 친구들 많이 만들어. 진섭이나 철호, 그리고 강일이는 우리랑 동갑이니까.”

“안 그래도 친구하기로 했어. 철호는 같은 업계에 있어서 그런지 말이 잘 통했어.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러고 보니 둘 다 솔로네. 한번 잘해봐.”

민우의 짓궂은 말에 이유리 주임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물러가고 민우는 테이블에 세팅된 음료를 하나 들었다.

“박 선생.”

약간 삐딱한 목소리. 서강일의 것이었다. 민우가 돌아섰다.

“아까 들었는데 오늘 대학에서 상 받았다며? 매 학기마다 상 하나씩 받는 느낌이다?”

“별거 아니야.”

“우수강의상이 별거 아니야? 이야, 밥맛인 건 여전하네. 요즘 학부 애들 강의평가 짜게 준다고 말들 많던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냐.”

민우가 서강일을 향해 잔을 들더니 살짝 흔들었다. 보랏빛 액체가 잔을 타고 빙글 돌며 회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학생들이 강의평가를 짜게 주는 건 선생들이 제대로 못 가르쳐서 그런 거야. 학생들은 바보가 아니거든. 열심히 하면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어.”

“이런.”

본전도 못 찾은 기분이었다. 서강일이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보며 민우가 은근히 물었다.

“그런데 넌 언제쯤 강의하냐? 슬슬 때가 된 거 같은데. 이제 우리도 박사 3학기잖아.”

“안 그래도 내년부터 강의 하나 할 거 같다. 교양 과목이긴 한데 열심히 해봐야지. 기회가 왔으니.”

“도움 필요하면 형한테 얘기하고. 내가 노하우 정도는 전수해 줄 수 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민우에게 이것저것 묻고 싶었다. 학부 강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이 방면에서는 민우가 한참 위였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 콧방귀를 뀐 서강일은 자만하다가 큰 코 다친다는 말을 남기고는 홱 돌아섰다. 곁에 있던 강민희도 혓바닥을 내밀며 서강일의 뒤를 따랐다.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하하하. 반갑습니다. 어이쿠. 미남미녀들만 모이셨네요.”

그때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민우는 잔을 든 채 그쪽으로 이동했다.

히어로는 늦게 나타나는 법이라는 말이 있던가. 허윤이 등장했다. 그는 마치 자기가 산타라도 된 양 선물 꾸러미를 열고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형! 저 왔어요.”

“와 줘서 고맙다.”

“고맙긴요. 자, 받으세요. 형님 건 스페셜하게 준비했어요.”

민우를 위한 선물은 크고 특별했다. 민우는 기꺼이 그가 건네는 선물을 받았다.

* * *

밤이 깊어질수록 크리스마스 파티도 무르익어갔다.

주최자인 민우는 파티룸을 돌아다니며 부족한 것이 없나 확인했다.

그러다보니 재미있는 장면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뭐야. 고백이라고 하는 거야?’

서강일과 강민희가 구석에서 뭔가 진지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평소 당당하던 강민희가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민우는 가까이 가서 엿듣고 싶었지만 꾹 참으며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바 형식으로 된 곳이었는데, 유독 목소리가 크고 시끄러웠다.

하지은과 허윤 두 사람이 있었다.

‘윤이 안 불렀으면 큰일 날 뻔했네.’

사교계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하지은은 허윤을 붙들고 놔 주지 않았다. 물론 그건 허윤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정말 죽이 잘 맞았다.

‘저러다 지은이 연예계에 데뷔하는 거 아냐? 얼굴도 작고 하니 카메라 잘 받을 거 같은데. 뭐, 알아서 잘하겠지.’

민우는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철호와 이유리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출판계의 신성들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책과 문학이라는 공통의 키워드가 있다 보니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마를 일이 없었다.

모두 만족스럽게 파티를 즐기고 있는 것을 확인한 민우가 돌아서려고 할 때, 뒤에서 누군가 등을 쿡쿡 찔렀다.

연주였다.

“왜?”

“저, 오빠. 잠깐 이야기 좀 해요.”

진지한 표정. 왠지 모를 긴장감이 들었지만, 민우는 순순히 연주의 뒤를 따라 옆방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곳은 비어있지 않았다. 307호 멤버들을 포함해 레아도 자리에 앉아 민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갔나 했는데 다들 여기에 모여 있었네. 무슨 회의라도 할 분위기다?”

“우리 정연주 이사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대서.”

진섭이 장난스레 대꾸했고, 민우와 연주가 자리에 앉았다. 잠시 뜸을 들인 연주가 본론을 꺼냈다.

“실은 이번에 청문대에 한국문화교육원을 설립하기로 결정이 되었어요. 한국어문학을 포함해 문화 전반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죠.”

다들 학계에 몸담고 있는 입장이었기에 귀가 솔깃했다. 연주는 차분한 목소리로 한국문화교육원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국제교육원이나 어학원과는 차별점을 둔 교육기관으로 발전시킬 계획이에요. 그중에 어문학 분과 강사 선임을 제가 하게 됐는데······ 거기에 여러분들을 초빙하고 싶어서 이렇게 말씀 드리는 거예요.”

“강사 초빙을?”

“우리가?”

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바로 진섭이었다. 연민을 느끼고 일을 추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연주가 말했다.

“이번에 진섭 오빠가 겪은 일과는 별개의 문제예요. 오해하지 않으셨음 해요. 제가 307호 멤버는 아니어도 언젠가는 언니 오빠들하고 함께 대학에서 뭔가 해보고 싶기도 했고······ 이런 얘기 하면 부끄럽지만 제 꿈이기도 했거든요.”

이어 연주는 자신의 비전을 말했다.

돈벌이를 위한 기관으로 만들지 않겠다고. 모두를 위한 지식의 요람이 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구성원 모두 긍정의 뜻을 보였다. 진섭만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민우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진섭이 물었다.

“구체적으로 언제쯤 오픈하는 거야?”

“내년 3월 목표로 움직이고 있어요. 학생 모집에 시간이 걸릴 수 있어서, 실제 학기는 내년 8월부터 시작될 거 같고요. 한 학기 동안 커리큘럼이랑 교재 개발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확실히 그렇게 하긴 해야겠네. 수빈이도 내년 여름에나 과정 마치고 올 테니까. 그나저나 교재 개발이라면 내가 전면에 나서도 되겠는데?”

“그러게요. 딱 오빠 전공인데?”

수빈이 맞장구를 쳐 주었다.

진섭은 자신이 있었다. 얼마 전부터 민우의 소개로 지음사 인문사회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한국어교육 관련 교재를 만들고 있었다.

다시 수빈이 나섰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지 결정하면 되겠네요. 제안을 받아 들이냐 마느냐.”

절로 모두의 시선이 민우에게 향했다. 공식적으로 팀 307호의 팀장은 그였으니까. 하지만 민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건 내가 혼자 정할 문제는 아니지. 다수결로 하자.”

“전 할래요.”

“나두.”

“이런 기회를 놓치는 건 실례지.”

차례대로 수빈, 예린, 진섭이 손을 들었다. 모두가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민우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살짝 쳤다.

“좋아. 그 제안 받아들일게. 대신 우리도 조건이 있다.”

“조건이요?”

연주가 살짝 놀랐다. 조건을 걸고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어질 민우의 말에 집중했다.

민우는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들도 눈치를 챘는지 웃으며 긍정의 뜻을 표했다.

민우가 말했다.

“우리 팀의 가치관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걸 네가 잘 이해해주고 이런 제안을 해준 거잖아? 맞지?”

“그렇죠.”

“그럼 한 배를 타야지.”

한 배를 타야 한다는 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연주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민우가 이어 말했다.

“연주 너도 우리 팀에 들어와. 그래야 호흡 잘 맞춰서 더 큰일 해볼 수 있지 않겠어?”

“제가요?”

“그래.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교육 쪽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해볼까 해. 팀 307호의 이름으로. 네가 있으면 더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거라면······.”

연주는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요. 하고 싶어요.”

모두가 기다리던 대답이었다. 진섭이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이런 훈훈한 분위기. 그럼 신입이 들어왔으니 거국적으로 한잔 해야지?”

“다행이네요. 노래 같은 거 시키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아, 그건 건배한 다음에.”

“······.”

연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진섭이 잔을 먼저 들었고 나머지 멤버들도, 새롭게 들어온 연주도 잔을 부딪쳤다. 물론 이 역사적인 장면을 지켜보던 레아도 한몫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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