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To make the end of battl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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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To make the end of battle (3)
2021.11.29.
좌중이 술렁였다.
토론에서 토론자가 발표자의 논지를 비판하는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도라는 게 있다. 특정 부분을 지목하며 어디가 잘못되거나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도로 진행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서강일은 달랐다. 아예 민우의 논문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었다. 단 한마디로.
“뭐가 문제라는 걸까요? 제가 듣기엔 전혀 문제가 없는 거 같은데.”
한진섭이 물었다. 턱을 괴던 이재환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조차 쉽게 추측할 수 없었다. 민우가 가진 논문의 문제에 대해.
“글쎄다. 도입 단계라면 연구의 동기 정도를 말하는 걸 텐데…… 흐음. 어떤 걸 짚고 있는지 확실하진 않아. 분위기를 보니 괜히 시비를 거는 건 아닌 거 같고. 들어봐야 알 것 같다.”
이재환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한편 서지훈 교수와 민영환 교수는 별다른 말 없이 차분히 토론을 지켜보고 있었다.
먼저 침묵을 깬 건 서지훈 교수였다.
“꽤 집중도가 좋은데요? 석사 2학기생의 무대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민영환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지훈 교수가 정확히 짚었다. 오늘 있었던 발표 중 이렇게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없었다.
사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발표와 토론을 기대하고 있었다.
수준의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민우와 서강일은 모두 석사 2학기, 소위 ‘학문 후속세대’라고 불리는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경연을 통해 앞으로의 문학 연구가 어떠한 방향으로 진화할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첫 아이의 돌잔치에서 아이가 무엇을 집을까 바라보는 심정으로.
민영환 교수는 그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학계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 엿볼 수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너도 그래서 온 게 아닌가? 단순히 민우 녀석의 발표가 궁금해서 온 건 아닐 텐데.”
“하하하. 여전히 예리하시군요.”
“뒷방 늙은이들은 잠자코 지켜보자고. 어떤 질문이 나올지.”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서강일은 민우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흔들려야 하는데, 민우는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독한 자식.’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서강일이 공격을 시작했다.
“검색 포털의 키워드 검색을 통해 실존주의라는 문제에 접근한 것은 신선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치에 의존해서 연구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것은 문학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는 게 제 견해입니다.”
민우가 미간을 좁혔다.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이었다.
연구의 당위성 부분은 이미 민영환 교수가 짚어 준 것이 있어 대비한 상황. 그런데 문학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민우가 이어 말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요. 통계자료가 유의미하다는 것은 각주에 설명을 넣었습니다만…….”
“그것과는 다른 이야깁니다.”
씨익 웃은 서강일은 민우가 아닌, 청중을 바라보며 논의를 계속 이었다. 그도 무대를 사로잡을 줄 아는 청년이었다.
“통계자료의 적합성 여부를 따지고 싶은 게 아닙니다. 일종의 논문을 시작하게 된 문제의식이라고 할까요? 수치화된 데이터를 연구의 시작점으로 삼는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겁니다.”
“태도의 문제…… 이거 일차원적인 해석을 강요당하는 느낌인데요?”
민우의 반박에 서강일이 눈매를 좁혔다. 좌중이 술렁였다. 점잖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토론이 논쟁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젊은 만큼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특히 민우가 그랬다.
체면을 차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민우는 최선을 다해 논박하는 것만 생각했다. 수세에서 어떻게 우위를 점하는가가 관건이었다. 그 이후는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민우가 계속 말을 이었다.
“수치화된 데이터라고 표현을 하셨는데, 그건 편향된 관점에서 바라본 평가인 것 같습니다.”
“아뇨. 토론자가 모든 관점을 짚어줄 순 없습니다. 해설이 필요하면 야구 중계를 봐야죠. 편향된 관점이라는 말은 다소 의도적인 발언이라고 해석되는데, 아닙니까?”
“그럴 리가요.”
일단 한마디 던지고 난 민우는 시선을 청중에게 돌렸다. 다시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논문에서 제시한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그렇게 읽어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고요. 다시 말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실존주의라는 개념에 접근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한 현상을 수치로 보여준 것인데 왜 문학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바꿔 묻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문학의 본질이란 무엇입니까?”
“그건…….”
“그건?”
민우가 짓궂게 되물었다. 야구 중계 운운한 것에 대한 소소한 복수였다.
서강일의 말문이 막혔다.
강민희가 초조한 눈빛으로 서강일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엄지손톱을 뜯고 있었다.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이었다.
갈피를 잡은 서강일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결국 실존주의 문학은 참여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문제제기를 한 겁니다. 사회적인 이슈, 특히 근래 벌어지고 있는 집단의 무관심으로부터 참여를 중시하는 실존주의 문학의 본질에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어서 생긴 의문이기도 하지요.”
고비를 넘겼다. 지켜보던 강민희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두 손은 꼭 쥐어진 채 땀이 흠뻑 배어 있었다.
서강일의 주장이 계속되었다.
“다시 말해 숫자보다는 우리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으로부터 접근하는 게 옳다고 판단한 겁니다. 지금도 수많은 작가들이 사회의 불합리한 단면을 문학이라는 양식으로 그려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문학의 본질과 가깝다고 여긴 것이고요. 문학은 현실을 반영하니까 말입니다.”
민우는 방금 서강일이 말한 부분을 빠르게 메모했다. 숫자보다는 현상으로 접근하자. 나중에 논문을 다듬을 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인 민우가 다시 마이크를 가까이했다.
“서강일 선생님의 관점에 부분적으로는 동의합니다. 확실히 문학 연구는 현상으로 접근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면이 있지요.”
분위기가 소강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칼자루는 민우가 쥐고 있었다. 그는 감정선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토론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문학계에 영향을 끼치는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한다. 서 선생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이 명제에 이의를 제기하실 분 계십니까?”
민우가 대담하게 물었고, 청중은 침묵에 잠겼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싱긋 웃은 민우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문학 연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정보의 바닷속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웹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통계적 방법이 유효합니다. 그 부분에서만큼은 문학 연구자들도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니까요.”
현재 문학 연구는 상당히 고리타분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마지막으로 장식하고 싶었던 그 말은 속으로 삼켰다. 상아대에서 온 은사에 대한 예의였다.
“답변 잘 들었습니다.”
“충분한 답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민우가 마이크를 내려놓는 것으로 한 꼭지가 정리되는 듯했다. 청중들은 단 한 명도 장내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흥미진진한 토론이 계속되고 있었다.
“좋은 느낌이다.”
갑작스러운 이재환의 말에 한진섭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은 느낌이요?”
“너도 느꼈을 텐데. 뭔가 훈훈하지 않냐?”
“아, 맞아요. 확 타오르다가 차분하게 정리가 되는 느낌?”
팔짱을 낀 이재환이 등받이에 몸을 편하게 기대며 말했다. 그의 얼굴엔 여전히 미소가 가득했다.
“박민우. 능구렁이 같은 놈이야. 완전히 유리한 상황인데도 토론자를 몰아붙이지 않고 있어. 손가락으로 툭 건들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인데도 말이지. 적당히 타협선을 정해 논지를 마무리하고 있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
“넌 아직 멀었구나. 그건 말이다. 완전히 우위에 있는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일종의 여유 같은 거야.”
이재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서강일의 공격이 재차 이어졌고, 민우가 방어했다. 뜨거운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후반부로 접어들 때까지 민우는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서강일이 제기한 의문은 모두 논파되었다.
서강일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의 손에 남은 카드가 딱 한 장이라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아쉬운 부분을 짚겠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을 보편적 단독자로 보고 있지요. 이는 키르케고르 이후 사르트르까지 이어지는 핵심입니다. 즉, 실존주의는 모더니즘 문학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인데, 실존주의의 재조명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박 선생님의 논문에서 모더니즘과의 연관성이 다뤄지지 않은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흥미롭네요. 하지만 그건 새로운 관점이 아닙니다. 이미 모더니즘과의 연관성은 논의가 되어 있습니다.”
살짝 놀란 서강일이 자료를 훑었다. 자신이 가진 자료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놀란 것은 자료 수집에 도움을 준 강민희도 마찬가지였다.
민우의 설명이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루카치의 <모더니즘의 이데올로기>를 들 수 있는데요. 그는 저술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실존주의는 그 출발부터 모더니즘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고 있다고. 최유찬의 <1950년대 비평연구>, 그리고 전기철의 <한국 전후 문예비평의 전개양상에 대한 고찰>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언급하신 레퍼런스는 확인하지 못했는데,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히려.”
서강일이 인상을 찡그렸다. 불리한 것 같아 적당히 매듭을 짓고 끝내려고 했는데, 민우가 말을 끊은 것이다.
“저는 프랑스의 학자들이 최근 제기한 실존주의 문학의 리얼리즘적 특성에 주목했습니다. 적극적으로 인용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이를 종합한다면 한국 실존주의 문학에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적인 성격이 혼재되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잠깐! 그건 지나친 비약입니다.”
서강일이 보란 듯이 치고 들어왔다. 그러나 민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강일은 당황했다.
맥락상 여기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반론하며 맞서야 했는데, 민우는 너무나도 쿨하게 문제를 인정했다.
“어떤 수학자가 이렇게 말했죠. 여백이 좁아 적을 수 없다고. 저도 그랬습니다. 주어진 분량이 충분하지 않아 그 부분에 대해 다룰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제 막 학문에 발을 들인 새내기입니다. 차후 이 부분에 대해 다시 연구할 기회가 있다면, 지금 제가 스스로 저지른 논리적 비약이 충분한 설득력을 갖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민우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으며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능숙한 마무리였다. 그를 빤히 바라보던 서강일은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토론자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해냈지만, 왠지 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서강일은 아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마이크를 들었다.
“좋은 말씀 감사히 들었습니다. 실존주의 문학의 재조명이라는 테마에 어울리는 토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순서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부족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강일도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장내에서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악수했다.
투덜거린 쪽은 서강일이었다.
“아아. 또 졌네. 졌어.”
“누가?”
연단을 내려가던 민우가 돌아섰다. 그는 웃고 있었다. 비웃는 게 아닌, 승자의 미소도 아닌 순수한 느낌의 미소였다.
“그렇게 확인사살 해야겠냐. 완전 밀렸잖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대체 준비를 얼마나 많이…….”
“박수 소리 들리지?”
아직까지도 박수는 계속되고 있었다. 청중석이 가득 차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었다.
그와 동시에 민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만든 무대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무대야. 그러니까 네 몫 잘 챙겨 가라.”
민우가 연단에서 내려갔다.
그 차분한 발걸음을 지켜보던 서강일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완벽한 패배였다. 못 본 사이에 그는 더욱 성장해 있었다.
그때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2부 순서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10분 휴식 후 3부 순서를 진행하겠습니다. 3부에서는 피에르 랑느 박사님의 특강이 진행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음료수를 마시며 한숨 돌린 민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서지훈 교수와 민영환 교수가 와 있었다. 인사를 해야 했다.
민우는 재빨리 그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뛰었다.
“선생님!”
서지훈 교수는 목이 마르다며 자리를 슬쩍 피해주었다.
두 사람만 남았다.
물끄러미 민우를 바라보던 민영환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한마디 했다.
“수고했다.”
말 그대로 딱 한마디뿐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민우는 성취감을 만끽하며 그에게 꾸벅 인사했다.
산 하나를 넘었다.
그러자 눈앞에 평야가 펼쳐졌다.
민우는 잠시 냇가에 앉아 발을 담갔다. 조금은 쉬어가도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남은 학회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