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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To make the end of battle (2) (129/500)


129. To make the end of battle (2)
2021.11.26.


발표자석과 토론자석은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서로 대화를 나누기에는 거리가 충분했다.

서강일이 웃으며 도발했다.

“살살 해 줘?”

민우는 피식 웃으며 마이크의 전원을 껐다.

“눈 밑에 있는 다크서클이나 좀 어떻게 해봐라.”

“훈장이야.”

언젠가 서지훈 교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크서클과 코피, 안구건조증은 대학원생에게 훈장 같은 거라고.

아직 휴식시간이었기 때문에 장내가 어수선했다. 민우는 말없이 자료를 정리했다. 서강일도 토론을 위해 준비한 자료를 하나하나 훑어보기 시작했다.

모든 준비를 끝낸 민우가 서강일에게 말했다.

“난 최선을 다할 거야. 그러니 너도 후회를 남기진 마라.”

“내가 할 소리 대신해 줘서 고맙구만.”

동시에 두 사람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전투 준비가 끝난 것이다.

곧 사회자의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지금부터 2부 2회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박민우 선생님. 시작해 주십시오.”

민우는 마이크의 전원을 올렸다. 그리고 청중을 한번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

“처음 연구에 착수했을 때 왜 하필 실존주의냐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미 연구가 많이 된 분야이기도 하고, 문학사에서 제대로 정리가 된 부분이라 특별히 언급할 거리가 없다는 이유에서였죠.”

민우는 차분한 어조로 연구 목적을 밝혔다.

학회에 익숙한 몇몇 청중들은 민우의 발표가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는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흔히들 말하는 모던한 생각이라는 관점에서 저는 실존주의가 여전히 우리나라 문학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연구에도 유행이라는 게 있지요. 그런 관점에서 실존주의를 평가한다면 분명 시시한 테마일 겁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예술사조적인 관점에서 실존주의를 바라본다면 여전한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바로 본고의 연구 목적입니다.”

민우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는 발표문을 바라보지 않고, 마치 강연을 하듯 청중을 바라보며 자신 있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다른 청중들, 특히 교수나 강사들이 흥미를 가진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일반적으로 발표자는 발표문을 그대로 읽는다. 읽으며 보충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서만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데, 민우는 처음부터 발표문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논지를 펼치고 있었다.

민우는 흘끗 서강일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을 위해 철야를 한 건 너만이 아냐. 수십, 아니 수백 번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고. 캠코더까지 돌려가면서.’

거기에 루카치의 만년필까지.

절대 질 수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민우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적당한 제스처를 섞어가면서.

“본고에서 사용한 ‘실존주의 문학의 재조명’이라는 표현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는 것과 실존주의의 본질로 돌아가 작품을 다시 바라본다는 것, 이 두 가지인데요. 다소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두 가지 관점의 융합이 제가 이번 발표에서 추구하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좌중에 잠시 술렁임이 보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중년의 사내.

한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장소필이 두꺼운 뿔테안경을 고쳐 썼다. 민우의 발표를 바라보는 두 눈은 마치 심판자의 위엄이 서려 있는 듯했다.

그는 국제비교문학회의 임원이자 서강일의 지도교수이기도 했다.

일전에 민영환 교수에게 자신의 제자가 이곳에서 발표한다고 들었다. 석사 2학기 학생이 발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민영환 교수는 신중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석사과정 학생에게 전국규모 학회에서 발표를 시키는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드디어 노망이 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발표를 들어보니 장소필 교수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준이…… 다르다. 정말 석사 2학기 학생이 맞는 건가?’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소필 교수가 침음을 흘렸다.

아무리 봐도 이건 석사가 할 수 있는 발표가 아니었다. 마치 석학의 영혼이 빙의하기라도 하듯, 민우의 목소리 하나하나에 설득력이 묻어나 있었다.

“굉장한데요.”

때마침 그 옆에 있던 국문과 나승규 조교수가 넌지시 운을 떼며 물어왔다.

“장 선생님. 저 친구, 누구 제잡니까?”

“민영환 선생 제자야.”

장소필 교수가 조용히 대꾸했다. 그러자 나승규 교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민 선생님 제자요? 명인대에 저런 친구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혹시 타대생입니까?”

“그렇다고 들었네. 어디였더라…… 그래. 맞아. 상아대 출신이라고 하더군.”

“상아대요? 뭐지. 이상한데요. 거기에 누가 있길래 명인대로 보낸 겁니까?”

“서지훈.”

아는 이름이 나오자 나승규 교수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계속 발표를 이어가고 있었다.

“잠깐 발표문을 보실까요? 두 번째 페이지를 보시면 표가 하나 있습니다. 이 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실존주의와 실존주의 문학이라는 키워드가 웹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여전히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료 수집에는 구굴 포털을 이용했는데요, 수치를 보시면 유의미한 자료가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민우는 잠시 간격을 두었다. 청중들이 자신의 발표문에 들어간 표를 보고 이해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아래 도표를 보시면 한 가지 의문점이 드실 겁니다. 실존주의와 해체주의가 비슷한 수준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는 점인데요. 저는 실존주의와 해체주의 사이의 변별점을 찾기 위해 MSD, 즉 명인대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조사했습니다.”

청중들의 시선이 다시 민우의 발표물로 향했다. 표가 보기 좋게 정리가 되어 있어 읽기가 수월했다.

“5천여 권의 문학 관련 잡지를 조사하여 나타낸 결괏값이 아래 표에 제시되어 있는데요. 예, 보시다시피 실존이라는 키워드가 해체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통계를 통해 여전히 한국 문단이 실존이라는 개념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민우가 싱긋 웃었다. 그리고 청중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우선 실존주의가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에 수용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번에도 크게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그 중심에 한국전쟁이 놓인다는 것은 아마 이견이 없을 거라고 봅니다.”

민우는 민영환 교수가 지도해 준 대로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실존주의 철학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영환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었다.

그때 옆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옛날 생각이 나는데요.”

서지훈 교수였다. 그는 태연히 민영환 교수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의 얼굴을 힐끗 바라본 민영환 교수는 다시 시선을 연단으로 돌렸다.

“한때 실존주의 스터디 열심히 했었죠. 승현이도 그랬고. 술 마시고 할 것 없어서 시작했던 스터디가 이런 식으로 결실을 맺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노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리라. 민영환 교수는 자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현대문학연구학회 겨울 학술대회 건으로 꽤 바쁘실 때가 아닙니까?”

“글쎄. 나도 확실히는 모르겠군.”

어느새 민우의 발표, 아니 강연은 중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민영환 교수가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막연히, 그냥……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고 할까.”

“인정해 주신 겁니까?”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 하지만 그럴 수가 없더군. 20년 넘게 고집스럽게 쌓아왔던 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잠시 회상했다. 민우가 국제비교문학회에서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던 때를.

메일 때문에 약점을 잡혔다. 그러나 민우는 약점을 이용하지 않고, 오히려 프랑스 학자들의 논문을 번역해왔다. 연구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그때 잊고 있던 무언가가 되살아났다.

무엇을 위해 학문을 하는 것인가?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풀기 어려운 명제였다.

“그런데 건방지게도 놈이 그 답을 알려주더군. 돌이켜보면 녀석은 끊임없이 뭔가를 보여주려고 했었어. 내가 거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지.”

“그렇습니까.”

“그래서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저놈이,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서지훈 교수는 웃었다. 민영환 교수와 같은 결론을 내린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민영환 교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너, 명인대로 옮긴다면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황태자의 귀환인가…… 후후. 학교가 꽤 시끄러워지겠어.”

민영환 교수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기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사이 민우의 발표는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는 이미 청중을 휘어잡고 있었다. 모두가 민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지식의 세계에 푹 빠져 있었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 다시 말해 실존주의 철학의 논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데요. 바로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이 ‘참여’라는 개념과 결합한 지점입니다. 여기에서 사르트르의 문예사적 위상이 드러납니다. 당시 작가와 비평가들은, 사르트르의 철학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지요.”

민우는 몇 가지 작품을 언급하며 그 작품을 구술로 분석했다. 그리고 문필가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던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발표지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관련 전공자들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토론을 준비하는 서강일에게는 재앙에 가까운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실존주의 수용은 반쪽짜리 수용에 불과합니다. 적어도 문학계에서는 말입니다. 해방 후의 좌우익 대립과 전쟁 이후 벌어진 냉전의 상황이 실존주의 철학의 본질을 왜곡시킨 결과를 낳게 된 것이죠.”

민우는 잠시 말을 쉬었다. 할 말은 충분히 다 했다. 후회는 없었다.

‘빠트린 게 있었던가?’

그 찰나의 순간에 민우는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발표 내용을 돌이켜 보았다. 약간 미진한 부분이 있긴 했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별문제 없을 것이다.

‘마무리하자.’

민우가 마이크를 꽉 쥐었다.

“그렇다고 해서 실존주의가 가지는 문예사적 의미가 폄하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적인 실존주의라는 네이밍이 가능하지요. 60년대 참여문학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한국적 실존주의의 의미를 다시금 새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참여’가 부족한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민우가 웃으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발표가 길어졌네요.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용하던 장내에서 일시에 박수가 쏟아졌다. 한진섭이 소리를 지르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는 얌전히 앉아 박수만 쳤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박민우 선생님의 발표 잘 들었습니다. 이어 서강일 선생님께서 토론을 진행해 주시겠습니다.”

민우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서강일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냉정한 눈으로 청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인상적인 발표였습니다.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나 먼지가 쌓인 실존주의라는 캔버스에 총천연색 물감을 덧칠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감명 깊었습니다. 아마 이곳에 계신 다른 선생님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을 겁니다.”

토론 첫머리에 으레 나오는 상투적인 인사말이었다. 민우는 가볍게 긴장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잠시 말을 줄인 서강일은 강민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서강일은 판단했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민우의 논리를 뚫을 수 없다고.

애초에 발표 방식을 예측하지 못했던 게 결정적인 문제였다. 강연식 발표는 다른 방법에 비해 논리의 흠결을 잡기가 어렵다. 중요한 부분만 골라 말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발표문을 구석구석 읽으며 논리적 오류와 비약을 찾아내야 하는 서강일의 입장에서는 청중의 지지를 받기가 어려워진 상황.

하지만 서강일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논문에는 도입 단계부터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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