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 이카루스의 날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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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 이카루스의 날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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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 이카루스의 날개 (2)
2021.06.04.
앰뷸런스가 도착하자 명인대학교 부속병원 응급실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환자 도착했습니다!”
119 대원이 이동식 들것을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뒤에 울상을 짓고 있는 수빈의 모습이 보였다. 의료진이 달려왔다.
당직의가 나타나자 대원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20분 전쯤 길을 걷다가 갑자기 쓰러진 환자입니다. 특별한 외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좀 봅시다.”
당직의가 펜라이트를 꺼내 민우의 눈꺼풀을 열었다. 불빛이 왔다 갔다 하며 동공을 비췄다.
고개를 갸웃거린 의사가 자리를 옆으로 옮겨 민우의 머리 부분을 확인했다. 상처는 발견되지 않았다.
“환자 이름은요?”
“박민우 씨입니다.”
당직의가 민우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박민우 씨. 정신 차리세요. 제 말 들리십니까?”
민우는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당직의는 꽤 여유롭게 움직였다. 그 사이 그가 몇 가지를 지시했고, 스태프가 민우의 몸에 기계를 연결했다.
삑― 삐빅―
민우의 심박에 맞춰 비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수염을 깎지 않아 추레해 보였는데도 당직의는 자신이 의사라는 걸 보여주듯 능숙한 손길로 민우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가 물었다.
“바이탈은?”
“비피는 100에 65, 펄스는 75입니다. 세츄레이션은 98입니다.”
당직의가 곰곰이 생각에 잠기다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수빈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발을 동동 굴리며 민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호자시죠? 평소 환자가 가지고 있던 질병이나 그런 게 있습니까?”
“그게…… 잘 모르겠어요. 평소에 먹는 약 같은 건 없는 거 같았어요.”
진짜 보호자인 박민아는 지금 병원으로 오는 중이다. 수빈이 그녀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기에 바로 연락을 한 것이다.
당직의가 다시 물었다.
“혹시 더운 데 오래 계셨습니까?”
“그런 건 아닌데, 요즘 좀 과로한 거 같았어요. 잠도 잘 못 자고 먹는 것도 좀.”
“그렇군요. 일단 몇 가지를 확인해야 하니 혈액검사 들어갈 거고요. 머리 CT 검사도 잡았으니까 가서 접수하고 오세요.”
CT라는 말에 수빈이 겁을 먹었다.
“뭔가 잘못된 건가요? 머리에 이상이 있나요?”
“지금으로서는 어디가 잘못됐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검사를 하려는 거고요. 결과가 나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곧 간호사들이 민우의 팔에 라인을 연결했다. 수액이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빈은 민우의 곁에 앉아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꾹 참았던 눈물이 툭 떨어졌다.
* * *
병원에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은 박민아였다. 그녀는 허겁지겁 응급실로 뛰었다.
워낙 넓은 곳이라 민아는 간호사를 붙잡고 동생의 위치를 물었다. 간호사가 가리키는 곳에 수빈의 모습이 보였다.
“이수빈!”
“언니.”
민아는 침상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호흡이 거칠었다. 그녀는 애써 숨을 참아냈다.
“민우는?”
“아까 깨어났는데 다시 잠들었어요.”
그는 편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수빈은 한참을 울었는지 화장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검사 결과는 나왔니?”
“아직요.”
“이 자식이 무리하지 말라니까!”
민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화가 났다.
동생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다.
누나로서 잘 챙겨줬어야 했는데, 최근 이직한 직장에 적응하느라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그게 끝까지 마음에 걸렸다.
민아가 수빈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단 너 화장 좀 고치고 와. 화장품 있니?”
“아뇨. 급하게 오느라…… 많이 이상해요?”
민아는 자신의 화장품을 챙겨주고 민우의 곁을 지켰다. 누워 있는 동생의 모습을 보니 울화통이 터졌다. 눈물도 찔끔 나왔다.
그때 멀쑥한 남자 의사가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까 초진을 본 의사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내공이 제법 느껴지는 남자였다.
“박민우 씨 보호자 되십니까?”
“예.”
“이쪽으로 오시죠. 결과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아는 불안감을 꾹 누르며 의사의 뒤를 따라갔다.
응급실 스테이션 한쪽에 마련된 진찰실에서 의사가 걸음을 멈췄다. 라이트 박스에 민우의 CT 사진 두 장이 걸려 있었다.
혹시 이상이 있는 걸까?
민아는 사진을 자세히 바라봤지만, 뭐가 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 사이 의사는 민우의 차트를 찾아 설명을 시작했다.
“음,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박민우 씨의 몸엔 별다른 이상이 없습니다. 안심하셔도 될 거 같네요. 사진도 깨끗하고요.”
“아.”
긴장이 사르르 녹았다.
민아는 하마터면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영양실조가 원인인 것 같네요. 빈혈이 좀 있어요. 최근 갑작스레 날이 더워진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이런 비슷한 환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죠.”
“그런가요…….”
“깨어나면 수액 맞고 바로 퇴원하셔도 됩니다. 약은 필요 없을 거 같습니다. 증세가 다시 나타나면 외래 진료 받으시고요.”
그런데 민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동생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선생님. 혹시 모르니 며칠 더 입원할 수 있을까요?”
“예? 그건 왜…….”
“며칠 더 병원에 있으면서 다른 검사도 해봤으면 좋겠어요. 제 동생, 밖으로 나가면 또 무리할 게 뻔해서요. 억지로라도 쉬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부탁드립니다.”
민아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난감한 표정을 지은 의사는 조금 고민을 했다.
“근데 지금 6인 이상 베드는 여석이 없어서 3인실로 가셔야 할 거 같은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요. 그렇게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수속 준비하시죠.”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기회에 동생의 건강을 제대로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받은 퇴직금이 있으니 병원비로 쓰기는 충분할 것이다.
그때 수빈이 돌아왔다.
화장을 고쳐서 그런지 훨씬 나아 보였다. 울상인 건 여전했지만.
“지금 의사한테 들었는데, 민우 별문제 없대.”
“정말요?”
“그래도 며칠 입원시켜서 좀 쉬게 해야겠어. 얘 요즘 엄청 무리했지? 책 낸다 뭐 한다 해서.”
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죄책감이 들어 민아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여자친구로서 민우를 잘 보살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너 많이 놀랐겠다. 어서 들어가서 쉬어. 병원엔 내가 있을 테니.”
“아녜요. 언니. 제가 있을게요. 회사에서 오신 거잖아요. 다시 돌아가 보셔야 하는 거 아녜요?”
“괜찮아.”
사실 괜찮지 않았다.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다. 오래 자리를 비우면 눈치가 보인다. 수빈은 그 사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억지로 민아를 자리에서 일으켰다.
“이따 퇴근하고 오세요. 그때까지는 제가 있을게요. 네?”
“알았어. 그럼 부탁할게.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입원 수속은 해 놓고 갈게.”
“예. 언니.”
그로부터 한 시간 뒤, 민우는 일반 병동에 입원했다.
* * *
잠에서 깨어난 민우의 눈에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망했다.’
상황은 수빈에게 모두 전해 들었다. 쓰러진 순간은 잘 기억이 안 났다. 갑자기 앞이 컴컴해지고 나서 의식을 잃었으니까.
‘원고. 어쩌지? 노트북 가져다 달라고 해야 하나. 책이랑 복사물도 다 챙겨야 하는데…….’
그때 옆에 있던 수빈이 버럭 화를 냈다.
“오빠! 또 원고 쓸 생각하고 있죠?”
“어? 아, 아니. 그냥…….”
“퇴원할 때까지 아무 생각도 하지 마. 응? 제발. 부탁이야.”
수빈의 눈에 습기가 고였다. 민우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과에 집중하다 보니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미련할 정도로. 민우는 이번 기회에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리고 미안했다. 아끼는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고야 말았다.
“근데 너 여기에 있어도 돼? 과외 있는 날이잖아.”
“다음으로 미뤘어. 오빠가 입원했는데 어떻게 일하러 가?”
“보다시피 멀쩡하잖아. 의사도 아무 이상도 없다고 했다며.”
“그래도.”
습기로 가득한 눈가를 손으로 훔치며 수빈이 억지로 웃었다.
“과일 좀 사 올게. 잠깐 기다리고 있어.”
수빈이 나가고 나서 잠시 후, 병실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진섭과 이재환, 그리고 강예진이었다.
이재환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물었다.
“얘기는 오면서 들었다. 몸은 좀 괜찮아?”
“괜찮습니다. 사실 입원 안 해도 되는데 누나가 하도 성화라서 어쩔 수 없이 입원했어요.”
“잘했다. 푹 쉬고 나오는 게 좋지. 방학 중이라 다행이다.”
민우는 멋쩍게 웃었다. 이렇게 선배들이 와 줄 줄은 몰랐다.
그때 진섭이 물었다.
“그럼 다음 주 대전행은 취소지?”
“그래야지. 근데 별로 아쉬워하는 표정이 아니다?”
진섭이 기다렸다는 듯 씨익 웃었다. 민우는 그 미소에서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린이 내일 올라온단다. 너 입원했다고 얘기했더니 서울 올라온다고 하더라고. 내일 보기로 했어.”
“왜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그래?”
“뭐가 쓸데없어? 하늘 같은 선배가 입원을 했다는데 당장 튀어 올라와야지.”
민우는 어머니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별거 아닌 일로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다. 누나도 그러는 게 낫다고 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이재환은 강의가 있어 먼저 자리를 떴고, 한진섭은 전화를 받으러 잠시 병실을 나섰다.
남은 것은 강예진뿐이었다. 민우는 설마 그녀가 병문안을 와 줄 줄은 몰랐다.
“누나가 와 주실 줄은 몰랐네요. 큰일도 아닌데. 죄송해요.”
“학교 바로 옆이라서 왔지 뭐. 그나저나 아주 좋은 타이밍에 쓰러졌네. 병원이 코앞이었으니. 운도 좋아.”
명인대학교 부속병원은 명인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었다. 그래서 후송이 빨랐던 것이다.
“에휴. 당분간 학회 준비는 나 혼자 해야겠네…….”
창밖을 더듬던 강예진의 시선이 민우를 향했다. 여유롭던 그녀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그녀는 아까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박민우. 조금 뜬금없는 얘기긴 한데. 너, 이카루스의 날개 이야기 알아?”
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일화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무모하게 날다가 추락하고만 비극적인 이야기.
그런 의도로 말한 걸까? 민우는 그 이야기와 자신의 상황이 겹쳐 보였다.
“안 그래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제가 좀 욕심을 부린 것 같아요. 그게 지나쳐서 날개를 잃고 추락한 거고. 그 얘길 하고 싶으셨던 거죠?”
“역시 석사 꼬꼬마라 그런가 해석이 일차원적이네.”
강예진은 웃었다. 그녀는 잠시 여유를 두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카루스의 이야기는 말이지. 인간의 욕심과 만용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열정과 도전의식을 보여주기도 해.”
“열정과 도전이요?”
“그래. 뭔가를 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들이라고 할까.”
민우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강예진이 은근히 민우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번 일로 많이 깨달았길 바란다. 어서 털고 일어나서 학교에서 봐.”
“고마워요. 누나.”
곧 강예진이 물러갔고, 통화를 마친 진섭이 안으로 들어왔다. 수빈과 함께였다.
“우. 퇴원은 언제냐?”
“다음 주 월요일. 몇 가지 검사 더 하긴 할 건데 별문제 없을 거 같다. 미안한데 공모전 본선 준비 좀 부탁할게.”
“드디어 나의 실력을 펼칠 시간인가? 기대해라. 기깔 나는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줄 테니까.”
“기대가 아니라 걱정이 드는 건 기분 탓인가.”
진섭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간이 늦었다.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럼 난 이만 가마. 이수빈 수고해. 이 기회에 민우한테 점수 잘 따. 그래야 기념일에 근사한 선물 받을 수 있을 거야.”
“기념일이요?”
진섭이 웃으며 혀를 찼다.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다 알아. 너희 둘 사귀는 거. 숨기느라 참 애쓰던데. 귀여운 녀석들…… 큭큭! 아무튼 잘 쉬고! 시간 나면 또 오마.”
진섭은 손을 들어 보이고 병실을 나섰다.
들키고 말았구나.
잠시 멍해 있던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