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38. 소크라테스의 변명 (2) (38/500)


038. 소크라테스의 변명 (2)
2021.04.29.


“무슨 일이죠? 일전의 출간 건이라면 이야기 끝난 걸로 알고 있는데.”

“답을 찾았습니다.”

“답이라니. 오자마자 뜬금없는 말을 하는군요.”

하지만 말과는 달리 송승현 실장은 흥미를 보였다. 민우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두 팔을 앞으로 모아 공손하게 섰다.

송승현 실장은 의자를 슬쩍 돌렸다. 민우와 마주하는 모양새가 됐다.

“그 일.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보군요. 잊어버릴 줄 알았는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때 실장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문제의식 없이, 그저 앞으로만 달려나가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송승현 실장의 눈썰미가 그의 변화를 눈치챘다. 그녀가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다. 민우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온화해졌다.

“흥미롭네요. 그럼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민우가 준비한 이야기를 꺼냈다. 신중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실장님께서 왜 이 책을 주셨는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무지를 아는 것을 학문의 출발점으로 삼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되새기라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민우가 웃었다.

왜 웃지? 송승현 실장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때 민우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뭔가 좀 이상했어요.”

“어떤 점이?”

“그렇게 되면 너무 쉬운 문제가 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실장님의 질문에 답이 되지도 못하고요.”

민우가 움직였다. 손에 들려 있던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책상에 놓였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보다 근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송승현 실장의 시선이 책에 닿았다 다시 민우에게로 향했다. 그의 설명이 계속됐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도 죽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독배를 마신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죠. 그게 바로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인간다운 삶이었습니다. 그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죽기를 택한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결론이 뭔가요?”

송승현 실장의 일침에 숨이 멎은 것 같은 침묵이 깔렸다.

하지만 민우는 그것을 걷어냈다.

이제는 그럴 만한 지혜와 용기가 있었다. 어깨를 펴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꺼냈다.

“인문학이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우는 그것이 송승현 실장의 질문에 대한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앞으로 자신이 추구해야 할 명제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방법…….”

민우의 말을 되풀이한 송승현 실장이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비웃는 것인지 호기심인지 알 수 없는 그런 미소다.

하지만 민우는 직감했다. 그 대답이 그녀의 의중을 꿰뚫었음을.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책장으로 가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제자리에 꽂았다.

“얘기는 잘 들었습니다. 박민우 씨. 더 할 말은 없나요?”

“있습니다.”

송승현 실장이 돌아서자, 민우가 그녀에게 꾸벅 인사했다. 지나칠 정도로. 허리가 접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깨달음을 얻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민우는 이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컴컴하기만 하던 밤하늘에 별 하나가 박힌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단순히 열심히만 하는 시기는 끝났다.

뚜렷한 기준이 세워졌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물론 민우가 세운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그가 평생에 걸쳐 입증해야 하는 하나의 과제로 남았다.

조용히 눈을 깜빡이던 송승현 실장이 편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수고했어요. 가서 일 보세요.”

실장실을 나서는 민우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편안해 보였다.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내면이 성숙해진 것이다.

송승현 실장이 중얼거렸다.

“순진한 친구. 감사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홀로 남은 그녀가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번호부에서 ‘ㅅ’자를 눌러 한 사람을 찾았다.

전화를 걸었다.

― 무슨 일로 여왕 폐하께서 먼저 전화를 다 하시나?

다정한 목소리. 송승현 실장이 미소를 지었다. 핸드폰을 귀에 대고 의자에 몸을 편히 기댔다.

“그냥 선배 생각이 나서.”

― 그냥은 아닐 텐데. 회사에 뭔 일 있나? 아, 사표 던졌구나? 쯧쯧, 좀 참지 그랬어.

“아니. 선배가 했던 말을 똑같이 하는 사람이 나타났어. 신기하게도 말이야.”

― 그건 신기한 일이 아니라 무서운 일인데. 내가 한두 마디만 떠들고 다니는 사람은 아닌 거 알잖아.

유쾌했다.

이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언제나 즐거웠다. 스무 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랬다. 15년 동안 변한 게 없다.

“왜, 있잖아. 학부 1학년 때 선배가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책을 주면서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해?”

― 음, 뭐였더라. 책 좀 읽고 똑똑해져라?

“오랜만에 전화했는데 자꾸 이러기야?”

― 하하하하하. 미안. 미안.

그는 늘 이랬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살짝 화제를 돌려 딴청을 부렸다.

먼 옛날 자신의 마음을 그에게 표현했을 때가 있었다. 그때도 그는 농담하며 딴청을 부렸었다. 미웠지만, 지금은 추억이었다.

핸드폰 너머의 사내가 물었다.

―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우리 회사에 연구원 하나가 있는데.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인문학이다.”

― 오, 제법 그럴듯한데. 크게 될 친구야.

“농담 좀 그만해. 이거, 선배가 늘 하던 말이었잖아.”

― 그랬었지.

잠시 침묵이 돌았다. 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왠지 그 친구를 보고 있으면 선배 학부 시절이 생각나. 외모는 닮은 거 하나도 없는데, 뭐랄까. 분위기가 닮았어. 내면이.”

― 당연하지. 누가 키웠는데. 어디 가서 꿀리지 않아야지. 암, 그렇고말고.

송승현 실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후회되지 않아? 선배가 상아대가 아니라 명인대로 갔다면 더 많은 제자들이 빛을 봤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왜 그 좋은 자리를 거절하고 시골로 간 거야?”

― 송 실장님. 대전은 시골이 아닙니다만.

“지금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

송승현 실장이 답답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쥐었다. 사내가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연구하려고. 그래서 여기로 왔지.

사내의 한 마디에 입이 다물어졌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웃었다. 명백한 우문현답(愚問賢答). 잠시 잊고 있었다. 그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맞아. 선배는 그런 사람이었지. 내가 잊고 있었네. 선배의 가르침, 앞으로도 기대할게요. 그럼 이만.”

― 승현아.

오랜만에 그가 이름으로 불렀다.

전화를 끊으려던 그녀가 다시 핸드폰을 귀에 댔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얼어 있던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 대학으로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 와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송승현 실장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싫은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웃어 보였다.

“선배. 나도 여기서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터득할 거야. 그러니까 기다리지 마.”

― 여긴 비가 오려나 보다. 거긴 어떤지 모르겠네. 이불 잘 덮고 자라. 괜히 한여름에 감기 걸리지 말고.

전화가 끊겼다.

그런데도 송승현 실장은 계속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통화목록을 열어 그의 이름을 확인했다.

서지훈.

그 세 글자 이름이 한동안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선배는.’

송승현 실장의 손이 움직였다. 보류된 서류철을 모아 둔 곳을 뒤적이더니 민우의 기획서를 찾아냈다.

서류철을 열었다. 자신이 서명해야 하는 곳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며 그녀가 펜을 들었다.

‘정말 후회하지 않아요?’

실장 칸에 서명이 들어갔다.

서류철을 덮은 그녀는 서류함에 그것을 던졌다. 의자가 빙글 돌았고, 그녀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때마침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해냈다아아아! 으랏차!”

민우는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자신이 제출했던 출판기획서가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들뜬 마음에 민우는 즉시 최민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됐습니다! 기획서 통과됐어요!”

― 야. 들뜨지 마.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라. 쉬운 일이 아닐 거야.

“앗, 예. 알겠습니다.”

― 사후 보고이긴 한데, 일단 민 선생님께 말씀드려 보마.

“허락하실까요?

― 박사 논문이 그대로 나가는 게 아니고 거의 새롭게 쓰다시피 해야 하는 거라 문제는 없을 거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그로부터 30분 뒤 민식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민영환 교수에게 허락을 받았다는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일이 술술 풀리는구나!’

하지만 그때 문득 생각나는 한 사람의 얼굴.

이수빈.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하는데. 연락도 안 받고. 그때 그렇게 연구실로 와 버렸으니 화가 많이 났겠지?’

실제로 그날 이후로 수빈은 민우의 연락을 무시했다. 잠시 생각하던 민우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수빈은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지음사 1층에 위치한 북카페에서 만났다.

분위기가 싸늘했다. 수빈은 인사도 하지 않고 인상을 굳힌 채 자리에 앉았다.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수빈아. 그게. 아, 정말 미안하다. 일이 좀 있었어.”

민우는 사정을 설명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상세히. 그러나 수빈의 표정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평소와는 달랐다.

오히려 그녀는 목소리를 높였다.

“어쩜 사람이 그래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명도 안 해주고 그렇게 홱 가버리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미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회사 일이라서 내가 참는 거예요. 아니었으면 진짜 화냈을 거예요.”

“잠깐만. 지금도 충분히 화내고 있는 거 같은……데?”

찌릿.

수빈이 노려보자 민우가 움찔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평소처럼 이해해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좀 의외였다.

사실 수빈의 입장에서는 화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민우가 무언가를 하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그래서 한껏 화장하고 차려입고 나갔다. 그런데 민우가 공연만 보고 도망쳐 버렸으니 화를 참기 어려웠던 것이다.

수빈이 미간을 찌푸렸다.

“잘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또 그럴 거예요?”

“아뇨…….”

민우를 다그치던 수빈은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마치 연인 같은 모습이다.

고개를 숙인 민우의 모습을 보니 왠지 미안해졌다. 애초에 화를 내려고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가 보고 싶었다. 단지 그 이유뿐이다.

수빈은 표정을 풀었다.

“오빠.”

“잘못했…… 응?”

“하하하! 오빠 방금 되게 웃겼던 거 알아?”

수빈이 웃자 잔뜩 졸아 있던 민우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제야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할 만한 분위기가 됐다.

“그래서 일은 잘 풀렸어?”

“오늘 최종 결재받았어. 나도 공저자로 들어갈 수 있게 됐고.”

“정말? 진짜 잘됐다. 벌써 그 나이에 단행본을 내다니…… 공저긴 해도 대단해.”

“운이 좋았지.”

“운도 실력이네요. 맞다. 커리어 문제는?”

“인문사회연구소 연구원 이력을 집어넣기로 했어. 그렇게 하면 크게 문제는 없을 거래.”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했으면 되는 거였잖아? 왠지 오빠 가지고 논 거 같은 느낌이 든단 말야. 암튼 이상한 실장님이야.”

그를 괴롭히는 사람은 모두가 적이다. 그것이 수빈의 귀여운 흑백논리였다.

“그렇지 않아. 고마운 분이지. 정말.”

문득 캄캄한 풍경을 목격한 민우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어라. 벌써 이렇게 시간이 됐나?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다.”

민우가 먼저 자리를 정리했다. 이수빈도 시간을 확인했다. 안타깝게도 벌써 밤 11시가 넘어있었다.

“이상해.”

“뭐가?”

“오빠랑 같이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

“나 혼내느라고 신나서 그랬겠지.”

“그런 거 아니거든?”

“아직 안 끝났어.”

민우가 수빈의 손을 잡았다. 돌발 행동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놀랐다.

“데려다줄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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