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37. 소크라테스의 변명 (1) (37/500)


037. 소크라테스의 변명 (1)
2021.04.26.


민우와 전남규 차장이 회의실에 마주 보고 앉았다. 그 사이 여직원 하나가 마실 것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나가고 나서야 이야기가 시작됐다.

“실례지만 올해 몇 살이십니까?”

“스물여덟입니다.”

“이야. 젊으신데 대단하네요. 6개 국어를 하시다니.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합니다. 외국에서 살다 오셨나요?”

“아뇨. 한국을 떠나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거 부끄러운 얘긴데…… 저 여권도 없어요.”

“의외네요. 저희 실장님처럼 해외파이실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닙니다. 그저 읽는 수준이라서.”

민우는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한편으로는 맞은편에 송승현 실장이 앉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장님께서도 인정하실 정도니 능력이 있으신 거지요. 그래서 말인데, 향후 블로그는 어떻게 운영하실 생각이십니까?”

“특별히 컨셉을 잡고 시작한 건 아닙니다. 그냥 해외의 새로운 저술이 있으면 간략하게 번역해서 소개하는 정도라서요.”

“그래도 그게 모이면 다 콘텐츠가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콘텐츠라는 말이 민우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분위기가 냉랭해지나 싶었는데, 민우가 찻잔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말했다.

“돈을 보고 시작한 건 아닙니다.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동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시작한 일이라서요.”

“아, 제 말은 그게 아니고요. 뭔가 자료꾸러미 같은 걸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어쨌든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상업적인 논리로 접근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열람할 때 돈을 받는 식으로요.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민우가 차분히 의견을 밝혔다.

지식은 조건 없이 공유되었을 때 가치가 있다. 민우의 생각은 그랬다.

게다가 자신이 하는 일은 단순 요약 번역에 불과했다. 대단하지도 않은 것을 자본주의적 논리에 섞이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렵게 생활하는 연구자들이 많다.

장학금이나 연구비를 받지 못하는 대학원생들이 태반이다. 적어도 기초자료만큼은 아무런 대가 없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게 민우의 생각이었다.

“하하하. 좀 오해를 하고 계신 거 같은데…… 저희 지음사에서는 오픈 라이브러리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지요.”

“아, 그래요? 그런 게 있는 줄은 몰랐네요. 나중에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지금 바로 보여드리죠.”

전남규 차장은 회의실에 있는 태블릿을 조작해 지음사 오픈 라이브러리에 접속했다.

핸드폰 앱으로도 개발되어 있었고, 다양한 정보를 조건 없이 열람할 수 있었다.

민우는 감탄했다.

“이거 괜찮네요.”

“아직 콘텐츠가 빈약하긴 한데, 앞으로도 계속 추가할 예정입니다.”

전남규 차장이 한숨을 돌렸다. 나이를 보고 쉽게 생각했는데, 민우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사실 저희도 구체적인 플랜을 갖고 연락을 드린 건 아닙니다. 일단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사실 저도 좀 놀라긴 했어요. 대학 연구소 쪽에서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이곳에서 일하는 입장이기도 하시니 잘 아시겠지만 저희도 학술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직 시작 단계이긴 하지만 브랜드 파워가 있으니 어디와 견주어도 지지 않을 겁니다.”

분위기가 다시 평온해졌고, 두 사람은 여러 화제를 놓고 다시 환담을 나눴다.

민우의 취미나 관심사, 학교생활 같은 잡다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최근 읽고 있는 독일 문학과 철학 저술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럼 오늘은 이쯤 할까요. 같은 회사니까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종종 말씀 나눴으면 합니다.”

“예. 고생하셨습니다.”

민우가 다시 아래층으로 돌아간 것은 한 시간 반이나 지난 뒤였다. 그 무렵 송승현 실장은 사무실로 복귀해 있었다.

전남규 차장은 민우와의 미팅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해 바로 실장실을 찾았다.

“실장님. 일전에 블로그 건 말입니다. 오늘 그 주인공과 미팅을 했습니다. 뜻밖에 말이죠.”

“뜻밖이라뇨?”

“재미있게도 우리 회사 사람이더군요. 인문사회연구소의 박민우 씨였습니다.”

보고서를 막 펼치려던 송승현이 멈칫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이었고, 그녀는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블로그 개설의 동기와 앞으로의 포스팅 방향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계약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계약 이야기는 안 했나요?”

“아, 그게. 자기는 아직 학위도 없고 학문적인 성과도 없어서 계약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괜찮다고 설득을 해 봤는데 워낙 단호해서…… 일단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는데 쉽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학위도 없고 학문적인 성과도 없다. 본인 입으로 그랬단 말이죠?”

“예.”

송승현 실장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보고서를 닫은 그녀가 그것을 다시 전남규 차장에게 돌려주었다.

“고생했어요. 가서 일 보세요.”

* * *

이틀이 지나도 출판기획실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민우는 텅 빈 메일함을 쓸데없이 뒤적이고 있었다.

‘내가 좀 성급했나?’

학위도 없고 학문적인 성과도 없다.

미팅에 대한 보고가 송승현 실장에게 올라갈 줄 알고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송승현 실장은 아무런 연락도 해 오지 않았다.

‘적어도 앞뒤가 다른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네.’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블로그는 돈을 보고 한 게 아니라 공부 겸 취미 삼아 하는 일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뭐, 나는 내 갈 길 가면 되는 거니까. 그럼 슬슬 가 볼까?’

자리를 정리하고 연구실을 나갔다.

민우는 혜화역에서 이수빈과 만났다. 오늘은 그녀와 공연을 보는 날이었다. 얼마 전 정은아 대리가 권한 그 공연이었다.

“오빠랑 공연 보는 건 처음이네.”

“그러게.”

“아 쫌. 뭔가 감동한 듯한 멘트를 해보라고요!”

“아, 감동이야.”

“영혼이 없잖아!”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두 사람은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막이 오르고 배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명이 순간 암전되더니 미약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비에 흠뻑 젖은 것 같은 우울한 음악.

회색빛 유니폼에 장갑을 낀 공장 노동자가 무대에 섰다. 피부가 까맣다. 외국인 노동자를 표현한 것 같았다. 그가 말했다.

“적은 임금과 과도한 노동! 여가를 즐길 시간도 없어. 가족들이 보고 싶어.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공장 노동자가 기계 앞에 섰다. 이어지는 칼날 소리. 노동자가 손을 붙들고 쓰러진다. 사방으로 붉은 액체가 튀었다.

결국, 그는 그토록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갔다. 주머니는 텅 비고, 한쪽 손이 잘린 채.

암전되더니 막이 내려갔다.

막이 올라가고 조명이 누군가를 비췄다. 어린 학생이 무대에 서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숫자로 줄을 세우는 건 너무해! 나는 꿈꾸고 싶어. 청소년이니까. 날아가고 싶다고.”

소녀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암전되고 뭔가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조명이 핏빛으로 바뀌었다. 관객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순간 배경이 바뀌었다. 가방을 멘 대학생이 무대에 섰다. 그가 말했다.

“취업은 힘들고 학자금대출은 산더미라고. 연애와 결혼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지!”

그 학생의 얼굴에 신용불량자의 낙인이 찍혔다. 학생은 웃었지만, 사지가 결박당해 있었다.

지켜보던 민우는 마음이 씁쓸했다.

‘너무 적나라하잖아?’

사회적 문제를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카렐 차페크의 희곡을 재해석했다고 해서 로봇이 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의 전개였다.

다음으로 와이셔츠를 입은 직장인이 무대에 섰다.

“나는 회사의 부품일 뿐이지! 대출 이자 갚기도 힘들어. 물가는 오르는데 연봉은 늘 동결이야. 하하하!”

“김 주임!”

“네에?”

직장 상사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 직장인을 경멸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손에 들린 서류가 직장인의 얼굴로 날아가고 나서야 막이 내려갔다.

민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 대리님은 왜 이런 공연 표를 주셔 가지고. 이거 보자고 한 내가 다 미안해지네.’

슬쩍 수빈의 표정을 살폈다. 의외로 그녀는 진지하게 공연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렇게 배우들이 드나들며 이야기를 펼쳤다. 무미건조한 회색빛의 이야기들이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드디어 클라이맥스.

모든 배우들이 꽃을 한 송이씩 들고 나왔다. 배경은 하늘이었고, 오늘 공연 중에서 가장 밝은 톤의 조명이 쓰였다.

배우들이 웃으며 꽃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그 장면을 보던 민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무슨 의미지?’

이미지가 잘 연상되지 않았다. 텍스트였다면 모르겠지만, 배우들의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쉽게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민우는 뭔가가 있다는 본능을 느꼈다.

‘집중하자.’

생각을 정리하는 와중에 공연이 모두 끝나버렸다. 민우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전혀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은, 한마디로 실험적인 공연이었다.

민우는 공연장을 나서며 연출가와 악수를 했다. 마지막 장면이 무슨 의미였는지 묻고 싶었지만 뒤에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었다.

민우와 수빈은 근처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수빈은 한껏 들떠 보였다.

“오빤 어땠어?”

“별로였어. 미안. 괜히 이런 거 보자고 했네. 좀 더 재미있는 거 볼걸.”

“아냐. 나름 생각해 볼 문제가 많아서 좋았어, 난.”

“그랬다면 다행이고.”

민우는 수빈을 앞에 두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마지막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무슨 생각해?”

“아니. 그게. 마지막 장면 말이야. 계속 신경이 쓰이네. 연출가가 뭘 의도했는지 도통 모르겠어. 뭔가 알 듯 말 듯 하면서도 모르겠다.”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는데, 간단하게 접근하니 의외로 쉽게 느껴지던데?”

“간단하게?”

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이런 거 아니었을까?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순간 민우의 눈이 커졌다.

“인간답게?”

며칠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조각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다 하나의 완성된 퍼즐을 만들어냈다.

‘인간다운 것.’

생각이 하나의 문장으로 축약되자 두 눈에 총명한 불빛이 번쩍였다.

“그런 거였구나!”

민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수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왜 그래?”

“미안. 정말 미안한데 나 지금 연구실에 나가봐야 할 거 같아.”

“어어?”

“나중에 연락할게!”

“오빠!”

수빈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민우는 그길로 지음사로 돌아왔다.

밤늦게 ID카드를 찍는 민우를 보는 보안실 직원의 눈매가 심상치 않았다.

그가 무언가 말을 걸려고 다가갔지만, 민우의 발걸음은 그보다 더욱 빨랐다.

14층엔 아무도 없었다.

민우는 불을 켜고 인문사회연구소로 뛰었다. 역시 연구실 안에도 아무도 없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그 한마디를 떠올리며 책상에 앉았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집었다. 그리고 전에 읽었던 한 부분을 떠올리며 페이지를 빠르게 넘겼다.

‘그래. 여기다.’

‘파이돈’ 챕터였다. 정확히는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는 장면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아주 유쾌하게 독약을 마셨다.

독이 퍼져나갔다.

친구들과 제자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침착했다.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주겠나?」

「꼭 갚아주겠네. 더 할 말이 없나?」

크리톤이 물었다. 그러나 이 물음에는 대답이 없었다. 곧 몸이 약간 움직이자 간수가 얼굴을 가린 것을 벗겨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눈은 움직이지 않았다. 크리톤은 그의 눈을 감기고 입을 다물게 했다.

「이것이 우리 벗의 최후였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알고 있는 당시의 모든 사람 가운데서 그가 가장 현명하고 올바르고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챕터가 끝나고 민우는 책을 덮었다.

이제야 그는 깨달았다. 송승현 실장이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자신의 학문 철학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다음 날, 민우는 아침 일찍 송승현 실장의 방을 노크했다.

“들어와요.”

민우는 당당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러나 민우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송승현 실장이 민우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자신이 얼마 전 주었던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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