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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200/200)


  • 에필로그
    2022.05.19.


    광화문.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축제였다.

    많은 이들이 플래카드 혹은 민국당의 깃발을 들고 흔들며 나를 반겼다.

    물론, 미래당과 최지만의 지지자들은 격한 어조를 내기도 했으나, 경찰이 나서기도 전에 시민들의 눈총을 받으면 알아서 사라지곤 했다.

    저 멀리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광화문 광장.

    그곳에는 커다란 단상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것을 중심으로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 있었다.

    이처럼 많은 시민이 모이면 무질서한 게 정상이나, 내 차가 가는 길만큼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비켜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광화문 광장의 중심에 도달했다.

    늘 마돈나를 포함해 의원실 직원만이 주변에 있던 평소와는 달랐다.

    청와대 경호실.

    그곳에서 나온 수많은 경호원들이 내 주변을 감싸고 있었으니까.

    대통령 후보와 달리, 당선인이 된 순간부터 국가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되기 때문.

    “당선인님.”

    아니나 다를까, 경호실장이 조끼 하나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입고 올라가셔야 합니다.”

    “방탄조끼인가요?”

    “예, 맞습니다.”

    나는 군말 없이 그의 의견을 따랐다.

    조끼를 안에 입었지만, 티가 나지 않도록 다시 블레이저를 입고 나서야 단상 위에 오를 수 있었다.

    “와아아아!”

    “최지훈! 최지훈!”

    “민국당 파이팅!”

    수많은 환호성이 내 귀를 울렸다.

    “하하하.”

    웃음이 절로 나왔다.

    감회가 새로웠다.

    아버지의 곁에서 설 때와 달랐다.

    홀로 광화문 광장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 수많은 사람들은 오직 나를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나의 당선을 축하하기 위하여.

    “후하!”

    가볍게 호흡을 들이마시고는.

    “올라가겠습니다.”

    짧은 말을 남긴 뒤, 힘차게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갔다.

    “우와아아아아!”

    손을 흔들자,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최지훈 만세! 민국당 만세!”

    마음 같아서는 하나하나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함성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손을 들어 그들의 환호성을 가라앉힌 뒤에야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최지훈입니다. 아니, 다시 한 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차기 대통령 최지훈입니다!”

    수많은 박수 소리를 들으며 말을 이어갔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가 준비한 연설문이 단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사실, 감사 인사를 하려고 연설문을 준비했거든요.”

    나는 단상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런데 이대로 읽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제 감정이 다 전해지지 않을 것 같거든요.”

    가볍게 입꼬리를 휘며 연설문을 덮어 버렸다.

    그리고 오롯이 나의 감정에 따라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를 지지해주신 많은 지지자분들. 그리고 저를 반대하셨던 여러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 되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그 이미지를 깨는 일은 없으리라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오래 전, 저는 이 자리에 섰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제가 주인공이 아니라, 제 아버지께서 마이크를 잡고 계셨습니다.”

    “그때와는 다르기에. 그렇기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요.”

    “저는 국민 여러분이 원하는 국가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강인한 나라, 모두가 살고 싶은 나라, 말도 안 되는 영화 속 이야기가 실현되지 않는 나라. 동화 속에만 등장할 법한 그런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대통령이 되고 싶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어렸을 적부터 대통령이셨던 아버지를 봐 왔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막연한 권력을 꿈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저는 단순히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꿈꾸던 통일. 제 손으로 이룩해 내겠습니다.”

    “수십 년 간 이어져 온 지역 갈등, 세대 갈등. 전부 해결하겠습니다.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치인들이 이를 해결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게 정치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거든요.”

    실제로 그렇다.

    지역 갈등과 세대 갈등을 이용하면 할수록 시민들은 서로를 적으로 돌리고.

    그게 정치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 되는 법이니까.

    “유토피아, 태평성대. 그 단어가 괜히 있는 말이 아닙니다. 실존할 수 있기에 존재하는 말입니다.”

    “탈출하고 싶은 나라, 헬조선 이따위 단어가 나오지 않게 하겠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민 오고 싶어 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소년 및 학생들이 저희의 미래입니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많은 분들이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을 겁니다. ‘네 꿈은 뭐니?’ 그러면 이 질문엔 많은 이들이 대답합니다. 판검사, 우주비행사, 대통령, 축구선수, 소설가 등.”

    “허나, 어느 순간부터 이런 꿈이 바뀌기 시작하죠. 학생 때는 대학만 가고 싶다. 성인이 되어서는 취업만 하고 싶다.”

    “그때부터는 누군가 꿈을 물어보면 이렇게 답합니다. 공무원이 되고 싶어요. 그게 먹고살기 좋거든요. 정년이 보장된대요. 아니면,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다고 합니다. 돈을 많이 버니까요.”

    “이런 꿈이 없는 사회에서 아이를 살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세 아이의 아빠로서 이러한 현실을 너무나도 비통하게 생각합니다.”

    “모든 인프라를 구축하여 학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 꿈이 그저 꿈에 지나지 않고 현실이 될 수 있는 나라.”

    “그러한 대한민국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연설은 여기까지.

    더 길어도 지루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제 아내에게 세 아이에게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나는 한 걸음 물러났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는 단상 옆으로 나와 국민들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지금까지 그 어떤 대통령도 하지 않은 파격적인 행보였다.

    나는.

    그렇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 * *

    ‘대통령 최지훈.’

    검은색의 명패가 이토록 위엄 있고 화려할 수 있을까.

    집무실을 천천히 걸었다.

    20평 남짓한 공간.

    이곳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장소다.

    그리고 이 집무실의 주인은 바로 나, 최지훈이다.

    “스으읍.”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가 다르다.

    산소에 비타민이 포함되어 있나?

    피식.

    헛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청와대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커다랗던 나무들이 이제는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아버지는 늘 이곳에서 창밖을 바라보곤 하셨다.

    이젠 내가 그렇게 되겠지.

    그래.

    이곳이 내 고향이다.

    마음의 고향이자, 내가 자라온 진정한 고향.

    똑똑.

    노크소리가 들린 뒤, 마돈나가 들어왔다.

    “각하.”

    “어, 임 실장.”

    마돈나, 임지현은 이제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었다.

    처음 그녀를 만날 때 했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지.

    “첫 일정 수행하실 시간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나는 흘긋 시계를 확인하고는 외투를 집었다.

    “출발하지.”

    * * *

    내가 향한 곳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최 씨 집안의 선산.

    아버지의 묘는 화려하지 않았다.

    당신의 유언에 따라 수수하게 만든 것이다.

    사실,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다 보면, 대한민국을 호령했던 전직 대통령의 묘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할 것이다.

    나는 생전 아버지께서 좋아하셨던 창해 12도 막걸리를 들고 무덤을 찾았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게.”

    “예.”

    마돈나를 포함해 경호원들을 뒤로하고 홀로 아버지의 안식처에 다가갔다.

    “아버지, 막내아들 왔습니다.”

    절을 두 번 올린 뒤, 막걸리를 천천히 무덤에 흩뿌렸다.

    “원래 산짐승 달려든다고 막걸리는 뿌리지 말라고 하였는데, 그래도 오늘만큼은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걸로 드리고 싶었어요.”

    나는 무덤 앞에 편하게 앉아 잔디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고태욱 총리 기억하시죠? 이제는 前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분은 청와대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지방에 터를 잡았어요. 전라남도 보성의 득량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사는데 농사를 지으며 살 거라네요.”

    아버지가 궁금해 할 만한 사람들의 근황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첫째 형은 서울시장 자리에서 물러났어요.”

    경찰 조사에서 압박을 느낀 그는 살길을 찾기 위해 언론을 잠재우려 한 것이지.

    허나, 내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형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에요.”

    셋째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넷째 형은 진짜 최고예요. 결국 꿈을 이루고 대한민국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사장이 되었어요. 회사 주가를 보면…… 아버지도 결국 인정하실 수밖에 없을걸요?”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저는 잘 살고 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 결국 대통령이 되었네요.”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상상이 되었다.

    “진짜 놀랍죠? 저까지 포함해서 6남매잖아요. 아버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통령이셨는데…… 그 많은 형제들 중에서 제가 유일하게 당선되었어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옛날 같았으면 막내가 반란을 일으켜 손윗사람들을 짓밟은 거죠.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라서 그렇진 않았습니다. 아주 정정당당하게 승리했어요.”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버지를 다시 뵈게 되었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잘했다.’라고 하실 수 있을 만큼 훌륭하게 이끌겠습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덩이에 묻은 잔디를 훌훌 털었다.

    “만약 아버지보다 잘해도 놀라지 마세요. 저는 타고났으니까요.”

    묘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이제 가 보겠습니다, 아버지. 또 찾아올게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나오는데, 마돈나가 분주하게 다가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달라고 했기에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오지 않을 터.

    비상 상황임에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각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북한에서 각하의 청와대 입성에 맞춰 포격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바다에 포탄이 떨어졌기에 불행 중 다행으로 피해자는 없는 상황입니다.”

    “하.”

    코웃음이 나왔다.

    “당선 축하 선물 아주 기똥차게 주는구먼.”

    나는 팔을 걷어붙이며 차로 향했다.

    “북한 이 자식들,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 줄도 모르고 말이야.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차에서 브리핑 드리겠습니다. 이번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이번에 본때를 보여주자고.”

    -파란집 막내아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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