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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불꽃 (2)
2022.05.18.


똑똑.

“김민영 비서님 계십니까?”

마돈나가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서울시청.

놀랍게도 김민영 비서는 여전히 서울시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다만, 이번 선거캠프에는 뽑히지 않았는지 유세운동을 다니는 최지만과는 따로 다니고 있었다.

“제가 김민영인데 무슨 일이실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런 사람인데요.”

보는 눈이 많았기에 최지훈 선거캠프에서 나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마돈나는 명함을 건네며 물었다.

“혹시 잠깐 이야기 좀 나누실 수 있을까요?”

내용을 확인한 그녀는 흠칫하더니.

“이쪽으로 오시죠.”

마돈나를 밖으로 안내했다.

그녀들이 향한 곳은 시청내의 흡연구역.

업무 시간이기에 유동인구가 많지는 않았다.

김 비서는 담배 한 대를 꼬나물며 물었다.

“담배 태우세요?”

“아니요.”

“죄송해요. 저는 한 대 피워야 될 것 같아서.”

“편하게 피우십시오.”

마돈나는 한 걸음 물러났다.

“후우.”

김 비서는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물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걸까요?”

“비서님께 도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무슨 도움이요?”

마돈나는 최지훈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최지만 시장으로부터 옳지 못한 일을 당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도와드리고 싶어서요.”

“옳지 못한 일이라…….”

그는 낮게 되뇌더니.

“굉장히 두루뭉술한 발언이네요.”

조소를 지었다.

허나, 마돈나는 끌려가지 않았다.

“그 일 때문에 담배를 피우시게 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김 비서는 눈썹을 들썩이며 담배연기를 한 모금 마셨다.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계신 것 같기도 하네요.”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화가 흘러가면 어차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을 터.

마돈나는 결심을 세우고 먼저 본론을 꺼냈다.

“최지만에게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 비서는 명함을 다시금 살핀 뒤 고개를 들었다.

“보좌관님.”

“네.”

“어디까지 알고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저는 서울시청에 소속된 사람입니다. 집안도 그렇게 넉넉하지 않고요. 아니, 가난한 축에 속하죠.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더러워도 일해야 돼요.”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신다면, 그 뒤의 일은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최지훈 의원실에서 고용하시게요? 뭐, 잘되면 청와대로 들어갈 수도 있겠네요.”

“의원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이번 일의 진상을 밝히신다면, 청와대에 입성한 뒤 비서실로 모셔오겠다고요. 실패하더라도 국회의원실에서 고용하리라고 약속드립니다. 그게 싫다면, 지한그룹 본사 비서실로 보내드릴 수도 있고요.”

“글쎄요.”

김 비서는 담배꽁초를 툭 떨어뜨린 뒤, 발로 짓이겼다.

“솔직히 믿기가 힘드네요.”

“어떤 점 때문일까요? 말씀해 주신다면,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김 비서는 마돈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둘이 같은 핏줄이라는 점이요.”

예상도 못한 답변을 꺼냈다.

“유전자가 거기서 거기인 사람들이잖습니까? 최지훈이라고 최지만과 다를 것 같지 않아서요.”

그녀는 마돈나를 스윽 훑어보더니.

“비슷한 일이라도 겪은 적 없으십니까?”

“전혀요.”

마돈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애초에 그러한 걱정을 해보지도 않았고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러나 김민영 비서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전 믿을 수가 없네요. 아예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같은 핏줄이라면…….”

마돈나 또한 그녀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한 번 몹쓸 짓을 경험한 그녀 입장에서는 최지훈과 최지만이 형제라는 사실만으로도 위협적이게 느껴질 수 있었으니까.

허나, 그녀는 김민영 비서를 설득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최지훈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 테니까.

“걱정이 되시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점이 됐든 안심하실 수 있도록 대안을 세워 드리겠습니다.”

“대안이요?”

김민영 비서는 코웃음을 쳤다.

“국회에 계셨으면 내부고발자의 말로를 누구보다 잘 아실 거 아닙니까?”

그녀는 다시금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두렵습니다.”

“최지만의 보복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김민영 비서는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 대한민국에서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편견이 있잖습니까? 게다가 다른 범죄도 아니고 성범죄 피해자입니다. 심지어 인터넷에서는 강간 피해자한테 걸레라는 소리까지 하는 마당인데…… 제가 고발을 하게 되면 제 얼굴도 알려지게 되는 셈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신상은 보호해 드릴 수 있어요. 이건 최지훈 의원이 아니라,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그쪽을 어떻게 믿고요?”

김민영 비서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불안합니다. 믿을 수도 없고요. 언제든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라…….”

그녀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이상, 저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습니다.”

“잠깐만요.”

마돈나는 짧은 사이에 그녀의 의중을 캐치했다.

“만약 제도적으로 보장이 된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는 건가요?”

“…….”

김민영 비서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는 대답 대신 걸음을 옮겼다.

“돌아가 주세요. 오늘은 너무 피곤하네요.”

* * *

“최지만의 비서직에서 밀린 건가?”

“예. 지금은 부시장을 담당하고 있는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정도 위치에 있었으면 알 텐데. 내가 최지만과 상극이라는 걸.”

내 의견에 마돈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도 의문이 생겨 확인해 보았습니다. 왜 이렇게 불신이 팽배한가 했더니, 과거에 실제로 예전에 여성단체에 한 번 제보를 한 적이 있더라고요.”

“그래?”

“네. 그러나 해당 단체의 수장이 최지만의 측근이었고, 그 사실에 대해 조사가 들어가기도 전에 최지만의 귀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아…….”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러니 불만이 팽배할 수밖에.”

“여하튼 그런 일이 있었기에 김민영 비서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말했던 대로 제도적인 개편이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마돈나는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저희가 국회에서 일을 한다고는 하나, 이제 겨우 열흘 남짓 남은 이 시점에서 제도를 새로 만들기에는 너무 무리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통과를 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다른 범죄도 아니고, 위력에 의한 성범죄 피해자의 신상을 보호하는 제도는 당연히 가능하지.

허나,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정기 국회나 임시 국회가 열리지도 않은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빨리 통과시킨다고 해도 석 달을 잡아야 했으니까.

“대통령이 나선다면 모를까…….”

“어?”

잠깐만.

마돈나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내 귀를 사로잡았다.

“대통령이 나서면 이야기가 다르잖아.”

“예? 그렇긴 합니다만…….”

나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냈다.

“오늘 내 일정 마무리가 몇 시지?”

“공식적인 일정은 오후 7시, 비공식 일정은 오후 9시에 끝납니다.”

“10시에 청와대로 들어가야겠어. 지현 씨 야근 좀 해야겠네.”

“예. 수행비서한테도 알리지 말까요?”

“응. 둘이 들어가자고.”

“알겠습니다.”

고태욱 대통령.

그는 나의 편이다.

그 카드를 이용해야만 한다.

* * *

사흘 뒤.

선거까지 겨우 일주일을 남긴 시점에서 고태욱 대통령이 직접 국민들 앞에 섰다.

-대통령령(大統領令)으로 선포합니다.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해 임의적인 추적 불가 및 그들에게 보복 인사를 단행할 시, 직위 해제 및 파면을 할 수 있으며, 일반인들 또한 추측성 발언을 통해 신상을 공개하려 할 경우…….

그는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고태욱 대통령의 입장에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제도 자체는 당연히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옳은 목적이었고.

나에게 자리를 물려주려던 그의 입장에서도 성범죄자가 그 자리를 가로채 권좌에 오르는 건 막아야만 했으니까.

-이는 제가 대통령으로서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마지막 제도가 될 것입니다.

고태욱 대통령의 선언이 나온 뒤, 마돈나가 다시 김민영 비서를 찾아갔다.

그녀는 굉장히 놀랐다고 한다.

최지만과 최지훈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위해 대통령령으로 법을 선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했으니까.
마돈나의 오랜 설득 끝에 그녀는 모든 사실을 밝히기로 했다.

성희롱 및 성추행은 하루이틀이 아니었다고 한다.

신체를 더듬는 건 물론이고, 그녀의 남자친구 및 사생활에까지 관여하며 온갖 더러운 말을 내뱉었다고 했으니까.

이 중 많은 부분을 녹음해두었으나, 밝히지 못하고 묻어둔 것까지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이를 밝히려고 여성 인권 단체에 제보했다가 보복성 인사를 당한 것까지 모두 밝혀지며 최지만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최지만은 그게 성추행이나 성희롱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주장했다.

성범죄가 아니라, ‘바람’을 피운 것이라고 말이다.

허나, 그걸 믿어줄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피해자가 있는 순간, 그건 사랑이 아닌 범죄가 되는 법이니까.

그뿐만 아니라, 그의 치부들까지 속속들이 밝혀졌다.

마돈나가 많은 조사를 한 끝에 최지만이 자주 드나들던 룸살롱에서 일했던 웨이터 및 여성들의 제보가 퍼졌다.

대놓고 기업에서 돈을 받아먹은 사실은 없으나, 여자들을 괴롭히며 더럽게 놀았던 것이지.

결국 대선 구도는 원하는 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미래당에서는 최지만을 살리기 위해 온갖 공격을 내게 퍼부었다.

실제로 없던 음모와 음해까지 가하며 날 무너뜨리려 했다.

허나, 네거티브에 쉽게 당할 내가 아니었다.

애초에 한예린과의 결혼으로 내가 돈을 챙길 일도 없어졌고.

부족한 돈은 아버지가 물려주신 비자금을 통해 처리를 할 수 있었으니까.

이에 따라, 최지만의 지지율은 하락했고.

나의 지지율은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선 하루 전.

마침내 지지율을 역전하는 데 성공했다.

51대 49.

허나, 오차 범위 내였기에 안심하기엔 일렀다.

* * *

“후보님, 여기 한 번 봐 주시겠어요?”

선거 당일.

나는 한예린과 함께 오전 6시에 딱 맞춰 투표소로 향했다.

손등에 투표 도장까지 찍어 인증을 하며 기자들에게 말했다.

“제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 주시길 바랍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민중을 무서워 하는 법이니까요.”

오후 6시.

투표가 마감되며 출구 조사 결과가 나왔다.

52대 48.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들 박수를 치며 환호했지만, 기뻐하기엔 일렀다.

이 정도면 오차 범위 내였으니까.

오후 7시.

근소하게나마 내가 앞서기 시작했다.

오후 8시.

조금씩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출구 조사 결과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오후 9시.

선거캠프에 취재진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 모습을 취재하기 위함이었지.

원래 선거라는 게 그렇다.

올림픽에서는 1등, 2등, 3등 모두 메달이 주어지지만.

선거에서만큼은 오로지 1등만 기억되는 법이니까.

그리고 오후 10시를 넘어 오후 11시.

TV에서는 내 얼굴에 도장이 쾅 찍혔다.

-최지훈 후보 당선 확정!

“와아아아!”

캠프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내게 다가왔다.

헹가래를 치려 하기에 한사코 거부했지만, 의원실부터 함께했던 직원들은 내 의사를 무시하고 나를 들어올렸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돈나가 내게 꽃다발을 전해 주었고.

아내 한예린이 꽃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그리고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여보, 수락 후보 연설하러 가야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로 승리했다.

드디어.

기어코 꿈에 그리던 자리에 서는데 성공했다.

엔도르핀이 쏟아지고 도파민이 온몸을 흠뻑 적셨다.

팔에는 소름이 돋고 얼굴엔 혈류가 마구 돌기 시작했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내 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마약을 해도 이보다 짜릿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러 가야지.”

나는 아내와 함께 광화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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