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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불꽃 (1) (198/200)


마지막 불꽃 (1)
2022.05.17.



“의원님!”

강선우 보좌관이 다급한 목소리를 내며 선거캠프로 뛰어 들어왔다.

“기사 확인하셨습니까?”

“왜, 무슨 일 생겼어?”

“미래당 대권 후보가 결정되었습니다.”

강선우 보좌관은 호들갑을 떠는 스타일이 아니다.

즉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 후보로 나섰다는 뜻일 터.

“누군데?”

“최지만입니다.”

“……뭐?”

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 첫째 형 최지만?”

“예, 서울시장을 맡고 있는 그 최지만입니다.”

“……허.”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의 혈육인 최지만이 나설 줄이야.

지금까지 그는 한 번도 대선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늘 서울시장 자리에 만족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삼아 왔으니까.

물론, 내가 그 말을 100% 믿은 건 아니다.

언젠간 서울시장을 넘어서 대권을 탐내리라고 생각은 했으니까.

허나, 이번 대선에 나올 줄은 몰랐다.

타이밍이 좋지 않다.

다른 때라면 모를까, 하필 고태욱 대통령이 물러난 이 시점에서…….

아니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너무 무르게 생각했다.

우리 형제들 중 권력 욕심이 가장 강한 건 둘째나 셋째가 아니라, 첫째 형 최지만이다.

호시탐탐 이때를 노리고 있던 것이지.

그도 고태욱 대통령이 죽기 전까지 집권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테니, 언젠간 올 이 날을 대비한 것일 터.

그 증거로 지금까지 최지만은 굉장히 깔끔하게 살고 있었다.

간혹 룸살롱에 다녀가는 정황이 포착되는 등 여자 문제는 깔끔하지 않을지언정, 기업에서 돈을 받아 챙기는 의혹은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예 돈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닐 터.

아마 받아도 탈이 나지 않는, 재벌 중에서도 안전한 돈만 받아 챙겼을 테지.

“이거 쉽지 않겠는데…….”

혹시나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최지만에 대한 수사를 적지 않게 했으나, 그렇다 할 만한 약점을 쥐고 있는 건 없었다.

이전에 문제가 되었던 건 전부 서울시장 선거를 4번이나 치르며 모두 털어버렸으니까.

선거에서 상대방의 약점을 알지 못하면 승리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아무리 네거티브를 하지 않는다고 한들, 약점을 쥐고서 하지 않는 것과 아예 못 하는 건 다른 일이기 때문.

“강 보좌관.”

“예, 의원님.”

“출마 선언은 언제라고 합니까?”

“아마 오늘 중에 인터넷을 통해 발표할 거라고 추정됩니다.”

“아주 일사천리구먼…….”

나는 턱을 매만지다가 결정을 내렸다.

“다른 일은 다 제쳐 두고 최지만의 주변 인물에 대해 조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 * *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서울시장 최지만입니다.

그는 다시금 우렁차게 외쳤다.

-다시 한 번 인사드리겠습니다. 미래당 대선 후보 최지만입니다!

인터넷을 통한 출마 선언은 뉴스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저는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정말 긴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지금까지의 저는 ‘故 최준석 대통령’의 색깔과 정치 방식을 존중했기에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습니다. 12년 간 청와대를 지켰던 고태욱 대통령이야말로, 아버지의 뜻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고태욱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다는 결정을 했기에 제가 나서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저는 故 최준석 대통령의 장남입니다. 언론과 업무, 정치에서 비춰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가정에서의 아버지도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한 마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지만은 주먹을 꽉 쥐며 외쳤다.

-아버지 시절의 영광을 되살리겠습니다. 최준석 대통령의 영광을 재현하겠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하…….”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너무나도 노골적이다.

아주 대놓고 아버지를 팔아서 영업을 하고 있는 꼴이다.

게다가 직설적으로 ‘최준석 대통령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은연중에 아버지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만들었던 나와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이러면 내 출마 선언의 색이 옅어진다.

당연히 은유보다는 직유가 일반인들에게는 더 와닿는 법이니까.

출마 선언이 끝남과 동시에 인터넷에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최지만이 오열했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우후죽순 올라오기 시작했다.

작성자는 일반 누리꾼들을 가장하고 있었으나, 최지만의 선거 캠프 직원임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뻔하게 알 수 있는 사실.

과거,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의 대선이 펼쳐졌을 때, 최지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떻게든 아버지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 시민들에게 자신을 어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그의 선거 방식이라고 하면, 나는 존중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무려 12년이 지났다.

하늘에서 편히 쉬고 계실 아버지를 이런 식으로 이용할 줄이야.

아니.

그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겠지.

권력을 위한 디딤돌.

저런 인간이 최준석 대통령의 후계자를 자청하며 권력을 쥐는 꼴을 볼 수는 없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게 정의고, 아버지가 바라는 바일 테니까.

* * *

“지금 상황은 어때?”

“57대 43입니다.”

선거 캠프의 분위기는 굉장히 우중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태욱의 기권으로 손쉽게 승리할 줄 알았던 형국과 달리.

최지만의 출마로 인해 내가 고전을 겪고 있었으니까.

이유는 단순했다.

우선, 미래당은 ‘여당’이다.

고태욱 대통령이 출마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고태욱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게 아니다.

국제적인 위상과 달리, 내수 경제를 살리며 국민들의 삶의 질이 올라간 건 사실이니까.

그렇기에 누가 출마했느냐를 따지기보다는 미래당 자체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많았기 때문.

게다가 정통성으로 따져도 내가 밀릴 수밖에 없다.

‘최준석 - 고태욱 - 최준석의 아들’로 이어지는 구도에서 장남과 막내아들은 유교 정신이 만연한 대한민국에서는 나보다는 최지만을 지지할 수밖에 없을 터.

심지어 최준석 대통령의 향수를 그리며 나를 지지하던 사람들 중 절반이 최지만의 세력으로 넘어갔으니 말할 것도 없지.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해야 해.”

“맞습니다. 지속적으로 격차가 줄어들고 있긴 하나, 그 기세가 강하지 않습니다.”

지지율의 차이 자체는 줄어들고 있으나, 커다란 사건이 없다면, 이대로 흘러갈 터.

선거 당일까지는 이제 겨우 2주.

기껏해야 53대 47 정도로밖에 줄일 수 없다.

“최지만의 측근들에 대한 조사는 아직이야?”

“예. 최지만이 이번 선거를 대비해 문제 있는 사람들은 다 쳐내고 청렴한 사람들로만 캠프를 꾸린 것 같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장난이 아닌데…….”

나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법을 찾아내야만 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죽 쒀서 개를 줄 수는 없다.

다른 형제들을 다 꺾어 놓고, 이제 와서 최지만에게 질 수는 없다.

“당장 다들 일어나서 뭐라도 건져와. 찾기 전까지는 집에 들어갈 생각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선거 캠프 직원들이 밖으로 향했다.

마돈나는 태블릿 PC를 챙겨 내게 다가왔다.

“의원님. 30분 뒤부터 대학로에서 젊은이들을 상대로 유세 운동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바로 출발하셔야 됩니다.”

“알았어.”

외투를 챙기려던 그때.

지잉지잉-.

익숙하고도 반가운 이 소리.

오래도록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분명히 들었다.

나도 모르게 팔에 소름이 돋으려 한다.

탄성이 터져 나오려는 걸 꾹 참고 휴대폰을 들었다.

-보낸 이: 35.

-동영상

예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미래 문자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래 문자!

“지현 씨.”

“네?”

“5분만 이따가 출발하도록 하지. 먼저 내려가 있어. 바로 내려갈게.”

“알겠습니다.”

마돈나를 내보내고 곧장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김 비서, 들어와 봐.

제일 먼저 들려온 건 최지만의 목소리.

이내 화면이 밝혀지며 그 모습이 드러났다.

서울시청의 시장실.

그 중심에는 역시나 최지만이 서있었고.

짧은 노크와 함께 그녀의 비서 김민영이 들어왔다.

-그때 내가 맡겼던 숭인동 재건축단지 관련 초안 아직이야?

-종로구청장이 한 가지 수정사항이 생겼다고 해서 다시 보낸다고 하여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 중으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중상일보 그 기자 건은?

-오 실장이 1억 건네주는 것으로 해결하기로 마무리했습니다.

-다행이네. 하필 그 새끼한테 걸려가지고…….

-시장님.

김민영 비서는 잠시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충언을 던졌다.

-아무래도 룸살롱에 드나드는 건 자제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VIP 업소라서 외부로 유출이 되지 않는다고는 해도 최근 들어 소문이 좀 많아지고 있어서요.

-하아, 김 비서.

최지만은 살벌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 기자 때문에 오 실장이 수면 밑에서 움직이니까 자네가 진짜 2인자라도 된 것 같아?

-죄송합니다.

김 비서는 아차 싶었는지 허리를 접었다.

-제가 선을 넘는 발언을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김 비서, 이리 와 봐.

그는 손짓을 하여 자신의 의자 옆까지 그녀를 불렀다.

바로 옆에 서고 나서야 최지만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내가 룸살롱에 드나들든, 말든 김 비서가 무슨 상관인데?

-죄송합니다. 저는 걱정이 되어서…….

-집사람과는 리스인 지 오래야. 나는 이 외로움을 어디서 풀어야 되는데?

최지만은 탐욕스레 눈을 굴리더니.

슬쩍 손을 뻗어 김 비서의 엉덩이에 가져다 댔다.

-김 비서가 도와줄 거야?

-시장님.

김 비서는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났지만.

-왜?

최지만은 태연하게 팔을 잡아 다시금 자신에게 끌어왔다.

-김 비서가 도와주려던 거 아니었어?

-죄송합니다. 다시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관여해. 기왕 관여할 거면 아주 깊숙하게 관여하자, 이거지. 김 비서도 성공하고 싶은 거 아니야?

-…….

-성공이 목적이 아니면, 돈이 필요한가?

최지만은 음흉하게 입술에 침을 발랐다.

-뭐가 됐든 나는 다 이뤄 줄 수 있는데.

-저는 업무에 집중하겠습니다, 시장님.

-김 비서.

최지만은 정색하며 미간을 구겼다.

-그러지 마. 내가 이상한 짓이라도 한 것 같잖아.

-…….

그는 김 비서의 엉덩이를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앞으로 내 사생활까지 걱정해 주려거든, 그 대책까지 강구해서 말해. 알았어?

-알겠습니다.

그 대화를 끝으로 동영상은 종료되었다.

최지만 이 개자식.

개가 똥을 끊지, 역시 더러운 심성은 어디 안 간다니까.

자신의 욕구를 밖에서 표출을 못 하니까, 내부에서 썩어들어가고 있었구먼.

이거라면, 대세를 뒤집기에 충분하다.

선거 당일까지는 2주.

문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데…….

나는 곧장 마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의원님.

“지현 씨. 대학로 유세운동 뺄 수 있나?”

-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유동인구가 꽤 많기도 하고, 이미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여 있다고 해서요.

“그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한 10분 정도 늦어도 되나?”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금 당장 사무실로 올라와. 자네가 해야 할 일이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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