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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걷히고 (2) (197/200)


  • 먹구름이 걷히고 (2)
    2022.05.16.



    “준비되셨습니까?”

    마돈나의 물음에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직.”

    정계예 입문한 지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간다.

    국민들 앞에 서는 건 익숙하고 기자회견장은 마치 내 안방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허나, 오늘만큼은 평소와 달랐다.

    출마 선언.

    무려 대권으로 출마 선언을 하는 날이었으니까.

    내가 자각이라는 걸 가졌을 때부터 늘 꿈꿔 오던 자리.

    드디어 ‘대통령’에 도전하게 되었고.

    그게 공식화되는 날이었으니까.

    나는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만졌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의원님.”

    그때 마돈나가 핸드백에서 다른 넥타이를 하나 꺼내 건넸다.

    “이걸로 바꿔 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파란색의 넥타이.

    “그래. 이게 나에게 어울리겠군.”

    내가 넥타이를 풀자, 그녀는 손수 파란색 넥타이를 내 목에 걸어 주었다.

    정돈을 하고 나서 거울을 보니, 그제야 입가엔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야 좀 괜찮은 것 같네.”

    “출발하시겠습니까?”

    “그러지.”

    나는 마돈나의 에스코트를 받아, 기자회견장에 도착했다.

    단상에 올라,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최지훈입니다.

    수많은 기자들이 눈앞에 서있었다.

    허나, 평소와 같은 정론관이 아니라, 개방된 공간이었기에 많은 시민들도 참석해 있었다.

    대부분은 나의 지지자들이겠지.

    출마 선언이라는 건 미리 이야기해 두었기에 나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것일 테니까.

    “빙빙 돌리지 않고 최지훈의 방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어려운 말 쓰지 않고, 효과적으로.

    “저는 대한민국을 최고의 나라로 만들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대통령이 되어야겠습니다.”

    어느 논설문이든, 두괄식 구성이 가장 단순하고 제일 잘 먹힌다는 건 불변하는 사실.

    이제부터가 진짜 본론이다.

    “많은 이들이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 시민보다 아래에 있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주장을 하며 표를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그저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한결같이 똑같은 정치인으로서의 자태를 보였습니다.”

    “그들을 보며 얼마나 답답해하셨습니까? 그래도 이번엔 다르겠지, 다음엔 또 다르겠지 희망을 품었고. 그 기대를 산산조각으로 부서뜨리는 정치인들만 만나셨잖습니까?”

    “저는 그런 희망을 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아직까진 시민들의 얼굴에선 물음표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 국민들을 찍어 누르겠다는 소리냐? 라고 들릴 테니까.

    “국민 여러분을 무시하겠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여기서부터가 핵심이다.

    왜곡되지 않도록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제대로 전해야 한다.

    “따뜻하고 인자한 대통령이 되지 않겠습니다. 제가 오랜 기간 정치를 하면서 깨달은 건, 온화하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나는 연설대 위에 두 팔을 넓게 뻗어 얹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몸을 조금 더 기울이며 목소리 톤을 낮췄다.

    “저는 단순히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을 넘어 대한민국의 ‘리더’가 되겠습니다.”

    “서포트한다는 핑계 하에 뒤에서 국민을 밀어내는 대통령이 아니라, 전면에 앞장서서 대한민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고 통솔하는 ‘리더’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오랜 기간 행복했습니다. 삶의 질이 올라간 게 그 증거죠. 하지만 세계 경제대국 순위에서 밀리고 있는 이 상황에선 더 이상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모험을 해야 할 때죠.”

    “물론, 그 모험을 한다고 해서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가슴을 탕 치며 말했다.

    “그 리스크는 제가 감당할 몫입니다. 국민 여러분은 행복을 거머쥐시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모든 걸 국가에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더 나은 대한민국, 과거 찬란했던 대한민국. 내수 경제에만 만족하는 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위엄을 드러낼 수 있도록. 그 누구도 한국을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들겠습니다.”

    “안보, 경제, 문화 그 어떤 분야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을 모든 분야에서 1위로 끌어올리겠습니다. 우리 한국인은 충분히 그런 대우를 받아 마땅하니까요.”

    “민국당 대선 후보 최지훈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나이가 있는 4050 세대 이상이라면 모를까.

    젊은 세대에게 최준석 대통령은 ‘추억’이 아닌, 오래된 ‘과거’였으니까.

    그러나 누구보다 오늘의 나는 ‘최준석 전 대통령’과 같았다.

    최준석 대통령 시절에 살았던 인물들이라면, 대부분의 이들의 나의 연설에서 그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출마 선언문의 방향이 고태욱을 넘어서 ‘최준석 대통령’이 이끌던 대한민국과 같았으니까.

    개개인의 만족도가 아니라, 국가의 위엄을 높이는 일.

    아무리 사회가 바뀌었다고 한들, 국격이 높아지면 국민의 만족도 또한 따라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게 21세기의 현실이니까.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인종 차별을 받으면서도 해외 이민을 가는 이유이지.

    “고생하셨습니다.”

    마돈나는 고개를 꾸벅이며 내 뒤를 따랐다.

    “이제 남은 건 미래당에서 어떻게 나오느냐인데…….”

    고태욱 대통령.

    그가 나설지, 나서지 않을지 지켜봐야 한다.

    * * *

    -안녕하십니까, 고태욱입니다.

    내 출마 선언 직후,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아 그 또한 대국민담화를 열었다.

    나는 숨죽이며 그가 어떤 말을 하는지 지켜보았다.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12년간의 임기를 끝으로 대통령직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다시 말해서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미래당 당원들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께서도 저를 바라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늙었습니다. 나이가 들며 몸은 쇠약해졌고, 이제 옛날만큼 머리가 총명하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자리는 다른 새로운 인물에게 넘겨주려고 합니다. 또한, 저는 이번 선거에서 미래당 당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중립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3분도 채 걸리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건 모두가 잘 알 수 있었다.

    -질문 받겠습니다. 네. 거기 가죽재킷 입으신 분.

    * * *

    대국민 담화가 끝난 직후, 나는 곧장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재중 전화로 남으면 시간이 날 때 연락을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네, 도련님.

    예상외로 그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통화 괜찮으십니까?”

    -예, 말씀하십시오.

    “방금 기자회견 봤습니다.”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거두절미하고 가장 중요한 말을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고태욱은 새삼스럽다는 듯 대답했다.

    -제가 약속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막내 도련님께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농담스레 말을 던졌다.

    -자리는 따뜻하게 데워 두었습니다. 언제든 앉으시면 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연한 거니까요. 저는 최준석 각하와의 약속을 지킬 뿐입니다.

    “…….”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요.”

    -하하.

    고태욱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권력에 대한 욕심이 생길 때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욕심이 각하에 대한 충성심을 넘어서진 않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옳았다.

    고태욱을 택한 건 옳은 선택이었다.

    -게다가 저는 이제 늙어서 쉬고 싶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내일이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지방에 내려가서 산과 강을 보며 놀고 싶은 심정뿐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저한테 인수인계는 해주셔야죠.”

    -물론입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참, 그리고…….”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미래당에서는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되는 바가 있으신지요?”

    -그쪽에서는 당연히 저를 생각하고 있던지라, 조금 당황한 것 같았습니다. 애초에 그럴 듯한 후보가 없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특별한 반전이 없다면, 내가 무난히 당선될 수 있을 터.

    -제가 은밀하게 서포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예, 쉬십시오.”

    만세당은 걱정하지 않는다.

    대선 후보를 낼지라도 기껏해야 5% 내외의 지지도를 획득하는 수준일 테니까.

    중요한 건, 미래당.

    그쪽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다.

    고태욱이 출마를 포기했다고 한들, 여전히 여당은 미래당이었으니까.

    나는 곧장 마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의원님.

    “미래당 움직임에 주시해. 어떤 후보가 나올지 알아야겠어.”

    -빠르게 알아보겠습니다.

    * * *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게…….”

    국회의사당의 미래당 사무실.

    그곳에서는 미래당에서도 수뇌부들의 긴급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회의 안건은 바로.

    “대선에 출마할 만한 인재가 없어.”

    “그러게 말입니다. 다들 당연히 고태욱 각하께서 연임하시리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따로 이미지를 만들어 놓은 후보도 없었다.

    “이번 대선은 정말 힘들 수도 있겠는데…….”

    이제 겨우 석 달 정도 남은 시점에서 다급하게 당 차원에서 준비를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최고위원 하나는 답답함에 숨을 들이마셨다.

    “당 대표님께서는 각하를 만나 보시긴 했습니까?”

    “만나 봤지. 그런데…….”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뜻이 완고하신 것 같더라. 정계에 너무 오래 있어서 지치신 모양이야. 더 이상 미련도 없으신 것 같고.”

    “그런데 하필 타이밍이 지금이네요. 그것도 민국당에서 최지훈이 출마했을 시기에…….”

    “최준석 대통령의 막내아들이면, 또 그쪽에서 정권이 이어지는 느낌이거든.”

    “우리 미래당에 그걸 꺾을 만한 후보가 하나도 없는 거야? 어디 추천할 만한 사람 없어?”

    그런데 그때.

    원내대표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당 대표님.”

    “어, 말해.”

    “혹시 그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덧붙였다.

    “늘 서울의 잠룡이라고 불리는 그 인물인데…….”

    “말이 돼?”

    당 대표는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리에 만족하는 사람이야. 고태욱 대통령이 처음 총리 시절에 대선에 출마했을 때도 동생한테 양보하고 자리를 지켰던 인간이라고. 대선에 도전할 깜냥이나 되겠어?”

    “생각해보면, 그 당시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최지원의 힘이 너무 컸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잖습니까?”

    “…….”

    “대한당이라는 이름도 미래당으로 바뀌었고, 대통령 또한 고태욱 체제로 굉장히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많은 노인분들께서는 최준석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계세요.”

    “하긴, 누구보다 최준석 대통령 스타일이라면 그 잠룡이 가까우니까…….”

    “그래서 제가 한 번 만나봤거든요.”

    “……만나봤다고?”

    “예. 그랬더니 고태욱 대통령이 연임하지 않는다면, 본인이 나올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진심이야?”

    “네. 그럴 줄 알고 제가 데려왔습니다.”

    “……뭐?”

    기다렸다는 듯 원내대표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끼이익- 벌컥!

    문이 세차게 열렸고.

    서울의 잠룡.

    故 최준석 대통령의 장남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최지만입니다. 간만에 뵙네요.”

    그는 능청스레 입꼬리를 휘며 입장했다.

    “현 상황에서 최지훈에 대적할 만한 사람으로는 제가 제격이지 않겠습니까?”

    최지만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덧붙였다.

    “제가 이날을 위해 정말 오래도록 숨죽이며 기다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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