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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걷히고 (1) (196/200)


  • 먹구름이 걷히고 (1)
    2022.05.15.



    “말도 안 돼.”

    대선 결과 발표 이후,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최지원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대선에서 그의 최종적으로 획득한 득표율은 24%.

    1위를 차지한 고태욱의 45%와는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차이.

    선거 초기에만 해도 겨우 3%에서 4%차이로 오차 범위 내의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단 하나.

    정민이 사건과 관련된 게이트가 터지며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쳐버리고 말았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잖아?”

    그는 김 보좌관을 향해 따졌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X발. 내가 실수한 거라고는 함우진 의원 실드친 게 다야. 그런데 이런 결과가 오는 게 말이 되냐고?”

    김 보좌관은 고민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우연치 않게 잘못 맞아떨어져서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직전에 저희가 정기 국회에서 정민이 법에 관해 다뤘던지라…….”

    까놓고 말해서 함우진 의원을 실드친 건 같은 당원으로서 충분히 할 법한 일이었다.

    실제로도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서 비슷한 일이 굉장히 많았기도 하고.

    허나, 이전과 달리 최지훈의 판짜기가 너무나도 기가 막혔다.

    정민이 법부터 시작해서 공소시효 폐지와 관련해서 대한당을 끌어들인 점.

    일부러 증거가 없는 척 물러나면서 함우진 의원을 심어 넣는 것까지.

    게다가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할 때 형사를 섭외하여 본인이 나서 판을 뒤집어버렸다.

    고태욱과 최지원의 싸움이었지만.

    실질적인 승부사는 최지훈이었던 것이지.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고태욱에게 졌다면, 아버지를 원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지원은 고태욱에게 진 게 아니라, 최지훈에게 진 것이었다.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형제들도 아니고, 막내다.

    나이가 16살이나 차이 나는 막내 동생.

    자신이 고등학교 들어갈 때 태어났던 어리디 어린 동생.

    그에게 처참하게 패배했다.

    함정이란 함정엔 모두 빠지면서 말이다.

    최준석 대통령의 아들 중 유일한 대선 후보였고, 대한당의 당대표로서 당내 경선도 없이 출마했다.

    그리고 선거에서 참패했다.

    누구도 그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당 대표에서 사퇴해야만 했다.

    그 사실을 최지원 본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대선에서 패배하고 당 대표 직에서 내려온다는 건 한 마디로 정계에서 이제 마지막 끝물이라는 뜻.

    그렇기에 그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뭔가 잘못됐어.”

    최지원은 손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선거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거야.”

    그는 멈칫하더니.

    “부정선거였던 거야.”

    눈을 희번득 뜨며 말했다.

    “고태욱 그 인간이 선거 당시에 대통령 권한대행이었잖아. 조작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안 그래, 김 보좌관?”

    김 보좌관은 최지원이 정상이 아니란 건 알 수 있었다.

    허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의 최지원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으니까.

    “부정선거라고. 투표수를 조작한 거야. 고태욱 그 자식이 당선되려고 투표 용지도 바꿔치기 했을 거고, 투표함도…….”

    김 보좌관은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추했다.

    이보다 더 추해질 수는 없었다.

    오랫동안 최지원을 모셔 온 그의 입장에서도 차마 더 볼 수가 없었다.

    “당 대표님.”

    “어?”

    최지원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눈을 치켜떴다.

    “김 보좌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요, 대표님.”

    그는 최지원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선거 끝난 지 일주일이나 지났으면 정신 차리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뭐?!”

    최지원은 책상을 탕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보고 망상이나 한다는 거야?”

    “대표님은 졌습니다. 패배했다고요. 고태욱에게도 졌고, 최지훈에게도 졌습니다. 최종 패배자라고요.”

    “…….”

    최지원의 동공이 커다래졌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눈에 힘이 풀렸다.

    그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현실은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미안하네, 김 보좌관.”

    최지원의 사과에 김 보좌관은 묵묵히 그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넣어 일으켰다.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잘 싸우셨습니다.”

    “……그래.”

    * * *

    선거가 끝난 지 8일 째가 되어서야 최지원은 대선 결과에 승복을 선언했다.

    그리고 당 대표를 사임하고 동시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사실, 당 대표에서 내려올 줄은 알았으나, 기껏해야 탈당 정도로 생각했는데 정계에서 떠날 줄은 몰랐다.

    마돈나가 그의 보좌관을 만나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어차피 이번 대선에서 패배하여 대통령이 되지 못하면, 앞으로도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적고 승리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걸 확신했다고 한다.

    최지원은 정상에 서지 못한다면, 정치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 정계를 떠났다고 한다.

    그렇게 둘째 형은 정계를 떠났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유전자 검사 결과는 어차피 쓰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더더욱 쓸 일이 없어졌다.

    국회의원직까지 내려두고 여의도를 떠난 그는 종적을 감추었다.

    대한민국을 떠났는지, 아니면 남아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니까.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미국으로 떠나갔다.

    후일, 모 기자의 인터뷰에서는 국적을 취득하지 않았기에 이민을 간 건 아니라고는 했으나, 영주권을 취득한 걸 보면 사실상 이민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마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지.

    최지원이 떠난 뒤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대한당은 1년을 더 버티다가 차기 총선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미래당에 통합 흡수되었다.

    최지원이라는 중심을 잃은 대한당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미래당 흡수는 시간문제였다고는 하나, 1년이나 버틴 게 오히려 대단할 따름이지.

    놀랍게도 첫째 최지만은 더 이상 사고를 벌이지 않았다.

    그는 다른 정치인들과의 만남에서도 서울시장이라는 자리에 만족한다는 말을 늘 남겼다고 한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이어지는 대선에서도 그는 출마하지 않았다.

    덕분에 고태욱 대통령은 민국당과 만세당이 단일화까지 하며 싸움을 걸어와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물론, 이때도 나는 민국당에서 견디고 있었다.

    굳이 미래당으로 옮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민국당에서 원내대표를 차지한 덕분에 고태욱과의 소통은 원활하게 진행되어서 더욱 민국당이 편했다고 봐야지.

    내가 한때 몸을 담았던 의한회는 자연스레 해체되었다.

    물론, 내가 발을 뗀 이후에 해체된 것이다.

    고태욱 대통령이 이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아버지 또한 내가 그곳에 들어갔다는 걸 알고 눈을 감아주었다는 사실에 또다시 놀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물론, 이처럼 고태욱과 많은 소통을 한다고 해서 그를 100% 믿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온전히 믿어서는 안 된다고.

    어딘가 한 구석에 의심 한 조각은 품고 있어야, 뒤통수를 맞지 않는다고.

    고태욱이라는 사람의 아버지에 대한 충성심은 100%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나를 향해 돌아오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또한, 권력이라는 건 얼마든지 사람을 변절시킬 수 있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미래당에 돌아가지 않은 것이고.

    민국당에서 2선, 3선에 당선되며 원내대표까지 차지하며 내 입지를 키워왔다.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피선거인 조건을 채우기 전까지는 경력을 쌓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38년이 찾아왔다.

    내 나이 만 38세.

    떡두꺼비 같은 아들 둘과 딸을 하나 낳아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고.

    비로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조건이 만족되었다.

    “킁킁.”

    집무실에 들어온 마돈나는 냄새를 맡으며 물었다.

    “또 사무실에서 담배 태우셨어요?”

    “어떻게 알았어? 전자담배였는데.”

    “벽지에만 안 눌어붙지, 냄새는 난다니까요.”

    오래 지내다 보니, 이렇게 간혹 내게 잔소리도 하곤 한다.

    “그래서 아직 출근시간도 안 됐는데 온 이유는?”

    “슬슬 출마 준비를 하셔야 될 것 같아서요.”

    “역시.”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다른 당에서도 하나둘씩 출마 선언을 하고 있어요.”

    “이제는 슬슬 대권이 바뀔 시기기도 하지.”

    “그렇죠. 사실, 최준석의 향수가 진하긴 해도, 그때와는 많이 다르니까요.”

    나의 아버지가 통치를 할 때만큼 대한민국은 태평성대까지는 아니었다.

    강인한 결단력, 엄청난 외교 담판 능력, 승부사 기질까지 가졌던 최준석과 달리.

    고태욱의 성향은 안정지향주의였으니까.

    과감한 시도와 배팅을 통해 성장을 이끌었던 최준석과 달리, 고태욱은 현재의 삶을 유지하는 데 힘을 썼다.

    그 탓에 최준석 대통령 시절에 경제대국 세계 5위권까지 차지했던 대한민국의 위상은 조금씩 하락하여 현재는 7위에 안착한 상태.

    물론, 그럼에도 삶의 만족도는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연임이 가능했었던 것이지.

    까놓고 말해서 현재 야당에서는 흔히 말하는 ‘돌풍’을 불러일으킬 만한 인물이 없는 상태.

    현 상황에서 고태욱 대통령이 4번째 연임까지 도전한다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었다.

    물론, 내가 출마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긴 하다.

    “평론가들이나 분석가들은 고태욱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을 가장 높이 치고 있으나, 의원님께서 출마 선언을 하면 구도가 바뀔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렇겠지?”

    젊은 대통령.

    단순히 젊은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30대 후반.

    윗세대와 젊은 세대의 사이에서 양쪽의 의견을 모두 귀 기울여 듣고 조율할 수 있는 위치이며.

    또 양쪽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것으로 이름을 날리며 지금의 원내대표 자리까지 오른 것이었으니까.

    실제로 민국당에서도 다들 대놓고 나를 밀어주는 추세였으니까.

    힘깨나 쓰는 양반들도 이번 대선에서만큼은 당내 경선에도 출마하지 않는다는 인물들이 대다수였다.

    “문제는 고태욱 대통령이 어떻게 나오느냐네요.”

    “그렇지.”

    사실, 그가 출마하지 않는다면 손쉽게 당선될 수 있을 터.

    다른 야당이 그렇듯, 미래당에서도 고태욱의 뒤를 이을 만한 대권 후보가 없었으니까.

    “우선, 내가 출마 선언을 하고 기다려 봐야지.”

    “선언문 초안 주시면 제가 다듬어 보겠습니다.”

    “그래.”

    마돈나는 집무실을 나서려다가 멈칫하며 돌아섰다.

    “의원님.”

    “왜?”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

    그녀는 조심스레 물었다.

    “의원님이 생각하시기엔 고태욱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 출마할 것 같습니까, 안 할 것 같습니까?”

    “글쎄.”

    나는 고개를 저었다.

    “50% 아닐까?”

    “반반이군요.”

    예전엔 출마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출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내가 권력을 누리다 보니, 이만큼 좋은 게 또 없었으니까.

    교섭 단체의 원내대표. 아니, 국회의원만 해도 이렇게나 권력이 달콤한데.

    대통령이라는 국가원수는 얼마나 더 하겠는가?

    “지켜봐야지.”

    나는 허심탄회하게 말하며 펜을 들었다.

    “인간 욕심이라는 게 참 무서운 법이거든.”

    고태욱 대통령.

    그는 올해로 70대 중반에 들어섰다.

    은퇴하려면 할 수 있고, 원한다면 연임을 할 수도 있는 나이.

    늙으면서 사람 마음이 바뀌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현재로서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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