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몰아치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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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몰아치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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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몰아치면 (3)
2022.05.14.
“안녕하십니까, 저는 부산 연제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제영민 경위입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다시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10년 전. 즉 2015년에 정민이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제영민이라고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기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범치 않은 사건이라는 건 단번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더욱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는 소위 말하는 부패한 경찰입니다. 그리고 정민이 사건에서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촤르르륵-.
셔터음 돌아가는 소리가 중구난방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당시에 저는 승진에 목이 말랐습니다. 또한, 사귀던 여자친구의 급작스런 임신으로 인해 결혼 준비를 하며 돈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달콤한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수사 중인 용의자에 대한 증거를 없애 주면 돈과 승진을 모두 제 손에 쥐여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면 안 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지만…… 저는 그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때 기자 하나가 손을 들고 외쳤다.
“풀어준 용의자는 누구입니까?”
“그건…….”
돌발 질문에 당황한 그에게는 마돈나가 다가가 고개를 저었다.
기습에 응하지 말고, 준비했던 대로 하라는 뜻.
제영민 반장은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질문은 제 이야기가 모두 끝난 뒤에 받겠습니다.”
회견을 중간에 끊은 기자는 부끄러운 듯 머리를 숙인 채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제게 그 제안을 했던 건 현재 대한당 국회의원인 함우진 의원입니다.”
함우진 의원.
얼마 전, 정민이 사건과 관련해 의혹을 받았고, 목숨 걸고 이 사실을 부정했던 인물.
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기자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이 뇌물을 받았다는 걸 증언했고.
무려 최지훈 의원실을 통해 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즉, 증거가 부족해서 묻혔던 그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가능성이 대폭 올라갔다는 것.
“그리고 당시에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인물은 그때 삼민 C&C 부회장의 조카였습니다.”
실명은 거론하지 않아도 된다.
제영민 반장을 통해서 우리가 하는 일은 도화선에 불만 붙여 주는 것뿐.
특종에 관심을 가진 언론사에서 알아서 취재를 하고 파헤쳐 줄 것이다.
그 취재하는 시간이 또 어느 정도 걸릴 터.
그렇기에 빠르면 몇 시간 뒤, 늦어도 며칠 내에 기사가 나온다.
원래 한 번에 터뜨리는 것보다는 순차적으로 터뜨리는 게 효과도 좋고 대중들의 관심을 더 모을 수 있는 방법이니까.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함우진 의원은 이번 사건과의 연결고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건 제 개인적인 추측입니다만, 삼민 C&C에서 함우진 의원에게 뇌물을 준 게 아닐까 합니다.”
수많은 팩트에 합리적인 추론 하나.
기자들의 눈이 뒤집히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을 터.
“그리고 실제로 저는 해당 용의자에 대한 증거를 인멸하고 그를 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다른 사건에 배정되었고 그걸 해결하자마자 특진했습니다.”
그는 한 걸음 물러나 다시금 머리를 숙였다.
“여기까지 제가 밝히는 진실입니다. 질문 사항 있으면 딱 3개만 받겠습니다.”
제일 먼저 손을 든 인물은 첫 줄에 있던 대망일보 기자.
“이제 와서 진실을 밝히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얼마 전, 정민이 사건의 용의자에 대한 공소시효가 늘어나는 등 해당 사건에 대해 재조명되며 죄책감이 너무나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물론, 이건 허울 좋은 핑계였다.
그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
우리가 준비해 준 질문 대답 멘트 중 하나였다.
어차피 제영민 경위가 밝히지 않으면, 우리가 밝힐 것이었다.
하지만 기왕 밝힐 거라면, 내부자가 사실을 말해야 조금이나마 더 설득력이 올라가고 일반인들에게 더 와 닿기 때문.
물론, 사건이 마무리되면 제영민 경위도 경찰배지를 반납해야 한다.
대신 처벌의 수위가 조금 더 낮아질 뿐이지.
우리가 해주는 건 딱 거기까지.
그가 지은 죄를 없던 것으로 만드는 건 내가 용납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함우진 의원을 직접 만난 건가요? 돈을 받은 증거는 있으십니까?”
“당시에 혹시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화를 전부 녹취해 뒀습니다. 돈은 현금으로 건네받았습니다.”
“현재 그 용의자는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제가 알기로는 몽유병과 조현병이 심해져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걸로 압니다.”
“그러면 그 사건에 대해서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할 용의는 있으신지요?”
“예.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3가지 질문은 모두 받았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기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회사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보도하기 위함일 터.
제영민 경위는 마돈나가 직접 경찰서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모든 걸 밝히고 자수를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이로써 내가 할 일은 끝이 났다.
남은 건 그저 기다리는 것뿐.
고태욱 총리.
이제 당신의 차례다.
오늘 오후에 있을 TV토론회에서 본때를 보여주라고.
* * *
대선 후보의 TV토론회.
“최지원 후보는 당시에 함우진 의원을 보호했습니다. 같은 당이라는 명목 하에 제대로 된 수사도 하지 못할 만큼 경찰을 압박했죠.”
고태욱 총리는 이 날을 기다렸다는 듯 거세게 몰아붙였다.
“불체포특권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대한당은 정민이 사건과 관련된 공소시효의 폐지를 주장했었죠?”
모든 건 계획대로.
이를 위해서 내가 모든 형사 사건의 공소시효 폐지를 주장한 것이었다.
대한당은 당연히 민국당인 내 의견에 반대할 것이었고.
실제로 그들은 공소시효를 그대로 살리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이 후폭풍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최지원 후보도 알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함우진 의원이 이 사건과 연관되었다는 걸?”
“아닙니다.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공소시효 폐지에 반대했습니까?”
“그건 당시에 제가 주장했듯 인력에 대한 한계가 컸기 때문입니다.”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함우진 의원이 이 사건에 연루된 걸 알고서 그를 지키기 위해서 주장한 걸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을 왜곡하지 마십시오. 제가 함우진 의원을 보호한 건 같은 당원으로서…….”
“같은 정당 소속이면 무작정 보호하는 게 대한민국 정치입니까?!”
고태욱 총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늘에 계신 최준석 대통령님께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도련님이라고 깍듯하게 대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도련님 대우를 해주는 건 어디까지나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까지.
그를 적대시한 이상, 이런 상황은 감수했겠지.
고태욱 총리가 도련님 대우를 해주는 건 넷째 최지성과 나. 단 둘뿐이다.
“그딴 망언을 하면서 어떻게 故 최준석 대통령의 유일한 후계자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무덤에 계신 각하께서 분개하실 겁니다!”
“아버지를 함부로 언급하지 마십시오.”
최지원은 이를 빠득 갈았다.
“故 최준석 대통령에 대해서는 제가 더 잘 압니다. 함부로 그분의 뒤를 잇는다, 혈통이다 이딴 소리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야말로 정신 차리십시오.”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합니까? 정민이 사건을 은폐한 사람을 감싸 준 사람이 할 말입니까?”
토론회의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안 그래도 기사로 퍼지던 사실을 대놓고 저격을 한 덕분에 많은 이들이 최지원이 함우진과 모종의 계약이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심지어 대선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 중엔 최지원이 정민이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등장할 정도.
사흘도 채 지나지 않아 그의 지지율은 빠르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지지율 30%의 붕괴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고.
이제는 20%도 간당간당한 상태.
고태욱 총리는 하락한 지지율의 절반 가까이 흡수하며 40%의 지지율을 넘기는 데 성공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최지원을 지지하는 인물들은 최준석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유권자들이 대다수다.
당연히 최지원이 아니면, 다른 야당을 택하는 대신 최준석 대통령과 함께 일을 했던 고태욱에게 표를 행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1위 고태욱 43%.
2위 최지원 21%.
3위 민국당 19% 등.
여전히 80%의 지지율을 넘겼던 최준석 대통령에 비해서는 차이가 컸으나, 더 이상 오차 범위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크게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 단일화 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다.
고태욱 총리는 굳히기를 시작했다.
* * *
“득표율 45%로 고태욱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변은 없었다.
고태욱은 국무총리를 넘어 대통령이 되었다.
비서실장으로서 보고하던 이전과 달리, 그는 자신의 집무실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2026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처음으로 수행한 비공식 일정은 바로.
“오셨습니까, 도련님.”
나를 초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뵈니까 어색하네요.”
“지난번에도 뵈었잖습니까?”
“그때는 권한대행이셨잖습니까? 이제는 각하라고 불러야겠네요.”
“어색합니다.”
고태욱은 민망하게 웃으며 직접 내게 차를 내왔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위한 일이기도 했는걸요.”
그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도련님.”
고태욱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입을 열었다.
“저는 각하…… 최준석 대통령님의 뜻을 따를 것입니다.”
역시나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입을 싹 닦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기에 아버지가 고태욱을 믿으신 것이지.
“올해로 도련님이 만 26세가 되시잖습니까?”
“그렇죠.”
“개정 선거법상 대선의 피선거인 자격이 되려면 만 35세가 되어야만 합니다.”
“4년 중임제니 12년 남았네요.”
“예. 저는 도련님이 만 38세가 되실 때까지 버티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 자리를 넘겨드리겠습니다.”
섣불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고태욱은 믿을 만하다.
허나, 권력은 믿을 수 없다.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권좌를 차지하다 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확신은 없었다.
“도련님.”
내 생각을 고태욱이 모를 리 없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때가 되면 어차피 제 나이가 한계에 달합니다.”
일흔이 조금 넘는다.
“제가 칠순 넘어서까지 권력을 쥐고 싶진 않습니다. 저도 쉬어야죠.”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게 각하께서 제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일인걸요.”
그는 내 손을 부여잡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디 건강하게 잘 커 주십시오. 시간이 흘러 때가 되면 이 자리를 받으실 수 있도록요.”
“예. 최대한 성장하겠습니다.”
“언제든 도움 필요하면 말씀하시고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도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