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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모이면 태풍이 온다 (6) (192/200)


먹구름이 모이면 태풍이 온다 (6)
2022.05.11.


발인.

짧았지만 길었던 장례식의 끝이 다가왔다.

아버지는 당신의 뜻에 따라, 현충원이 아닌, 우리의 선산에 묻히기로 하셨다.

“아드님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인부들은 우리를 향해 삽을 건넸다.

“장남이 누구시죠?”

“아이고, 아버지…….”

첫째 형 최지만은 곡소리를 내며 무덤으로 다가갔다.

그는 흙을 한 술 뜨더니.

“으흐흐흑…….”

그 자리에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가증스러웠다.

장례식장에서 대선이 어쩌고, 아버지를 생각하는 척 어쩌고 하던 걸 전부 들었기에 저 모습이 연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사실, 그걸 직접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가족끼리 있을 때는 울지도 않다가 누군가가 오거나 취재진이 오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걸 수차례나 봐왔으니까.

둘째 형도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그가 더 치밀했다.

첫째 최지만은 대놓고 오열하는 반면.

둘째 최지원은 억지로 울음을 참는 것처럼 연기하고 있었으니까.

그에 반해 오히려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첫 며칠 동안 너무나 많이 울었기도 하고.

국장을 치르는 9일을 겪으며 이제는 아버지가 없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으니까.

“막내 아드님이신가요?”

“예, 맞습니다.”

나는 무덤덤한 얼굴로 삽을 건네받아, 아버지의 관 위에 넓게 흩뿌렸다.

“좋은 곳으로 가십시오, 아버지. 그곳에서는 부디 평안하시길.”

그렇게 장례식은 마무리되었다.

* * *

선거는 2달 뒤로 확정되었다.

최준석 대통령의 선거법 개편으로 인해 임기는 4년 중임제가 되었고.

만 35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면 피선거인 자격을 갖추는데.

그 외에도 일정 자체는 법적으로 ‘대통령의 사망 후 60일 뒤’라고 정해져 있었기에 선관위에서 요일만 확정하면 되었으니까.

그리고 정부와 선관위가 협의하여 확정된 날짜는 해당하는 주의 금요일.

고태욱 총리의 작전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대통령 선거의 특성상 보궐선거의 개념이 없었다.

새로 당선된 인물은 최준석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채우는 게 아니라, 당선일로부터 정해진 임기를 채우면 되는 법이었으니까.

그래서 평일로 구분되는 일반 보궐선거와 달리, 공휴일로 구분이 된다.

즉 소위 말하는 ‘빨간 날’이 되는 것이지.

이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선, 금요일이 빨간 날이 되면, 주말과 이어지는 연휴로 인해 시민들이 놀러갈 수 있게 된다.

특히 젊은 세대가 그럴 확률이 더욱 높은데.

고태욱과 미래당의 지지율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5060 이상의 세대들.

즉, 금요일이 공휴일이어도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에 반해 대한당과 민국당의 지지 세력은 젊은 층이 많은 만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터.

아주 전략적인 날짜 선정이었다.

선거에서 디펜딩 챔피언이 유리한 게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

아버지께서도 이런 상황을 대비해 고태욱을 국무총리로 임명해 본인이 떠난 뒤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도록 만든 것이지.

아마 투표소 위치 선정이라든지 언론 보도 정책 등도 고태욱이 본인에게 유리하도록 수정할 것이다.

물론, 눈에 띌 정도는 아니겠지.

야당에서 태클을 걸어올 수 있으니까.

그들이 꼬투리를 잡기에는 사소하고.

그렇다고 영향이 없는 건 아닌.

그런 수준으로 전략을 짤 것이다.

그게 고태욱의 스타일이니까.

“의원님.”

마돈나가 조심스레 집무실 문을 열며 들어왔다.

“고태욱 권한대행의 출마선언이 곧 시작될 것 같습니다.”

“그래?”

나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틀었다.

고태욱은 청와대 기자회견장에서 홀로 서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 권한대행 고태욱입니다.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더 비장했다.

-꽃피는 봄이 지나고 무더운 여름을 거쳐 쓸쓸한 가을에 도달했습니다.

-저희는 지난 몇 달간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고되고 슬퍼서 눈물 흘려왔습니다.

-허나, 언제까지고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는 법입니다.

-저희의 앞에는 춥디추운 겨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 쓸쓸하고 씁쓸한 감정을 품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저는 故 최준석 대통령님의 곁에서 40년 가까이 그분을 보필했습니다. 누구보다 최준석 대통령에 대해 잘 알고, 그분의 스타일은 이미 제게 체화되었습니다.

-제 방식은 곧 그분의 방식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최준석 대통령이 이룬 영광들을 제가 다시금 꽃피워내겠습니다. 포스트 최준석의 시대를 열 인물이 되겠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정치에 입문한 것 또한, 최준석 대통령님과 함께였습니다. 정치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저를 서민들의 애환 속에 녹여준 게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저는 故 최준석 대통령의 뜻에 따라 더 나은 대한민국, 사람의 삶이 있는 대한민국, 돈이 전부가 아니라 행복이 우선시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단순히 말만 앞서는 대통령이 되지 않겠습니다.

-제게 대통령직은 처음이나, 최준석 대통령이 처음 청와대에 입성할 때부터 늘 한시도 빠짐없이 곁에서 보필했습니다.

-그렇기에 청와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톱니바퀴가 어떻게 맞물려있는지도 훤히 꿰고 있습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첫날부터 프로다운,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최준석 대통령께서 임종을 앞두고 저를 국무총리로 임명하신 것 자체가 저를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뒤, 가장 국정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인물을 저라고 판단하셨던 것이죠.

-여러분, 저는…….

“기가 막히네.”

“그렇죠?”

마돈나는 나와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역시 고태욱 총리도 보통 인물이 아니다.

매번 아버지의 그림자로서 앞에 나서지 않았지만,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던 것이지.

정치 짬밥이 있다는 걸 연설로 증명하고 있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귀에 박히고 자연스레 최준석 대통령의 이미지와 겹쳐지고 있다.

최준석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 ‘최준석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야당에서는 꽤나 어렵겠는데요?”

“그렇지. 안 그래도 미래당 자체가 최준석 대통령의 뜻을 이어받아 만든 정당이니까 당위성은 더욱 부여될 테지.”

“저희는 어떻게 움직일까요?”

“표면적으로 나는 민국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움직일 거야. 지현 씨도 마찬가지고. 알지?”

“예.”

“수면 밑에서는 우리가 이전부터 세워 온 계획을 실현시키는 거야.”

“바로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래. 본 선거로부터 3주에서 4주 전 정도에 터뜨릴 거야. 그때 터뜨려야 선거 당일까지 임팩트가 남으면서도 가장 많은 이들에게 전달이 될 테니까.”

“네. 준비해 둔 시나리오대로 가겠습니다.”

“그러자고.”

* * *

“제가 바로 최준석 대통령. 즉 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은 진정한 후계자입니다.”

최지원은 출마선언문부터 거짓을 내뱉었다.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대한당이셨습니다. 저는 대한당을 대표하여 출마하였고, 당내 경선도 하지 않았습니다. 즉 대한당에서 인정한 후보라는 뜻입니다.”

그는 자신감에 가득 찬 채로 허풍을 쳤다.

“또한, 다른 형제들 중 그 누구도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혈통 중 유일하게 제가 대선 후보에 올랐다는 게 아버지께서 저를 인정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자신감의 근원은 알고 있었다.

최지만은 이미 그와 손을 잡았고, 최지성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셋째 쌍둥이들은 나설 리가 없다.

애초에 그러지도 못하는 상태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조용히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겠지.

민국당에 있는 만큼, 대선에서는 한 발 물러난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는 내가 출마를 하지 않기에 나서는 것 자체가 내 살 깎아먹기가 되기 때문일 터.

허나, 잘못 생각했다.

물론, 최지원이 판단했던 대로 그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격돌해 봤자, 그를 지지하는 세력을 적으로 돌리는 일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내가 준비해 둔 게 있었다.

최지원.

아무리 내가 출마하지 않는다고 해서 순순히 보내 줄 거라 생각했으면 오산이다.

“지현 씨.”

나는 마돈나를 향해 지시했다.

“지금부터 최지원이 방심할 수 있도록 대놓고 수면 밑에서 미래당을 지원하는 척하세요.”

최지원의 입장에서는 대선에 출마한 만큼 손이 많지 않다.

우리가 민국당을 지지하되, 수면 밑에서 미래당을 위해 움직이면 속내는 고태욱 총리를 응원하는 것처럼 보일 터.

그거까지가 위장이다.

실제로는 고태욱을 자금적으로 돕는 대신, 최지원을 조지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중으로 고태욱 총리에게 연락하세요. 청와대로 들어가겠다고.”

“예, 의원님.”

* * *

다시 찾은 청와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처음이었다.

당연했다.

올 이유가 없었으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자연스레 청와대를 나와 삼성동 본가로 들어가셨으니까.

현재 청와대에는 고태욱 총리와 그의 가족들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물론, 가족들이라고는 해도 자식들은 모두 분가해서 독립해 있고.

그의 아내와 단 둘이서 청와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의 가족을 만나러 가는 건 아니었다.

“후우.”

나는 품에서 작은 열쇠 하나를 꺼냈다.

아버지께서 내게 남기신 물품.

아니, 유품이라고 해야겠지.

당신께서 돌아가신 뒤에 열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걸 확인할 때였으니까.

똑똑.

비서실 직원이 노크를 하며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집무실에는 고태욱 총리가 일어나며 나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낯선 광경이었다.

집무실에 아버지 대신 다른 인물이 있는 걸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으니까.

책상 위에 올려진 명패도 ‘대통령 최준석’ 대신 ‘대통령 권한대행 고태욱’이라는 긴 글귀가 박힌 걸로 바뀌어 있었으니까.

“간만에 뵙네요.”

차마 각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걸 느꼈는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편하게 부르십시오. 삼촌도 좋습니다.”

“대선 전까지는 총리님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러십시오.”

그는 가볍게 웃고는 소파로 나를 안내했다.

“여기까지 오신 이유는…….”

고태욱은 말하는 대신 집무실의 구석에 숨겨져 있는 금고를 바라보았다.

“저것 때문이시겠죠?”

“예, 맞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심스레 품에서 열쇠를 꺼냈다.

“그러실 줄 알고 미리 준비해 놨습니다.”

고태욱은 팔걸이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아니면 바로 확인하시겠습니까?

“금고부터 확인하죠. 차는 그 후에 마시겠습니다.”

“그러시죠.”

우리는 천천히 금고로 이동했다.

그와 나는 위치를 알고 있기에 주저함이 없었지만, 얼핏 봐서는 평범한 벽처럼 생겼다.

처음 오는 인물들은 금고의 존재자체도 모르지.

“제가 먼저 꽂겠습니다.”

고태욱 총리가 먼저 왼쪽 구멍에 열쇠를 꽂았다.

그리고 내가 오른쪽 구멍에 열쇠를 꽂았다.

이가 딱 맞물려 들어간다.

“한 번에 돌리시죠. 하나, 둘, 셋.”

끼기긱-.

톱니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열쇠가 빙글 돌아갔고.

“확인하십시오.”

고태욱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감사합니다.”

나는 천천히 손잡이를 당겨 금고를 열었다.

청와대 금고 아니랄까 봐 굉장히 묵직한 느낌.

동시에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예상외의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고태욱과 나의 얼굴에 동시에 놀란 기운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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