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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모이면 태풍이 온다 (5)
2022.05.10.


정부는 국무총리의 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섰다.

고태욱 총리가 지휘봉을 잡았고, 모든 걸 미리 대비해 둔 덕분에 북한의 포격 도발과 같은 돌발행동도 없었다.

무엇보다 고태욱이라는 사람 자체가 아버지의 그림자와도 같은 인물이었기에 국정을 이끌어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저 아버지의 바로 밑에 있던 인물이 결재권자가 되었다는 것 정도.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다.

5일 간 치러지며 대통령의 격에 맞게 전국의 각 도시에는 분향소가 차려졌다.

크게는 광역시부터 시작해서 작게는 군과 읍에까지.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가며 아버지의 넋을 기렸다.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위치한 빈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대한당과 미래당의 인사들은 당연했고.

예상외로 민국당과 만세당에서도 대다수의 인원들이 다녀갔다.

우리의 얼굴을 보기 껄끄러운 사람들은 다른 분향소를 통해 조문을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들과 아버지는 원하는 정치 방향이 달랐을지언정.

대통령 최준석은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국민들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국격이 더 높아지도록 국정을 이끌어왔으니까.

간혹 논평이나 만평에서는 그의 독재를 비판하는 말이 나오긴 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더라도 최준석 대통령은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라는 평이 대다수였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지지한다는 건 이유가 있는 법이었으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틀 동안 내리 울었던 것 같다.

오열하다가 지쳐 쓰러져 잠들고 다시 눈 뜨면 손님을 맞이하다가 울고.

사실, 내 삶은 굉장히 외로웠다.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학창시절 또한 대통령의 아들로서 다른 이들과 선을 그었기에 진정한 친구란 게 있을 수가 없었으니까.

마돈나를 비롯한 나의 의원실 직원들을 제외하면, 정치를 통해 맺은 인연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허나, 다행히도 군대에서 맺은 동기 및 선후임들이 빈소에 직접 찾아와주었다.

전역 후, 단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2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맺어진 인연 덕분이었다.

아버지가 없다고 해서 혼자는 아니었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아내 한예린을 포함해 그녀의 가족도 있었으니까.

고태욱 총리는 단 한 번만 빈소에 들른 뒤, 청와대에서 국정에 힘썼다.

아무리 모든 게 준비되었다고 한들, 대통령 권한대행이 자리를 비우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테니까.

빈소를 지키는 건 우리 가족들이 전부였다.

* * *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4일째.

새벽 2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눈이 감기질 않아 홀로 밖으로 나왔다.

고요했다.

서울 한복판임에도 새벽녘의 이곳은 사람은커녕, 다른 차량 한 대 지나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경찰이 근처 도로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으니까.

테러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빈소에 들르는 사람들이 일반인들이 아니기에 문제가 생기면 더욱 타격이 클 테니까.

칙. 치익-.

라이터의 부싯돌을 돌렸지만, 불이 켜지질 않았다.

확인해보자, 가스가 떨어져 있었다.

며칠 내내 울고 자고 담배 피우기만 반복하다 보니 가스가 부족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하아.”

짙은 한숨을 내쉬며 라이터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라이터를 사러 가고 싶지는 않았기에 담배를 한 대 물고, 은제 담배합만 만지작만지작거렸다.

아버지의 온기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훅- 라이터를 든 손길이 코앞으로 뻗어져왔다.

최지성.

넷째 형이었다.

“어, 형.”

“라이터 없나 보네.”

“응. 땡큐.”

겨우 담뱃불을 붙인 뒤, 담배 연기 한 모금을 삼켰다.

그는 내 얼굴을 보다가 피식 웃으며 머리를 헝클었다.

“새끼.”

“왜?”

“넌 그래도 우리 형제 중에 제일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엄청 못생겼네.”

“부어서 그래.”

“그러니까 말이야. 얼마나 운 거야? 눈탱이가 밤탱이가 됐네.”

“그나마 붓기 줄은 거야.”

넷째 형은 클클거리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무 지치지 마라. 아직 절반도 못 왔어.”

“그러게. 이거 생각보다 기네.”

아버지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진다.

국장은 최대 9일까지 치를 수 있는데, 첫째 형과 둘째 형의 강한 의지로 인해 9일을 가득 채우기로 했으니까.

여론을 최대한 동조시켜야 본인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지.

최지성도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이제 올 손님도 다 온 것 같지?”

“그렇지. 해외에 있던 분들도 어느 정도는 다녀갔으니까.”

“손님 없으면 내일 치킨이나 한 마리 먹을까?”

그는 농담식으로 말했다.

“육개장 질려서 죽겠다.”

이런 말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생각했던 것보다 분위기는 무겁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돌아가시긴 했지만.

당신께서는 이루고 싶은 걸 모두 이뤘고, 또 본인의 삶에 만족하며 눈을 감으셨기에.

‘호상(好喪)’이었으니까.

아버지께서도 가족들을 모두 앞에 모아두고 마지막에는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셨다.

“그나저나 민우랑 민아는 어때?”

자식이 없던 그는 얼마 전에 쌍둥이 자식을 품에 안았다.

이란성 쌍둥이로 하나는 딸, 하나는 아들이었다.

“애들이 아빠 못 봐서 힘들어 할 것 같은데.”

“어차피 일 때문에도 자주 못 봤어. 집 사람이 걱정이지.”

최지성은 내 팔을 툭 치며 말했다.

“제수씨나 잘 챙겨. 결혼식 올린 지 며칠 만에 장례식이라니, 엄청 힘드실 거야.”

“응. 고마워.”

아내 한예린에게는 미안하고도 무한히 감사한 감정뿐이었다.

재벌가 귀한 딸로 자라서 고생 한 번 해보지 않은 그녀가.

이제 결혼해서 꽃길을 걸어야 할 한예리은 빈소에서 지내며 며칠 동안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있었으니까.

부스럭.

그때 저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길고양이나 동물이 있는 곳은 아니다.

게다가 거리를 통제하고 있기에 일반인이 몰래 들어오진 못했을 터.

최지성과 눈길만 주고받고는 슬쩍 걸음을 옮겼다

주차장 쪽을 돌아가자, 저 멀리 두 개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자태다.

“형들 같은데?”

“맞는 것 같아.”

첫째 형과 둘째 형이었다.

둘은 무언가를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아니나, 얼핏 들리는 단어를 조합해 보면.

“……선거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넷째 형은 잠시 생각하나 싶더니.

“아, 다 나와 있으면 빈소 비었겠는데.”

“그러네.”

빈소 비우면 안 되잖아.”

“됐어, 이 시간에 올 사람도 없어.”

“그래도 안 돼.”

그는 빠르게 걸음을 돌렸다.

“천천히 들어와. 먼저 가있을게.”

내가 붙잡을 새도 없이 최지성은 빈소로 돌아갔다.

내색은 안 했지만,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이니 나 보고 슬쩍 가서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준 것이다.

나는 잠시나마 고민하다가 피우고 있던 담배를 짓이겨 끄고는 귀를 기울였다.

적막한 밤이라 그런지, 꽤 거리가 있음에도 그들의 목소리가 잘 들려왔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먼저 들려온 건 첫째 형 최지만의 목소리.

“대선 출마 선언도 해야 될 거 아니야?”

“당연히 해야지. 그런데 그 시기가 문제라는 거야.”

“이미 다음 대선 시기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진행하는지까지 논의되고 있어. 고태욱 총리가 그 일선에서 움직이고 있고. 너도 예상했겠지만, 분명 작은 사안이라도 본인에게 유리하도록 방향을 잡을 거야.”

“그렇겠지.”

“그리고 고 총리는 아마 국장 끝나면, 바로 출마 선언하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바로 할 수가 없어.”

“그렇지.”

당연한 말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출마 선언을 하면, 오히려 이때를 기다린 게 아니냐 하며 많은 이들이 눈총을 보내고 손가락질을 할 테니까.

욕이 먹지 않는 타이밍에.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출마 선언을 하는 게 둘째 형에게 제일 중요하겠지.

“솔직히 말해서…….”

최지원은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출마 선언이고 나발이고…… 아버지가 우리한테 자리 안 물려 주시고 고태욱을 택한 건 솔직히 괘씸해. 차남인 나도 화가 나는데 장남인 형은 어떨지 가늠이 안 가.”

그 말에 최지만은 조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지. 아버지의 선택이니까. 이미 지난 일은 신경 쓰지 말자.”

“그래. 솔직히 말해서 슬프지도 않아. 낮에 기자들 있는 내내 슬픈 척 연기하느라고 고생이라니까.”

“그래도 견뎌. 이제 닷새 남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눈물 한 방울 안 나더라. 오히려 아버지 임종을 지키는데 고태욱 총리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게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거든.”

“나도 마찬가지야.”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은 아버지를 팔아서라도 민심을 챙겨야 돼.”

“맞아. 이만큼 아버지에 대한 심리를 우리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타이밍은 더 없을 거야.”

“물이라도 많이 마셔. 없는 눈물 쥐어짜려면 도움 된다더라.”

“그래?”

“응. 오 실장이 알려 주더라.”

“바로 가서 마셔야겠다.”

“사실, 넷째가 우리랑 조금만 더 친했으면 그 녀석한테 눈물 연기하는 법이라도 물어봤을 텐데.”

“클클클. 됐어. 들어가자. 우리 둘이서 자리 오래 비우면 막내 그놈이 의심한다.”

“걔가 은근히 촉이 좋아.”

“그러면 뭐 해? 이번 대선에 출마도 못 하는데.”

“그래도 몰라. 확실히 애가 머리가 남다르더라. 일단 당선되면 그 놈이 제거 1순위야.”

“티내지는 마.”

“당연하지. 내가 포커페이스 하나는 끝장나잖아.”

그들은 작당 모의를 끝내고 빈소로 돌아갔다.

후문으로 곧장 들어갔기에 나와 마주치진 않았다.

“……하.”

헛웃음이 나왔다.

개X끼들.

호래자식들도 저렇진 않을 텐데.

임종 당시에 울지도 않던 인간들이 빈소에서 왜 이렇게 우는가 했더니, 저런 속내가 있었던 모양.

눈물 흘리는 게 가식적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저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진짜 나쁜 놈들이다.

사람마다 감정이 다르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슬픔이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죽음을 이용해서 대선에 당선되기 위해 연기하고 있을 줄이야.

파렴치한 녀석들.

저건 자식들도 아니다.

아니, 폐륜을 넘어서 인륜을 저버린 인간들이다.

슬프지 않은 건 몰라도,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것도 자식 때문에 췌장암에 걸려 눈을 감으신 아버지를 이용하려는 자태는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저러지 말아야 하는데.

아니, 동물도 자신의 가족이 죽으면 슬퍼하는 법인데.

어느새 볼이 뜨거워졌다.

또다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오늘은 울지 않았는데.

또 울지 않으려 했는데.

저딴 인간들 때문에 눈물을 흘릴 줄이야.

저런 놈들을 자식으로 품어주셨던 아버지가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이가 빠드득 갈렸다.

저런 인간들에게 질 수는 없다.

무엇보다 최지원 저 인간이 당선이 되면, 내가 ‘제거 1순위’가 된다.

그가 권좌를 차지하면 나는 최지곤, 최은실 꼴이 된다는 뜻이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고태욱 총리를 당선시켜야만 한다.

그게 정의고.

아버지의 뜻이다.

대한민국은 올바른 길로 나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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