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이 모이면 태풍이 온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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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모이면 태풍이 온다 (4)
2022.05.09.
“오빠, 왜 그래?”
한예린은 굳은 내 얼굴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무슨 일 생긴 거야?”
“…….”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머지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건 알고 있었다.
충분히 예상했고 마음의 준비도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막상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가슴 한 편에 바위라도 얹힌 듯 답답해졌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것 같네.”
한예린의 얼굴에 놀란 기운이 서렸다.
허나, 당황스러움도 잠시.
그녀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짐 챙겨. 가야지.”
“그래도 신혼여행인데…….”
“그게 문제야?”
한예린은 딱 잘라 말했다.
“어차피 내일이 마지막 날이야. 충분히 즐거웠어. 안 그래도 질리던 참인데, 잘 됐네.”
그녀는 휴대폰을 꺼냈다.
“오빠는 짐 챙기고 있어. 내가 티켓 예매할 테니까.”
“그래.”
방으로 돌아와 캐리어를 챙긴 지 얼마 쯤 지났을까.
한예린이 노크를 하며 조심스레 들어왔다.
“오빠.”
“응?”
“오늘 당장 들어가는 건 티켓이 한 장밖에 없네.”
“그러면 내일 들어갈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한예린은 고개를 저으며 내 캐리어를 같이 챙겨주었다.
“오빠는 오늘 들어가. 나는 내일 최대한 빠른 걸로 끊어서 들어갈 테니까.”
“그래도 돼?”
“되는 게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지.”
그녀는 내 손을 잡으며 두 눈을 바라봤다.
“만약에 반대 상황이라면, 오빠는 안 그랬겠어?”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고마워.”
“고맙긴.”
한예린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짐 정리해서 나와. 바로 출발할 수 있게 차 대기 시켜 둘게.”
“응.”
* * *
인천공항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길.
-최준석 대통령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입니다. 현재 청와대에서는…….
라디오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쉬지 않고 나오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당연히 기밀로 다뤄져야 할 사안이나,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은 건 이미 국내외로 알려져 있기도 하고, 시한부라는 것 또한 공공연한 사실이었기에 숨김없이 공개한 것일 터.
아마 아버지의 의지가 컸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신께서 돌아가신 이후에도 국정이 마비되지 않도록 조치를 해두었다는 자신감이 있으셨기에 공개하셨겠지.
“도련님.”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인물은 비서실 직원 중 하나.
“좀 괜찮으십니까?”
“예, 아직은요.”
나는 짤막하게 대답하고 창밖을 바라봤다.
생각할 게 참 많았다.
아버지의 장례식, 대선 그리고 형제들까지.
그럼에도 머릿속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2시간의 운행 끝에 청와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본관에 마련된 병동 시설.
입구에 도착하자, 형제들이 복도에 앉아 있었다.
“왔어?”
나를 반기는 건 유일하게 넷째 최지성.
첫째와 둘째 형은 눈빛만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들어가자.”
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
“어머니는?”
“안에 계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여태껏 참고 있던 감정이 순식간에 터져 올랐다.
아버지.
그렇게 강인하고 남자다웠던 아버지께서 너무나도 야위고 초라하기 그지없으신 얼굴로 병상에 누워계셨다.
한사코 거부하셨던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며 우리를 바라보는 아버지는 안쓰러웠다.
내가 아버지를 보며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병실에는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딱 두 분만이 남아 계셨다.
어머니와 고태욱 총리.
그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알 수 있었다.
“왔느냐.”
우리를 발견한 아버지께서는 어렵사리 입을 여셨다.
평소의 위엄 넘치는 목소리와는 달리,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늙은 애비 뭐가 보고 싶다고 가는 길까지 마중 나왔어.”
“당연히 와야죠, 아버지!”
제일 먼저 나선 건 첫째 최지만.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아버지는 제 영원한 우상이십니다.”
둘째 최지원도 아버지의 곁에 다가가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아버지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잘 컸습니다.”
허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 말은 많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까.
무슨 말이라도 해버리면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나는 아버지의 손도 잡지 못하고 한 걸음 떨어져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후욱…….”
아버지의 숨이 가빠지셨다.
한 마디, 한 마디를 뱉는 것도 힘겨우신 모양.
“아들아.”
“예, 아버지.”
“한 명씩 이야기하자구나.”
* * *
“후우욱. 후욱.”
최준석 대통령의 숨결이 점점 가빠졌다.
가장 먼저 그와 대화를 나눈 인물은 그의 아내.
“먼저 가서 미안하오.”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 마요.”
“임자는 오래 살다 오구려.”
“글쎄요.”
“글쎄는 무슨…… 쿨럭!”
최준석 대통령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래오래 살다가 지훈이 아들놈까지 보고 와.”
“알겠어요.”
“내가 그동안 많이 못 챙겨 줘서 미안하오. 국정에 신경 쓰느라 집안을 못 돌봤어.”
“괜찮아요. 나쁘게 생각한 적 없으니까. 아니,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니까 마음의 짐이 있다면 여기 다 내려놓고 가요.”
“고맙소.”
다음은 고태욱 총리.
“크흐흐…….”
“제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십니까?”
“내가 자네보단 오래 살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말입니다. 저도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고태욱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한테 어지간한 이야기는 다 집무실에서 했어서 따로 할 말이 없네.”
“그렇습니까?”
그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도 고태욱 총리와는 숨김없이 모든 걸 털어놓는 사이였으니까.
“고 총리.”
“예, 각하.”
“서운한 점이 있었다면, 이야기해보게.”
최준석 대통령은 농담스런 어조로 말했다.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고 해도 어차피 해코지 못 하니까.”
고태욱은 이마를 짚으며 어렵게나마 웃음을 지었다.
“진짜 사실대로 다 말합니다?”
“그래, 말해보게.”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청와대 입성하시고 나서 같이 맞담배를 피울 기회가 너무 적었습니다. 검사 시절에는 허구한 날 같이 담배 태웠잖습니까?”
그 말에 최준석 대통령도 피식 입꼬리를 휘었다.
“그건 내가 사과하겠네.”
“예. 그러면 마음에서 풀겠습니다.”
“또 없나?”
“그게 전부입니다.”
“터놓고 이야기해도 되네.”
“정말 없습니다. 각하께서 절 거둬주시고 여기까지 데려와주셨는데 제가 불만이 있겠습니까?”
“고맙네.”
최준석 대통령은 고태욱 총리가 잡고 있던 손을 꽉 쥐었다.
“고 총리.”
“예, 각하.”
“우리 막내 잘 좀 부탁하겠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 총리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제 심장을 걸고서라도 약속 지키겠습니다.”
“고맙네.”
최준석 대통령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자네 덕분에 내가 안심하고 갈 수 있겠어.”
“저도 몇 년 뒤에 따라 가겠습니다. 천국에서 담배 한 대 같이 피우고 가시죠.”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난 지은 죄가 많아서 천국은 못 갈 거야.”
“전부 대한민국을 더 나은 국가로 만들기 위함이었잖습니까?”
“그래도 죄는 죄지. 난 지옥으로 가지 않겠나?”
“거기도 따라 가겠습니다.”
“클클클. 기다리겠네.”
고태욱 총리와의 대화 직후, 최준석 대통령은 첫째 최지만, 둘째 최지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셋째 쌍둥이 중 최지곤은 당연히 오지 못했고.
최은실은 그녀의 어머니가 직접 연락했으나, 오지 않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용서한다고 하셨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면목이 없었기 때문.
그 다음으로 병실에 들어간 인물은 넷째 최지성.
“아버지.”
최지성은 어색하게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최준석 대통령이 제일 먼저 뱉은 말은.
“미안하다, 아들아.”
사과였다.
“이 한 마디 하는 데 너무나도 오래 걸렸구나.”
최지성은 고개를 푹 숙였다.
최준석 대통령은 넷째가 연극영화과로 진학한 이후부터는 그를 버린 자식 취급했으니까.
“진즉에 말했어야 했는데, 생각은 하더라도 행동하는 게 어렵더구나.”
“그런 말 마세요.”
최지성의 입가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이 담긴 미소가 지어졌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그리움 그리고 고마움까지.
미안하다는 한 마디로 지금까지 묵은 감정이 단번에 해소되었다.
“내가 여섯 명이라는 자식들 중 누구 하나 미안한 점이 없는데, 네 생각만 하면 죄책감이 들더구나.”
“이제 그런 마음 가지지 마셔요.”
“그래도 되겠니?”
“당연하죠. 제가 용서할게요.”
“고맙다, 아들아.”
아버지의 입가엔 안도감 짙은 미소가 걸렸다.
“자식들 잘 챙기고.”
“예.”
“네가 나아간 방송계라는 곳이 만만치 않은 곳인데…… 잘 커줘서 고맙다.”
최지성은 아버지를 위로하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막내아들 최지훈 차례였다.
그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최대한 감정을 꾹 눌렀다.
“아버지.”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무미건조하게 아버지를 불렀다.
“우리 막내.”
아버지는 더할 나위 없이 인자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그래서일까.
그저 나를 부르는 한 마디만 들었는데도 감정이 왈칵 솟구쳐 버렸다.
주르륵.
참을 새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길.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주먹을 꽉 쥐어 눈물을 훔쳤다.
“울지 말거라.”
아버지는 힘겹게 손을 들었다.
내 볼을 만지려 하셨으나, 힘이 닿지 않는지 허공에서 멈추었다.
내가 그 손을 잡아 내 볼에 가져다댔다.
그제야 아버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여셨다.
“내 떠나가기 전에 네 웃는 모습을 보고가야지, 우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면 쓰겠느냐?”
“예, 아버지.”
나는 이를 악물며 눈물을 멈췄다.
“지훈아.”
“네, 아버지.”
“나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이 정도 나이면 갈 때가 된 거야.”
“…….”
후우욱.
숨이 점점 더 가냘파졌다.
“막내야.”
아버지는 천천히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씀하셨다.
“나의 진정한 후계자는 너야.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
아버지는 숨을 몇 번 더 고르신 뒤에야 날 바라보셨다.
“너는 누구에게도 지지 마라. 늘 이겨야만 해. 투쟁하고 성취해라. 그리고 승리를 거머쥐어. 그게 네가 할 일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고맙다.”
아버지는 힘겹게 손을 내려놓으셨다.
“다른 사람들도 불러다오. 이제 진짜 가야겠구나.”
* * *
고 총리를 비롯한 나의 가족들이 모두 병실 안에 모였다.
아버지의 숨은 점점 더 가빠졌고.
점점 나빠지는 모니터의 신호에 의사와 간호사도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심장박동이 점점 떨어졌다.
다들 아버지께 한 마디씩을 남겼다.
나는 아버지를 향해 나지막이 읊조렸다.
“사랑해요, 아버지.”
아버지의 호흡은 점점 더 나약해졌고.
약 10분 뒤.
삐이이-.
심장박동이 멈추며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의사는 아버지께서 덮고 있던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으며 낮게 읊조렸다.
“2025년, 11월 15일. 오후 7시 24분. 임종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