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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모이면 태풍이 온다 (3) (189/200)


  • 먹구름이 모이면 태풍이 온다 (3)
    2022.05.08.


    “어, 아들 왔어?”

    청와대에 도착하자, 어머니가 나를 반겨주셨다.

    다만, 평소보다 목소리를 상당히 낮춘 상태였다.

    “혹시 아버지 주무세요?”

    “응, 방금 전에 잠드셨어.”

    “어쩐지.”

    “이리 와라.”

    “예.”

    나는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커피 마실래?”

    “괜찮아요.”

    “차라도 한 잔 마셔.”

    “네.”

    어머니가 부엌에 커피포트를 가지러 간 사이,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8시 32분.

    아버지가 주무시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곧장 찻잔을 내오셨다.

    “뜨거우니 천천히 마셔. 이번에 중국에서 선물 들어온 거야.”

    “조금 구수하네요. 무슨 차예요?”

    “보이차.”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그렇지? 나도 처음에 듣고 보리차로 착각했었는데, 또 맛이 괜찮더라고.”

    나는 찻잔을 한 손에 얹으며 슬쩍 안방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오늘 좀 일찍 주무시네요.”

    “요즘 들어 부쩍 잠이 많아지셨어. 몸이 안 좋으신 것 같더라.”

    “아…….”

    나도 모르게 개탄스런 한숨이 나올 뻔했다.

    잠이 많아진다는 건 건강이 안 좋다는 증거였으니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자정까지는 서재에 계셨고.

    그 이후에 짧게 1시간 여 정도 휴식을 취하신 후, 새벽에 일어나셔서 업무를 보시던 분이셨으니까.

    아버지를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피부에 와 닿기 시작했다.

    “네 아버지가 요즘 지훈이 너 이야기를 많이 했어.”

    “그래요?”

    “응. 자식 중에서 제일 속 썩이지 않고, 잘 자란 놈이라고. 죽기 전에 결혼식 보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제가 빨리 손주라도 낳아야겠어요.”

    “그러면 소원도 없으실 거야.”

    어머니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물으셨다.

    “결혼식 준비는 잘 끝났고?”

    “네. 지한그룹에서 많이 도와줬어요.”

    “잘됐다. 내가 며늘아기를 많이 만나진 못했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건 충분히 느낄 수 있겠더라. 사돈들도 그렇고.”

    “맞아요. 저에게 잘해 주세요.”

    “그래. 앞으로도 잘해.”

    “참, 너 어릴 적 사진 봤어?”

    “사진이요?”

    “응. 오랜만에 앨범으로 봤는데…….”

    거실에서 어머니와 두 시간 가량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내일 결혼식을 생각하면 슬슬 들어가서 잠을 청해야했다.

    “저 이제 들어 가 볼게요.”

    자리에서 일어나자, 어머니는 조심스레 물었다.

    “잠깐 아버지 얼굴만 보고 갈래?”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히 잠 깨시면 불편해하세요.”

    “그래. 그러면 조심히 들어가고.”

    “네. 내일 봬요, 어머니.”

    “내일 보자, 아들.”

    * * *

    “장인어른, 오셨어요?”

    “오, 우리 새아들. 평소에도 멋진데 오늘은 더 멋지네.”

    지한그룹의 회장이자, 나의 장인어른이 환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쓸었다.

    “예린이는?”

    “조금 전에 신부 대기실로 들어갔어요. 드레스가 조금 삐뚤어졌더라고요.”

    “그래?”

    “예.”

    “각하 내외께서는?”

    “오고 계십니다. 5분 뒤에 도착하신대요.”

    “그래. 오면 말해줘. 인사드리러 올 테니까.”

    “네, 장인어른.”

    결혼식은 화려하지 않았다.

    상황도 상황이고, 양가가 워낙 평범한 집안이 아니다 보니, 구태여 사람들을 초대하며 언론의 관심을 받고 싶진 않았으니까.

    결혼식장 또한, 특정 웨딩홀을 잡지 않았다.

    장인어른이 보유하고 있는 강원도의 별장의 마당에서 치르기로 했으니까.

    물론, 말이 별장이지, 거의 대저택에 가까웠다.

    결혼식이 펼쳐지는 앞마당만 해도 500평이 넘었다.

    주차장이 있는 뒷마당은 더 넓으니 말할 것도 없지.

    “지훈아.”

    고개를 돌리자, 넷째 형 최지성이 껄껄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어, 형. 일찍 왔네?”

    “당연하지. 내가 안 오면 누가 오겠어?”

    그는 눈썹을 들썩거렸다.

    “게다가 이런 곳에선 형이 부조 대신 받아주는 거야.”

    “이야, 이번 결혼식 축의금 안 받는 거 어떻게 알고.”

    “하하하하, 걸렸네.”

    그는 흐뭇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우리 지훈이 다 컸네. 결혼도 하고.”

    “당연하지.”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 저쪽에 있을 테니까.”

    “응.”

    하객은 많지 않았다.

    직속 형제들을 포함해 4촌, 5촌 정도가 전부.

    지한그룹도 마찬가지.

    신랑신부에 양가 부모님들까지 다 합쳐봤자 30명 정도 되려나.

    다른 형제들도 차례로 도착했다.

    첫째 형 최지만.

    “축하한다, 막내야.”

    “고마워. 오느라 고생 많았지?”

    “고생은 무슨. 당연히 와야지.”

    그는 내 어깨를 툭툭 쳤다.

    “훤칠하네.”

    “땡큐. 넷째 형은 안쪽에 있어.”

    “응. 알았다.”

    최지만.

    아직 그에 대해선 판정을 보류했다.

    내 추론이 맞다면, 그는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린 건 모르더라도, 최소한 병세가 있으리라는 건 알고 있었을 테니까.

    다만, 확실할 수 없기에 아직까진 그에 대해 반감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이번 대선에서는 한 발 물러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

    다음은 둘째 형 최지원.

    “잘생겼네, 우리 지훈이.”

    “고마워.”

    그는 덕담도 잠시.

    “선의의 경쟁 해 보자고.”

    대선을 뜻하는 소리였다.

    다음 선거가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었으나, 그 대선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하는 것이다.

    결혼식 날에 이딴 소리나 하다니.

    가면 갈수록 둘째 형에 대한 혐오감이 들려고 한다.

    허나, 뭐라고 하기엔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마치 이성을 잃기 직전의 느낌.

    그가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으나, 최근 들어 수세에 몰릴수록 점점 더 본성이 드러나는 것 같달까.

    안타깝긴 하나, 별 수 없었다.

    잠시 후, 아버지가 다가오셨다.

    딱 맞는 양복을 차려 입고 계셨지만, 과거에 훨씬 더 핼쑥해진 모습은 감출 수 없었다.

    “아들아.”

    “예, 아버지.”

    “멋지구나.”

    아버지는 더할 나위 없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드디어 네가 장가가는 걸 보는구나.”

    아버지는 거친 손으로 내 손등을 어루만지셨다.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그런 말씀 마셔요. 떡두꺼비 같은 손주까지 보셔야죠.”

    “신혼여행 가서 좋은 소식 들려주려고?”

    “최대한 노력해 볼게요.”

    “하하, 그래.”

    아버지는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서는 대신, 안쪽으로 향하셨다.

    건강이 좋지 않아, 오래 서 있는 게 쉽지 않으셨기 때문.

    그 뒤로도 외가 쪽 친척 및, 친가 쪽 어르신들이 몇몇 찾아왔으나, 많지는 않았다.

    애초에 조용히 하기 위해 일부러 강원도로 와서 사유지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예식 시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슬슬 올 사람은 다 온 것 같은데.

    내 피붙이 중에서도 오지 않은 사람이 있긴 했다.

    셋째 쌍둥이, 최은실과 최지곤.

    아니, 오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겠지.

    최은실은 교도소에서 수감 중이었기에 나올 수 없었다.

    아니, 나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오지 않았겠지.

    아버지가 참석하는 건 당연한데, 그를 볼 낯이 있겠는가.

    최지곤은 애초에 올 만한 상황이 되지 못했다.

    여전히 해외에서 도피를 하고 있는 상태.

    현재는 필리핀 쪽을 전전하고 있다고 했으나, 태국으로 밀입국한 정황이 확인되어 다시금 추적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지금 살아가고 있다고 한들, 사람답게 살고 있지 못할 터.

    그는 평생 그렇게 살게 할 것이다.

    매일 같이 쫓기는 공포에서.

    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죄를 받게 할 것이다.

    “지훈아!”

    그때, 넷째 형이 날 불렀다.

    “응.”

    “이제 슬슬 준비해야 될 것 같아. 곧 입장이야.”

    “알겠어.”

    * * *

    “신랑 신부 행진!”

    빰 빠밤 빰빰빠밤-.

    결혼 행진곡과 함께 신부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머니는 감격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시며 우리를 바라봤고.

    아버지는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한 얼굴로 박수를 치셨다.

    피로연에서는 지한그룹이 준비한 특급 셰프들을 통해 만찬이 펼쳐졌다.

    가족 친지들 소수가 전부였기에 명절에 만난 사람들처럼 간만에 대화를 나누었지만, 정신이 없어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제대로 몰랐다.

    그렇게 평범한 결혼식 절차를 마치고 웨딩카 앞으로 향했다.

    “신혼여행 어디로 간다고 했지?”

    넷째 형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하와이.”

    “좋은 곳 가네.”

    그는 부럽다는 듯 엄지를 치켜들었다.

    “재밌게 놀고 와.”

    “응.”

    어머니는 내 등을 쓸어내리며 인자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하와이 가더라도 해외니까 조심하고.”

    “예. 어차피 이 사람 별장에만 있을 거라 괜찮습니다.”

    “그래도 조심해.”

    “그럴게요.”

    “잘 다녀와.”

    “네. 어머니. 가 보겠습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웨딩카에 올랐다.

    * * *

    신혼여행은 4박 5일.

    그리 길지도, 또 짧지도 않은 여행이었다.

    국내에선 이런저런 시선을 신경 써야 되어서 작은 행동에도 불편했지만.

    해외였기에. 그리고 지한그룹에서 소유한 별장이었기에 다른 이들의 감시로부터 완전히 프리했던 만큼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4일째 아침.

    “오빠, 표정이 좋네.”

    “그래?”

    “응.”

    가운을 입은 한예린은 날 바라보며 말했다.

    “매일 같이 심도 깊은 고민을 하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별다른 고민은 하지 않는 느낌이야.”

    “그러게. 이번에는 좀 편하네.”

    매일 같이 음모와 중상모략이 판치는 정계에만 있다가, 정말 오랜만에 머리를 비울 수 있던 덕분이겠지.

    실제로도 머리가 굉장히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의도를 완전히 잊은 건 아니었다.

    여전히 머릿속에는 정치와 관련된 생각들이 왕왕 떠오르지만, 일부러 털어내고 있었다.

    다른 때라면 모를까, 신혼여행에서만큼은 업무에 치이고 싶지 않으니까.

    물론,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라,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지만, 그건 지금 생각지 않으려고 한다.

    “이게 다 네 덕분이야!”

    “진짜?”

    “당연하지!”

    나는 한예린을 안아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지이잉-.

    휴대폰에 전화벨이 울렸다.

    별거 아니겠거니 생각하며, 무시하려 했다.

    그런데 전화가 끊기기 무섭게.

    지이잉-.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야 되는 거 아니야?”

    한예린의 목소리에 잠시 일어나 발신인을 확인했다.

    -최지성

    넷째 형 최지성이었다.

    신혼여행 중인 걸 알기에 어지간하면 전화하지 않을 터.

    그렇기에 받아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응, 천천히 받고 와.”

    나는 한예린을 뒤로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어, 형.”

    -지훈아.

    굉장히 어두운 목소리.

    순간, 왠지 모를 불길한 기운이 몰아쳤다.

    -여행 중인데 미안하다.

    “무슨 일 있어?”

    -아무래도 한국 들어와 봐야 될 것 같아.

    손에 땀이 쥐어졌다.

    순식간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서렸다.

    아니기를.

    부디 아니기를 바라며 입을 열었다.

    “……뭔데.”

    나도 모르게 목이 메었다.

    최지성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서 굉장히 위독해지셨어.

    하늘이 덜컥 내려앉았다.

    불길한 직감은 틀릴 때가 없다.

    -이번엔 오래 못 버티실 것 같아. 가능한 한 빨리 귀국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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