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이 모이면 태풍이 온다 (2) 2022.05.07.
시간이 흐르며 대한당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졌다. 무엇보다 정민이 사건과 관련된 대한당 의원 때문. 처음에는 3선 의원이다. 이후에는 삼민 C&C와 관련이 있다 등등, 정보가 하나씩 공개되며 서서히 포위망이 좁혀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대한당 수뇌부에도 소식이 전해졌다. “함우진이라고?” 보고를 받은 최지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예. 의혹이 있는 건 함우진 의원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허어…….” 김 보좌관은 차분하게 브리핑을 이어갔다. “일단 언론은 최대한 막고 있긴 하나, 퍼지는 속도가 상당해서 늦어도 오늘 중엔 공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막기는 힘들고?” “예. 단순히 언론뿐만 아니라, 넷상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흠…….” 최지원은 심각하게 턱을 매만졌다. “이거 섣부르게 대처해선 위험할지도 몰라.” 10년이나 지난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해당 사건에 대한 분노는 적지 않았다. 게다가 사건을 터뜨리는 기세 또한 심상치 않았다. 처음에는 큰 임팩트부터 시작해서 작은 정보들을 계속해서 던지며 불구덩이에 장작을 넣으며 불을 점점 키우고 있었으니까. “첫 제보자가 여항석이라고 했지?” “예, 그렇긴 합니다만…….” 김 보좌관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여항석도 제보를 받은 건 확실해 보입니다. 실제로 해당 시간에 방송국 CCTV를 확인해 본 결과, 퀵서비스를 받기도 했고요.” 물론, 추적은 안 되는 대상이긴 했다. “사건 키우는 걸 보면, 평범한 놈은 아니야. 이런 짓을 몇 번은 해본 놈이라고.” 이 사건의 정보를 던지는 인물이 최소한 정치인이라는 확신은 들었다. 그것도 최소 수년 간 언론전을 해온 베테랑. “자칫하다가는 대한당 자체가 휘청거릴 수도 있어.” 안 그래도 고태욱 총리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미래당으로 빠져나간 탓에 당의 위엄이 줄어들었는데 이런 사건까지 터지면 정말 민심은 걷잡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는 결심을 마쳤는지 고개를 들었다. “김충민 의원 자리에 있나?” “예. 오늘 의원실 출근한 걸로 들었습니다.” “지금 바로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 * *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김충민 의원이 들어왔다. “아이고, 후배님께서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그를 반기는 인물은 다름 아닌, 함우진 의원.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깐 괜찮으십니까?” “그럼, 당연하지.” 김충민 의원은 문을 꽉 닫은 뒤, 의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본 함우진 의원은 심상치 않은 일이란 걸 단번에 직감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함 의원님.” 평소, ‘선배님’이라고 부르던 것과 확연히 다른 호칭.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지원에게서 전하라는 말을 하기에는 마음이 무거웠으니까. “이번 정민이 사건과 연루된 거 함 의원님 맞으십니까?” “……뭐?” 함우진 의원은 태연하게 손을 내저었다. “어유, 아니야.”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으세요?” “…….” 무거운 질문에 함우진 의원은 입을 꾹 닫았다. “당 수뇌부에서도 알고 있어요.”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김충민 의원은 최지원의 충신 중에서도 충신. 그의 전갈을 받고 온 것이다. 김충민 의원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 정리되기 전까지 탈당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함우진 의원의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탈당. 대한당 딱지를 떼라는 뜻이었다. “충민아.” 그는 정색하며 되물었다. ”이거 당 대표님 지시야?” “…….” 차마 대답하지 못했으나, 침묵은 곧 긍정임을 함우진 의원이 모를 리 없었다. 김충민 의원도 상대방이 그걸 알아채지 못할 리 없다고 생각한 듯, 조심스레 덧붙였다. “그것만 잘 마무리되면 언제든 복당하실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같이 돌 맞기는 싫으니 10년 넘게 당에 충성하며 봉사한 나보고 나가서 내 똥은 알아서 치우고 오라는 뜻 아니야?” “……죄송합니다, 선배님.” “충민아.” 함우진 의원은 그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최지원 당 대표랑 자리 한 번 마련해 줘. 그건 가능하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당 대표님 마음을 돌리긴 어려울 겁니다. 워낙 단호하신 분이라…….” “알지. 그래도 만나봐야겠어.” 함우진 의원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탈당하더라도 만나야 한다고 전해. 그렇지 않으면 쫓아내기 전까지 안 나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 * * 최지원과의 은밀한 만남은 당일에 바로 주선되었다. 당장 몇 시간 뒤에 언론에서 터질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었기에 탈당을 하더라도 신속하게 했어야 하니까. “오셨습니까?” “예, 당 대표님.” 함우진 의원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그는 대화를 주도했다. “제가 탈당하기를 원하신다고요?” 최지원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함 의원님께서 당을 위해 헌신해 주신 건 알고 있습니다. 허나, 지금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요. 평소라면 모를까, 당이 쪼개진 것도 모자라 대선까지 앞두고 있는 마당이라…….” 함우진 의원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최지원의 논리는 탄탄했고, 판사 출신인 그의 말빨을 생각해 보면 함우진 의원이 설득할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당 대표님.” 그래서 그는 시작부터 준비해온 자료를 꺼냈다. “이거 한 번 보시죠.” 두툼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뭡니까?” 그 물음엔 답하지 않았다. 최지원은 문서를 확인했고. 순식간에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현재 군복무 중인 첫째 아들. 일명 ‘땡보’라고 불리는 꿀보직으로의 편의 봐주기부터 시작해서 훈련소에서 받은 특혜까지 전부 적혀 있는 자료들. 그뿐만 아니다. 그가 있는 부대에서 일병 하나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괴롭힘의 주역이 최지원의 첫째 아들 최현수라는 증언들과 정황 증거들이 담겨 있었다. 전부 최지훈에게서 건네받은 자료였다. 이런 상황에 쓰라고 준 것이지. 물론, 최지훈이 가진 자료 중 일부에 불과했으나, 효과는 확실했다. 최지원의 입술을 꽉 깨무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사실, 이 정도로 최지원을 무너뜨리기엔 무리였다.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볼 수도 없으나, 판사 출신으로서 공정성을 외치는 그의 이미지에 스크래치가 갈 수밖에 없을 터. 대선을 앞둔 그에게는 작은 흠이라도 지워내야만 했다. “……지금 날 협박하는 겁니까?” “협박이라뇨, 가당치도 않습니다.” 함우진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저도 먹고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뭐?” “저만 더러운 먼지 뒤집어쓴 거 아니잖습니까?” “함 의원!” 최지원이 호통을 쳤으나, 함우진은 눈을 똑바로 뜨며 대꾸했다. “저는 언제나 대한당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잠깐 위험하다고 버리면 그게 정당입니까?” “…….” “대한당은 그러지 않았잖습니까?” 함우진 의원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중진 의원들이 대거 탈당 후 미래당 창당 때에도 저는 대한당에 남아 당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탈당하라고요?” 최지원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눈앞에서 협박질을 하는 함우진 의원의 머리채를 잡아 뜯어버리고 싶었지만, 심호흡을 하며 꾹 참아냈다. 최지원이 소시오패스 기질을 가졌다고는 해도,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상황은 최대한 배제해야만 했으니까. 무엇보다 함우진 의원을 쫓아냈다가 그가 정치 생명이 끝났다는 생각으로 자폭하자는 생각이라도 한다면, 그가 어떻게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니까. 만에 하나 잘 마무리가 된다면 더 문제다. 함우진 의원이 미래당에 입당하는 순간, 대한당을 지키던 의원들에게 자신이 할 말이 없어지는 법이니까. “함 의원님.” “예, 당 대표님.” “논란이 되어도 버티실 수 있으십니까?” “당연하죠.” “증거는 제대로 제거하셨겠죠?” “물론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삼민C&C가 엮여 있습니다. 그런 건 확실하죠.” “알겠습니다.” 최지원 의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대기하십시오. 탈당 제의는 못 들은 걸로 해 주시고요.” “예.” 함우진 의원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당 대표님.” 함우진 의원이 떠나고 최지원이 혼자 남은 사무실. 그는 이를 꽉 깨물었다. 아들놈의 문제는 잘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제기랄…….” 당시엔 잘 묻었지만, 다른 병사들은 전역을 하고 나면, 그 비밀을 지켜야 하는 무게감이 사라지기에 유포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전역하기도 전에, 특히 이렇게 중요한 상황에서 알려질 줄이야. ‘내가 아버지였다면…….’ 최준석 대통령이었다면, 그런 자식이야 진즉에 내쳤겠지만. 최지원은 그럴 만한 위인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야당에 들어가지 않고, 자신의 당 의원에게 들어간 것이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최지원은 죽으나 사나 함우진 의원을 실드쳐야만 했다. 대한당의 이미지가 깎이게 되겠지만, 그가 정민이 사건과 연루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만 없으면 어떻게든 상황은 수습될 테니까. 그렇게 되리라고 최지원은 강하게 믿고 있었다. * * * 예상했던 대로 대한당은 나서서 함우진 의원을 실드쳤다. 내가 건넨 자료를 쓴 모양. 물론, 그것 미래당 분열 및 대선 등 여러 가지 이슈가 겹쳤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그쪽에선 대차게 나왔다. 연예인 마약, 불륜, 조직폭력배 사건 등을 터뜨리며 눈 가리기에 나섰으니까. 이렇게 대한당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걸 확인하고 나서, 나는 더 이상의 증거를 공개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민이 사건은 다시금 자연스레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져갔다. 여기선 나 또한 물러설 차례. 큰 그림을 위해서는 지금은 적당한 선에서 대한당이 찍어누르고, 그로 인해 흐지부지 덮이는 것처럼 보이게 할 필요성이 있으니까. 어차피 정민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폐지되었기에 급하지 않다.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게 낫다. 나를 위해서도, 희생된 자를 위해서도 중요한 건 대선이 치러질 때 터뜨려야 한다. “오빠.” 그때, 옆에서 발랄한 목소리를 내며 한예린이 다가왔다. 그녀는 내게 팔짱을 끼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몰히 해?” “별거 아니야.” “음…….” 한예린은 내 얼굴을 스윽 바라보더니. “내일 결혼식이라고 벌써 긴장했나 보네?” “하하, 티 나?” “완전!”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나랑 결혼하는데 설렐 수밖에 없지.” “맞아.” “아버님이랑 어머님은? 오늘 따로 뵈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안 그래도 너 데려다주고 청와대 가보려고.” “가서 어머님 많이 위로해드려. 드디어 막내아들 장가 보내는 거라 싱숭생숭하실 거야.” “벌써부터 참 며느리가 다 됐네.” “당연하지.” 그녀는 생긋 웃으며 차문을 열었다. “오늘은 아예 거기서 자고 오는 건가?” “아니, 이야기만 조금 나누다 올 거야.” “알았어. 늦을 것 같으면 연락해.”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