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먹구름이 모이면 태풍이 온다 (1) (187/200)


  • 먹구름이 모이면 태풍이 온다 (1)
    2022.05.06.



    “대한당은 완전히 비상인 것 같습니다.”

    마돈나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보고했다.

    “내부에서도 어떤 의원인지 아직까지 명확하게 파악을 못 한 걸로 보입니다.”

    “그럴 만하지.”

    일부러 언론에 자료를 한정적으로 공개해 대한당 의원이라는 건 밝히되, 그게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도록 만들었으니까.

    함우진 의원은 본인의 이야기라는 걸 알고 있을 테지만, 쉬이 말할 수 없을 터.

    만에 하나 말한다면, 당 차원에서 조사가 들어갈 테고.

    말하지 않고 버틴 끝에도 추가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자신에 대해 밝혀지지 않을 터.

    폭로한 사람이 증거를 얼마나 들고 있는지 모른다면, 일단 버티는 게 상책일 테니까.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어. 신호 줄 때까지는 건드리면 안 돼.”

    “알겠습니다.”

    지이잉-.

    때마침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김태원 기자.

    “네, 최지훈입니다.”

    -의원님. 김태원입니다. 방금 대한당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벌써요?”

    -예. 오늘 저녁에 보기로 했는데…… 예정대로 하면 될까요?

    “네. 그렇게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늦은 시간이어도 괜찮으니 끝나고 전화 주십시오.”

    -예, 의원님.

    나는 전화를 끊으며 가볍게 입꼬리를 휘었다.

    “지현 씨. 아무래도 예상했던 것보다 우리가 나설 타이밍이 일찍 올 수도 있겠는데?”

    마돈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미리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래.”

    * * *

    “아이고, 김 기자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물은 다름 아닌, 대한당의 김충민 의원.

    뼛속까지 최지원에게 바친 충신이었다.

    오늘 이 자리 또한, 최지원이 보내서 온 자리.

    물론 김태원 기자는 모르고 있었지만, 최지훈은 여기까지 예상했던 그림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먼저 식사하시지, 그러셨어요?”

    “에이, 어떻게 의원님을 두고 혼자 먹겠습니까?”

    김태원 기자는 취재를 하며 다년간 높으신 양반들을 만나 온 덕분에 이런 자리에서 입담 하나는 끝내줬다.

    “게다가 혼자 먹으면 맛도 없습니다.”

    “하하하, 그런가요?”

    김충민 의원은 엉덩이를 붙이며 바로 젓가락을 들었다.

    “시장하실 텐데 얼른 드시죠.”

    “예.”

    둘의 대화에서 급할 건 없었다.

    어차피 오늘 안에만 승부를 보면 되는 일이니까.

    김충민 의원은 능청스레 말을 시작했다.

    “여기 회는 일반 회랑 좀 다릅니다.”

    “오, 그런가요?”

    “네. 그래서 초장이나 간장에 찍는 것보다는 소금에 찍는 게 제 맛이에요.”

    김태원 기자는 소금을 찍어 회를 한 점 먹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예상과 다른 맛이네요. 이거 괜찮은데요?”

    “그렇죠.”

    “네. 역시 회라는 게 신선한 것과 더불어…….”

    물론, 그가 먼저 본론을 꺼내진 않았다.

    어차피 김충민 의원이 먼저 접근해 왔다는 건, 그가 더 급하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그나저나 기자님.”

    김충민 의원이 참지 못하고 본론을 꺼냈다.

    “다름이 아니고, 이번 기사 말입니다.”

    “아, 네.”

    김태원 기자는 대수롭지 않게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대꾸했다.

    “증거는 확실한 겁니까?”

    “기사로 낸 게 전부입니다.”

    그는 손을 휘휘 저었다.

    “저 같은 기자들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런 정보전에서는 들어온 게 있으면 죄다 터뜨려야죠.”

    “역시 그렇군요.”

    김충민 의원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 혹시…….”

    그는 김태원 기자를 향해 스윽 몸을 기울였다.

    “제보가 익명으로 들어왔나요?”

    “익명은 아니죠. 저도 확인 과정을 거쳐야 보도를 할 수 있으니까 대화는 해봤는데…….”

    김태원 기자는 말을 하려다 멈추고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제보자의 신원을 깔 수는 없잖습니까?”

    “어유, 당연하죠. 언론인은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충민 의원은 맞장구를 치는 듯하더니.

    스윽.

    들고 온 서류가방에서 두툼한 쇼핑백 하나를 건넸다.

    “어이쿠, 이게 뭡니까?”

    김태원 기자는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아, 별거 아닙니다. 우리 김 기자님 앞으로도 오래 언론계에 계실 거 아닙니까?”

    “그렇기야 한데…….”

    “앞으로 계속 오래오래 가자는 그런 의미죠. 저도 오래도록 정치해먹고 살아야 하고, 정치에는 또 언론이 필요한 일이니 서로 상부상조하는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 또한 맞다고 생각은 합니다.”

    “이거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요즘 제일 유행하는 남자 클러치? 뭐 그런 가방입니다. 우리 김 기자님 또 신세대잖습니까? 메고 다니셔야죠.”

    김태원 기자는 못 이기는 척 쇼핑백을 받아 슬쩍 열어보았다.

    “이건 메는 게 아니라 드는 것 같네요.”

    그는 클러치 가방을 슬쩍 손으로 만졌다.

    두툼하니, 건드려 보기만 해도 묵직한 게 느껴졌다.

    5만 원짜리 다발이 안에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클러치 중에서도 제일 큰 사이즈긴 하나, 가방 자체가 그리 크진 않아서 억 단위의 돈이 담기진 않을 터.

    그럼에도 충분히 훌륭한 뇌물이었다.

    “저는 뭐 크게 바라는 거 없습니다.”

    김충민 의원은 무심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냥 세상에는 사람도 많고, 이름도 다양하죠. 동명이인이 많잖습니까?”

    “…….”

    “저는 학창시절에 기억에 남는 친구 중에 이칠호라는 녀석이 있었어요. 악성 곱슬이었는데 파마했다고 학생주임 선생님한테 혼나고 억울해서 울었죠. 하하핫.”

    웃음소리도 잠시.

    그는 순식간에 웃음기를 거두고 눈을 번뜩였다.

    “김 기자님은 기억에 남는 친구 없으십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진짜 친구를 물어보는 게 아니다.

    그에게 제보를 한 인물이 누구인지를 묻는 것.

    “흐음…….”

    김태원 기자는 턱을 매만지더니 이내 한 손으로는 스윽 클러치가 담긴 쇼핑백을 자신에게로 끌어왔다.

    그리고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제 동창 중에 아나운서가 꿈인 친구가 있었어요.”

    “그렇습니까?”

    김충민 의원은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꿈을 이뤘죠. 9시 뉴스 앵커가 꿈이었거든요.”

    “오호.”

    “특이한 게 있다면, 남자인데 성이 여 씨였습니다. 초등학생 때 이런 걸로 놀리잖습니까? 하하하.”

    웃는 김태원 기자와 달리, 김충민의 짱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9시 뉴스 앵커.

    그리고 남자인 여 씨.

    성씨가 워낙 특이하기에 단숨에 한 명으로 특정되었다.

    여항석.

    혹시나 모른다는 생각에 김충민 의원은 휴대폰으로 여항석의 사진을 띄워 김태원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맞습니까?”

    김태원 기자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제야 김충민은 흡족스레 미소를 지었다.

    김태원 기자는 슬쩍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앞으로도 쭈욱 끈끈하게 갈 수 있겠죠?”

    “어유, 그럼요.”

    김충민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드시고 계십시오. 저는 금방 물 좀 빼고 오겠습니다.”

    “예, 그러시죠.”

    그가 나가자마자, 김태원 기자는 휴대폰을 들어 최지훈에게 문자를 하나 남겼다.

    -A.

    이내 그의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다.

    A는 성공, B는 실패였으니까.

    모든 상황은 계획대로 흘러갔다.

    김태원 기자가 못 이긴 척 뇌물을 받고, 여항석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까지 전부 최지훈이 설계였으니까.

    최지훈이 설계한 톱니바퀴가 하나씩 맞물리기 시작했다.

    * * *

    -최지훈 曰)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민이 법 통과에 태클을 건 대한당에서 책임져야 할 것…….

    -야당, 대한당 향해 의혹 밝히라는 압박.

    -대한당, 과연 의혹에 대한 해명은?

    -대한당, 아직 내부 확인 중……. 만약 그런 의원이 있다면 제명할 것.

    -민국당 최지훈, 정치인으로서 참담한 심정…… 대한민국 정치는 아직 갈 길 멀어…….

    김태원 기자의 신호를 받은 직후, 나는 거칠게 대한당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물론, 겉으로는 대한당의 의혹이 발생했고 그들을 공격하는 기류가 형성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대한당을 공격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김태원 기자가 엮여 있긴 했으나, 대한당 측에서 이번 건과 관련하여 나를 의심할 수는 없을 터.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 사건을 밝힌 건 강효석 의원이었고, 제3의 언론사를 통해 공개했으니까.

    대한당의 화살촉은 여항석에게로 향해 있었다.

    김태원 기자에게 자료를 제공한 게 그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허나, 그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게 확실했다.

    여항석의 평생 소원이 정계 진출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런 상황이 된 이상, 그는 대한당에 입당하는 건 다시 태어나도 불가능하다.

    그러면 그가 정계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민국당에 붙어야 하는데, 그러면 내 이름과 강효석 의원의 이름 모두 공개하지 않을 테니까.

    만에 하나, 모든 걸 포기하고 자백하더라도 내가 아니라 강효석 의원이라는 이름을 댈 테지.

    그렇게 된다면, 강효석 의원은 내가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

    결국 대한당이 나를 쫓는 일은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상황이 다급하게 돌아가는 동안, 가장 똥줄을 타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을 터.

    함우진.

    자신에게 포위망이 점점 좁혀 들어오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을 테니까.

    나는 일부러 대한당 의원실 근처를 서성거리다가 그를 발견하고 아는 체했다.

    “함 의원님.”

    “어, 최 의원.”

    나를 발견한 그의 낯빛은 상당히 어두웠다.

    “얼굴이 어두우십니다.”

    “하하, 티가 나나?”

    “요즘 대한당이 복잡해서 그런가요?”

    “그래.”

    함우진 의원은 적당히 대꾸했다.

    “의원님. 잠깐 시간 되십니까?”

    나는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담배를 피우는 시늉을 했다.

    “아, 내가 조금 바쁜데. 지금 최고 위원실에 보고할 게 있어서.”

    “이것보다 중요하진 않을 텐데요.”

    “응?”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정민이 사건과 관련된 건데…….”

    그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함 의원님은 아셔야 되지 않나요?”

    순간, 그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 자신이라는 걸 내가 알아챘다고 느꼈겠지.

    그럼에도 그는 오리발을 내밀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안 오시면 언론에 터뜨리고요.”

    “…….”

    “따라오시죠.”

    그는 입을 꾹 닫고 내 뒤를 따랐다.

    * * *

    흡연구역을 지나, 국회의사당 구석에 있는 작은 나무 뒤.

    “최 의원. 실은 내가…….”

    “쉿.”

    나는 함우진 의원의 입을 막은 뒤, 품에 들고 있던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뭔가?”

    “한 번 보시죠.”

    내용을 확인한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나의 둘째 형이자, 대한당의 당 대표인 최지원의 약점이 적혀 있는 문서였으니까.

    무려 언론에서 한 번도 다루지 못한 내용들.

    내가 오랜 기간 수집해 온 자료다.

    “함 의원님.”

    “응?”

    “저는 의원님 편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예전에 싱글맘 지원 사업 하신 거 있잖습니까?”

    “어…….”

    그는 골몰히 떠올리나 싶더니.

    이내 생각이 난 듯 눈썹을 들썩였다.

    “아, 9년 전에 통과시켰던 거?”

    “예, 맞습니다. 저희 보좌관 중 하나가 수혜를 좀 봤습니다. 제 오른팔 같은 친구인데 의원님께 빚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거짓말이다.

    그를 믿게 하기 위하여 적당히 만들어낸 것이지.

    “아, 그래?”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슬쩍 목소리를 낮췄다.

    “최지원 그놈이 당당한 낯짝을 들고 다니는 게 싫습니다. 특히 그 눈빛이 싫어요.”

    함우진 의원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그 인간 눈이 째져 있긴 해.”

    “이게 함 의원님께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언론에서 정민이 사건과 연루된 의원. 즉 함우진 의원을 추적하는 만큼, 대한당에서도 어떻게든 그를 색출하려고 할 터.

    그렇다면 당 대표의 약점을 쥐고 있는 건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두 팔을 뻗어 내 손을 붙잡았다.

    “고맙네, 최 의원!”

    “아닙니다.”

    “내 조만간 보답함세.”

    “보답은 괜찮습니다. 한국인에게 이런 정은 있어야죠.”

    “내가 그 정을 잘 지키기로 유명하지 않나?”

    함박웃음이 보자, 내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이렇게 오래 같이 있으면 의심 받습니다.”

    “그래, 내가 따로 연락하지.”

    “들어가십시오, 의원님.”

    “정말 고맙네, 최 의원.”

    함우진 의원은 서류봉투를 품에 넣고는,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다시금 국회의사당 건물 안으로 향했다.

    움츠러들었던 그의 어깨는 어느 새 당당하게 펴져 있었다.

    퍼즐이 맞춰지며 어렴풋이 그림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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