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3)
(185/200)
폭풍전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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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전야 (3)
2022.05.04.
“예, 의원님.”
운전대를 잡고 있는 마돈나는 블루투스로 연결된 전화에 응답했다.
“네, 지금 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남았어?
“한 10분이면 도착합니다.”
-그래. 가서 잘 전하도록 해. 큰 그림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 되었으니까 세부 사항만 이해시키면 돼.
“알겠습니다. 끝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고생해.
최지훈 의원과의 전화를 마무리한 마돈나 임지현은 천천히 핸들을 틀었다.
지금 만나러 가는 인물은 민국당의 강효석 의원.
이제 막 초선이 된 인물로, 당선 전 선거 캠프 때부터 최지훈과 함께했기에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번 최지훈의 큰 그림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인물.
국회의사당에서 둘이 따로 만나 이야기는 나눠서 함께 하기로 약속은 했지만, 보는 눈이 많아 오래도록 접촉할 수 없기에 마돈나가 대신해서 세세한 사항을 전달해주러 가는 것이었다.
마돈나가 차를 멈춘 곳은 한강공원.
이제 오후 8시를 넘긴 이른 시간이었기에 사람들은 굉장히 많았다.
간단하게 산책이나 조깅을 하는 시민들부터 시작해서 손잡고 데이트를 하는 커플들, 돗자리를 펴놓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까지.
보는 눈이 많지만.
그만큼 인파가 많기에 사람들 사이에 묻힐 수 있었다.
마돈나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기다린 지 5분쯤 지났을까.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는 적당한 곳에 차를 대두고는 마돈나가 타고 있는 차의 조수석에 탑승했다.
“안녕하세요.”
“간만에 뵙네요.”
“네.”
인사는 이걸로 충분했다.
마돈나는 들고 있던 서류를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사람에게 접촉하면 됩니다.”
그녀는 곧바로 덧붙였다.
“서류는 집에 가서 확인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만날 수 있는 장소, 좋아할 만한 주제 등은 그곳에 다 적어 두었습니다.”
“예. 제가 따로 할 건 없겠습니까?”
“친근하게 대하십시오. 그러면 그쪽에서 알아서 정보를 퍼줄 겁니다.”
“……확실합니까?”
“최지훈 의원님께서 직접 전달하신 내용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지훈이 계획을 했다기에 강효석 의원도 크게 의심치 않았다.
“은밀하게 정보를 건네 오면, 저에게 연락하시면 됩니다.”
“최지훈 의원님이 아니고요?”
“예. 지금 최 의원님께는 많은 이목이 쏠려 있습니다. 직접 접촉했다가는 강효석 의원님도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 이후에는요?”
“관련했던 대화 및 자료들을 전부 넘겨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전달 사항은 그게 끝이었다.
모든 건 이미 설계가 되어 있었으니까.
강효석 의원은 서류를 주섬주섬 챙기고는.
“그리고 하나 여쭤볼 게 있는데…….”
조심스레 물었다.
“이번 법안, 어떻게 되는 겁니까?”
“법안은 통과될 겁니다.”
마돈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특정 부분에서 밀고 당기는 내용은 있을 테지만, 형사법이 적용되는 주요 사안들은 공소시효가 폐지될 겁니다.”
“그렇군요.”
“최지훈 의원님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열띤 토의를 해야, 이번 법안을 통해 더 큰 건을 터뜨린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테니까요.”
그게 최지훈의 의도였다.
사실, 이번 그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현재 대한당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서 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큰 차이는 없다.
허나, 민국당이 원하는 대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몰입하고 있는 걸 보면,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만에 하나, 일이 터지고 난 뒤에 의심이 쏠릴 수 있지만, 실제로 정민이 법의 범인을 잡기 위해 그렇다고 하면, 문제가 없을 테니까.
강효석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의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면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접촉해주십시오.”
“그렇게 하죠.”
* * *
“하아…….”
짙은 한숨이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여항석은 애꿎은 달력과 시계를 연신 바라보았다.
열흘.
벌써 열흘이나 지났다.
혹시나 해서 휴대폰을 열어 보았으나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째려본다고 해서 오지 않을 연락이 올 리는 없으니까.
“대체 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연락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기껏해야 사흘.
길어도 일주일이면 다시금 최지훈에게 연락이 오리라 생각했다.
허나, 열흘이 지나도록 그에게 연락이 오기는커녕.
-뚜우우.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자신의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그냥 거절하는 게 아니라, 마치 차단을 당한 듯 전화를 걸자마자 통화가 종료되었다.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거 이용당하는 거 아니야?’
분명 자신에게 제보가 들어왔다.
누가 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여항석’이라는 앵커를 믿고 줬다는 사실.
이걸 뉴스로 보도하고 터뜨리라고 준 것이다.
다시 말해, 시간이 흐르면 제보를 한 사람도 수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을 터.
그렇게 되면, 그 자료를 다른 이에게 제보하려 들 터.
그러면 자신에게 온 기회를 고스란히 놓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건도 아니고, 무려 ‘정민이 사건’에 관한 자료였다.
10년 동안 미제사건이었고, 공소시효가 끝나기 직전이다.
안 그래도 최지훈이 이번에 ‘정민이 법’을 만들며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상태.
여기서 그 자료를 터뜨린다면, 분명 지대한 관심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정민이 법’이라는 안건을 냈다는 것부터 무언가 하고 있는 건 틀림이 없었지만.
자신을 배제한 채 모든 게 흘러가버릴까 봐 겁이 나는 것이었다.
정계로 진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 중 하나였으니까.
“후우우.”
여항석은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시며 자신의 서랍 제일 아래 칸을 열었다.
이중 열쇠로 굳게 잠겨있는 서랍을 열자, 두터운 서류 봉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 최지훈 몰래 준비해둔 자료의 사본이었다.
그에게는 사본이 없다고 했으나, 여항석도 지금까지 영악하게 살아온 만큼 아무런 생각 없이 모든 걸 넘길 사람은 아니었다.
‘이걸 어떻게 한담…….’
최지훈 의원은 여항석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
그 또한 지금 당장 터뜨릴 생각은 없었다.
허나, 초조한 마음이 자꾸만 자신을 흔들었다.
다시금 얼마나 고민했을까.
“하아.”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외투를 들었다.
차라리 더 생각하지 않기 위해 술이나 한 잔 마실 생각이었다.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한 펍.
“늘 마시던 걸로 부탁해요.”
“예.”
바텐더가 양주 한 잔을 내밀던 그때.
문득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만 벌써 세 번째 보는 얼굴.
9시 뉴스를 진행 중인 앵커였기에.
그리고 또 정계에 입문하려는 욕심이 있는 그였기에 국회의원을 포함해 어지간한 정치인들의 얼굴은 알고 있다.
민국당의 초선 의원 강효석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멀리서 긴가민가하며 바라보기만 했다.
두 번째 봤을 때는 지나가면서 가볍게 목례하고 통성명만 하는 정도.
그리고 다시 만난 게 오늘.
잠깐 고민하던 그는 온더락으로 나온 잔을 들고 슬쩍 자리를 옮겼다.
“안녕하세요.”
“어, 또 뵙네요. 성함이 그때…….”
“여항석입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름 외우는 걸 잘 못 해서요.”
“아닙니다.”
“제가 사과 의미로 한 잔 드리겠습니다. 바텐더 제가 마시는 걸로 이분께 한 잔 부탁해요.”
강효석은 먼저 친근하게 굴었다.
당연히 정계 진출에 욕심이 있는 여항석의 입장에선 거리낄 게 없었다.
아예 오늘이 첫 만남이었다면 경계를 했겠지만, 벌써 이 바에서만 몇 번 만나며 나름 친밀도가 꽤나 높아져 있었으니까.
“요즘 정민이 법 때문에 국회가 시끄러운 것 같던데요.”
그는 슬쩍 운을 뗐다.
“혹시 뭐 따로 알고 계시는 게 있습니까?”
“여기서도 취재하시는 겁니까?”
강효석이 일부러 선을 긋는 티를 내자.
“어유,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닙니다. 방송국에서 나온 순간, 저는 일개 시민이에요.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답했다.
“별거 없습니다. 늘 그렇듯 여당과 야당 간의 싸움이죠.”
“그렇군요…….”
여항석은 술을 한 잔 건네며 물었다.
“최지훈 의원님은 별말 없으시고요?”
“예. 저야 뭐…… 친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분은 당의 수뇌부시고, 저는 말단이니까요.”
그는 지긋하게 고개를 돌리더니.
“정민이 법에 대해 뭐 혹시 아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법에 대해서는 모르는데…….”
여항석은 망설였다.
말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최지훈 의원이 자신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것보다도 차단한 게 괘씸하게 느껴졌다.
여차하면 정보를 얻는 걸로 이용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선책도 뚫어 놔야 된다고 느꼈으니까.
“정민이 사건에 대해서 조금 들은 게 있어서요.”
“그 사건이요?”
강효석 의원은 흥미롭다는 듯 아예 몸을 돌려 앉았다.
“그 미제 사건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 게 있는 겁니까?”
여항석은 검지를 입에 가져다대며 목소리를 낮추라는 신호를 주었다.
강효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항석은 조심스레 말을 시작했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는데…… 대한당 의원 중 하나가 깊이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의원이요?”
“예. 확실합니다.”
“허어…….”
강효석은 턱을 매만지다가 물었다.
“조금만이라도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전부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일부분이라면…….”
여항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이 제보 받았던 내용에 대해 알려주었다.
최지훈 의원에게 자료를 넘겼다는 사실만 쏙 빼놓고.
“혹시 자료 들고 있으십니까?”
“아니요. 자료는 없는데…….”
“증거가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여항석은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비밀로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럼요, 당연하죠.”
“사본이 하나 남아 있긴 합니다.”
“원본은요?”
“그건…….”
망설이자, 강효석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혹시 다른 누군가에게 넘기신 겁니까?”
말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최지훈의 이름을 언급하면 자신도 위험해진다는 걸 알기에 여항석은 꾹 참았다.
“그것까지 말씀드릴 순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건 묻지 않겠습니다만, 자료를 받지 못하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항석은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하다가.
온더락잔에 있던 양주를 한 번에 들이켜고 나서야.
“알겠습니다. 넘겨드리죠.”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저도 정계로 진출하고 싶습니다.”
“정계요?”
강효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정치에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오랜 시간 뉴스를 진행하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세상을 바꾸는 힘은 민중을 계몽시키는 게 아니라, 이끄는데서 오는 거라는 걸.”
여항석의 말에 강효석은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마치 결심이라도 한 듯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자료만 넘겨주시면 제가 최대한 힘써보도록 하죠.”
“정말입니까?”
“예,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