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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전야 (2) (184/200)


  • 폭풍전야 (2)
    2022.05.03.


    9월 정기 국회가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안건이 발의되고 격렬한 토론도 이어졌지만, 내가 주시하고 있는 법안은 단 하나였다.

    ‘정민이 법.’

    평범한 법안은 아니었다.

    형사법과 관련된 법안으로, 정확히는 공소시효를 다루고 있는 만큼 굉장히 민감한 주제.

    내가 직접 발의했는데, 여야로 나뉘어져 치열한 공방을 하는 다른 법안과 달리, 정민이 법은 대부분의 의원들이 찬성하는 의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있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5년.

    태정민이라는 어린 아이 하나가 어머니의 심부름을 가던 도중, 괴한에게 습격을 받고 만다.

    고작 10살이 된 어린 학생에게 흉기를 휘둘러 팔 하나와 다리의 힘줄을 모두 끊는 것도 모자라 대장까지 파열시키고 말았다.

    허나, CCTV도 없는 시골 지역이었기에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미제 사건에 접어들고 말았다.

    정민이는 주민의 신고로 119에 이송되어서 생명은 건졌으나, 팔 하나를 제외하고는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장 파열로 인해 평생 기저귀를 차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사실, 그해에는 태완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형사소송법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되었으나.

    정민이를 해한 범인은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상해’를 입힌 탓에 ‘특수상해죄’로 분류가 되었고.

    공소시효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흘러 결국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고.

    특수 상해죄의 공소시효 만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허나, 긴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한 사람의 생을 완전히 망쳐버린 죗값을 치르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정민이 법’이라는 안건을 9월 정기 국회에 상정했고.

    이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여당에서도 내가 올린 안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몰라도, 국민들의 여론은 정민이 법이 통과되기를 바라고 있었기에 동의하는 건 문제가 아니지.
    그들이 문제를 삼는 건 ‘영역’이었다.

    “형사법이 적용되는 모든 죄에 공소시효를 없애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법치주의 국가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내 주장은 위와 같았고.

    “모든 형사법에서 공소시효를 폐지할 순 없습니다. 개중에서 죄질이 나쁜 몇몇 죄로 국한시켜야만 합니다.”

    여당인 대한당은 위와 같은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서는 첨예한 대립이 펼쳐졌다.

    “경찰들에게 잡히지 않고 몇 년 지난다고 해서 죄를 없애 주는 건 오히려 범죄 후 도피를 증가시키는 일입니다. 현존하는 법안처럼 자수했을 경우에 형을 경감해 주는 걸 더욱 도드라지게 보여주면 되죠.”

    내 의견에 반대를 외치며 토론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둘째 형 최지원.

    그와의 본격적인 승부라기보다는 대선 전에 몸 풀기 토론이라고 봐야지.

    “그것 또한 문제입니다. 공소시효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랜 시간이 지난 범죄에 대해 수사나 재판의 필요성이 줄어들지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의 부담이 커진다는 거죠.”

    “최지원 의원님께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기준을 죄질에 따라 구분한다고 하셨는데, 그 죄질이 좋고 나쁨은 어떻게 구별하실 겁니까?”

    “그걸 맞춰가는 게 저희의 일이죠. 우선적으로는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건 저희도 동의하는 일입니다.”

    둘째 형 최지원은 판사 출신이라는 듯 쉽게 밀리지 않고 청산유수로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 최지훈 의원님께서는 형사법이 적용되는 모든 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한다면, 그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의 인력은 어떻게 감당하실 겁니까? 지금도 경찰 출신들은 밤샘을 밥 먹듯이 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공무원임에도 평균 수명이 제일 짧은 직업 중 하나예요.”

    공적인 자리기에 서로를 향해 존칭을 썼다.

    정치를 하면서 버릇이 되었기에 그건 어렵지 않았다.

    “예상하신 대로 업무 부담이 커질 겁니다. 안 그래도 지금 힘든데 말이죠. 그러면 당연히 인력을 충원해야죠.”

    나는 유연하게 받아쳤다.

    “또한, 말씀하신 대로 공무원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꿈꾸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노량진만 가봐도 학원에서 공무원을 희망하며 공부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죠. 그들을 위해서 사법부와 경찰의 인력을 늘리는 겁니다. 자연스레 고용도 늘어나는 것이고, 형사 사건에 대한 해결도도 높아지겠죠. 국가의 치안율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이는 국격 상승에 도움이 됩니다.”

    최지원이 말한 걸 그대로 이용했다.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으나,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공무원을 늘린다고 칩시다. 많은 분들이 꿈꾸는 직업이고 국격에도 도움이 되겠죠. 허나, 그 사람들이 무료로 일하는 건 아니잖아요. 전부 서민들의 피 같은 혈세로 월급을 주는 겁니다. 늘어난 공무원으로 인한 세수는 어떻게 보충할 겁니까? 또 증세 같은 이야기나 하실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나는 피식 입꼬리를 휘었다.

    “나라에서 새는 돈만 제대로 틀어막아도 충분하죠.”

    모 대선 후보가 말했다.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 거라고.

    “제가 직접 과거에 잡았던 방산비리부터 시작해서 허투루 새고 있는 세수를 꼼꼼히 점검하면 충분히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 가지고 감당이 될 것 같습니까? 그리고 새는 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행정부를 돌려서 비판하면 안 되죠.”

    “국민들이 살고 있는 현장 가보셨습니까?”

    나는 최지원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이렇게 책상에 앉아서 탁상공론 하는 게 아니라, 직접 가서 봐 보면 뻔히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를 향해 꾸짖듯 말했다.

    “실정을 보십시오. 모 지방의 마을 회관에서는 가을 날씨에도 에어컨을 틀어놓습니다. 18도로 맞춰놓고 바닥엔 보일러를 떼어요. 창문도 훤히 열어놓고요. 이게 왜 이러는 줄 아십니까?”

    최지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직접 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내용.

    “나라와 군청, 시청에서 마을에 지원 나오는 돈이 있는데, 그 돈을 다 써야 다음 달에 지급을 해준다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남으면 지원을 안 해 주는 거죠. 그래서 돈을 남기는 게 아니라, 일부러 쓰려고 발악을 하는 겁니다.”

    “…….”

    “뿐만 아닙니다. 지방에 가보면 노인 고용을 늘린다고 잡초 뽑는 직을 구하고 있습니다. 나라 땅도 아니고, 마을 사람들 땅에요. 어차피 마을에서 해야 할 일인데 돈 주는 겁니다. 복지 퍼주기죠. 그리고 막상 일 시키면 감독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다들 막걸리에 파전 부쳐서 하루 종일 시간 때우고 가는 거예요.”

    “그건 노인들 소일거리라도 주기 위해…….”

    “그게 새는 돈이라는 겁니다. 노인 소일거리를 주려면 제대로 된 일을 줘야죠. 되도 않는 일에 어떻게든 실업률 줄이겠다고 정부에서 억지로 일자리 늘리는 거 아닙니까?”

    “…….”

    법안 통과를 위해 아주 빡빡하게 준비해온 덕분에 다행히도 민국당 쪽으로 분위기는 기울고 있엇다.

    어떻게든 이 법안은 통과시켜야만 한다.

    그래야 여항석과의 연결고리가 효과를 볼 수 있을 테니까

    “자자, 우선 이번 법안은…….”

    국회의장의 중재로 인해 잠깐의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사이, 나는 최지원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대한당의 구석에 앉아 있는 함우진 의원을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웃으며 옆에 있는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눈빛은 쉬이 거두질 못했다.

    그러다 문득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미소를 지으며 꾸벅여 인사했으나, 그는 적당히 인사하는 시늉만 하며 외면했다.

    피식 미소가 새어나오는 걸 꾹 참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보다 이 안건에 대해서는 똥줄이 탈 테니까.

    왜냐하면 정민이를 그렇게 만든 사건에는 저 함우진 의원이 아주 깊이 연관이 되어 있으니까.

    추측이 아니다.

    미래 문자를 통해 확실히 본 사실이니까.

    * * *

    내가 최지성을 만나 전략을 짜기 한 달 전.

    지잉지잉-.

    간만에 미래 문자를 하나 받았다.

    -보낸 이 : 61

    -동영상.

    처음 받았을 때는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늘 내 나이 근처의 보낸 이만 보다가 이렇게 높은 숫자는 처음이었으니까.

    이전까지는 가장 높았던 게 47인 데 비하면, 확연하게 높은 수치지.

    나는 곧장 동영상을 재생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어.

    친절한 간호사의 목소리.

    그 뒤에 홀린 듯 따라오는 늙은 할아버지의 목소리.

    함우진이었다.

    현재 50대 중반인 걸 생각하면, 90세는 되었을 나이.

    아니나 다를까, 그가 앉아 있는 침대의 이름표에는 ‘함우진, 91세, 치매’라고 적혀져 있었다.

    정치인도 세월엔 장사가 없다.

    눈은 흐리멍덩하고 표정은 멍했다.

    -할아버지, 어디 편찮으신 데 있으세요?

    -몰라.

    간호사의 물음에 동문서답으로 답하고는.

    -내가 말이야…….

    그는 홀린 듯 고백을 하기 시작했다.

    -옛날에 아주 몹쓸 짓을 했어.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사건을 덮었어.

    -사건이요?

    -응. 그랬지. 내가 욕심이 많았어…….

    늙은 함우진은 갑자기 울먹이더니 고해성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숨기자고 했거든. 근데 나는 그게 필요했어. 어쩔 수 없었다고.

    영문을 모르는 간호사는 맞은편에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물었다.

    -무슨 일이셨는데요?

    -그 어린 아이…… 불구가 되어 버렸는데 난 그걸 묻어 버렸어.

    함우진이 국회의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평범치 않은 일이란 걸 직감한 간호사는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누가 시킨 건데요?

    -나도 잘 몰라.

    -아이는 어땠는지 기억나요?

    -정민이. 태정민이라는 작고 여린 아이였는데 그 사람네 조카가 몽유병으로 해코지를 해버린 거야. 근데 나한테 돈을 줬어. 그래서 경찰들이 찾아낸 걸 내가 덮었어.

    -할아버지, 말씀하신 게 진짜예요?

    -엄마.

    함우진은 멍한 눈빛으로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팔을 허공에 휘젓더니.

    -엄마 나 배고파.

    보아 하니, 치매가 꽤 오래도록 진행된 탓에 정신도 흐릿한 상태인 모양.

    -방금 식사하셨잖아요.

    -아, 엄마 나 배고프다고!

    그 목소리를 끝으로 영상은 종료되었다.

    이 문자를 받은 직후, 함우진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고.

    삼민C&C라는 회사와 유착 관계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오랜 조사 끝에, 삼민C&C 부회장의 조카가 몽유병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정민이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에 그 조카가 살았던 소재지 또한 일치하고.

    즉.

    그 조카가 진범이고, 삼민C&C의 부회장은 함우진 의원에게 돈을 주고 경찰 수사를 종료시킨 것이다.

    허나, 증거가 없었다.

    그렇기에 언론을 흔들어야 했다.

    그리고 이걸 터뜨리는 시기는 대선.

    그래야 대한당을 무너뜨릴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때까지 기다린다면 증거불충분으로 인해 공소시효가 끝나버리고 만다.

    다시 말해.

    정민이 사건의 범인을 처벌하고 함우진 또한 같이 죗값을 받게 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형사법의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뜻이지.

    이 모든 설계에서 시작된 게 여항석과의 연결고리이자, 지금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계획이 모두 원하는 대로 이뤄진다면.

    고태욱 총리가 대선에서 당선되어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후일, 내가 청와대에 입성하게 된다.

    모든 계획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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