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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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1.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간만에 뵈니까 더 반갑네요.”
최지만의 살가운 말투에 고태욱 총리는 석연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지만이다.
비서실장이던 시절부터 자신을 그렇게나 경계하던 인물.
안 그래도 대한당에서 미래당이 분열해 나오며 본인이 대선에 출마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탓에 싫으면 싫어했지, 좋아하지는 않는 게 정상적이니까.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늘 똑같죠.”
“일단 타시죠.”
“예.”
최지만은 고태욱의 조수석에 탑승했다.
둘 모두 평범하게 안부 인사나 하기 위해 만난 게 아니란 건 알고 있기에 바로 본론을 꺼냈다.
“총리님께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고태욱은 말을 자르며 고개를 들었다.
“여기까지 오셨다는 건 평범한 질문은 아니겠죠?”
“맞습니다.”
최지만은 순순하게 인정했다.
“미래당의 차기 대선 후보님께 여쭤보는 겁니다.”
허나, 고태욱이 쉽게 받아 줄 리가 없었다.
“제가 답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미 경쟁 구도에 있는 인물에게는 굳이 정보를 줄 필요가 없었으니까.
최지만은 유순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총리님께 해가 되는 내용은 아닐 겁니다.”
“일단 들어는 보죠.”
최지만은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제가 총리님께 도움을 드리면 어떤 보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순간, 고태욱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평범한 질문이 아니다.
최지만이 진심으로 묻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바라봤으나, 평소의 간사한 기운은 사라진 상태였다.
즉 진심으로 묻는 것일 터.
허나, 그렇다고 바로 대답을 들려줄 필요는 없었다.
“도련님께서는 대선을 꿈꾸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랬죠. 언젠간 아버지의 뒤를 이으려 했습니다.”
최지만은 허심탄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거짓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최지만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잖습니까?”
그는 최대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정도는 연기였지만, 실제로 그런 감정이기도 했다.
지금 이 자리에 왔다는 것 자체가 대통령이 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니까.
“도련님.”
고태욱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 말씀은 대한당에서 대선 후보로 최지원 도련님이 단독 출마하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만…….”
“맞습니다.”
최지만은 시원하게 인정했다.
“저는 대선 후보로 출마하지 않을 겁니다. 당내 경선도 하지 않을 것이고, 지원이가 대권에 도전할 겁니다.”
“이미 결정이 난 사안인가요?”
“예.”
고태욱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대한당을 장악한 건 최지원이었기에 그가 대선에 출마할 거라고는 직감하고 있었지만, 최준석 대통령이 살아있을 때 그런 결론이 날 가능성은 굉장히 적다고 판단했으니까.
최지만은 곧바로 승부수를 던졌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 총리님께서 당선이 되셨으면 합니다.”
“제가요?”
고태욱은 짙은 경계심을 드러냈다.
아무리 자신이 출마하지 못한다고 해도, 형제들 중 누구보다 자신을 경계했던 게 바로 첫째 최지만이었으니까.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숨을 깊게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버지의 정권이 이대로 마무리되는 건 원치 않습니다. 기왕이면 우리 핏줄에서 가져가는 게 그림도 좋고, 정치적으로도 더 낫다고 생각하죠. 허나, 제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최지만은 차분하게 자신의 설명을 이어나갔다.
“제가 둘째나 셋째였다면 모를까, 첫째잖습니까?”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막내도 아니고 장남입니다. 동생들한테 뺏기는 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아요.”
“…….”
“게다가 역사에도 그렇게 기록되지 않겠습니까? 동생한테 대통령 자리를 뺏긴 무능한 장남이라고요.”
이 감정만큼은 진심이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꼽히는 세종대왕의 즉위 과정을 봐도 그의 형 두 명이 희생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잖습니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최지만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품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완벽하게 논리적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감정적이라고 봐야지.
그렇기에 더 설득력이 있었다.
정치란 곳이 원래 논리보다도 감정에 의해 돌아가는 곳이니까.
“동생들에게 양보할 바에는 차라리 다른 이에게 넘기겠다…….”
“예. 솔직히 말해서 민국당은 꼴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미래당은 더욱더 그렇고요. 그나마 총리님은 저희 아버지께서 가장 신뢰하던 인물이잖습니까?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부끄럽지만, 자식들보다도 더 믿으셨고요.”
그 말엔 부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국정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고…… 총리님이라면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드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를 대통령으로 밀고 싶다는 뜻이십니까?”
“예.”
최지만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리고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추후에 제가 어떤 보답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최지원은 좋은 자리를 약속했다.
대통령에 버금가는 자리를 주겠다고는 했으나, 그렇게까지는 주지 않을 게 확실하다.
허나, 최소 장관 이상의 자리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
“저는…….”
고태욱 총리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최지만의 행보가 결정될 테니까.
그의 고민은 길어졌다.
침묵 속에서 얼마나 지났을까.
“도련님.”
고태욱은 어렵게 말을 시작했다.
“저는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습니다.”
“……네?”
예상치도 못한 대답이었다.
최지만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고태욱 총리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각하께서 직접 저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찍으셨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죠?”
“그렇기에 저는 각하의 정신을 이어받아야만 합니다.”
“…….”
“부패를 척결하고 정경유착을 없애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정치에서도 무언가를 해주고 그 대가성으로 받는 게 없어야만 하고요.”
최지만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니, 이게 정상이었다.
실제로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이지.
그렇기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물러날 수는 없는 법.
“그 어떠한 약속도 해주지 못하겠다는 뜻이십니까?”
최지만이 다시금 물어봤지만.
“예.”
고태욱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각하께서 제게 실망하실 겁니다.”
“…….”
아버지까지 들먹이는 이상, 최지만은 더 이상 구질구질하게 매달릴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벌컥-.
그는 세차게 문을 열고 조수석에서 하차했다.
무운을 빌겠다거나, 응원하겠다는 말도 남기지 않았다.
고태욱 총리에게 조심히 들어가라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최지만은 자신의 차에 올랐다.
‘괜히 왔네.’
이를 빠득 갈며 후회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그의 활로는 하나뿐이었다.
최지원.
그의 동생을 당선시켜야만 했다.
장남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그가 대한민국에서 떵떵거리며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재산과 안전 그리고 직위를 보장해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차에 오른 최지만은 시동을 걸며 곧장 최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본격적으로 움직이려고. 응. 미래당 쪽은 내가 한 번 만나보고…….”
* * *
각 당에서 대선 준비로 한창인 가운데.
나 홀로 한 발 떨어져서 관망하는 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한예린과의 결혼식.
그것에 힘쓰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무엇보다 그것을 제일 보고 싶어 하셨으니까.
지한그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게 확정되면서 정략결혼의 의미가 옅어지나 싶었지만, 최준석의 아들보다도 ‘최지훈’이라는 정치인 그 자체로서 집안에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것이었으니까.
덕분에 결혼식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처음 결혼을 생각할 때만 해도 그 누구보다도 성대하고 화려하게 치를 생각이었으나, 경비와 규모를 모두 최소한으로 하여 조촐하게 치르기로 결정했다.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을 포함해 그들의 자녀들 결혼식만 해도 정계 친목 모임의 장이 펼쳐지는 느낌이라지만.
따로 축의금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함께 혼인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중요했기에.
이번에는 가족 및 친지들만 모아두고 결혼식을 치를 예정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형제들이 상견례에는 참석하지 않았어도 결혼식에는 참석하기로 했다.
물론, 해외로 도피한 최지곤이나 감옥에 들어가서 징역 생활을 하고 있는 최은실은 제외.
날짜는 최대한 당겼다.
다음 달 둘째 주 토요일.
결혼 준비부터 시작해서 식을 올리는 걸 한 달 만에 처리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지한그룹 측에서 전적으로 준비를 해주었기에 내가 할 일이라고는 주변에 결혼사실을 알리는 것뿐이었다.
혼인을 치른다는 사실에 대한 보도 자료도 나가고는 있었지만, 대서특필될 만큼 주목을 받지는 않았다.
여전히 아버지를 저렇게 만든 잔당들의 재판이 치러지고 있었고.
또 차기 대선에 대한 관심도가 컸기에 언론에서는 그것들에 대해 보도하는 데만 해도 정신이 없었으니까.
“네가 진짜 결혼을 하네.”
넷째 형 최지성은 감회가 새로운지 연신 헛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내가 보기엔 아직도 애 같은데 말이야.”
“나도 다 컸어. 이제 스물여섯이라고.”
“그게 애기지.”
“하하하, 형은 언제 애 낳으려고?”
“글쎄다. 노력하고는 있는데 아직 소식이 없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너는?”
“글쎄. 와이프 될 사람은 낳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아직 일도 하고 싶어 하고.”
“애 봐주는 사람은 구할 수 있지 않아?”
“그렇긴 해도, 또 온전히 일에 신경 쓸 수 있지는 않게 되니까.”
“맞아. 그게 걱정이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슬쩍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그래서 그건 잘 준비되고 있어?”
이번 대선에서 써먹을 조커 카드.
마음 같아서는 직접 하는 게 안심이 되겠지만, 안 그래도 최은실과 최지곤까지 보낸 마당에 결혼식까지 겹쳐져서 나를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의심을 사기 쉬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최지성에게 부탁한 상태.
“어느 정도 준비는 되고 있어. 다만, 내 영역이 아니라 100% 확실하진 않네.”
그는 주변을 살피고는 내게 더 몸을 기울였다.
“80% 이상 완료되면 네게 말해줄게.”
“그래.”
그래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최지성이니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린 뒤 물었다.
“참, 그나저나 아버지는?”
최지성은 턱짓을 하며 물었다.
“요즘 따로 소식 없어?”
“일부러 청와대에 아무도 안 들이시는 것 같아. 우리 가족들은 아예 안 부르고 정치 인사들만 부르던데?”
“그래?”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준비하시는 게 있는 건가?”
“분명 있으실 거야.”
아버지의 성격 상, 순순히 관망만 하다가 물러나실 분이 아니니까.
분명 돌아가시기 전, 무언가를 하실 터.
“요즘 청와대가 조용한 걸 보면, 오히려 폭풍전야 같아.”
“잘 대응해. 나는 정치 쪽은 정말 모르겠으니까.”
“걱정 마.”
가볍게 입꼬리를 휘며 대답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아버지 편이니까.”